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어딨어요
술집에 불이 붙자마자 1층에 있던 자들은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방문을 부수듯 열고 난 다음엔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줄줄이 기어 나오네.”
“저걸 못 맞추면 다시 조선 돌아가야지.”
탕!
탕!
콜로라도에서 훈련받은 조선인들.
다국적 용병들처럼 전투적이진 않았지만, 그들도 민란을 경험한 자들이다.
농기구 대신 총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한 뒤론 실전을 쌓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 윈체스터 라이플이 있었다면, 썩어빠진 탐관오리 대갈통을 날려버렸을 텐데.’
임술농민봉기 당시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분노를 낯선 미국 땅에서 키워나갔다.
“어, 저거 뭐지?”
누군가 2층에 사다리를 놓더니, 그 끝에 검은색에 총과 칼이 수 놓인 스카프를 걸어 휘날렸다.
“보스다!”
“사격 중지!”
킹은 부서진 바닥에 불길과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고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과연 갱단들이 불나방처럼 창문으로 몸을 던지는 이유가 있었다.
‘방에 있으라며!’
여기 있다간 불에 타 죽을 거고, 밖에 나가면 총에 맞을 게 분명하다.
일생일대의 선택에서 갈팡질팡하던 때.
창문에서 머리가 삐죽이 솟아났다.
“사람이 센스가 있어야지.”
“!”
막스는 빼꼼히 내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침대 밖으로 나오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킹은 눈물을 뿌리며 창문으로 달려갔다.
“아니, 어떤 새끼가 불을 질렀더라고요!”
“그러니까, 망할 놈들···.”
막스는 나무 사다리를 이용해 킹을 여관에서 빼냈다. 다리에 불이 붙긴 했지만, 무사히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한편, 불이 번져가는 술집 옆에서 제인은 쭈그려 앉아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 무언갈 발견했는지, 제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윽고 창밖에서 뛰어내리다 총에 맞은 시체에게 오리걸음으로 다가갔다.
‘클레 밀러.’
드디어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냈다.
제인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2층에서 떨어지는 놈들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기어코 그 속에서 클레 밀러를 찾아냈다.
그런데 불행히도 클레 밀러는 죽지 않았다.
다가간 순간 클레 밀러가 제인의 앞섶을 끌어당겨 움켜잡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클레 밀러가 속삭였다.
“네년이 인질이 되어줘야겠다.”
딴에는 솟아날 구멍을 발견한 듯 말하지만, 제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란 말이냐.”
“아직 안 죽어줘서요. 살아 있으면 저를 인질로 잡을 것 같았는데, 진짜였네요. 역시 당신은 쓰레기였어요.”
클레 밀러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때, 딱딱한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찔러왔다.
‘총?’
나이도 어린 소녀에게 총이라니. 당황한 클레 밀러의 요동치는 눈동자가 제인을 향했다.
“우리 아빠는 왜 쏜 거예요? 은행만 털고 갔으면 됐잖아요. 덕분에 와이오밍으로 가서 번듯한 땅도 사고, 학교도 다닐 수 있었는데. 계획이 전부 틀어졌어요. 엄마는 몸이 아파서 누워있고, 동생들은 끼니나 제대로 챙길지 모르겠어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어야죠.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고 떠드는 걸 어떻게 그냥 놔두겠어요.”
“......”
“제가 아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말했어요. 죽어서 가는 지옥은 필요 없다고. 그래서 총을 쏴도, 천천히 죽을 수 있는 부위에 쏘라고 했어요.”
“...... 누군지 모르지만, 아이한테 개소리를 지껄였구나.”
“당신은 욕할 자격 없어요. 아무튼, 왜 우리 아빠를 쐈는지 죽으면서 잘 생각해 봐요.”
“...... 얘야. 그땐 나도 어쩔···.”
탕!
탕!
탕!
제인은 막스가 준 웨슨 모델 넘버1 리볼버로 심장을 제외한 부위에 세 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어딨어요.”
제인은 떨리는 손으로 리볼버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옷 사이로 따뜻한 총구가 느껴지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제 돌아가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금 죽어가던 프랭크 제임스와 콜 영거의 숨통을 끊은 더간이었다.
“가요.”
더간의 손을 붙잡은 제인은 그동안 겪은 고생들이 떠올랐는지 소리 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마을을 포위한 인디언과 SFBC 대원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아버지의 복수를 끝낸 제인의 통곡은 불타오르는 맥지 타운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탈출에 필사적인 인물도 있었다.
스스슥, 스스슥.
‘개자식들.’
