#330 차라리 멍청하다고 욕을 해
핑커톤 탐정들은 리노 갱단들을 추격했다.
그들은 놈들이 숨어든 킹스턴의 펄스 농장 인근에 멀찌감치 떨어져 상황을 살폈다.
“농장에 리노 형제들이 있는 걸까?”
“어떻게 할 거야, 윌리엄? 만약 놈들이 대비라도 하고 있으면 이 인원으로는 힘들어.”
“일단 정찰부터 해보자.”
어디에 몇 명이나 숨어 있는지 윌리엄은 망원경으로 농장을 훑어봤다.
그런데 농장 안으로 숨어든 갱단들은 보이질 않고, 농부처럼 보이는 자들은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게 오히려 더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 불길해. 다른 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때?”
리노 갱단을 추격하는 탐정들은 윌리엄 팀만이 아니다. 정상적이라면 모험을 강행하기보다 안전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런데 윌리엄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했다. SFBC 리더를 만난 이후 줄곧 조급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다.
“좀 더 들어가 보자. 리노 형제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 하고 지원을 요청할 순 없잖아.”
윌리엄이 주축이 된 탐정들은 대부분 20대를 갓 넘긴 젊은 청년들. 반면 다른 팀들은 노련하고 경험 많은 다른 탐정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윌리엄은 그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들 추적을 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잘못된 정보로 불러내면, 그것만큼 민폐가 또 있겠어?”
윌리엄의 설득에 동료들은 하는 수없이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무장 상태를 점검하고 라이플과 리볼버를 앞세워 천천히 농장을 향해 다가갔다.
“탐정이 일곱이야. 제시, 어떻게 할래?”
“가까이 올 때까진 움직이지 마. 쟤들이 다가 아닐 수도 있잖아.”
농장은 사방이 평탄한 초원.
나무들과 풀들에 가려 갱단이 파둔 참호는 여간해선 눈에 띄지 않았다. 흙벽에 등을 기댄 제시가 형인 벅에게 말을 건넸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앤더슨(블러드 빌 앤더슨)과 매복해서 북군 새끼들을 죽였을 때 말이야.”
“아, 그때도 이렇게 참호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적들이 다가오는 발자국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컸던 기억이 있어.”
전쟁은 끝났지만, 그때의 긴장감은 평생 잊을 수 없을만큼 짜릿했다.
“그러고 보니까, 형. 저 리노 저 새끼들은 북군 쪽이었잖아?”
“전쟁은 끝났어, 제시. 우린 돈을 받은 만큼 싸워주면 돼. 근데, 핑커톤을 상대로 싸우는 건 여러모로 손해 보는 짓이긴 하지.”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핑커톤 탐정만 2만 명.
그 10%가 작정하고 쫓는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평생을 도망자로 살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얼마 전 미주리주 리치먼드의 은행을 털고 두 사람을 살해한 전적도 있었다.
신원이 제대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미주리주는 거듭되는 은행강도 때문에 민병대를 조직해 이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핑커톤까지 건드리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제임스-영거 갱단은 애초에 이 싸움에 적극적으로 임할 생각이 없었다.
콜 영거는 무리에서 가장 어리지만, 강단있는 제시에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다 죽었을 때? 물론 우리만 빼고.”
“역시 너도 나와 생각이 같구나.”
콜 영거는 만족스러운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방어하는 배치 역시 리노 갱단을 앞세우고 제임스 영거 갱단은 좌우, 후방에 포진되어 있었다. 리노 형제들의 뒤통수를 노리기 적합하고, 여차하면 농장에서 빠지는 것도 수월했다.
“그런데 콜, 그거 알아? 리노 형제들 바운티 점퍼(Bounty Jumper)였다는 거.”
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은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했다.
그런데 이 법은 있는 자들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다. 3백 달러를 내면 사정이 있는 경우 대리인을 내세우는 걸 허용했다.
금액은 남군이 50, 북군이 3백 달러(추후 남군도 100달러로 올리긴 했다).
리노 형제들은 돈을 받고 남을 대신해 군대를 지원하는 바운티 점퍼였다.
“근데 리노 저 새끼들은 정작 군대에 있지도 않았어. 여기저기 주를 돌아다니면서 바운티만 받고 다니고, 탈주하다 발각된 적도 있었데.”
“얼마 전 32명한테 바운티를 받은 놈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리노 새끼들도 쓰레기였구만.”
“남군, 북군 떠나서 애초에 신념도 신의도 없는 놈들이지.”
“그럼 우리가 놈들을 응징해야 맞는 거네.”
죄를 더 큰 죄로 덮는다. 법정에서 통하진 않지만, 정신 승리는 마음의 위안을 가져오고 이들에게 정당성을 심어 줬다.
