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1화 (351/360)

#351 일개 용병들이 미쳐 날뛴다

“네이선 로어, 산초, 조짐 주니어는 각 세 개 분대를 이끌고 적진을 교란해! 저격수는 배에 오르는 사쓰마번 수군들을 제거해라! 단 한 척도 배를 떠나게 해선 안 된다!”

타앙!

타앙!

대원들은 파죽지세로 수류탄과 총탄을 쏟아부으며 적들의 주둔지를 공격했다.

“류, 류큐 왕국이 사쓰마를 배신했다!”

“본토에 이 사실을 알려라!”

갑작스러운 적들의 등장. 사쓰마번 병력은 해안을 가로질러 배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이 여지없이 그들의 머리에 박혀 땅에 쓰러지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전장식 머스킷을 들고 있는 사쓰마번 병사와 윈체스터 라이플로 무장한 SFBC 대원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전투를 지켜보던 조선 수군은 일방적인 학살 장면에 치를 떨었다.

을축양요 당시 미국 군인들과 교전하지 않았던 군인들은 새삼 미국인들의 전투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왜놈들이 힘도 못 쓰고 죽는구나.”

“근데 저 양놈들의 총은 뭔데 총알도 안 떨어져?”

“듣기론 열다섯 발을 연달아 쏠 수 있다더라.”

조선 병사들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눈을 껌뻑거렸다.

류큐 왕국의 수도 슈리.

쇼타이 국왕과 조선의 사신, 미국의 주일대사 발켄버그가 머리를 맞대어 중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일찍이 류큐는 일본이 서양에 항구를 개방할 당시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수호 통상 조약을 맺었다. 자국의 독립을 지키려는 수단이었는데, 쇼타이 국왕은 일본의 내란을 이용해 과감히 조선과도 이 통상 수호조약을 맺기로 한 것이다.

의아한 건 자리에 참석한 미국 주일대사 발켄버그. 그는 다시 한번 SFBC와 선을 그었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참관인일 뿐입니다. SFBC는 막부의 요청에 따라 활동하는 개인 기업일 뿐, 미국은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듣기로는 SFBC 대표가 미국 총사령관이었다 들었는데, 굳이 그들이 일본 막부의 편을 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지요. 용병은 돈에 따라 움직인다 했습니다.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쇼타이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조약을 훑어본 신하가 이상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양국 간 우호 관계를 맺고, 무역을 증진하며 타국의 침략을 받았을 경우 군사를 파견해 돕는 조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류큐 왕국에게 조약은 손해가 아니었다.

어차피 다른 국가와 맺은 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으니까.

다만, 현재 류큐에 주둔하는 사쓰마번 병력이 국왕의 결정을 가로막았다.

‘얼마 되지 않는 병력도 내쫓지 못한다면 조약은 하나 마나지.’

조선과 조약을 맺는 건 쇼타이 국왕에겐 커다란 도박이다. 일본 내란이 빠르게 봉합되고, 막부가 무너지면 류큐의 운명도 함께 끝이 날 테니까.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조선의 사신이 쇼타이 국왕을 재촉했다.

“어찌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까? 이대로 시간만 끄시면 우리가 류큐에 온 것에 무슨 명분이 있겠습니까? 혹 그걸 바라시는 겁니까?”

“설마요. 돕겠다고 오셨는데, 뿌리칠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만.”

쇼타이 국왕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발켄버그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SFBC가 사쓰마번의 주둔군을 몰아냈는지, 결과를 듣고 결정할 셈이군.’

결국 하기야 하겠지만, 뜸을 들여 고민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해는 간다. 자칭 민간군사기업의 능력이 어떤지, 얼마나 위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때.

“SFBC 대표가 오셨습니다!”

‘벌써 전투를 끝냈다고?’

회의실로 들어서는 막스는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조약은 맺었습니까?”

SFBC가 류큐 왕국의 남쪽 해안을 점령하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쇼타이 국왕은 충격적인 얼굴로 막스를 응시한 뒤, 망설임 없이 조약에 직인을 찍었다.

이로써 조선과 류큐 왕국의 수호 통상 조약이 이루어졌다.

막스는 여세를 몰아 새로운 작전에 돌입했다. 조슈와 사쓰마번을 이간질하기 위해 대마도를 공격하는 일이었다.