시체가 조금씩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피 웅덩이에서 빠져나온 듯 얼굴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한쪽에선 확인 사살을 하는 듯 쓰러진 자들에게 총을 쏴댔다. SFBC의 광기와 집요함은 치를 떨 정도였다.
‘여길 빠져나가면 전부 나무꼬챙이에 목을 걸어주마.’
커다란 고목 나무의 가지에 주렁주렁 걸린 머리들을 생각해 보라. 그중 가장 굵고 잘 보이는 가지에는 동양인의 머리를 꽂을 생각이었다.
제시 제임스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을 채운 건 SFBC를 향한 분노와 증오였다.
그리고 복수를 떠올린 끝에 생각난 건.
‘WCBS! 거기밖에 없다.’
조직이 출범하기 전에 WCBS는 제시에게 몇 차례 손을 내밀어 왔다.
그들은 전쟁 당시 제법 이름을 날린 이들에게 접촉을 시도했는데, 제임스-영거 갱단 전원이 스카웃 대상이었다. 그만큼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제임스 형제와 영거 형제들은 조직에 속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조직을 향한 충성 따윈 개나 주고,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무법자가 되자. 이왕이면 북부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 되자 했다. 결과적으론 애꿎은 민간인을 여럿 죽였지만.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놈들이 저항하고 덤비지 않았다면 죽일 생각까진 없었으니까.
‘꼬라지가 이러니까 별생각을 다 하는군.’
그깟 몇 명 죽인 게 대수인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서부에서, 그 법칙을 따른 것뿐인데.
제시 제임스는 기어이 마구간까지 기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환자가 타고 있던 노새와 수레를 발견했다.
‘난리통에도 멀쩡하네.’
문둥병 환자 새끼의 손때가 묻어 꺼림칙하지만, 머릿속에 묘수가 떠올랐다.
수레바퀴를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환자 놈은 보이지 않았다.
제시 제임스는 그 안에 몸을 눕혀 노새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드르륵.
느릿느릿 노새가 발을 내딛고 이내 수레바퀴가 움직였다. 불타오르는 마을을 빠져나가는 동안 바쁘게 오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오그라들지만, 다행히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마을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저 새낀 죽지도 않았네.’
콜록거리며 다리를 저는 진짜 환자 새끼가 천천히 수레로 다가왔다.
미간을 찡그린 제시는 리볼버에 향하던 손을 멈추고, 부츠 안에 숨겨둔 칼에 손을 뻗었다.
‘총소리가 들리면 곤란하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칼로 찌르고 시체를 수레에 싣자. 그렇게 놈과 엉켜서 나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병이야 옮든 말든.
지금은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스르륵, 스르륵.
다리를 끌며 다가온 남자가 노새 고삐를 잡아 멈춰 세우더니 얼굴을 수레로 들이밀었다.
“...... 콜록?”
남자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묘한 기침 소리를 내뱉었다.
순간 제시가 숨겨둔 칼을 목에 찔러 넣었다.
그럴 계획이었다. 그런데.
푹.
제시의 오른팔을 관통한 보위 나이프 칼날이 수레 옆면, 나무판자에 박혔다.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떨군 제시는 왼손으로 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환자 새끼는 그보다 빨리 칼을 잡아 마저 자신의 왼팔에 쑤셔 박아 수레 바닥에 고정했다.
“끄아악!”
“수레가 움직이길래 웬 쥐새끼가 타고 있나 했더니, 제시 네 놈이었군.”
“이··· 개새··· 끼! 환자가 아니었어!”
“왜 이래, 같은 짭끼리. 네놈도 환자는 아니잖아?”
막스가 웃으며 스카프를 내렸다.
‘동양인!’
제시가 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발작하듯 경련을 일으켰다. 그럴수록 고통이 밀려오고 온몸에 땀이 맺혔다.
‘전부 이 개자식이 꾸민 일이었어.’
벨 풀은 그냥 이용당한 것에 불과할 뿐.
제시는 막스에게 농락당했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이 제삿날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치미는 분노와 증오를 입으로나마 뿜어냈다.
“뻑뻑! 망할 SFBC 새끼들이 왜 여기까지 쳐들어온 거야! 대체 네까짓 게 뭔데? 동양인 나부랭이 새끼가 남의 나라에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냐고! 네가 정의야!? 넌 사람을 마구 죽여도 괜찮냐고!”
“난 내가 정의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증오와 분노로 누굴 죽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마음이 아주 평온하거든.”
막스의 담담한 시선이 제시 제임스로 향한다.
허세나 거짓말이 아니다.
피치가 총을 맞긴 했지만, 상처 없이 결혼까지 하고 쌍둥이까지 낳고 잘살고 있다.
