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어디 한 번, 더 쏴 봐
서부시대 총격 사건 대부분은 텍사스, 캔자스, 뉴멕시코, 오클라호마, 캘리포니아, 미주리, 콜로라도에서 발생했다.
총잡이들의 평균 수명은 대략 35세.
그중 와일드 빌 히콕, 존 웨슬리 하딘, 와이어트 어프, 빌리 더 키드, 닥 홀리데이 등은 서부시대 총잡이 하면 떠오르는 전설적인 이름들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 서부에는 수천 명의 총잡이가 법의 양편에 서 있었다.
보안관, 카우보이, 목장주, 도박꾼, 농부, 마부, 현상금 사냥꾼, 무법자에 이르기까지.
간혹 한 인물이 저 모든 직업을 가진 예도 있어, 선과 악의 경계 자체가 모호했다.
서부 시대에 푹 빠져있던 막스는 미국 여행 도중 ‘치명적인 열두 명(Deadly Dozen)’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잊혀진 총잡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열두 명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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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더간(Mart Duggan)
존 불(John Bull)
팻 데스몬드(Pat Desmond )
밀트 야버리(Milt Yarberry)
댄 터커(Dan Tucker)
조지 굿엘(George Goodell)
빌 스탠디퍼(Bill Standifer )
찰리 페리(Charley Perry)
바니 릭스(Barney Riggs)
댄 보건(Dan Bogan)
데이브 캠프(Dave Kemp)
제프 키들러(Jeff Kid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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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ly Dozen: Twelve Forgotten Gunfighters of the Old West -By Robert K. DeArment
원 역사대로라면 마트 더간은 뉴욕 파이브포인츠를 떠나 콜로라도 광산과 농장을 전전할 시기였다. 하지만 막스로 인해 더간의 행적이 뒤틀려버렸다.
*
고심 끝에 막스는 이번 원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피치의 복수. 그리고 범죄의 전설을 써 내려갈 제임스-영거 갱단을 제거하기로 했다.
또한 그들이 도망간 곳이 인디언 보호구역인 오클라호마라는 것도 결정에 보탬이 되었다.
그곳에 정착한 다섯 부족의 추장들은 평의회의 동의 없이 남북전쟁에서 남부의 편에 섰는데, 이 일로 부족 간 분열이 일어나고 앙금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남부에 동조한 인디언 부족들은 콜로라도 부족들과도 사이가 좋진 않아, 미래를 위해 관계의 변화가 필요했다.
“내일 아침에 떠날 거야. 올 사람은 알아서 따라오도록.”
“진짜 우리끼리 가자고요? 갑자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 겁니까?”
“전 찬성이에요!”
더간은 콜린 연방 보안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길 바라고, 제인은 뭐가 됐든 서둘러 움직이길 원했다.
“겁나면 여기 있던가.”
“그래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대책 없이 갔다간 다 죽는다고요!”
더간이 막스에게 시비를 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총잡이 둘로는 결과가 빤하여 콜린 연방 보안관이 올 때까지 여관에서 버틸 생각이었다.
그런데 되려 자신을 압도하고, 이제는 말도 공손하게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미간을 찌푸린 더간이 막스를 노려봤다.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에휴, 시발. 되는 일이 없냐.’
다음 날 아침.
여관을 나서기 전, 막스는 사라에게 편지를 건넸다.
“미안하지만, 콜로라도 준투에 보내줄래요?”
“어렵지 않죠. 그리고 이거.”
사라가 보따리를 내밀었다. 안에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싸우려면 배가 든든해야죠. 아, 그리고 콜린이 도착하면 바로 오클라호마로 보낼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지원은 콜로라도에서 올 테니까.”
편지를 쳐다 본 사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더간과 제인이 1층으로 내려왔다.
막스는 제인의 오른쪽 바지에 삐죽 튀어나온 물건을 쳐다봤다.
“그거 설마 총이냐?”
“44구경 콜트 드라군이라던데. 아버지 유품이에요. ”
“쏴 봤어?”
제인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랑 사냥할 때 몇 번 싸봤죠.”
“그래서 맞췄어?”
“······”
콜트 드라군의 총신 길이만 7.5인치(19cm).
무거운 데다 반동이 심해 제인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마 한 발 쏘면 몸을 가누기도 힘들 것이다.
“위험하게 바지 주머니에 넣지 말고, 천 주머니에 담아.”
“위급할 땐 바로 못 사용하잖아요.”
“지금은 바로 사용할 수 있고?”
제인이 보란 듯이 총을 빼보지만, 뭐에 걸린 건지 주머니에서 빠지질 않는다.
당황한 제인이 몸까지 비틀며 총을 뽑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 권총 벨트가 있긴 했지만, 너무 길고 커서 맞지 않은 게 문제였다.
“그냥 내일 출발할까? 오늘 내론 힘들 것 같은데. 여차하면 그냥 총알을 던지던가.”
더간이 이죽거리자 제인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때 주방에 갔던 사라가 캔버스 천으로 만든 곡식 주머니를 가져왔다.
