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침대 밖은 위험하다고
탕! 탕!
쐐에에엑.
밖에서 날아온 총탄과 화살은 특정한 누군가를 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떨어지고 박히는 것 자체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밖이 더 위험해!”
“다들 안에서 자리 잡아!”
“술집 말고 다른 건물로 들어가!”
일부는 술집으로, 일부는 옆에 있는 잡화점과 철물점으로 몸을 피했다. 수년간 비워진 곳이라 안은 거미줄과 텅빈 공간 뿐이었다.
하지만 좁은 문을 동시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동료들의 등에 부딪혀 길이 막히고, 날아오는 총탄과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술집 안으로 들어간 놈들은 테이블을 엎어 낮은 창문을 막으려 했다. 이때 어둠 속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데구르르르.
작고 동글지만 꽤 위협적으로 보이는 쇳덩이가 바닥을 굴러다닌다.
“피, 피해!”
쾅!
막스는 멈추지 않고, 핀을 뽑아 수류탄 하나를 야구공 던지듯 던졌다.
술집 벽에 부딪힌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내 굉음을 냈다.
쿵!
술집 안에 잇달아 폭탄이 터지자, 그 충격은 2층까지 전해져 건물 전체를 들썩였다.
동시에.
쩍!
부서진 의자와 테이블 다리가 바닥을 뚫고 천장에 깊숙이 처박혔다.
침대에 머리를 쳐박고 있던 클로렌스 킹은 사색이 된 채 나무 파편 끝이 파르르 떨리는 걸 지켜봤다.
- 오늘 밤. 소란이 일어나거든, 방에서 절대 나오지 마.
‘뻑뻑! 이런 상황에서 방을 나오지 말라고?’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그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발에 죽느니,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쇄에에에엑.
텅!
창문 틈에 화살이 꽂히며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그냥 침대와 한 몸이 되는 거로.
‘아침이면 괜찮아질 거야. 침대 밖은 위험하다고.’
킹은 그렇게 수없이 되네이며 공포의 밤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아르르르르!
아르르르르!
“개새끼들, 대체 왜 저런 소릴 내는 거야!”
인디언이 내지르는 소리에 벨 풀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체로키 인디언 톰 스타와 술집 주방으로 몸을 피했다.
“소리를 들어 봐. 한 방향이 아니야. 우리가 포위됐다는 걸 알리는 거라고.”
“젠장,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거군.”
“머스코지 부족 가운데 최약체 놈들이 이런 반격을 할 줄은 예상 못했는데. 아무래도 SFBC가 놈들을 끌어들인 것 같아. 며칠 전 인디언 사냥꾼들이 죽은 것도 마찬가지고.”
벨 풀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해봤자지. 당장은 여길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내 생각에 이 땅 주인. SFBC 같아.”
“.......”
벨 풀이 말이 없자, 톰 스타가 미간을 찡그렸다.
“풀, 너 혹시 알고 있었어?”
“...... 그냥 그럴지도 모를 거라고는 생각했지.”
“근데 인디언 마을을 습격한 거야?”
“난 사업가가 아니야. 잘하는 짓을 한 것뿐이라고.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톰 스타는 체로키 부족에서 무법자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부족은 그를 버렸고, 살아남기 위해선 벨 풀과 같은 무법자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광산 사업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그 과정은 역시 무법자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광산은 시작도 하기 전에 망했구나.”
“...... 아직 기회는 있어.”
벨 풀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제시가 길을 뚫어줄 거야. 이대로 당할 놈이 아니거든. 놈들의 동료가 죽든 말든, 우린 그 틈을 이용하면 돼.”
오늘과 같은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북군을 상대로 한 게릴라 전투에서 숱하게 겪어본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시는 예상치 못한 전술과 용단을 보였다.
벨 풀이 제임스-영거 갱단을 광산 지분까지 주고 끌어들인 것도 그런 경험 때문이었다.
“우린 제시 제임스의 움직임만 잘 따라가면 돼.”
이층 복도 끝방.
