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너 혹시 별명 있냐?
소녀의 이름은 마사 제인 캐너리.
출생 지역 미주리주 마사 카운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앞으로 제인으로 불러요.”
“글쎄다. 그렇게 부를 날이 있을까 싶은데. 말했지만, 난 의뢰를 받을 생각이 없거든.”
“그럼 총은 뭐 하러 들고 다녀요? 무법자가 아니라면, 그 총은 악마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요.”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난 네 의뢰를 맡을 정도로 한가하진 않아.”
제인은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혼자 하기엔 부담스러워서 그렇죠? 왜 아니겠어요. 상대는 갱단인데.”
그럴 줄 알고, 제인은 또 다른 총잡이를 고용했다고 하는데. 아버지 복수에 진심이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굉장하냐면, 개틀링 기관총을 리볼버로 제압한 실력자예요.”
“...... 혼자서?”
제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막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인은 진짜라며 눈을 치켜떴다.
“술집에서 싸우는 걸 봤는데, 실력은 진짜였어요. 아저씨 그거 할 줄 알아요? 건 스핀? 그것도 엄청 화려했어요. 그리고 놀라지 마세요.”
제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 뉴욕 파이브포인츠 출신이래요. 그것도 갱단 최고의 총잡이.”
“오늘 여러 번 놀라는구나.”
“그쵸? 아무튼, 아저씨 혼자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파이브 포인츠 출신의 총잡이에, 개틀링 기관총까지 제압했다니.
막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짓자 제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어째선지 막스가 의뢰를 수락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제인은 막스와 발걸음을 나란히 하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아버진 가족과 이웃에게만큼은 친절하고 마음이 여렸어요. 근데 그럼 뭐 하겠어요. 번듯한 땅도 없이 술과 도박만 좋아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여섯째 아들이 태어난 뒤로 아버지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갑자기 ‘언제까지 소작농으로 살 순 없지! 번듯한 땅을 얻기 위해 와이오밍 포트 브리저로 가자’라고 하지 뭐예요. 그땐 진짜 놀랐어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었거든요. 일곱째를 낳았으면 더 괜찮아지셨을까요?”
“······”
“동의하시는군요.”
“아무 말 안 했다.”
제인의 아버지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 장물을 팔고, 모아둔 동전을 수표로 바꿔 와이오밍으로 이주할 준비를 했다.
“여행하려면 튼튼한 조랑말들과 마차는 필수죠. 엄마랑 동생들이 어떻게 걸어서 와이오밍까지 가겠어요. 참고로 제 동생들은 다섯이나 돼요. 죄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내놈들이죠. 아무튼, 아버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 들렀는데 하필 강도들을 만났죠.”
‘리치몬드 은행이라.’
공교롭게도 장소와 시기가 제임스-영거 갱단의 짓으로 추정되는 은행 강도 사건과 일치했다.
“그때 아버지의 돈을 빼앗고 금품을 강탈한 자는 클레 밀러란 놈이었어요. 블러디 빌 앤더슨 밑에서 있던 사악한 게릴라였죠.”
“자세히도 아는구나.”
“리치먼드 보안관에게 들었거든요.”
“다른 공범들에 관한 건?”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붉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려 인물을 특정 짓기 힘들다고 했다.
“클레 밀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스카프를 벗겨 정체를 밝힌 거래요. 용기를 보면, 아마 술을 마셨던 것 같아요.”
“...... 근데.”
막스가 발걸음을 멈추고 제인을 쳐다봤다.
어느새 도착한 곳은 캘리 여관이었다.
“어디까지 쫓아올 셈이냐.”
“정확히 말하면, 쫓아온 건 아니에요. 저도 여기서 머물거든요.”
1층이 술집인 캘리 여관.
하필 제인이 머무는 곳이었다.
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어루만졌다.
우연이 겹치면 의심이 들게 마련이다.
우체국에서 만난 것부터 다분히 계획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막스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술집으로 들어서자, 금발의 여인이 둘을 반겼는데, 콜린의 부인 사라였다.
그녀는 제인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너 진짜 저분을 찾은 거니?”
“우체국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스카프를 보자마자 딱 알아봤죠.”
애초에 제인이 캘리 모텔을 찾아온 건 콜린 때문이었다.
저녁 시간 때라, 캘리 여관 술집에 손님은 몇 되지 않았다.
제인은 볼일이 있다며 방으로 올라가고, 막스는 사라와 구석진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리치먼드 보안관이 제인에게 정보를 줬대요. 여기 오자마자 미주리주 최고의 연방 보안관을 찾더라고요.”
그런데 콜린은 오자마자 세인트루이스로 대법원으로 가야 했다.
제인이 실망하자 콜린은.
- 혹시 모르지. 여기에 있으면 더 실력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결국, 콜린이 저한테 일을 떠넘긴 셈이군요.”
