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6화 (346/360)

#346 바다가 그렇게 좁진 않을 텐데

샌프란시스코 항구.

밤하늘의 별을 안주 삼아, 한 상선 갑판 위에 술판이 벌어졌다.

"이거 석 달 동안 항구에 죽치고 있으려니 좀이 쑤시네요. 그나저나, 내일에서야 고용주를 본다는 건 진짜 웃긴 일 아닙니까?"

"월급은 그래도 꼬박꼬박 나왔잖아. 난 사실 상선 주인이 우리 존재를 잊어버렸으면 싶었는데."

"에이, 장군님도 참. 그게 말이나 됩니까."

USS 콜로라도호의 함장이었던 리지리 준장은 얼마 전 미 해군을 전역했다.

그런데 리더쉽이 남달라 부하들이 그를 따라 제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엔 감동으로 가슴이 울컥하고 먹먹했지만, 이내 부하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리지리를 짓눌렀다.

"하여간, 내가 니들만 보면 물 없이 감자 세 개는 먹은 것 같다. 쓸데없이 왜 군을 뛰쳐나왔냐고."

"장군님 없는 바다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허구헌날 갑판만 닦는 인생이라도 사람 봐가면서 일하거든요."

"야, 군인이 그딴게 어딨냐?"

"그러니까, 군인 체질이 아닌 거죠."

"하여간 물에 빠져도 입으로 헤엄칠 놈들이라니까."

부하들이 웃음을 터트릴 때, 누군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배에 무장할 때까진 신났는데, 정작 저 포들을 쏠 날이 올까 싶습니다. 상선 치고는 무장이 너무 과해요."

"그것도 그렇고. 배 주인이 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비밀이 많은 겁니까?"

"내가 어떻게 아냐. 뭐, 내일쯤이면 도착한다니까 알게 되겠지. 아무튼, 나도 그랜트 원수가 제안하지 않았으면 상선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야."

해군 장교의 전역 문제로 그랜트 원수가 면담까지 요청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 아직 한창인데 해군을 그만두는 이유가 있나?

- 전쟁이 끝나고 뭔가 무기력해졌습니다.

- 자네도 야전 타입이군. 그래서, 어느 전쟁이 가장 기억에 남던가?

- 포트 헨리와 도넬슨 공성전이죠. 생각해보면 그때 가장 피가 끓었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막스 전 총사령관께서 자네 칭찬을 많이 했었네.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군.

리지리 소령은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앤드류 푸트 소장의 부관이었다.

이들은 뉴올리언스까지 함락하면서 남부 연합을 미시시피강 안쪽으로 묶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이었다.

- 어디까지나 막스 총사령관님이 세운 작전이고, 워낙 치밀하게 계산된 거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못하는 게 병신이었죠.

- 안타깝지만 나나 막스 조 장군은 전쟁 동안 그런 병신들을 많이 봤었네.

- ······

- 그래서 전역하면 생각해둔 일이라도 있나?

- 아직 없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봐야죠.

당시 율리시스는 링컨 대통령과 막스의 요청으로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한 선장과 선원들을 물색중이었다.

리지리 준장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자네 몇해 전 아시아를 간 적이 있었지?

- 일본, 조선을 들렀었죠. 아마 막스 총사령관님의 마지막 임무였을 겁니다.

- 그땐 어땠었나?

- 재미있었죠. 흥민진진했습니다.

- 막스 조 총사령관과 함께라서는 아니고?

- 뭐, 그런 이유가 가장 크겠죠.

타이밍이 이상하지만, 이때 그랜트 원수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아는 친구가 상선을 책임질 선장을 찾고 있네. 비밀이라 상세히 말할 수는 없네만, 최고로 대우해준다는 약속은 받아냈네.

- 상선은 흥미 없는데요.

- 보통 상선은 아니네. 태평양을 건너 판매할 물건이 평범하지 않거든. 나를 믿는다면 진지하게 제안을 고려해 보게.

대우도 나쁘지 않고 부하들까지 고용한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일하다 아니면 때리치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해서 리지리 대령은 전역과 동시에 '콜로라도호 상선'의 선장이 되었다.

주인과는 서신으로만 주고받았는데, 함선에 대한 지식보다 무기 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자였다.

'내일이면 도착한다 이거지.'

리지리 선장이 갑판 위에서 부하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 새로운 상선이 항만에 도착했다.

돛대에 두 개의 깃발이 나부꼈는데, 영국 국기와 회사의 심볼이 그려져 있었다.

