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7화 (337/360)

#337 난 어디까지나 지질학자일 뿐

“젠장, 마을이 완전 갱단 소굴이구나.”

언제까지 위험한 놈들에게 둘러싸여야 할까.

중얼거리던 킹은 뺨을 때린 막스를 무시하고 제인을 쳐다봤다. 자기 처지도 딱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온 여자아이도 측은했다.

“오클라호마로 가는 것도 위험하지만, 여긴 더 위험해. 당장이라도 떠나는 걸 추천하마.”

제인이 킹을 쳐다봤다. 키 차이는 머리 하나보다 적었다. 성인 남자치고 킹이 작았다.

“아저씬 좀 다르네요. 다들 험악해보이던데.”

“같이 있다고 동급 취급하면 안 되지. 난 어디까지나 지질학자일 뿐이야.”

“그럼 아저씨야말로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거 아녜요?”

‘나도 그러고야 싶지.’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주변에 갱단들이 우글거렸다.

킹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난 그럴 용기가 없어. 내가 도망가면 저들은 끝까지 나를 추적할 거야. 어쩌면 뉴욕에 있는 어머니까지 해하려고 들걸?”

“그렇게 나쁜 놈들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도망가라고.”

킹이 초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틀 녘, 시뻘건 태양을 뚫고 나온 자들이 요란한 말굽 소리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 아무튼, 분명히 경고했다. 나는 마저 잠을 자야겠어.”

미간을 찌푸린 킹은 몸을 돌려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킹이 사라지자 제인이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마을 사람들과 제임스-영거 갱단까지 합하면 30명이 넘어요.”

“그래서 불안해?”

“아뇨. 그냥 궁금해요. 어떻게 저들을 제거할지.”

제인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정작 원수를 눈앞에 두고 두려움을 내색해선 안 된다. 그런 마음이라면 애초에 여길 따라온 것 자체가 모순이었으니까.

막스가 제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더간과 북동쪽으로 3마일 떨어진 곳으로 가. 그곳 언덕 너머에 우릴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야.”

“역시 계획이 있었군요.”

“가서 더간을 깨워. 준비가 끝나면 내가 편지를 주마.”

“알겠어요.”

제인이 쪼르르 여관으로 들어가고, 막스는 수레 안에서 잉크를 꺼내 이를 펜촉에 묻혔다.

종이에 휘갈겨 펜대를 놀릴 때, 흙먼지가 일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고개를 슬쩍 돌리자 말들이 일으킨 뭉게구름은 이내 흩어져 평원 속으로 스며들고, 그 안에서 무장한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있던 사내.

제시 제임스의 얼굴에선 과거 미주리강에서 본 소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순수함은 노련함으로, 호기심은 날카로움으로, 해맑던 미소는 잔인한 광기를 머금고 있었다.

밤새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어정거리며 나왔다.

수레 위에 있던 막스는 머리를 더욱 깊이 파묻었다.

머리에 기름기가 덕지덕지 낀 토마스 벨 풀은 시가를 문 채 제임스-영거 갱단을 맞이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군.”

“딴에는 급한 마음에 달려왔죠.”

“흠. 그래서 시체에서 뭘 발견했지?”

어제 오후, 제시 제임스는 스프링강 유역에서 인디언 사냥꾼들의 시체를 조사했다.

몸에 박힌 탄두, 주변에 떨어진 금속 탄피.

특이한 건 한 시체 머리에 박힌 탄두들인데, 구리와 납탄이 앞뒤로 머리통을 박살 냈다.

제시 제임스는 적이 쏜 위치와 나뭇잎의 흔적들을 토대로 대략적인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적들은 최소 두 명에서 다섯. 그중 한 명은 고도로 훈련받은 잡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런 놈과 엮이고 싶진 않더군요.”

“광산 지분은 개나 소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옛 동료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줄 생각은 없었다고.”

