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4화 (334/360)

#334 최악에게 총맞는 기분이 어때?

“아악! 나 맞았어! 총에 맞았다고!”

덤불 숲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간혹 저렇게 총 맞았다고 요란 떠는 놈들이 있다. 창피했는지 누군가 놈의 입을 틀어막았는지 끙끙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더간과 제인은 각각 굵은 소나무 뒤로 숨고 인디언 여인은 필사적으로 냇가를 건넜다.

시간을 벌기 위해 막스는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철컥.

탕!

철컥.

적들을 향한 무차별 난사.

야밤에 벌거벗은 인디언 여자를 추격하는 놈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겠는가.

설령 그들의 정체가 캔자스 의원이라 해도 막스는 개의치 않았다.

탕!

탕!

냇가를 향했던 적들의 총구도 방향을 틀어 막스를 노려왔다.

교전이 벌어지고 열다섯 발을 전부 쏟아낸 막스는 바닥에 엎드려 약실을 채웠다.

연사 측면에선 확실히 윈체스터 라이플의 성능은 뛰어났다. 적어도 이 시대만큼은.

손으로 총알을 넣는 동안 입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더간과 제인의 시선이 모이자, 막스가 속삭이듯 소리쳤다.

- 적들의 시선을 끌고, 적극적으로 교전해.

‘교전?’

더간이 뒤를 돌아봤다.

어느덧 냇가를 건넌 인디언 여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화가 난 적들이 덤불 숲에서 소리쳤다.

“개자식들! 우리가 누군지 알고 공격하는 거야!”

“우린 군인들이다! 너희들은 백인을 살해한 인디언 계집을 탈출시킨 거야!”

‘군인?’

전쟁 이후 미국 땅에서 군인은 오로지 연방 소속뿐이다. 그런데 야밤에 인디언 여자나 쫓는 놈들이 군인이라고?

‘개소리.’

하지만 더간과 제인의 얼굴은 잔뜩 얼어 있었다.

- 설마 저 말을 믿는 건 아니지? 쟤들이 군인이면 나는 링컨 대통령이다.

-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 만약 진짜 군인이라 해도, 정상적인 놈들은 아니야. 신경 쓸 것 없어. 아무튼, 넌 확실히 놈들의 시선을 끌도록 해.

막스는 더간에게 강조하듯 말했다.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던 제인이 슬쩍 손을 들었다.

- 저는 뭐 할까요?

- 넌··· 잘 숨어 있어.

제인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짐이 안 되는 게 그녀의 역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막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더간은 적들이 있던 덤불 숲을 향해 총을 쏘며 소리쳤다.

탕! 탕!

“너네가 진짜 군인이라고?”

“궁금하면 와 보던가. 옷 보면 놀랄걸?”

“혹시 산에 처박혔다 기어 나온 남군 아냐? 전쟁 끝났어, 새끼들아.”

“웃으라고 한 소리냐?”

“진심이다. 로버트 리 항복한 얘기 들려줘? 버지니아 애포매톡스에서 막스 조 총사령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닥쳐!”

“흥분하는 거 보니까 남군 맞네.”

탕!

탕!

흥분한 적도 대응 사격을 했다.

남을 도발하는데 더간은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다만 놈들도 한 명만 떠드는 게 수상했다. 이때.

스스슷.

한 명이 막스와 가까운 거리를 지나쳤다.

얼핏 본 복장은 진짜 군복이었다.

더욱 신경 쓰이는 건, 적들이 막스와 같은 전략을 취했다는 것.

한 명은 한자리에서 떠들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더간과 제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어차피 더간과 떠드는 건 총 맞았다고 요란 떨던 놈이다. 당장 죽이지 못한다고 놓칠 것 같진 않았다.

‘저놈들부터 잡아야겠군.’

이미 더간과 제인이 있는 곳으로 바짝 다가간 놈들이 다섯. 그들은 총을 꺼내 틈을 노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막스는 쉽게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놈들의 시선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첫발에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적들의 뒷모습을 보며 막스는 윈체스터 라이플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더간은 이런 상황을 모른 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말야. 여자 뒤꽁무니나 쫓는 놈들한테 총은 사치야, 사치. 차라리 내 옥수수랑 바꾸는 게 어때? 한 정당 두 개 쳐주마.”

“미친놈. 실컷 떠들어라. 조만간 지원군이 도착할 거야. 우리가 왜 느긋한지 알겠지?”

“전혀 느긋해 보이지 않는···.”

“올 테면 오라지! 우리 갱단도 곧 올 거거든요?!”

