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화 (344/360)

#344 어려운 선택

“저 동양인. 총사령관 막스 조 맞지?”

“상대를 봐.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잖아. 저 둘과 대화할 수 있는 동양인이 누가 또 있겠냐. 근데, 뉴욕엔 또 왜 온 거지. 또 개틀링 기관총 쏘는 건 아니겠지?”

로비 구석에 있던 안토니오 무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막스의 신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건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막스를 기다리는 동안 힘들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사업에 망하고, 부인은 무치가 가지고 있던 그림과 기계들을 중고 딜러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겨우 무대 기술자로 일자리는 얻었지만, 먹고 살기엔 빠듯했다. 발명은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특허 낼 돈도 없어 몇 안 되는 인맥을 동원해 투자금을 유치하려 했다.

그중 한 명이 발명품에 투자하긴 했지만, 액수가 적고 그마저도 올해 초를 마지막으로 끊겨 버린 상황이었다.

‘저 자를 놓치면 다신 기회가 없을 지도.’

로비 구석에 앉아 신문을 펼쳐 들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안토니오 무치는 막스가 있는 자리만 힐끔거렸다.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는 동부 철도 노선을 장악하며 몸집을 불려 갔다.

“지금 미 전역에 기획된 철도 노선만 백여 개가 넘네. 기획안만 내밀면 투자금을 유치하는 건 일도 아니지.”

“뭐, 다시 한 번 철도 붐이 일어난 거죠.”

밴더빌트의 말에 제이 굴드가 거들었다.

둘의 말처럼 전쟁 이후 철도 산업은 황금기를 되찾아갔다.

‘이런 시기일수록 조심해야지.’

전생에 읽었던 경제 서적에서 수도 없이 나온 개념이 있다.

호황기-후퇴기-불황기-회복기.

막스 머릿속엔 코사인 그래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제 사이클’ 그래프가 박혀 있었다.

‘가장 가까운 경제 공황이 10년 전.’

철도 사업과 부동산 투기 광풍의 거품이 꺼지고, 기획서들은 종이 쪼가리가 되었다.

막스가 콜로라도 금광을 발견한 시기와도 일치했다.

개척마을이었던 로렌스에까지 여파가 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막스 덕분에 일자리를 얻고 경제 공황을 피할 수 있었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거품이 꺼지는 건 시간 문제에요. 가장 큰 불안은 연방 정부의 부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겁니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 정부의 부채는 6천 4백만 달러. 이후 전쟁과 재건에 자금을 조달하느라 정부 부채는 어느덧 10억 달러로 늘어나 있었다.

“이것도 작년 기준이라, 올해는 더 늘었을 겁니다.”

“전쟁 자금을 마련한답시고 무리하게 통화 발행을 늘린 게 부메랑이 된 거지. 결국, 금을 팔아서 통화량을 회수하는 방법밖에 없을 거야.”

제이 굴드의 판단은 정확했다.

현재 링컨은 존 브라운이 발행한 ‘그린백’을 회수하기 위해 금(金)을 풀 계획을 갖고 있었다.

원 역사에선 링컨이 발행한 그린백을 율리시스가 회수하는 데, 순서가 엉켜버린 것이다.

어찌 됐든, 상황을 제대로 인지했으면, 다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중요하다.

막스는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가져가야 할 건 알짜 노선들입니다. 나머지는 적절한 때에 지분을 매각해야죠. 아무래도 철도가 개통하기 직전이 좋겠군요.”

“그렇게 자본을 축적한 다음은?”

철도, 철강, 석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둘의 시선이 막스의 입에 쏠렸다.

막스는 로비 구석을 스윽 쳐다본 뒤 대답했다.

“전신입니다.”

“전신? 웨스턴 유니온 말인가?”

“이동은 꼭 철도로만 하는 건 아니죠. 웨스턴 유니온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들이 전보 사업을 달러 송금으로 확대할 때.

새로운 금융 시스템은 막강한 위력을 갖게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등장하기 전이라 보통은 전보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했다.