더간과 제인이 머물렀던 방에는 제임스와 영거 형제가 모여 있었다. 소란이 일어나자마자 이들은 난장판에 휘둘려 싸우기보단, 한 곳에 모여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벨 풀 멍청한 놈이 일을 너무 크게 벌였어. 인디언과 SFBC까지 끌고 오는 미친 새끼가 어디 있냐고.”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지. SFBC가 개입한 건 우리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제시의 말에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젠장, 리노 개자식들 때부터 일이 꼬이는구나. 하필 SFBC랑 엮이냐고!”
“겁쟁이 같은 소리 하지 마, 프랭크 형. 우리가 SFBC한테 꿀릴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사방이 포위됐어도, 한 곳만 뚫으면 돼. 미개한 인디언 새끼들은 활과 창이 아니면, 멕시코 전쟁 때나 사용했던 총뿐일걸?”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벨 풀을 이용해야지. 그 늙은 쥐새끼는 우릴 이용할 생각이겠지만.”
제시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즉각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제시는 방마다 숨어 있는 부하들을 소집하고, 1층으로 향했다.
술집에 널린 피폭된 시체와 파편들을 짧게 쳐다보며, 입으로 벨 풀의 이름을 외쳤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겁니까, 벨 풀! 이러다 머리가죽 벗겨지겠어요!”
“지금 농담할 상황인가?”
주방에서 벨 풀과 톰 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로는 측근들 다섯도 함께였다.
제시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3시 방향에 인디언들이 창을 들고 있더군요. 거길 뚫고 벗어납시다.”
“설마 걸어서 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마구간까지만 길을 뚫어줘요,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게 제일 위험한 거 아냐?”
“밤입니다. 거리는 고작해야 눈먼 총탄을 피하는 덴 용기만 있으면 되죠.”
제시는 말투도 표정도 여유로웠다.
벨 풀은 머리를 굴려 이득을 따졌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말은 필수였다.
오히려 제임스-영거 갱단보다 먼저 마구간을 도착해 말을 먼저 차지하는 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밤은 밤이지.’
벨 풀은 부하들과 마구간 길을 뚫기로 했다.
톰 스타와 인디언들도 가세했다.
“그럼 우린 뒤 따라가죠. 타겟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제시의 말에 벨 풀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부하들과 술집 측면에 있는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마구간으로 고고!”
그런데 술집 밖으로 나간 순간, 더 많은 건물에 불길이 치솟았다.
사실상 술집이 마을의 중심부라 활활 타오르는 불길들은 밤을 낮으로 만들었다.
식겁한 벨 풀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날아오는 총탄들 때문에 어떻게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가자! 두려워하지 마라!”
벨 풀과 톰 스타는 부하들과 함께 미친 듯이 마구간으로 질주했다.
그런데 절반이 채 가기도 전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마구간에 말들이 튀어나와 날뛰었다.
누군가 강제로 풀어준 게 분명했다.
불을 보고 흥분한 말들은 이윽고 마을을 벗어나 초원으로 내달렸다.
“시발···.”
벨 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때, 마구간에서 총성과 함께 불꽃이 번쩍인다.
날아온 총탄은 정확히 벨 풀의 이마를 뚫었다.
철컥.
타앙!
두 번째로 톰 스타의 머리를 날리고, 연이은 총탄은 차례대로 부하들을 쓰러트렸다.
“저기다! 쏴!”
제시 제임스가 소리치자 술집 안에서 총구들이 불을 뿜어댔다. 마구간을 향해 수십 발의 총알이 날아들었다.
바닥에 엎드린 막스는 포복으로 기어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이때 누군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재빨리 몸을 굴러 벽으로 붙은 막스는 어둠 속에 은신하며, 다가오는 놈을 기다렸다.
그런데.
“SFBC 대장! 야, 막스!”
‘음?’
어떤 놈이 저렇게 부르는 걸까.
쥐새끼처럼 낮게 웅크리며 다가오는 그림자는 막스를 발견하지 못한 채 막스를 애타게 불렀다.
“시발, 막스! SFBC 대장!”
철컥.
“왜, 새끼야.”
“......”
흰자위를 굴린 남자는 더간이었다.