"자딘 메시선 상선이네."

"보면 쟤들 배도 무장이 장난 아냐. 저 함포는 영국에서 최근에 만든 것 같은데, 신제품을 바로 달았네."

자딘 메시선 선박은 공교롭게도 '콜로라도 호' 바로 옆쪽으로 정박했다.

선착장과 배 사이에 다리가 연결되고 그 안에서 백인 몇 명이 입항 신고를 위해 내려섰다.

배에 남아 있는 자들은 항구를 구경하려 갑판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바로 옆이라 콜로라도호 선원들은 그들의 얼굴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동양인들이네요."

"자딘 메시선이 중국에서 노동자들을 싣고 온다더니, 그건가 본데요?"

겨울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 중국인 노동자들은 모포를 몸을 덮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 동양인들은 살기 짙은 눈빛으로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살벌하네요."

도저히 평범한 노동자들로는 안 보인다.

리지리 대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더욱이 콜로라도호 선원들과도 눈이 마주쳤을 땐 피하지 않고 더 강렬하게 노려봤다.

"중국인 갱단 새끼들인가. 눈깔을 그냥 확!"

"눈 안 깔아?!"

취기가 오른 선원들이 뭘 꼬나보냐며 소리쳤다. 그러자 놈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노골적으로 선원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입가엔 비웃음도 머금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 뒈지려고 환장했나."

"선장님! 그냥 두고 볼 겁니까?"

"그럼 뭐 어쩌라고? 싸움 나면 고용주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리지리가 부하들을 단속하면서 신경전은 일단락되었다.

잠잠하나 싶을 때, 반대쪽 갑판에서 한 백인이 말을 건네왔다.

"함선을 개조한 것 같은데, 어느 회사 상선입니까?"

"알것 없소."

"어차피 오다가다 만날 텐데 까칠 게 굴 필요 있나."

"바다가 그렇게 좁진 않을 텐데. 어디 냇가만 다시녔나."

"자딘 메시선에게 바다는 그리 넓지 않소."

백인 남자는 자신을 영국인이며 앤드류 컬스라고 밝혔다.

식스 컴퍼니가 와해될 때 응솅을 두고 도망간 윌리엄 캐즈윅이 그의 직속 상사였다.

상대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앤드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화를 중단했다.

시간이 늦은 밤이라 자딘 메시선의 입항 신고는 내일로 미루어야 했다.

추위 때문인지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뜨자마자 항구에는 수많은 인부로 북적거렸다. 배에 물건들을 상하차하는 동안 누군가는 고함을 치고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며 항구의 아침을 알렸다.

밤늦게 술을 마시던 콜로라도호 선원들도 하나둘 잠에서 깨어 갑판에 늘어져 있는 술병을 치웠다.

"우리 고용주께서 깜짝 놀라기 전에 배 위를 깨끗이 치울 수 있도록! 숙녀분이면 전부 해고야, 해고 새끼들아."

"엇,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진짜 그럴 가능성도 있겠는걸?"

지금껏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자가 고용주라면 거친 선원들에게 얕보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만한 배를 운영할 정도면 엄청난 부자겠네. 얼굴이 못생겨도 상관없다. 난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었다고.”

"미친 새끼. 잔말 말고 청소나 해."

갑판 위를 정리하는 동안 이웃 배인, 자딘 메시선도 입항 수속 때문에 분주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끄럽던 항구에 적막함이 찾아들었다.

대신 말발굽 소리와 마차 수레바퀴 소리가 고요함 속에 울려 퍼졌다.

"뭐지?"

"설마 저자들이···· 고용주는 아니겠죠?"

콜로라도호 선원들이 일제히 미어캣처럼 갑판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항구 인부들은 허리를 펴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엔 말과 마차 행렬이 항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든 건 무장한 사내들이 내뿜는 무겁고도 칙칙한 분위기.

하나같이 총 칼이 그려진 검은 스카프를 두른 자들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선박을 향해 나아갔다.

누가봐도 목적지는 ‘콜로라도호’로 보였다.

"...... 이, 이쪽으로 오는 대요?"

"일단 고용주가 여자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콜로라도호 갑판 위 선원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무장한 사내들을 지켜봤다.

바로 옆, 자딘 메시선 갑판 위에서도 숨죽인 채 행렬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긴 행렬의 이동이 멈추고, 선두에 있던 사내가 콜로라도호 앞에 멈춰선 채 갑판을 올려 본다.