갑자기 남자들의 대화에 날카롭고 뾰족한 목소리가 훅 치고 들어왔다.

- 너 미쳤어? 왜 끼어들어, 바보야!

더구나 갱단이라니? 더간은 눈썹을 치켜뜨며 으르렁거렸다.

“요즘 갱단은 꼬맹이들도 데리고 다니는 모양이군! 그래서 네 자랑스러운 갱단 이름이 뭔데?”

“제임스-영거 갱단이에요! 내 오빠가 클레 밀러고!”

제인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이름을 팔았다.

군인이 아니면 갱단일 테고, 갱단이면 지들끼리 알지 않을까?

이런 단순한 생각은 뜻하지 않게 고도의 심리전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에 우리 갱단이 이쪽으로 온 거 알죠? 여기서 오빠들과 만나기로 했어요!”

“......”

순간 대화가 멈추고 정적이 흐른다.

더간과 제인에게 근접한 적들의 움직임도 멎었다. 반응을 봐선 제임스-영거 갱단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더간은 신기한 표정으로 제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적들의 중심에 있는 막스는 제인이 만들어준 틈을 이용했다.

웅크리던 막스가 허리를 펴고. 윈체스터 라이플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철컥.

곧바로 총구를 틀어 이동.

탕!

철컥!

방아쇠울을 내려 장전하고, 총구는 기계처럼 다음 타겟으로 움직였다.

탕!

철컥!

그렇게 네 발을 쏘고 마지막 한 명에게 총구를 겨눌 때. 나무에서 빼꼼이 얼굴을 내민 더간이 눈에 들어온다.

탕!

막스와 더간이 쏜 총탄이 마지막 남은 자의 이마와 뒤통수를 동시에 날려버렸다.

털썩.

“끄, 끝났나요?”

제인이 고개를 내밀어 묻고, 더간은 눈을 가늘게 떠 막스를 쳐다봤다.

“막스카프.... 진짜 정체가 뭐에요?”

“뜬금없네.”

다섯을 상대하고도 흐트러짐이 없고.

어두운 밤인데도 샷은 낭비가 없다.

더간은 막스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알겠네요.”

“뭘?”

“SFBC 대원이죠?”

콜린 연방 보안관과 친분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더간은 막스카프가 SFBC 대원임을 확신했다.

이때 제인이 쓰러진 적들을 보며 말했다.

“근대요. 이분들 진짜 군인 아니에요? 혹시, 우리 이제 무법자 되는 건가요?”

제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냐며 중얼거렸다. 놈들의 복장은 분명 연방 군인이었으니까.

“뭐, 확인해보면 알겠지.”

막스는 더간과 수다를 떨던 놈에게 다가갔다.

한 팔로 땅을 기고 도망가려 발악하고 있었다.

“넌 마저 나랑 얘기 좀 하자.”

“웃기지 마. 난 이대로 하나님 품으로 갈 테니까.”

“?”

오른쪽 가슴 가슴에 총상을 입은 놈은 총을 들어 막스에게 쏘려 했다. 하지만 덜덜거리는 팔로는 총구를 드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그런데 눈빛은 뭔가에 취한 듯 몽롱해 보였다.

“몰핀을 맞았나 보군.”

“뭐가 됐든. 난 전혀 아프지 않아.”

콰악.

탕!

팔을 밟은 막스는 총으로 손을 날려 버렸다.

“정체를 밝히면 편하게 보내주마.”

“맘대로 해. 크큭.”

탕!

무릎을 박살 내고 다시 물었다.

비명을 지른 놈은 그제야 정보를 불기 시작했다.

“너, 너도 알지?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는걸. 이 땅을 개척해 신의 뜻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걸. 그게 우리의 명백한 운명이자 신념이라고.”

“.......”

“이 말 들어봤어? 세상에서 착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라고. 이 땅을 더럽히고 운명을 거스르는 새끼들을 죽이는 게 뭐가 어때서. 내가 지금 제일 아쉬운 게 뭔 줄 알아? 더 많이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야. 뭐, 누굴 탓하겠어. 게으른 나를 탓해야지.”

놈은 광기로 가득한 눈으로 웃음까지 흘려댔다.

“너도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건 동의하지? 돈만 밝히는 북부 새끼들은 기어이 흑인을 우리와 동등한 위치로 만들었어. 인디언은 어떻고? 난 겁쟁이들을 대신해 놈들을 제거한 거야. 아, 그리고 이 군복 말야. 내가 생각해낸 거야. 빌어먹을 북군 새끼들로 위장해서 빌어먹을 인디언들을 사냥한 거지.”