제시에게 분노 따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남북전쟁, 아니 그 이전 보더 러피안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노예제 옹호론자는 악이요, 노예제 폐지론자는 선이라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노예제 폐지론자 중엔 흑인들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인권 따윈 안중에도 없는 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노예 해방엔 관심도 없고, 북부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선동에 휘둘려 전쟁에 뛰어들었다.
반대로 남부는 어떠한가?
노예제 옹호론자 중에선 흑인 노예들에게 진심이었던 자들도 많았다.
월급을 챙겨주고, 가족을 만들어주고 계약이 끝나면 자유인으로 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남부에 서서 연방에 총칼을 겨눴다.
차이가 있다면 단지 그것뿐이었다.
막스가 바라보는 남부와 북부는 모두 피해자며 가해자였다.
제시의 저주는 멈추지 않았다.
“네 놈이야말로 지옥에 떨어질 거야! 하나님은 동양인 따위에게 천국을 약속하지 않았거든! 그리고 이 개새끼야! 세상은 강한 놈만 살아남는 거야! 난 그 룰을 따랐을 뿐이라고!”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착각하지 마. 네 놈을 죽이는데 거창한 감정 따윈 없으니까.”
막스가 리볼버 총구를 제시의 머리에 겨누고.
해머를 젖혀 코킹. 방아쇠를 당겼다.
“다음 생엔 SFBC 대원으로 태어나라.”
“좆까!”
타앙!
머리가 기울어진 제시의 몸이 꿈틀대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소년병으로 시작해 남군 게릴라를 거쳐 무법자가 된 사내.
원 역사에선 핑커톤의 추적을 뿌리치고 앨런에게 패배를 안겨준 제시 제임스는 그 이름을 세상에 떨치기도 전, 캔자스 남부의 불타버린 잿더미 마을 맥지 타운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콜로라도에서 온 SFBC 대원과 다국적 용병, 조선인들이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막스는 인디언 수뇌부와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개발될 광산과 그들의 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광산 사업은 제가 할 겁니다. 콜로라도에서 회사가 꾸려지고, 관리 감독은 캔자스 주에게 맡길 생각이죠. 인부들은 백인과 인디언으로 구성하되 동등한 조건과 급여를 받게 될 겁니다.”
이미 콜로라도 광산이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머스코지 인디언 부족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막스가 광산을 통해 노리는 건 콜로라도처럼 오클라호마 인디언들이 광산 사업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세상에 세워둔 벽을 조금씩 허물게 만드는 일이었다.
“저는 인디언 부족도 백인들처럼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당신들을 보호하는 건 총이 아니라 돈이 될 테니까요.”
일부 백인들에 동화된 인디언들은 사업에 뛰어들어 제법 돈을 모은 자들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개인이 축적한 부에 그쳤다.
인디언이 회사를 만들고 수천 명을 고용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동체를 먹여 살릴만한 사업체가 있다면, 전통은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땅과 돈이 있으면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테니까요.”
“알면 벌써 그렇게 했겠지요. 하지만 보다시피 우린 땅을 파서 돈으로 바꿀 능력은 없습니다.”
“그럼 그 능력을 키워야죠. 손 놓고 있으면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난 당신들의 사고가 유연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막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인디언들은 오클라호마의 머스코지 부족을 과감히 뛰쳐나와 북부에 편입한 자들이다. 그들은 기독교를 믿고 백인들처럼 이 땅에 어울려 살아가길 원했다.
‘하나의 사례를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다.’
철도왕, 철강왕, 금융와, 석유왕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인디언이 있었다면 인디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전통적인 농축산업이 아닌 이 시대를 뛰어넘는 사업을 주도한다면?
아니, 주도하는 게 힘들다면 적어도 그런 산업의 중심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해서 막스는 파급력이 높은 사업들을 인디언 영토에서 추진할 계획이었다.
다만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은 과실은 경계해야 한다. 벽돌 쌓듯 단계를 밟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인디언과 대화를 끝나자 더간과 제인이 찾아왔다.
“그 바진 뭐야.”
“제가 준 사슴 가죽으로 만들었대요.”
“정확히 따지면 내가 잡은 사슴 가죽이지.”
더간이 입을 삐죽거렸다.
며칠 전 탈출에 성공한 인디언 여인은 부족들 틈에서도 줄곧 막스 일행을 쳐다봤다.
막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여인이 수줍게 손을 흔든다. 옆에 있던 제인이 화답했다.
“그래서 둘은 언제 돌아갈 거야?”
“날이 밝으면 돌아가야죠.”
막스의 질문에 제인이 대답했다.
더간은 입을 닫은 채 말이 없었다.
“육로로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 제인 너는 나와 콜로라도로 가는 게 어때? 거기서 기차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거야. 그리고 우리 정산도 덜 끝났잖아?”