지난 밤을 무사히 보낸 토마스 벨 풀에게 어제의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엄지를 넣은 채 벨 풀이 침을 카악 뱉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제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우리 도움이 필요 없다 이겁니까? 지금이라도 말해요, 우린 상관없으니까. 다만 여기까지 오게 했으면 대가는 치러야죠.”

“대가? 그 대가가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면, 꽤 위험한 발언이야.”

“뭐가 됐든. 대가는 반드시 받아낼 겁니다.”

벨 풀과 제시 제임스의 시선이 충돌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벨 풀과 패기 넘치는 제시의 기세 싸움은 한 명이 물러나며 끝이 났다.

제시 제임스의 분석대로라면 적들은 인디언 사냥꾼을 죽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광산 사업을 정상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진 세력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벨 풀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거렸다.

“아침이나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광산 사업가로 변신한 갱단과 은행을 턴 갱단들의 연합. 맥지 타운의 술집은 이내 시커먼 남자들로 북적였다.

타다다다 다.

계단을 내려오던 더간과 제인이 흠칫하며 발을 멈춰 세웠다.

테이블을 점령한 갱단이 둘을 쏘아보고 있었다.

‘제임스-영거 갱단!’

원수를 마주했지만 정작 가슴이 철렁거린다. 멈칫한 둘을 보며 제시가 입을 뗐다.

“저것들은 또 뭡니까?”

“신경 쓸 것 없어. 삼촌 병 고친답시고 체로키 부족 주술사를 찾아간다는 멍청이들이니까.”

“믿을 게 따로 있지. 위대한 백인으로 태어나서 미개한 인디언 따위에게 의지해?”

“그러니까 멍청한 거지.”

더간과 제인은 헤실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멍청이들처럼.

“아침 먹을 거면 한 시간 뒤에 와. 앉을 자리도 없으니까.”

“알았어요. 그럼 삼촌이나 보러 가야겠네요.”

둘은 술집 주인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마구간 옆, 수레로 다가가자 막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쪽지들과 이상하게 생긴 총을 건네줬다.

더간이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신호탄이라는 거다. 서쪽으로 10마일(8km) 간 다음, 하늘에다 대고 쏴. 정확히 수직으로.”

“북동쪽으로 가라더니, 갑자기 서쪽이라뇨? 혹시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두 군데나 됩니까?”

“도움은 많을수록 좋잖아. 아무튼, 시선 끌지 말고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가.”

“근데 혼자 괜찮겠어요?”

어울리지 않게 더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무리 전 북군 총사령관에 SFBC 대장이라 해도, 적들은 30명이나 된다. 여기 혼자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압박이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마.”

막스가 깔고 앉아있는 수레의 짐을 두드렸다.

과연 어떤 무기가 있을까. 갱단이 수레를 확인하지 않은 건 막스가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위장의 효과가 있었다.

마구간에서 말과 조랑말에 굴레를 씌우고 안장을 올렸다. 제인은 등자 길이를 조절한 뒤 말 위에 올라탔다. 더간이 앞서고 제인은 그 뒤를 따라 조용히 마을을 벗어났다.

막스는 모자를 슬쩍 들어 올려 술집 안을 살폈다. 다들 아침 식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문득 계획과는 상관없이 유혹이 꿈틀거렸다.

'수류탄을 던질까.'

막스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봤다.

피폭으로 갱단 절반은 죽어 나갈 거고, 나머지는 밖으로 뛰쳐나와 막스를 공격할 것이다.

피하고 쏘고, 피하고 쏘고.

그 와중에 총탄을 피하면서 다 잡을 수 있을까?

생각 있는 놈이라면 사방을 포위해 좁혀올 테고, 그걸 버텨냈다 해도 달아나는 놈들은 잡을 재간이 없었다. 즉흥적인 계획은 접는 편이 옳았다.

'절대 쫄아서는 아니다.'

막스는 여유를 갖고 다시금 수레에 몸을 뉘였다.

태양의 이글거리고, 막스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즈음. 밖으로 나온 갱단들은 침울한 킹을 앞세워 외출을 준비했다.