짧은 단문만 가능하고, 그마저도 가격이 비싸 확장성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도 같은 생각이었다.

“게다가 웨스턴 유니온은 너무 커버려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

“기다리다 보면 틈이 생기겠죠. 기회가 왔을 때 현금만 넉넉하면 주인을 바꿀 수도 있을 겁니다.”

달러 송금 서비스도 탐나지만, 막스는 웨스턴 유니온이 보유한 전신망에도 눈독을 들였다.

미 전역에 깔아둔 망을 활용한다면 전화 보급을 빠른 속도로 확산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원 역사에서 그레이엄 벨은 AT&T를 설립해 웨스턴 유니온과 특허 소송 등을 벌인다.

그리고 경쟁에서 밀린 웨스턴 유니온은 전화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따지고 보면, 전부 불필요한 시간 낭비지.’

특허 소송, 중복된 전신주 매립으로 돈과 시간을 날리지 않기 위해.

막스는 전화기의 상용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웨스턴 유니온의 지분 확보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힘들다.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 JP 모건까지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막스는 미팅이 끝나고 호텔 밖까지 나가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를 배웅했다.

다시 로비로 돌아왔을 땐, 신문에 얼굴을 파묻은 안토니오 무치에게 슬쩍 다가갔다.

“오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화들짝 놀란 무치가 고개를 돌렸다.

“내, 내가 끼어들 자리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랬소.”

“그러셨군요. 결심은 섰습니까?”

막스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안토니오 무치는 말없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인을 확인한 막스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콜로라도로 옮길 수 있습니까?”

“사실, 가족들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 했습니다. 오늘 여길 찾아온 건···.”

무치는 부인이 막스를 사기꾼으로 여긴다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냈다. 좋게 말하면 꽤 솔직한 성격이었다.

막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지금은 의혹이 풀렸습니까?”

무치는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이야기를 하던 끝에 구체적인 이주 일자를 확정했다.

“짐이라고 할 것도 딱히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뭐, 필요한 건 콜로라도에서 천천히 채워나가면 될 겁니다.”

사람들은 콜로라도를 시골보다 못한 깡촌으로 여긴다. 아직 준주에 불과한 데다, 광산 마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안토니오 무치가 부인에게 말했다.

“오늘 계약서에 사인했어.”

“...... 그자가 진짜 총사령관인지 확인은 하신 거예요?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요.”

부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당신,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 알지?”

“왜 모르겠어요.”

밴더빌트와 제이 굴드는 워낙 신문에서도 많이 언급된 사업가라 얼굴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근데 왜요?”

“호텔에 갔더니 그 총사령관과 그 둘이 미팅을 하고 있더라고. 그러니 그 이상 뭘 확인하겠소.”

*

안토니오 무치의 가족과 콜로라도로 가는 길.

막스는 무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화뿐만 아니라, 안토니오 무치는 상당히 많은 것들을 발명했다.

취득한 특허만 해도 양초 몰드, 램프 버너, 등유 처리 개선법, 탄화 수소 액체 제조법 개선, 야채에서 미네랄과 고무질 및 수지 물질 제거 공정, 목재로 종이 펄프를 제조하는 공정 개선 등. 9건의 특허를 갖고 있었다.

전자기 음성 전송 장치는 그중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에, 거금을 주고 일일이 특허를 낼 수 없던 것이다.

“그때가 1825년이었으니까, 내가 열여덟 살 때였을 거요. 처음으로 불꽃놀이를 높이 쏴 올릴 수 있는 화합물을 만들었지. 그다음엔 쿠바 하바나시에 공급되는 물을 필터로 거르고 화학 처리하는 법을 고안했소.”

또한 쿠바 하바나에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전기 도금 공장을 세우고, 해양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파라핀 양초도 발명했다.

‘이 사람 뭐지?’

이번 출장에서 얻은 가장 큰 수익은 안토니오 무치를 영입한 일이었다.

콜로라도 준투 기차역.