“어찌 됐든, 핑커톤부터 잡고 보자고.”
제임스-영거 갱단은 상태를 관망하며 핑커톤 탐정이 접근하길 기다렸다.
잠시 후.
농장과는 제법 떨어진 곳.
말을 멀찌감치 세워둔 막스와 콜린이 비교적 높은 언덕에 배를 깔고 누웠다.
라이플에 소음기를 장착하고, 스코프로는 농장 주변을 샅샅이 훑던 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갱단이 보이질 않냐. 이 새끼들, 미리 준비해둔 거면 좀 위험해 보이는데?”
“탐정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는 차린 것 같네요.”
윌리엄을 주축으로 한 젊고 패기 넘치는 탐정들은 천천히 농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걸음을 내딛는 움직임은 느리고 신중했다.
앨런이 봤다면 흐뭇해할 정도로.
“그런데 앨런은 왜 쟤들만 보냈을까. 너무 자기 아들을 과신한 거 아냐?”
“인디애나에서 부터 추격했으면, 미주리 지부에서도 따라붙었을 겁니다. 다른 탐정들과 방향이 엇갈린 거겠죠.”
“그럼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저 자식 성과에 눈이 멀었구만. 된통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앨런의 아들 윌리엄은 자기 힘으로 이 사건을 매듭지으려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실패를 경험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행인데.
‘굳이 목숨 걸고 비싼 교육비를 낼 이유가 있나.’
앨런의 아들만 아니었다면 뒤통수에 총을 쏘고 싶을 정도로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이때.
땅 밑에서 두더지처럼 대가리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탐정들과는 20미터도 되지 않은 곳이었다.
‘매복?’
탕!
탕!
“아악.”
탐정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나머지는 즉시 풀밭으로 몸을 눕혔다.
대응 사격은커녕 머리를 땅에 처박고 총구만 들어 올려 대응 사격을 했다.
총알이 소진되고 재장전하는 동안 리노 갱단의 둘째, 존 리노가 사격을 중지시켰다.
기습을 당했으면,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탐정들이 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보를 얻은 존 리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른 탐정들은 없는 모양이네. 다음 재장전 때 놈들을 잡는다.”
또다시 총격전이 벌어졌다. 풀밭에 엎드린 탐정들은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해 난사했다.
그리고 총알이 떨어지자.
“지금이다! 돌격해!”
프랭크의 지시에 맞춰 참호에 있던 놈들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젠장!’
화가 난 윌리엄이 손으로 땅을 내리쳤다.
매복을 파악하려 접근한 게 오히려 기습의 빌미를 제공했다. 지금 상황에선 다리에 총을 맞은 동료는커녕, 자기 목숨도 보존하기 힘들었다.
‘전부, 전부 내 책임이다.’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아니, 차라리 비판만 받는 거라면 괜찮다. 동료를 잃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윌리엄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풀잎 사이로 참호에서 올라오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이 급해지자 총알을 넣는 것도 힘겹다. 오늘따라 더럽게도 약실 구멍이 좁아 보였다.
적들이 다가오고, 윌리엄은 가까스로 채워 넣은 세 발을 끝으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이때.
뚜쿵!
후방에서 잔뜩 물먹은 총성이 들려왔다.
순간 아버지 앨런에게 들었던 SFBC 대원들이 사용하는 저격 총의 특징이 떠올랐다.
‘우릴 따라온 건가?’
기쁨 뒤에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창피함.
윌리엄은 이마를 땅에 박으며 자신을 무모함을 원망했다.
한편, 저격 총에 경기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제임스-영거 갱단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콴트릴, 블러드 앤더스 빌의 게릴라 부대였던 이들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소리였으니.
“시발! 저거 SFBC 저격총이잖아!”
“젠장 핑커톤은 미끼였던 거야!?”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당장 미주리를 빠져나가야 해!”
핑커톤과 SFBC의 개입.
지금은 무조건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좌우, 후방에 숨어 있던 제시 제임스 갱단들은 일제히 참호에서 튀어나와 마구간으로 달렸다.
이를 본 리노 갱단 리더 프랭크가 소리쳤다.
“이 개자식들! 약속을 어길 셈이냐!”
“멍청한 놈, SFBC는 약속 어디에도 없었어!”
탕!
탕!
제시가 뒤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를 따라 마구간으로 달리며 제임스 영거 갱단들이 뒤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명백한 뒤통수였다.
더욱이 리노 갱단을 경악하게 만든 건, 동료 한 명이 놈들에게 붙었다는 사실이다.
“윌슨, 이 개새끼야! 감히 배신을 해!?”