*

사쓰마번 소속의 고깃배들은 류큐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뱃머리를 틀어 본토로 돌아가야 했다. 그들은 해안가에서 벌어진 전투와 망원경으로 목격한 사실을 전했다.

- 류큐의 사쓰마번 주둔군이 전멸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사쓰마 번주 시마즈 히사미츠에게도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측근이 가져온 정보가 그를 경악에 빠트렸다.

“조선군과 미국의 합작품입니다!”

“감히 조센징이?!”

막부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건 번주도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 막부가 계약한 철갑선 인도를 보류하고 사실상 미국이 중립을 선언했다고 전해 들은 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왜 끼어든 거지?”

“에도 항에 민간군사기업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병집단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놈들과 관련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쓰마 번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판세를 읽어보면, 막부는 미국의 용병단체를 고용하고 조선까지 끌어들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류큐 왕국은 막부의 경고다.

도막파와 좌막파 사이에서 간 보지 말고, 사쓰마번은 막부의 편에 서라는 의미였다.

“요시노부 쇼군의 계략인가.”

번주는 허를 찔린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측근이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말을 건넸다.

“조선과 화친조약이라도 맺었다면 되찾을 명분도 없습니다. 류큐는 전쟁이 끝난 뒤 힘으로 되찾으면 됩니다. 오히려 배신한 국왕을 처리하고 흡수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아시지 않습니까? 요시노부 쇼군이 예전부터 우리 사쓰마번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걸. 막부를 도와봤자 얻을 게 없습니다.”

막부는 아이즈번, 일본 왕실은 조슈번.

그런데 그들과 겨룰만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사쓰마는 정작 중간에 끼어 간만 보는 처지였다.

“막부는 꺼져가는 불꽃일 뿐입니다. 아무리 불쏘시개로 쑤셔봐야 잠시 타오르다 꺼질 운명이지요.”

번주의 생각도 측근과 같았다.

때문에 조슈번과 접촉한 끝에 그들과 함께 막부를 무너트리려 했다.

그런데 막부는 번번이 사쓰마 번주의 예상을 깨트렸다. 대정봉환까지 강행하며 막부의 권력을 넘겨주려던 요시노부 쇼군은 지금까지 버티고 있고, 되려 미국의 무기들로 무장까지 했다.

“주군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조슈번과 손을 잡고 막부를 무너트려야 합니다.”

“막부의 경고는 그냥 무시하셔야 합니다!”

사쓰마 번주는 막부에 이를 갈며 조슈번과의 동맹을 추진하려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이들을 또 한 번 경악에 빠트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마도에서 우리 사쓰마번의 배가 발견되었다고?!”

“이 또한 계략이 분명합니다!”

대마도는 가장 최근인 1861년 러시아가 통상 조약을 요구하면서 점령한 적이 있었다. 이후 영국의 개입으로 러시아가 철수하면서 사실상 빈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과는 약 49.5km. 일본 본토와는 82km 떨어진 대마도는 평지보다 산이 많아 농지로도 적합하지 않다. 양국에 큰 의미가 없는 땅이라, 예로부터 해적들의 근거지였던 곳이었다.

막스는 류큐에 있던 사쓰마번의 배를 대마도로 보내면서, 이를 조선을 공격한 해적선으로 둔갑시켰다.

류큐를 수호 통상 조약으로, 대마도는 해적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었다.

잇달아 막스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쓰마 번주.

분노를 어디에 풀어야 할지 고민하던 때, 영국의 무기사 토마스 블레이크가 찾아왔다.

자딘 매시선의 일본 지부장으로 조슈, 도사번과 같은 도막파에 무기를 공급하며 일본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었다.

사쓰마 번주와 머리를 맞댄 토마스 블레이크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뗐다.

“쓰시마 섬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이신 일입니까? 조슈번과 손을 잡는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조선을 끌어들여 조슈번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생각이십니까?”

“내 사정을 전혀 모르시는구려.”

사쓰마 번주가 류큐에 있었던 일을 말하며, SFBC를 언급했다.

‘망할 조선인이 끝끝내 말썽이구나.’

어젯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자딘 매시선 상선이 시모노세키항구에 도착했다.

선장 앤드류가 게거품을 물며 분노하길.

- SFBC의 동양인 개자식이 항구에 우리를 묶어 두었습니다. 자그마치 한 달이나요! 놈들이 일본에 막부에 무기를 팔려는 걸 알리려 했는데, 늦었나요?

