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7화 (347/360)

#347 일본 항구에 도착한 미국인들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떠난 직후.

콜린이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그냥 배를 폭파하지. 요새 많이 관대해졌어."

"영국 국기를 달고 있는 배를 폭격하면 우리도 무사하지 못해요. 아직 미국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소위 말하는 열강은 대영 제국과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프랑스 정도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신생 국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래서 며칠이나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글쎄요. 주지사와 시장한테 구체적인 일자까지 요청할 순 없잖아요."

샌프란시스코 항구.

갑작스러운 봉쇄령에 앤드류는 항구 관리자를 찾아가 울분을 토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동안 뇌물 받은 거 폭로할 겁니다."

"이 사람이 진짜.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래? 그러게 왜 전 미 총사령관을 자극했어."

"아니, 누가 자극했다고 그럽니까? 우린 출항을 서두른 것밖에 없다고요!"

"그게 그거지. 어찌 됐든, 아편 밀수 때문에 당분간 출항은 힘들 거야."

"하, 참."

앤드류가 기막힌 얼굴로 관리자를 쳐다봤다.

아편이 문제가 되면 언제나 그렇듯 중국인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일탈로 얼버무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주지사와 시장까지 나서서 이들을 봉쇄하고 철저한 통관과 세관 검사까지 지시한 상황이다. 출항이 늦어지는 건 각오해야 했다.

‘젠장, 일본에서 온 다른 선적까지 발을 묶어놨다 이거지.’

SFBC가 막부와 더불어 몰락하길 기도하며.

앤드류는 항구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

일본에 가기 전, 콜로라도호는 하와이를 들러 필요한 물자를 수급했다.

하와이 엘리자베스 포트 항구.

무장상선이 도착하자마자 소식은 하와이 왕국의 왕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다.

연료와 식료품을 선적하는 동안 막스는 왕실의 초청을 받아 왕인 카메하메하 5세를 알현했다.

"귀하의 업적은 익히 들었습니다."

"소문이란 게 과장되게 마련이죠."

"겸손하다더니 사실이군요. 다른 이들의 평가보다, 개인적으로는 노턴 1세가 귀하를 표현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정한 애민 정신으로 국가 내란을 수습하고, 인종차별의 벽을 허문 몇 안 되는 훌륭한 신하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카메하메하 5세는 노턴 1세에게 받은 편지를 들고 있었다.

실제로 서너 차례 편지를 주고받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카메하메하 5세는 막스에게 호기심 이상의 흥미를 보였다.

"백인들 속에서 동양인이 총사령관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 귀하의 능력은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칭찬은 흘려듣고, 막스는 의도적으로 대답을 짧게 해 대화를 끊고 침묵을 유도했다.

하와이는 당장 얻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왕의 요청이 무엇이든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막스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카메하메하 5세는 손가락을 팔걸이에 튕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은근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SFBC는 민간용병기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말 그대롭니다."

"흠. 알다시피 하와이 왕국은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서구 열강들이 욕심내면 내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지요."

해서 일찌감치 하와이 왕들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교류를 맺어 왕국을 지켜왔다.

카메하메하 5세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약소국이라고 언제까지 관계에만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건 최소한의 힘을 키우기 위해, 선진 무기와 군사 훈련 체계를 도입하는 겁니다."

위기까지는 아니지만, 하와이 왕국이 처한 상황 녹록하지 않다. 이들은 영국과 러시아, 미국, 중국과 일본까지 신경 써야 했다.

그 때문에 이런 부탁을 다른 국가에 했다간 분쟁의 소지가 있었다.

영국에 기대면, 러시아와 미국이 반발하고. 미국에 기대도 마찬가지라, 카메하메하 5세는 민간군사기업을 고용하여 분쟁을 피하려 했다.

이 같은 논리는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막스는 왕의 숨겨진 의도를 간파했다.