마구간에서 총을 쏘는 걸 보고 막스가 있다는 걸 알고 다가온 것이었다.
“누가 그렇게 부르래.”
“...... 대답이 없길래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친 새끼가 대답을 해?”
“그래서 저도 조용히 불렀잖아요.”
“닥치고. 여긴 왜 왔어. 쪽지 못 봤어?”
막스는 콜로라도에서 온 SFBC 대원들에게 제인과 더간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잡고 있으라고 말했다.
“제가 여기 온 목적이 뭔데요. 이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할 겁니다.”
“흠. 제인은?”
“당연히 저도 왔죠.”
더간 뒤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제인은 더간의 뒤에서 자신의 기척을 숨겼다.
‘훌륭하다.’
막스는 내심 감탄했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다.
“둘 다 돌아이구나.”
“저는 반드시 클레 밀러에게 아버지를 죽인 죗값을 치르게 할 거예요.”
막스는 대책 없는 둘을 보며 혀를 끌끌찼다.
그리곤 더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준 총 있지?”
더간이 품속을 뒤적거려 플레어 건을 막스의 손 위에 올려두었다.
“이걸로 뭘 하게요?”
“좌표 찍으려고.”
대충 잔챙이들은 정리되었고, 남은 건 술집에 처박혀 농성하는 제임스-영거 갱단을 잡는 일이다.
철컥.
막스가 플레어 건에 굵고 묵직한 탄을 집어넣고, 술집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타아앙!
탄환은 대각선으로 날아가 술집 2층에 처박혔다.
연기와 불꽃이 일고, 이내 작은 태양이 생겨났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
붉은빛을 본 대원들이 말을 내뱉었다.
“대장이 좌표를 찍었군.”
“다들 준비해.”
이들은 정식 SFBC 대원이 아닌 한때는 존 프레몬트의 휘하에 있었던, 다국적 용병들.
콜로라도에서 죽도록 훈련만 받던 프랑스 용병 다뇽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등에 멘 강철판을 꺼내 방패처럼 손에 쥐었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
달빛을 받은 철판이 번쩍거렸다.
“건물 진입은 이게 최고지. 그럼 가볼까.”
밖에서 총을 쏘던 다국적 용병들은 거침없이 말을 질주하여 마을로 진입했다.
한편, 술집에서 농성하던 제시 제임스는 미간을 찡그린 채 이를 깨물었다. 여유로운 표정을 사라지고 초조함과 다급함이 묻어났다.
다른 건물에 불을 붙인 놈들이 여기라고 놔둘까.
술집이 불타오르면 도망갈 기회조차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적들의 눈을 피해 갱단 전체가 움직이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지금은 각자도생밖엔 답이 없었다.
“프랭크, 콜, 밀러. 아무래도 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방법은 알지?”
다들 제시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오로지 자신의 운과 실력에 의지해야 했다.
“빠져나가거든 오클라호마 웰치에서 다시 만나···!”
‘왓더···.’
저게 뭐지? 부서진 술집 문과 창문들이 번쩍거리는 철판들로 막혀버렸다.
놀란 갱단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팅.
탕! 팅.
아무리 총을 쏴도 철판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백날 쏴바라, 새끼들아!”
망연자실한 갱단들을 조롱하듯 철판을 두드리고 흔들어 댔다. 그리고 철판들 틈으로 뭔가가 던져지더니, 이내 바닥에 기름을 쏟아냈다.
“통구이 될 준비됐나!? 됐으면, 다들 소리 질러!”
“꺄호!”
‘미친 새끼들!’
SFBC 대원들의 광기가 이 정도였던가.
한때 게릴라로 악명을 떨치던 갱단들조차 저들의 압도적인 광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옛다, 뜨거운 맛!”
다뇽이 성냥을 던지자 이내 술집 바닥에 불이 붙었다. 매케한 연기와 불길이 치솟자 저마다 이층으로 튀어 올라갔다.
방문을 온몸으로 부딪혀 부수고. 침대에 머리를 박고 있던 킹은 이게 뭔 상황인지 눈을 껌뻑거렸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방으로 쇄도한 놈들은 킹을 지나쳐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