그의 입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리지리 준장."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리지리 대령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 나왔다.

'막스 조 총사령관!'

순간 모든 의혹이 풀려버린 듯, 리지리의 눈빛에 흥분과 열기가 들어찼다.

"벤더, 당장 다리를 놔라!"

리지리 준장이 소리치자 이내 선박과 선착장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날듯이 내려온 리지리 선장과 선원들이 막스 앞에 도열 한다.

스카프를 내리려던 막스가 슬쩍 옆에 있는 선박을 바라봤다. 깃발을 보곤 미간을 찡그렸다.

‘하필 자딘 메시선이냐.’

막스는 스카프를 내리다 말고, 말을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리지리 준장."

"설마 고용주가 총사령관님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선원들 역시 놀라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커졌던 눈은 이내 눈꼬리가 올라가고, 얼굴은 화색이 돌며 입술을 꿈틀거렸다.

선주가 막스 조 총사령관이면 심심하기는커녕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선원들에겐 그 자체가 삶의 활력소였다.

'군대 관두길 잘했구먼!'

"짐을 싣는 동안 이야기 좀 합시다, 리지리 준장."

"올라가시지요."

갑판 위로 올라간 막스가 리지리에게 말을 건넸다.

"그동안 답답했을 텐데, 미안합니다. 이번 원정은 소문나서 좋을 게 없었거든요."

'원정?'

리지리가 머리를 굴려 막스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다.

‘이번에도 목적지는 조선과 일본인가.’

자리에서 물러난 북군 총사령관은 적이 많다.

그 때문에 장거리 여정을 위해선 신뢰할 만한 선장과 선원들이 필요했을 터.

율리시스 그랜트 원수가 자신에게 직접 일자리를 제안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정은 굳이 설명 안 해주셔도 됩니다. 총사령관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막스는 배에 탑승할 인원, 물자 리스트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일본입니다. 혹시 그곳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글쎄요. 총사령관님과 다녀온 이후로는 일본에 관한 정보를 접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일본은 내전 중입니다."

"내전이요?!"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략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좌막파와 도막파의 싸움은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귀에 꽂혔다.

"영국이 일본 내전에 개입한 겁니까?"

"정확히는 우회해서 지원하고 있죠."

막스의 시선이 옆에 정박된 배로 향했다.

눈치 빠른 리지리는 대번에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딘 메시선이 일본 왕실에 영국 무기를 대주고 있군요."

"아마 확실할 겁니다. 그래서 가능한 일본에 도착하기 전까진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하필 자딘 메시선이 나란히 콜로라도호 옆에 정박해 있다. 게다가 갑판 위에 있던 영국인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 배는 언제 도착했습니까?"

"어제밤에 입항했습니다."

"저쪽에서 최대한 서두르면, 언제쯤 출항할 수 있을까요?"

"싣고 온 물건들을 검수하고, 연료와 식료품을 채우면 족히 사흘은 걸릴 겁니다. 다만."

막스의 말에 리지리가 미간을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봤다. 서쪽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지금 태풍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잠잠해질 때까진 항구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죠."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막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본 원정이 자딘 메시선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전력을 다해 일본으로 향할 것이다.

조슈번과 일왕에게 정보가 들어가면, 일본 앞바다에서 콜로라도호가 맞닥트리는 건 적들의 대포가 될 가능성이 컸다.

“태풍이 끝나고 동시에 출발한다 해도, 콜로라도호가 3천 4백 톤이나 되는 터라 자딘 메시선 보다 선체가 무겁습니다.”

배가 무거운 만큼 물에 깊이 잠기고 이에 따른 점성의 저항력도 세지게 마련. 아무리 빨리 배를 몰아도 그들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자딘 메시선 말고도 일본에서 온 상선이 몇 척 더 있습니다. 그들까지 생각하면,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비밀을 유지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리지리의 말에 막스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콜로라도에서 싣고 온 무기 말고도, 항구엔 남북전쟁 당시 남군으로부터 회수한 무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걸 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둘이 고심하는 동안, 막스의 우려대로 자딘 메시선도 이상한 낌새를 차린 듯했다.

상선 책임자인 앤드류보다 함께 온 중국인들의 눈치가 더 빨랐다.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까, 앤드류?"

"무장 상태로 봐선 군인들 같은데, 복장을 보면 또 그것도 아닌 것 같고. 헷갈리네요."