묶어둔 말을 풀고, 더러는 마구간의 말들에 안장과 굴레를 씌웠다. 그러는 동안 한 명이 막스가 있는 수레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막스는 슬며시 보위 나이프를 쥐었다.

“야, 넌 뭐야? 어이.”

턱, 턱.

놈이 발로 수레를 걷어찼다. 놀란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킨 막스는 이내 필살기를 선보였다.

“콜록! 콜록!”

“뭐, 뭐야 이 새낀!”

“야야, 떨어져. 환자 새끼라잖아.”

“아, 시발. 난 또 뭐라고!”

식겁한 갱단은 막스에게 침을 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킹은 입술을 잘근거리며 막스를 쳐다봤다.

간밤에 술은 취했어도, 기억은 말짱했다.

‘아무리봐도 환자는 아니야.’

킹은 인디언 사냥꾼들의 죽음을 막스와 연결 짓지 않았다. 남자 둘과 꼬맹이 여자의 조합 애초에 그럴 가능성을 배제했다.

킹이 막스의 정체를 고심할 때,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벨 풀이었다.

“오늘 투자자들을 만나거든 말조심해.”

“그럼 인디언 문제는 어떻게 말할까요? 사냥꾼들이 죽어서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오늘 또 다른 사냥꾼들이 도착할 테니까. 물론 이 얘긴 투자자들에게 절대 발설해선 안 돼.”

‘인디언 마을을 또 습격할 생각이군.’

킹은 딱히 인디언을 불쌍하다고 여기진 않았다. 여느 백인들처럼 인디언을 잔인하고 미개하며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킹의 이같은 마음은 동부를 벗어나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면서 굳어졌다.

당시 인디언들에게 습격당한 백인 일가족의 끔찍한 시체들은 지워지지 않는 상흔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물론 간접적인 증오심일 뿐이다. 인디언에게 돌을 던지라면, 군중 속에 파묻혀 돌을 던지는 정도에 그쳤다.

킹과 갱단들이 마을을 떠나고 남은 건 환자인 막스와 술집 주인뿐이다.

수레에서 내려온 막스는 곱추처럼 허리를 굽힌 채 손은 오무리고 다리를 절며 술집 주변을 거닐었다.

창문 안에서 식기를 닦던 주인이 투덜거렸다.

"왜 돌아다니고 지랄이야. 재수없게."

그러고 보니 삼촌을 끔찍하게 생각하던 조카들은 보이질 않는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저 식기에 묻은 물기를 닦아 냈다.

주인의 시야에서 벗어난 막스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에 속도가 붙었다.

오그렸던 손가락들을 펴고, 절던 다리는 이내 정상인으로 돌아가 발걸음을 옮겼다.

'술집 이층은 여관. 저긴 잡화점, 저쪽은 농장.'

마을의 터가 워낙 넓어 도로는 넓고 건물은 띄엄띄엄 세워졌다. 다 합쳐봐야 다섯 개 안팎.

교회는 크지 않았고, 축사와 헛간들로 봐선 과거 거주했던 사람들이 주로 농장과 가축을 기르며 생계를 유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막스는 마을 건축물과 동선을 살피며 30명을 제거할 작전을 구상했다.

*

석양에 초원이 불타오를 즈음, 갱단들이 마을로 되돌아왔다.

나갈 때보다 20명이 더 늘어났다.

총열이 긴 스펜서 라이플로 무장한 인디언 사냥꾼들과 체로키 인디언들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말도 안 되는 조합이 가능했던 건, 철저히 돈으로 묶인 관계라서였다.

인디언들은 벨 풀의 동료 체로키 인디언 톰 스타의 부하들이고, 인디언 사냥꾼들은 돈에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며칠 전 막스가 제거했던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밤을 넘기면 안 되겠군.'

술집을 등잔불이 환히 밝히고, 밖은 어스름한 어둠이 짙게 배었다.

수레에 앉아 육포를 질겅이던 막스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클로렌스 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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