전생의 정보 없이도, 현재 하와이 왕국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당장 왕실을 위협하는 건 영국, 러시아, 미국과 같은 국가 단위가 아닌 이 땅에 몰려온 이민자들. 특히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며 부를 축적한 다수의 미국인이다.

부유한 미국인들은 집단을 이루고, 하와이 왕국의 정책과 헌법 제정까지 개입하며 점차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카메하메하 5세가 원하는 힘은 외부가 아닌 내부 이주민들과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사용할 힘. 훗날 미국이 하와이를 합병하는 데도 장애가 될 것이 분명했다.

“뜻은 알겠으나, SFBC의 군사 훈련은 오히려 주변국들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좀 더 시안을 두고 생각해야 할 일이지요.”

“왕실 경호 인력을 훈련하는 것까지 문제가 되겠습니까?”

카메하메하 5세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조금은 자존심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원 역사에서 미국이 하와이를 점령하는 데 투입한 병력은 해군 150명. 당장 막스가 공격하면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하와이 왕국은 군사력이 빈약했다.

‘내가 꿀릴 게 뭐냐.’

“열강들에게 필요한 건 상대국을 집어삼킬 작은 명분입니다. 왕께선 영국, 러시아, 미국의 관계 속에서 나라의 중립을 유지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요.”

“눈치나 보라 이 말입니까?”

“눈치가 아니라 외교의 기술입니다. 왕국을 생각한다면 그게 최선일 겁니다.”

이쯤 되면 막스가 에둘러 거절하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카메하메하 5세로서도 막스는 함부로 할 상대가 아니었다.

‘SFBC 같은 군인들을 갖고 싶었는데, 아쉽구나.’

사실 막스가 카메하메하 5세와 대화를 발전시키지 않은 건, 그에겐 자식이 없어 더는 권력이 이어지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다만, 훗날 하와이 왕국에 반란이 일어날 때. 막스가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군사 훈련은 돕지 못하나, 행여 누군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저한테 연락하십시오. 모든 일을 제쳐서라도 달려오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만이라도 고맙군요.”

막스와 카메하메하 5세는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끝내고 헤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6년 후. 막스의 말이 씨가 되어 하와이 왕국에 반란이 일어난다.

*

하와이를 떠난 지 30일.

마침내 콜로라도호가 일본에 도착했다.

막부의 중심지인 에도에 들어서기 전, 막스는 요코하마 해안가를 정찰하며 도막파(일왕파)와 에도 막부 전쟁 상황을 살폈다.

배는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두고 작은 보트를 물 위에 띄웠다.

대원 다섯과 조셉 헤코가 노를 저어 육지로 접근. 다시 돌아온 건 세 시간이 지나서였다.

배에 올라온 조셉 헤코가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죽고, 현재 쇼군은 요시노부입니다. 전쟁은 막부가 조슈번을 정벌하려다 되려 역습당하면서 커지기 시작했고, 현재 전선은.”

지도를 가리킨 곳은 일본 왕실이 있는 교토와 막부 에도의 중심지인 나가노현.

일본 남쪽의 조슈번에서 벌어진 전선이 중심지로 이동했다? 그만큼 에도 막부가 도막파에 밀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막스는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한 뒤에야 요코하마 항구를 지나 에도로 들어섰다.

콜로라도호의 돛대에 나부끼는 미국 국기 때문인지 막부의 군함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막스는 배를 정박하지 않고, 보트를 띄웠다.

“언제든 포격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막부와 회담이 결렬되면 플랜B로 간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돈이다.

고급 인력들을 무려 120명이나 데려온 데다, 콜로라도호를 장기 임대하는 데 드는 비용 플러스 알파까지 생각하면 족히 100만 달러는 받아야 타산이 맞는다.

‘전쟁은 돈이야.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막부의 주인을 바꿔야겠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쇼군과 손잡을 바엔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막스는 조셉 헤코와 콜린, 산초, 조 짐 주니어, 네이선 로어를 대동한 채 보트에 올랐다.