“닥치고. 그래서 넌 제임스-영거 갱단하고는 무슨 관계야?”

“아, 걔들. 가장 찬란한 시기를 함께 보낸 동료라고 하면 알려나. 캔자스, 오클라호마, 아칸소, 미주리를 넘나들며 북부 새끼들을 많이도 죽였지. 그땐 정말 대단했다고.”

“최근에 본적은?”

“얼마 전 보긴 했지. 궁금해?”

놈은 조롱하듯 말은 안 하고 입만 뻥긋거렸다.

약에 취해 고통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판단. 막스가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였다.

탕!

느닷없이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총을 든 제인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폭발한 화약의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총구는 하늘로 치솟은 모습이었다.

더간이 달려가 제인의 총을 빼앗았다.

“야야! 너 뭐야? 갑자기 총은 왜 쏜 건데!?”

“물어보려는 데 저자가 나를 쏘려고 했어요.”

제인이 가리킨 놈은 입에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었다. 총상이 두 개인 걸로 봐선 제인이 맞춘 모양이었다.

“..... 뭘 물어봤는데?”

“클레 밀러요.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어요.”

제인은 막스처럼 숨이 붙어 있는 놈을 찾아가 원수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다.

대단한 용기와 집착이었다.

더간 역시 형을 죽인 원수들을 쫓고 있었기 때문에 제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누군가를 심문하던 중이었으니까.

고개를 절레 젓던 막스는 조롱하듯 쳐다보는 놈을 응시하며 물었다.

“인디언,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이 중에서 누가 제일 마음에 안 드냐?”

“몰라서 물어? 그중 최악은 동양인 새끼들이지. 망할 북군 총사령관만 아니었다면 지금쯤은...”

막스가 스카프를 내리자 놈의 눈동자가 미친 듯 요동쳤다.

“최악에게 총맞는 기분이 어때?”

막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막스가 제거한 놈들은 흔히 말하는 인디언 학살자들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을 어슬렁거리며 백인이 있어야 할 곳에 인디언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놈들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주변 정리는 아침으로 미뤘다.

타닥, 타닥.

다시 모닥불을 피운 더간과 제인은 담요를 두른 채 대화를 나눴다.

“신문으로만 봤지, 진짜 인디언 학살자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무서운 세상이네요.”

“나도 콜로라도에서 인디언과 많이 싸우긴 했지만, 이렇게 증오심으로 불탄 건 아니었어. 그냥 사소한 시비가 번졌을 뿐이지.”

“대체 뭣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으니까.”

더간과 제인의 대화에 막스가 끼어들었다.

“그냥 전쟁에서 패한 분노와 증오를 만만해 보이는 인디언에게 쏟은 것뿐이지. 저놈들이 명백한 운명에 대해 뭘 알겠어.”

동양인을 최악으로 꼽지만, 정작 막스를 찾아오지 못하고 인디언을 학살하는 비겁한 놈들일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당분간 그 총은 쓰지 마.”

막스가 품속에서 총을 꺼내 제인에게 내밀었다.

그걸 알아본 더간의 눈빛이 반짝였다.

“스미스앤웨슨 모델 넘버원. 크기도 작고 22구경이라 제인이 쓰기엔 딱이네요.”

길이는 아버지 유품인 콜트 드라군의 절반.

구경과 무게도 그 절반이었다.

“이거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준다는 말은 안 했다. 빌려주는 거지. 그리고 이것도 챙기고 다녀.”

막스는 20발들이 금속탄피 카트리지를 제인에게 건네줬다.

더간은 신기한 듯 물었다.

“대체 총이 몇 자루에요? 아까 사용하던 총은 헨리 라이플도 아니고 완전 신형 같던데.”

“너 총에 관심 많구나.”

“말했잖아요. SFBC 들어가려고 했다고.”

더간은 어떻게 안되겠냐는 눈빛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자자.”

“그러지 말고. 말 좀 해봐요. SFBC 맞죠?”

“졸려. 잠 안 오면 망 좀 보던가.”

“진짜···.”

다음 날.

나뭇잎 사이로 비춘 햇빛이 뺨을 달구었다.

더간이 눈을 비비며 눈을 떴다.

언제 일어났는지, 막스는 우뚝 선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뭐야. 왜 저러고 있어.’

더간은 막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수십 명의 인디언이 냇가 건너편에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여인 한 명은 손에 사슴 가죽을 들고 있었고.

입을 쩍벌린 더간이 제인을 흔들어 깨울 때.

막스가 천천히 스카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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