“제 남편이지만 가끔은 개념이 없죠. 그런 의미에서 저녁은 제가 맛있는 거로 대접할게요.”
“숙박비 할인은요?”
“20%?”
사라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스가 사라를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
첫 만남 때부터 느꼈지만 오래 만난 사람처럼 친근했다. 그녀의 커다란 장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초저녁부터 술에 취한 취객들끼리 싸움이 붙었는데, 사라는 익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어떻게 똥구멍으로 위스키 마시게 해줘?”
“시발, 저 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다니까!?”
“누가 먼저 시작했든! 여기서 행패 부리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술 그만 처먹고 꺼져!”
철컥.
바텐더가 담담하게 총을 장전하고, 웨이트리스, 사라까지 소매를 걷어 올린다.
전부 여자들이었지만 기세가 남자들 못지않다.
취객들은 마지못해 술집 밖으로 나갔다.
‘콜린이 없어도 술집은 잘 돌아가는구나.’
그래서 장기간 자리를 비워도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소란이 끝나고 술집에 남은 손님이라곤 막스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끼익, 끼익.
스윙도어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술집에 들어섰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나뿐인 손님, 막스를 응시한 뒤 빈 테이블로 향했다.
남자가 벨트를 풀어 홀스터와 리볼버를 의자에 걸터 놓을 때. 제인이 2층에서 소리쳤다.
“오, 잘 왔어요, 더간! 제가 드디어 또 다른 실력자를 찾았어요.”
날듯이 계단을 내려온 제인은 더간이라는 남자에게 다가가 속닥거렸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더간은 총과 벨트를 챙겨 막스가 있는 테이블로 합석했다.
가까이서 본 얼굴은 이제 갓 20대가 되어 보였다.
“이쪽은 마틴 더간. 제가 말했던 총잡이에요. 그리고 이쪽은.”
“막스카프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더간이 막스에게 물었다.
“우리 막스카프 친구는, 인디언 혼혈인가?”
가끔 이런 오해를 받곤 한다.
특히 여름철, 피부가 검게 그을리면 자주 듣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젠 이름까지 더해져 오해를 더 부추겼다.
막스가 대답하지 않자, 더간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상대는 갱단이다. 어중간한 실력으로 내 발목을 붙잡을 거면, 지금이라도 빠져.”
“시작도 안 했는데, 빠지긴 뭘 빠져. 그나저나, 뉴욕 파이브포인츠 출신이라고?”
“인디언 혼혈이라 잘 모르겠지만, 뉴멕시코 황야보다 더 거친 곳이지. 신문 기사로는 차마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눈빛만 마주쳐도 칼부림이 일어나, 골목마다 피가 철철 넘치는 생지옥. 더간은 파이브포인츠를 그렇게 묘사했다.
“뉴욕에서 개틀링 기관총도 상대했다던데, 진짜야?”
“말도 마라. 어떤 미친 새끼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개틀링 기관총을 난사했으니까. 내가 막지 않았으면 시체로 산을 쌓았을 거야.”
“......”
막스의 시선이 더간의 위아래를 훑어 내린다. 나름 얼굴은 잘생기기까지 했는데 안타깝게도 허세와 허풍이 잔뜩 끼어 있었다.
입에서 헛웃음이 나오려 할 때 더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그거 알아? 난 그 미친놈을 죽일 수 있었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어.”
“왜지?”
“그 미친놈이 북군 총사령관이었거든. 로버트 리였다면 내 총탄이 이마를 꿰뚫었겠지만, 난 북군 쪽이었지.”
“다행이군. 근데 총사령관이 너를 그냥 놔뒀어?”
더간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 총 솜씨에 반했는지, 부하로 들어오라더군. 하지만 난 내 갱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의리 빼면 시체거든.”
더는 개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질문을 안 하기로 했다.
막스가 사라를 쳐다보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녁은 그냥 방에서 먹을게요.”
“그럴래요?”
막스는 더간과 제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시 제임스를 제거하긴 해야 하는데.’
다만 혼자서 할지, 아니면 SFBC 대원들을 동원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얘들하고 하느니, 차라리 혼자 하지.’
복수에 눈이 먼 철없는 소녀와 허풍쟁이 총잡이. 막스는 기막힌 조합이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렇게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탁.
더간이 테이블 위에 리볼버 한 정을 올려 두었다. 그는 불타는 시선으로 막스를 노려봤다.
“내 등 뒤를 맡기려면 실력부터 확인해야지. 먼저 잡으면 인정해 주마. ”
“굳이 인정받고 싶지 않은데.”
“갑자기 두려워졌나? 하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것부터 겁쟁이인 줄은 알았지. 이름 참 잘 지었어. 막스카프.”
비아냥거리는 더간의 얼굴을 보며 막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럼 한 번 해볼까.”