“여기에 총을 담아가렴. 주머니 끈을 안장에 묶으면 가지고 다니기 편할 거야. 그리고 네 조랑말 편자가 오래 됐더라, 이참에 새로 달고 옥수수도 먹였어. 등자는 줄이긴 했는데, 너한테 맞을지 모르겠네.”
“제가 줄일 수 있어요. 그런데 미주리주 천사가 있다더니, 아줌마였군요. 오늘따라 더 눈부셔요. 저도 아줌마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요?”
“말하는 것처럼 총도 잘 다뤘으면 좋겠구나.”
“하다 보면 늘겠죠. 전 배우면 뭐든 잘하거든요.”
딸이라도 되는 양 사라는 제인을 안아주고 몇 가지 당부와 기도까지 해주었다.
무슨 생각인지 더간도 양팔을 벌렸다.
사라는 피식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
“그럼 출발할까요!”
제인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지는 영토 대부분이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묶인 오클라호마. 일행은 캔자스-미주리주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캔자스 남부 스프링 강 유역.
땅거미가 아름다운 자줏빛으로 대지를 물들인다.
해가 지고 야영 장소는 폭이 좁은 냇가 부근의 덤불숲이 우거진 곳으로 정했다.
이곳으로 오는 며칠 동안 제인은 막스가 왜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긴커녕 자신을 하인 부리듯 했다!
“제인, 양동이에 물 좀 담아 와.”
그런 다음엔 불을 피울 나뭇가지를 긁어 오고, 식기류를 준비했다.
참다못해 막스에게 따졌다.
“왜 자꾸 저만 시켜요?”
“각자 역할이 있는 거지.”
“총 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아무리 봐도 노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말했잖아. 경계를 서는 거라고.”
“그걸 제가 하면 안 되냐고요.”
막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야영을 준비하던 중에 총성이 들려왔다.
의례 저녁때가 되면 들리는 소리지만, 매번 제인은 깜짝 놀라며 움찔거렸다.
잠시 후 더간이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리곤 익숙한 솜씨로 목을 자른 뒤에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했다.
더간은 가죽 벗기는 솜씨가 일품이었는데, 콜로라도 광산 부근에서 노새 가죽 벗기는 일을 했다고 했다.
“금 캐러 가서 노새 가죽을 벗기셨군요.”
“원래 인생이 그런 거야. 목적대로 되는 게 없지. 금광 캐는 데 라이센스가 필요하다는 게 말이나 돼?”
“라이센스를 어떻게 받아요?”
“로렌스에 가면 해준다더군. 근데 언제 거기까지 또 가겠어? 좆까라고 소리쳤지.”
“욕은 듣기 싫지만, 화 날 만했네요. 그래서 금광 옆에서 금대신 가죽을 벗긴 거예요?”
더간은 부지런히 고기를 자르며 말을 이었다.
“어디 그것뿐이겠냐? 광산 캠프를 돌아다니면서 카우보이도 하고, 인디언하고도 싸우고. 아, 얼마나 죽였는지는 묻지 마. 너무 많아서 숫자 세는 걸 포기했으니까.”
“필사적으로 사셨네요.”
“뭐, 이건 비밀이긴 한데. 광산보다 내가 원하는 건 다른 데 있었거든.”
“비밀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요.”
제인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사슴 다리를 내려치던 더간이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밤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별들을 보며 말하길.
“사실 SFBC에 들어가는 게 목표였다.”
“워어, 저도 들어봤어요. 북군 총사령관이 거기 대장이라면서요? 어, 근데. 그 사람이 뉴욕에서 개틀링 기관총 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더간은 그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뉴욕 파이브포인츠의 중심, 로잔나 피어스 옥상에서 빗자루 쓸듯 개틀링 기관총으로 갱단을 쓸어버리던 충격적인 광경.
도심을 단숨에 지옥으로 옮겨 놓고도 담담하게 손잡이를 돌리는 총사령관의 모습이란.
‘멋있었지.’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SFBC 대원이 되려 어린 더간이 형과 뉴욕을 떠난 게.
하지만 골드러쉬의 일장춘몽처럼 콜로라도에선 SFBC 대원을 만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상하네요. 총사령관이 더간에게 부하가 되라고 했다면서요. 그때 수락했으면 SFBC 되는 거 아니었어요?”
‘쟨 아직도 그걸 믿네.’
모닥불을 피우던 막스가 풉하며 웃자, 더간이 쏘아봤다.
“대체 그 스카프는 언제까지 쓸 겁니까?”
“왜, 내 얼굴 보고 싶냐?”
“전혀요. 하나도 안 궁금합니다.”
“근데 왜?”
“그냥 답답해 보여서요.”
“전혀.”
더간은 신경질적으로 나무 꼬챙이에 고기를 꿰었다. 제인은 거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은 있는 거니까. 더간은 그런 거 없어요?”
“난 잘생겼잖아. 감출 이유가 없지.”
“하긴, 제가 봐도 못 생기진 않았어요.”