움찔한 윌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미리 준비를 해두었는지, 말들은 굴레와 안장이 전부 채워져 있었다.
올라타자마자 제임스 영거 갱단은 뻥뚫린 마구간 뒤쪽으로 내달렸다.
그 뒤를 주인 없는 말들을 고삐끼리 엮어 줄줄이 끌려갔는데 리노 갱단들의 말이었다.
“개자식들! 기필코 내 손으로 죽여주마!”
“곧 죽을 놈이 죽이긴 누굴 죽여. 돈은 잘 쓰마!”
제시 제임스는 광오한 웃음을 남긴 채 농장에서 멀어져 갔다.
분노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프랭크는 서둘러 주변 상황을 떠올렸다.
저격당한 부하 몇몇이 죽은 것 같고, 나머지는 참호에 처박혀 감히 나올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핑커톤에 SFBC까지 가세했으니 빠져나가긴 요원해 보였다.
‘개죽음 당하느니 차라리.’
형제들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복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궁리했다.
그렇게 결심을 끝낸 프랭크 리노는.
참호 밖으로 총을 던졌다.
“투항하겠습니다! 숨겨둔 돈의 위치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형제들과 부하들은 멍하니 프랭크를 쳐다봤다.
막스와 콜린은 동시에 스코프로 프랭크 리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흥미로운 상황이라 콜린이 입을 열었다.
“보통은 끝까지 저항하거나 도망치는 게 정상인데. 같은 편에게 뒤통수 맞은 게 억울했나.”
“쟤들 죄목이 뭐라고 했죠?”
“기차 금고 탈취. 기관사와 승객 살해.”
“그럼 교수형감인데.”
그럼에도 순순히 투항한다는 건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
죽은 두 명을 제외하면 탐정들에게 포승줄로 엮인 리노 갱단이 열 둘. 농장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존 리노가 낮게 속삭였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형! 탐정들 숫자가 고작 일곱 명이었어. 차라리 싸웠어야 했다고!”
“전쟁 때 특수부대원들 실력 못 봤어? 말도 없이 걸어서 저격을 피해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수형 당할 게 뻔하잖아!”
“나는 그렇겠지.”
“뭐?”
프랭크 리노가 피식 웃으며 동생들을 바라봤다.
“은행을 털고 살인을 저지른 건 전부 내 책임이다. 내가 계획하고 실행한 거야. 너희들은 말렸지만, 내가 협박해서 벌인 일이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잔말 말고, 그렇게 진술해.”
“누가 속닥거리래!? 입 안 닥쳐?”
탐정이 윽박지르자, 리노 형제들은 침묵하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핑커톤은 사설탐정이지 사법 기관이 아니다.
범죄자를 붙잡으면 그 처분은 법관에게 맡겨야 한다.
연방 보안관도 자체 체포 영장과 현장 판결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은 연방과 주의 대법관 관할 소속이었다.
리노 갱단처럼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 경우, 연방 보안관이 현장에서 교수형을 집행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막스와 콜린이 현장에 나타난 건 핑커톤 탐정들이 갱단을 포승줄에 줄줄이 엮은 뒤였다.
리노 갱단은 연방 보안관 배지를 단 콜린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옆에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막스는 SFBC 대원쯤으로 여겼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윌리엄이 막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상자가 있던데.”
막스가 지혈을 막 끝내고 비스듬히 나무에 기대고 있는 탐정을 바라봤다.
그는 괜찮다며 미소까지 보였다.
콜린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피식거렸다.
“지금이야 괜찮겠지. 빨리 총알 제거하지 않으면 다리는 퉁퉁 붓고, 썩기 시작하면 잘라 내야 할 거야. 뭐, 익숙해지면 지낼만하다니까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머리에 안 맞은 게 어디냐.”
미소는 사라지고 탐정은 울먹거리며 콜린을 쳐다봤다.
막스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은 어두워지고 하늘엔 구름이 몰려들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죄수들과 노숙할 바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무는 편이 나았다.
“캔자스 시티로 가서 호송할 마차 요청하고, 저 친구를 병원으로 옮겨. 인근에 있는 다른 탐정들에게도 연락하고.”
“...... 알겠습니다.”
막스는 자연스레 윌리엄에게 지시를 내리고, 윌리엄 역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탐정은 필사적으로 말에 오르고, 농장엔 윌리엄과 탐정 둘만 남았다.
막스와 같이 있는 게 껄끄러웠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비난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뒷수습만 지시했을 뿐, 막스는 더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가끔가다 마주치는 눈빛은 윌리엄의 가슴을 턱턱 막히게 했다.
‘차라리 멍청하다고 욕을 해!’
마음속 비명을 질러 보지만, 상대는 철저히 자신을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