테이블 위에 놓인 리볼버는 쳐다보지 않고, 막스와 더간의 시선이 충돌했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뻗었다.
‘이놈 봐라.’
더간이 발로 테이블을 당기고, 오른손으론 막스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다.
많이 해본 솜씨였다.
막스는 끌려가는 테이블을 걷어찼다.
리볼버를 허공으로 띄우고. 동시에 뻗어 온 더간의 주먹을 회피. 힘을 역이용해 팔을 끌어당겼다.
“!”
상체가 무너진 더간의 머리를 테이블에 내리찍고, 막스는 허공에 있는 리볼버까지 낚아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철컥.
해머를 코킹한 뒤 머리에 총구를 겨누자, 얼굴에 가드를 한 더간이 손을 들어 올렸다.
“...... 인정.”
항복을 선언했다.
“인정은 뭔 인정이야.”
막스가 더간의 왼쪽 귀를 잡아, 비틀었다.
비명을 지르자, 제안이 놀라 소리쳤다.
“그만 하세요. 아저씨가 이겼잖아요.”
“아니야. 귀가 많아서 하나 없어도 돼.”
“아악!”
뭔 소리냐며 막스의 팔을 붙잡는 제인.
하지만 입꼬리는 자꾸만 올라갔다.
어쩐지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
“너, 총은 좀 쏘냐?”
“진짜, 사람을 뭐로 보는 겁니까. 개틀링 기관총을....”
“진짜 귀하나 뗀다?”
“.......”
막스는 팔짱을 낀 채 테이블에 앉아 더간을 쳐다봤다. 옆엔 제인도 함께였다.
굳이 함께 한 이유는 더간이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댓 명의 무장한 놈들이 남서쪽으로 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요. 탐문 수사를 한 끝에 내가 알아냈습니다. 사실 앨런 핑커톤이 저를 데려갈 정도로···.”
“닥치고. 넌 무슨 자신감으로 걔들을 쫓냐. 설마 얘가 준다는 돈 때문은 아니지?”
“......”
“진짜 이유가 그거야?”
더간이 말이 없자, 제인이 끼어들었다.
“사실, 리치먼드 은행에서 현상금을 걸었거든요. 범인들을 체포하면 두당 백 달러. 훔쳐 간 돈을 찾아오면 10%를 주기로 했죠.”
“너 의뢰 비용을 그걸로 충당하려는 생각은 아니지?”
“왜 아니겠어요. 대신 제 몫을 떼어 주는 거니까 그게 그거잖아요.”
무슨 돈이 있어서 100달러씩이나 주나 싶었는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인은 갱단을 잡으러 가는 여정에 동참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든, 제 눈으로 놈들이 죽는 걸 직접 봐야겠어요. 두 분에게 걸리적거리지 않을 거니까, 그건 염려 안 하셔도 돼요.”
제인의 말에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겼던 더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작년, 감옥에 붙잡힌 두 놈이 잭슨 카운티 감옥에서 탈출했어요. 그중 하나가 제인의 아버지를 죽인 클레 밀러. 당시 간수 둘을 죽이고 탈출을 도와준 게 제임스-영거 갱단입니다.”
그리고 죽은 간수는 마틴 더간의 유일한 피붙이.
뉴욕에서 함께 서부로 온 형이었다고 했다.
“그 개자식들은 전부 블러디 빌 앤더슨의 부하들입니다. 클레 밀러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 게릴라 전투를 벌이다 붙잡혔죠.”
막스는 더간과 제인이 얽힌 사건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경험이 풍부한 남부 게릴라들을 상대로 복수전을 하겠다는 건데. 언뜻 무모해 보이지만, 애초에 연방 보안관인 콜린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걸 보면 나름 터무니없는 계획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틴 더간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사실 콜린 연방 보안관이 끼지 않으면 놈들을 추적하는 건 무립니다. 애초에 제가 원했던 건, 콜린의 뒤에 있는 SFBC니까요. 뉴욕에서 봤거든요. 그들의 힘을.”
더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콜린 보안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은근 치밀하네.'
팔짱을 낀 막스는 새삼 더간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물론 전생의 기억 어디를 뒤져도 얼굴로 매칭하는 건 힘들었다.
히콕처럼 특이하지 않은 이상.
다만, 이름으로 기억을 끄집어내 보면.
“너 혹시 별명 있냐?”
“뭐, 별명이라기보단, 사람들이 저를 마트 더간이라고 부르긴 합니다.”
막스의 뇌리에 스치는 한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서부에서 가장 과소 평가된 총잡이.
그중 한 명이 바로 마트 더간.
'듀간이 아니라 더간이었나.'
원 역사에서 뉴욕 파이브포인츠 출신으로 콜로라도와 캔자스에 이름을 떨친 총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