오히려 제인은 더간이 잘 생겼다고 생각했다. 흑발에 곱슬머리가 히스패닉스럽지만, 이목구비는 자신과 같이 영락없는 아일랜드인이었다. 반면.
양념을 치던 제인이 막스를 빤히 쳐다봤다.
“제가 살던 곳에 네드라는 목동이 있었어요. 입에 총을 맞아서 윗입술이 날아가고, 앞니도 세 개가 없었죠. 그래도 네드는 항상 당당했어요.”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외모가 다는 아니라는 거에요. 얼굴이 흉측해도, 중요한 건 마음 아니겠어요? 용기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만 있다면 아저씨도 행복할 수 있답니다.”
“하···.”
제인의 말에 더간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막스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가 스카프를 하고 다니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니야. 신분을 위장하고, 불필요한 시비와 관심을 피하기 위해선 효과적이거든.”
“그러니깐 보기만 해도 막 때리고 싶은 얼굴이라는 거네요. 눈빛은 날카로워도 선해 보이는데. 워워, 벗지 마세요. 무리할 필요는 없다구요.”
막스가 스카프를 내리려 하자 제인은 괜찮다며 손을 휘이 저었다. 그런데 이때.
타아아아앙.
비교적 먼 곳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우리한테 쏜 걸까요?”
“아니.”
소리가 들린 거리와 방향. 덤불 숲에 가려진 일행들의 위치. 모든 걸 고려해보면 이들과 무관한 사건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어진 총성은 전보다 가깝게 들려왔다.
“둘이 이곳을 지키고 있어. 섣불리 총은 쏘지 말고. 여차하면 나무 뒤로 숨어.”
“혼자 도망가는 건 아니죠?”
더간의 말에 막스는 코웃음으로 대신했다.
막스는 자신의 말을 큰 바위 뒤로 숨기고 안장에서 윈체스터 라이플을 챙겼다. 어둠에 스며든 뒤엔 접근하는 자들을 경계했다.
잠시 후.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달려오는 자의 숨소리가 거칠고 불안정했다.
이윽고 숲에서 벌거벗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디언?’
조금 먼 거리에선 추격자들의 발자국도 들려왔다.
인디언의 등 뒤를 겨누던 막스는 이내 총구를 내려놓았다. 벌거벗은 인디언은 무기를 갖지도, 숨겨놓는 것도 불가능했으니까.
“뭐, 뭐야 당신!?”
더간이 갑자기 인디언에게 총을 겨누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제인은 입을 막은 채 눈으로는 알몸이 된 인디언을 빠르게 위아래로 훑었다.
절하듯 엎드린 인디언은 냇가 건너편을 가리키고 짧막한 단어만 내뱉었다.
“머스코지 오포틀리야홀라! 오포틀레야홀라!”
더간과 제인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막스는 인디언의 말을 알아들었다.
무스코지는 오클라호마의 한 부족을 뜻하고.
오포틀리야홀라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을 옹호한 인물로, 남군지지 파벌들의 공격을 피해 추종자들을 이끌고 캔자스로 피신한 인물이었다.
뛰어난 웅변가이자 머스코지 크릭의 추장이었던 오포틀리야홀라는 결국 전쟁이 끝나기 전, 혹독한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캔자스 난민 캠프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막스는 열악한 난민 캠프를 꾸린 캔자스 주지사 찰스 로빈슨에게 강력한 유감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오포틀리야홀라의 피붙이인가?’
혹은 함께 캔자스로 피난 온 추종자들이거나.
현 위치는 캔자스 남쪽.
인디언 여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명백하다.
자신은 북군을 옹호한 오포틀리야홀라와 관계가 있으니 냇가를 건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찾아온 건 뒤를 막아달라는 뜻일 테고.
막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더간과 제인이 쳐다보자 손짓으로 인디언을 보내주라고 지시했다.
“진짜 그래도 되는 건가.”
총구로 관자놀이를 긁적거릴 때.
제인이 옥수수빵을 여인에게 내밀었다. 그리곤 냇가를 건너라고 몸짓으로 표현했다.
“건너가요! 우리가 막아 줄게요!”
뜻을 알아들었는지 여자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떠나려 할 때, 제인은 더간이 벗겨놓은 따끈따끈한 사슴 가죽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두르고 가요!”
눈시울을 붉힌 여인은 가죽을 두른 뒤 냇가로 뛰어들었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여인은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놀려 냇가를 건너려 했다.
이때.
타아앙!
덤불 숲에서 총성이 울렸다.
타앙!
냇가에 물이 튀더니 여인의 움직임이 멎었다.
순간 주변이 침묵에 휩싸이고, 다행히 여인은 무사했다. 냇물이 요동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도 먼데다 밤이라 맞추긴 쉽지 않다. 하지만 상대가 뛰어난 사격수라면 물에 박히는 탄착점으로 감을 잡을 수도 있었다.
‘어디 한 번, 더 쏴 봐.’
막스는 냇가가 아닌 소리가 난 덤불 숲을 차갑게 응시했다. 곧이어.
타앙!
덤블 숲에서 불빛이 번쩍거리고, 막스는 그곳을 향해 윈체스터 라이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