미리 전보를 쳐둔 덕에 역 앞에는 마차 세 대가 대기해 있었다.

“이걸 타고 요새로 가시죠.”

준투를 가로지르는 동안, 무치와 가족들은 생각보다 거대한 도시의 모습에 탄성을 내뱉었다.

더욱이 준투 요새에서 마주친 인물들은 어떻고.

개틀링 기관총을 만든 리차드 개틀링.

열기구 방면의 일인자인 태디우스 로우.

그리고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알프레드 노벨까지.

마지막 의구심을 날려버린 부인이 남편의 손을 잡았다. 지난 과거를 떠올린 부인은 촉촉히 젖은 눈은 남편을 응시했다.

아버지를 보는 자녀들의 눈빛에도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CIE 연구실.

막스는 안토니오 무치의 연구실을 에디슨 옆에 배치했다.

원 역사에선 둘 다 전화기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발명가들이었다.

무치와 인사를 나눈 에디슨이 막스에게 물었다.

“근데 보스! 자동 투표 기록 장치는요?!”

"어, 음."

뉴욕을 떠나기 전.

워싱턴 프리덤 에코 지부에서 전보가 날아왔다.

막스 이름을 듣자마자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기계 도입을 추진했다는 얘기였는데.

캔자스 상원 제임스 헨리 레인이 강력하게 밀어붙였다고 했다.

'이런건 안 도와줘도 된다고.'

에디슨이 쓸모없는 발명품을 만들지 않으려면 성과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다.

“안 산다는 걸, 강제로 넘겨주고 왔다.”

“고, 공짜로요?”

“테스트해보고 괜찮으면 돈 내라고 했지. 이것도 판매 스킬 중 하나거든.”

“...... 그렇군요.”

시무룩해진 에디슨을 보며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막스는 말없이 에디슨의 어깨를 토닥거린 뒤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타앙!

타앙!

막스는 피치의 사격을 멀리서 지켜봤다.

지금 갔다가는 위험하지 싶어 총알을 다 소진한 뒤에야 다가갔다.

“나 엄청 빨리 왔지?”

“그러게. 또 어딜 가려고 빨리 왔을까?”

입을 삐죽 내민 피치가 막스에게 팔짱을 낀다.

“우리 쌍둥이들은?”

“할아버지와 놀고 있어.”

“장인 어르신?”

“아니.”

집으로 온 막스는 정원에서 뛰놀고 있는 쌍둥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에는 백발의 남자가 함께였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는 존 브라운이었다.

그는 흐뭇한 얼굴로 쌍둥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워싱턴은 잘 다녀왔나?”

“한 이틀 머물렀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더군요.”

막스는 존 브라운의 휠체어를 끌며 대화를 나눴다.

“연방 정부의 부채는 당분간 해결하기 어렵겠지. 내가 링컨 대통령에게 커다란 짐을 안겨줬어.”

“전쟁은 허공에 돈을 뿌리는 일이잖습니까. 존의 책임은 아닙니다.”

“후. 그나저나, 일본에 간다고 들었네만.”

피치가 말한 모양이다.

워싱턴에서 날아온 편지를 본 피치는 막스가 일본에 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막부와 일본 왕실 싸움에 영국이 개입했더군요.”

“자네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군. 그래도 몸조심하게. 항상 변수는 있는 법이니까.”

영국이 개입한 이상 어떤 수작을 벌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보름 뒤.

콜로라도 기차역에 무장한 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연방 보안관 배지를 주 대법관에게 반납하고 복귀한 SFBC 대원들.

그리고 핑커톤 새내기 탐정들이었다.

‘여기가 콜로라도인가.’

막 기차에서 내린 남자가 삐죽 솟아오른 로키산맥 봉우리를 응시한다.

얼굴에 묻어난 착잡함과 씁쓸함. 앨런 핑커톤의 장남 윌리엄이었다.

- SFBC 대표가 이 시점에 핑커톤 훈련을 언급했다. 이유가 뭘까?

- 그, 글쎄요.