“..... 참 그랬지.”
“왜, 주기 아깝냐?”
“설마요.”
제인이 헤실거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복잡했다.
은행 강도들의 목에 걸린 현상금만 대략 천 달러가 넘어간다. 이번 사건은 사실상 막스가 전부 한 거라 현상금을 주장할 위치도 아니었다.
‘50달러를 어떻게 마련하지.’
제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막스가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현상금은 관심도 없다.”
“...... 진짜요? 여기에도 천사가 살았군요.”
막스가 웃음을 터트리자, 이때다 싶었는지 더간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저기요. 혹시 SFBC 대원 안 뽑습니까? 제 실력 봤잖아요.”
주변에 있던 SFBC 대원들과 다국적 용병들의 시선이 더간을 향했다.
막스가 코웃음치며 물었다.
“뭔 실력? 그러고 보니까, 너 오늘 뭐 했냐?”
“...... 많은 일을 했죠.”
“나 찾아다닌 거? 아무튼 당장 뽑을 생각은 없다.”
“역시 그렇군요.”
더간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이때 막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신 콜로라도에 가면 네가 할 일은 있을 거야.”
“예전처럼 노새 가죽 벗기는 일이라면, 절대 안 할 겁니다.”
“뭐, 그럴 일은 없을 거야. SFBC가 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일들이니까.”
‘SFBC가 되기 전에?’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질구질한 인생에 서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더간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기쁨을 삼켰다.
“음. 알겠습니다. 콜로라도로 같이 가죠.”
제인이 잘 됐다며 옆구리를 쿡 찔렀다.
막스는 구석에서 고독을 씹고 있는 킹에게 다가갔다.
“나랑 콜로라도에 안 갈래?”
“왜, 왜죠? 전 뉴욕에서 탐사 자금을···.”
“콜로라도에서 광산 사업을 할 회사를 꾸릴 거야. 같이 광산 사업 시작하는 것만 도와줘. 그리고 내가 자금 대줄 테니까 오지 한번 멋지게 탐사해보자.”
“대체 그 오지가 어딘데요?”
막스가 웃으며 북쪽을 가리켰다.
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캔자스? 다코타?”
“노노. 더 위쪽.”
“캐나다!?”
“노노, 더 위쪽.”
“그럼 알래스카밖에 없는데!?”
“그렇지. 바로 거기거든.”
맥지 타운 수습은 대원들에게 맡기고, 막스는 콜로라도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내내 킹을 꼬드겼다.
“그냥 땅만 파면 다 금이래. 나 믿지?”
“에휴. 그게 말이 됩니까.”
“어어, 진짜라니까?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냄비를 금으로 만든대.”
“아니, 생각을 해봐요. 금으로 된 걸 어떻게 냄비로 씁니까? 다 녹지.”
“그래서 이름이 골드 스프래. 못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막스의 개소리에 클로렌스 킹은 과연 맥지 타운에서 봤던 인물과 동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
콜로라도 준투 요새.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서와 루시가 막스를 보자마자 돌을 던졌다.
“!”
팔짱 낀 피치가 고개를 저으며 나무랬다.
“쌍둥이들. 그럼 안 돼. 아빠야, 아빠.”
“.... 파파?”
저 인간이? 처음 보는데!?
쌍둥이들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큰 눈을 껌뻑거렸다.
“이해해, 엄마도 얼굴 까먹을 뻔했으니까.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해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단다.”
다가온 피치가 막스를 포옹하더니 입을 맞춘다.
“고생했어.”
역시 집이 최고다.
막스는 쌍둥이들의 손에서 돌을 빼앗고 양팔에 하나씩 앉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편지가 도착한 편지가 있는데. 읽어보진 않았어.”
서재 책상에 놓여 있는 두 개의 편지.
뉴욕에 있는 마크 트웨인, 워싱턴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편지였다.
먼저 마크 트웨인은 그의 성격답게 내용이 다소 생뚱맞았다.
[찰스 디킨스가 미국에서 독서 여행을 한대! 표 구해놨으니까 꼭 뉴욕에 와야 해!]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쓴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대문호.
‘거길 내가 굳이?’
마크 트웨인은 찰스 디킨스의 미국 방문에 밤잠을 설쳤지만, 막스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이 시대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탈리아의 장군 주세페 가리발디가 오면 모를까.
막스는 링컨에게서 온 편지를 뜯었다.
내용을 읽던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본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영국이 일본 남부를 지원하면서 우리 예상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네.
막부에서 막스 자네를 찾고 있어.]
무기와 병력을 지원하지 않으면, 막부가 무너진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