- 한참 늦었지요.

- 하, 개자식!

앤드류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던 토마스 블레이크가 입술을 깨물며 입을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번주의 뜻이 아니라, 일개 용병들이 꾸민 일이다, 이 말씀입니까?”

“막부를 도울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런 식으로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면 조슈번과 동맹을 맺겠다는 건 변함 없으시겠군요?”

사쓰마 번주는 대답 대신 입을 굳게 닫았다.

SFBC 용병, 조선, 막부에 흘러 들어간 무기들까지.

최근 정세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에 누군가의 편을 들기가 어려웠다. 일족의 미래가 걸린 결정은 신중함을 기해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짜증 나는구만.’

번주의 표정을 살핀 토마스 블레이크는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번주가 또다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사카모토 료마 때부터 추진한 삿초동맹은 여전히 험난한 일이었다.

토마스 블레이크는 갑갑함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영국이 돕고 있는데, 대체 뭐를 망설이고 있습니까? 우리 힘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섭섭한 마음이 드는군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세요. 미국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막부를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흐음, 그 점이 번주를 고민하게 했군요. 놈들은 미국이 아닌 일개 용병집단일 뿐입니다. 막부에 고용된 총알받이에 지나지 않지요.”

“그럼 그자들부터 제거해주시는 맞지 않겠습니까? 일개 용병들이 미쳐 날뛰는 걸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계실 겁니까?”

사쓰마 번주가 미적거리는 건 SFBC를 용병집단이 아닌 미국 정부로 본다는 점이었다. 토마스 블레이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용병들을 제거하면 동맹에 응하겠습니까?”

“결과를 가져오면, 그땐 지금과 다르겠지요.”

‘구렁이가 따로 없군.’

확답은 없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샌프란시스코 일도 있고. SFBC를 제거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치니까.

토마스 블레이크가 나가자 사쓰마 번주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렀다.

번주는 자기와 일족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불과 4년 전, 시모노세키 해협에서 일으킨 조슈번의 무력 도발을 응징하기 위해 막부의 칼이 되었던 게 사쓰마번이다.

아니, 그 이전부터 조슈번과 경쟁 관계에 있었기에, 일본 왕실을 장악한 조슈번과 동맹한다 한들 이용만 당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쓰마 번주가 동맹을 차일피일 미루고, 도막파와 좌막파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맞물려 있었다.

*

류큐 왕국.

1868년 여름에 접어든 해안가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수도 슈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막스는 사쓰마번의 주둔군이 있던 곳에 진지를 보강해 새로운 병영 막사로 사용했다.

해안가에선 조선군과 SFBC 대원들이 뒤섞여 훈련 중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콜린이 막스에게 물었다.

“사쓰마번은 류큐를 탈환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너무 조용하잖아?”

“류큐는 독립국이잖아요. 다시 빼앗기엔 외교적인 문제가 걸려 있죠.”

게다가 함선을 이끌고 쳐들어오면, 정작 사쓰마 본토는 병력 누수가 생겨버린다.

막부의 막강한 해상 전력을 생각하면 병력을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시간 때우기엔 좋긴 한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글쎄요.”

막스가 일본 원정에 나선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일본 내전을 길게 끌어 조선이 발전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끝으로 세 번째는, SFBC라는 민간군사기업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머지않아 고객들이 알게 될 겁니다. 돈만 주면 대신 싸워줄 훌륭한 집단이 있다는걸.”

사실상 돈이 넘쳐나는데, 돈을 위해 싸운다?

상당히 모순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막스가 바라는 건 선택적으로 전 세계에 일어나는 분쟁에 개입하는 것.

자연스럽고도 위화감 없이 막스의 세력을 미국 밖으로까지 뻗쳐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집엔 언제 들어가게? 쌍둥이들 5년에 한 번씩 보려고?”

“유부남들이 그럼 큰일 나죠. 단순히 판만 깔아두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미국에서 조직을 키우는 일인 거고.”

막스는 콜로라도에서 키워진 SFBC 용병들이 세계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고객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그 소문을 장식하게 될 첫 번째 희생양이 류큐 해안가로 접근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국기를 내건 선박 세 척.

배 위에는 자딘 매시선이 홍콩에서 고용한 다국적 용병들과 천지회가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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