- 너를 어떻게 할지 내 의중을 물어본 게다. 철부지 아들에게 핑커톤을 맡길 생각인지를 말이다!

- ...... 죄송합니다, 아버지.

-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야. 후우,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지. 이번 기회에 네가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거라. SFBC와 핑커톤이 어떻게 다른지. 내가 왜 막스 조와 함께 가려는 지를!

윌리엄 핑커톤은 동료들과 함께 준투 요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는 한 소녀와 그녀의 가족도 있었다.

“여기가 콜로라도 준투에요! 어때요? 멋지죠?”

“근데 진짜 SFBC가 될 수 있긴 한 거니?”

“맞어. 누난 여자잖아. 총들고 어떻게 싸우냐고.”

“여자도 충분히 할수 있거든? 아무튼, 나중에 SFBC 대원 되면 놀라지나 말아.”

제인은 어머니와 동생들의 걱정은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 있게 소리쳤다.

준투 요새.

미주리주에 연방 보안관 배지를 반납한 콜린이 막스에게 물었다.

“히콕은 애블린에 남는다면서?”

“일본은 죽어도 안 가겠답니다.”

“진짜 그게 이유야?!”

“당연히 농담이죠. 마을 보안관들은 이번 작전에 제외했습니다. 우리 중에서도 일부는 여기에 남아 있을 겁니다.”

현재 준투 요새에 모인 SFBC 대원은 198명.

캔자스, 미주리, 콜로라도의 마을 단위 보안관은 복귀하지 않았다.

막스는 원정팀을 꾸리기 위해 대원들을 소집했다. 이 자리엔 다국적 용병들도 함께였다.

- 오늘부로 SFBC에 합류한다. 향후 해외 원정은 너희들 중심으로 꾸릴 생각인데, 싫다면 거절해도 좋다.

콜로라도에서 어중간하게 있던 용병들에겐 눈시울까지 붉힐만한 일이다.

비록 역할을 해외로 못박았지만 떠돌이 유럽 용병들에겐 오히려 반길만한 일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소집된 SFBC 대원들과 있다보니 소속감이 느껴진다. 가슴 깊이 뜨거운게 치밀어 올랐다.

프랑스 용병 다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즈음, 단상 위에선 막스가 소리쳤다.

“SFBC에 강요는 없다! 이번 일본 원정에 필요한 인원은 80명. 두 개 소대, 열 개 분대로 쪼개 활동할 계획이다. 지원할 사람은 오른쪽으로 빠질 수 있도록.”

다국적 용병 열명은 당연하다는 듯 오른쪽으로 빠졌다. 반면 SFBC 대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산초가 큰 소리로 물었다.

“원정에서 빠진 사람은 뭐합니까?”

“뭐하긴, 그거 해야지.”

막스가 요새를 병풍처럼 둘러싼 로키산맥을 가리켰다.

곳곳에 탄식이 흘러 나왔다.

- 시바꺼, 일본 아니면 혹한기네.

- 좆나 어려운 선택인데 이거.

- 그래도 혹한기는 짧잖아? 대충 3개월만 버티면 끝 아닌가.

- 그 3개월이 지옥인데?

차라리 해외를 가겠다며 추가로 다섯 명이 오른쪽으로 빠졌다.

나머지 대원들의 갈등하는 모습을 즐기며 막스가 말을 보탰다.

“이번 혹한기 훈련은 여름까지 진행된다.”

“!!”

“참가 인원은 인디언 여섯 부족과 핑커톤 새내기 탐정까지 대략 500명 규모. 해외 원정에서 빠진 대원들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훈련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된다.”

“······”

“참고로 원정 특별 수당은 두당 2천 달러. 혹한기 교관은 파격적으로 두툼한 겨울 외투가 지급된다.”

- 쓰벌, 진짜 파격적이네.

- 악마네 악마야. 오랜만에 봐서 깜빡했어.

- 이건 볼 것도 없다.

오른쪽으로 빠지는 대원들이 늘어났다.

급기야는 정원을 초과해 뽑기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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