마지막에 로어가 올라타자 배가 요동쳤다.

“이러다 배 가라앉는 거 아냐?”

“에이, 내가 그 정도는 아니죠.”

배는 위태로워도 로어의 노 젓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일행은 그제야 막스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막부 해군 수십 명이 막스 일행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서양식 군복에 총과 라이플로 무장한 군인들을 향해, 조셉 헤코가 갑판 위에서 소리쳤다.

“우린 쇼군의 요구에 따라 미국에서 건너온 SFBC다!”

“에쑤에뿌비씨?”

“당장 쇼군께 우리가 왔음을 알려라!”

얼마 후.

인력거들이 대거 등장했다.

“에도 성으로 모신다는 대요?”

“마차는 없는 거야?”

콜린의 말에 조셉 헤코가 고개를 저었다.

막스가 담담히 인력거 위에 올라타자, 나머지 일행들도 따라했다.

그리고 거구의 네이선 로어가 오르자, 수레에 파열음이 생기고 인력거꾼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잔뜩 굳은 표정을 지은 인력거꾼은 도전 의식이 생겨난 듯 인력거 손잡이를 잡으며 소리쳤다.

“이쿠죠!”

인력거들이 기합 소리를 내며 달리고, 그 뒤를 막부군이 뒤쫓으며 호위했다.

산초가 어이없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냥 우리가 달려가면 되는 것 아냐? 이게 뭔 지랄이지?”

“몸은 편하잖아.”

“너는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로어 이 새낀 양심이 없어, 양심이. 저 사람 땀 흘리는 것 봐.”

이제 출발했는데, 네이선 로어를 맡은 인력거꾼은 땀을 비 오듯 쏟고 있었다.

막스는 팔짱을 낀 채 에도성 주변을 바라봤다. 사무라이 복장을 한 무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런 상황이 가는 내내 반복되었다.

조셉 헤코는 인력거를 끄는 자에게 꼬치꼬치 상황을 캐물었다.

눈치 없는 행동이었지만, 인력거꾼은 헉헉거리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정보를 얻은 조셉 헤코가 이를 막스에게 전달했다.

“얼마 전, 에도성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도막파를 따르는 낭인들이 쇼나이번 주둔지를 습격하고, 상인, 관리를 폭행하고 금품도 빼앗았다네요.”

“막부의 대응은?”

“에도에 있는 조슈번과 관련된 자들의 저택을 공격했답니다. 뭐, 이미 대부분은 빠져나간 상태였지만요.”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에도성은 안팎으로 혼란이 끊이질 않았고. 신분을 알 수 없는 낭인들이 활개치며 막부 요인들의 암살을 시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제 막 일본에 도착한 막스에게도 해당했다.

“저자들이 항구에 도착한 미국인들이라고?”

“확실합니다. 배에 미국 국기가 달려 있었으니까요. 막부가 양놈들에게 원조를 요청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대로 만나게 놔둘 순 없지.”

도막파에 속한 낭인들은 사무라이 복장의 흐물거리는 옷을 휘날리며 인력거 행렬을 뒤쫓는다.

대로를 지나 코너를 돌 때.

열댓 명의 사무라이들이 튀어나왔다.

놈들은 분분히 일본도를 빼 들며 소리쳤다.

“바쿠후노 이누타초 코로세(막부의 개들을 죽여라)!”

갑작스러운 습격. 막스를 호위하던 막부군에게는 또 다른 낭인들이 덤벼들고. 당황한 인력거꾼들이 쥐고 있던 손잡이를 던지듯 놓으며 몸을 피했다.

나름 가속도가 붙은 인력거가 갑자기 멈춰버리자 안에 타고 있던 막스가 밖으로 튕겨 나갔다.

‘시발?’

자연스러운 낙법으로 한 번 굴러주고.

몸을 일으킨 막스의 손엔 어느새 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탕!

탕!

막스를 필두로 콜린, 산초, 조 짐 주니어, 네이선 로어가 잇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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