"태연하게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중국인 남자가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쳤다. 현상금 수배 전단지처럼 몽타주가 그려져 있는데, 막스와 닮아 있었다.

종이 하단부에는 한자어로 ‘조선인, 전 미국 총사령관, 연방 보안관, 민간군사기업 SFBC 수장 막스 조, 평상시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다님’이라는 정보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자딘 메시선을 경호하는 홍콩 천지회(삼합회 전신)의 조직원들이었다.

"만약 저들이 이 조선인 새끼와 관련된 SFBC라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위아태보다 그놈이 더 문제니까."

"에이. 설마 저들이 SFBC일까···."

그런데 잠시 후.

앤드류의 수하가 다급히 선박으로 올라왔다.

그는 마차에 짐을 싣고 온 웰스 파고 소속 마부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어온 참이었다.

“콜로라도에서 출발했는데, 무장한 자들은 SFBC 대원들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통솔을 그곳 보스가 직접했다는데.”

수하가 고개를 돌려 콜로라도호 갑판 위를 응시했다. 앤드류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검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수하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자가··· SFBC 대장이랍니다.”

“..... 막스 조?!”

“...... 예. 전 미 총사령관이요.”

앤드류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순간 상관인 윌리엄 캐즈윅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 미국에 가면 가장 조심해야 할 놈이 있는데, 바로 조선인 막스 조란 인물이다. 일본과 조선에 온갖 수작을 부리고 식스 컴파니까지 단숨에 와해시킨 놈이야.

윌리엄 캐즈윅은 막스 조와 일본 막부의 관계까지 알려 주었다.

- 사카모토 료마 암살도 막스 조가 연관됐을 거야. 이번 일본 내전도 어떻게든 개입하려 할 테니, 너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정부와 막스 조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앤드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정체를 몰랐으면 그냥 넘어갈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차에 내려지는 궤짝들, 천으로 감싼 묵직한 것들은 무기가 분명했다.

그리고 목적지는 아마도.

‘일본이다! 무기들을 막부에 넘길 생각이야.’

막스를 노려본 앤드류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당장 입항 신고를 끝내고, 물건 검수를 서두르라고 해. 항만 관리자한테는 하던 대로 돈을 꽂아줘. 우린 무조건 이틀 뒤엔 일본으로 출발한다!”

“...... 날씨 때문에 이틀은 무립니다. 게다가 중국으로 수입할 물건도 선적해야 하잖아요.”

“맞다, 태풍.”

앤드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히려 잘 된 것 아닌가?’

폭풍과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 오늘따라 아름다워 보였다.

앤드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출발이 비슷하다면 먼저 도착하는 건 자신 있었다.

“검수 담당관한테는 오십, 아니 백 달러를 줘. 그리고 태풍이 와도 선적을 강행한다. 미리미리 연료와 식량도 채워놔.”

“알겠습니다!”

그날 오후부터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강풍과 비를 동반한 태풍이 휘몰아쳤다.

배가 요동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퍼부었다. 그럼에도 자딘 메시선은 인부들에게 웃돈을 얹어 물건을 선적하도록 했다.

콜로라도호도 인부들이 아닌 대원들로 충당했을 뿐 사정은 비슷했다.

자딘 메시선과 경쟁적으로 물건을 선적했는데, 물량이 어마어마했다.

‘설마 죄다 무기는 아니겠지?’

콜로라도호에 적재되는 물건들이 무기라면 기함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앤드류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 건, 자딘 메시선에서 가져온 물품 검사와 통관이 늘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태풍 때문이겠지.’

뇌물까지 처먹였는데 별 문제야 있겠는가.

일이 산더미처럼 밀린 항구에서 가끔 일 처리가 늦어지는 건 예삿일이다.

‘기분 탓이야, 기분 탓.’

*

사흘간 퍼부은 비가 멈추고, 마침내 맑은 하늘에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콜로라도호와 자딘 메시선 선박은 경쟁적으로 출항을 서두르려 했다.

그런데 이때.

“자딘 메시선의 검사 품목에서 아편이 발견됐소! 게다가 중국인 노동자들의 신분이 불분명해서, 입국도 보류됐습니다.”

항구 관리자들이 경찰들을 대동한 채 자딘 메시선의 출항을 막아섰다.

앤드류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막스가 결정타를 날렸다.

“오랜만이군요, 에드 경감. 우린 지금 출발할까 하는데.”

“어이구, 아직도 안 가셨습니까?”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경찰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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