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2화 (352/360)

#352 용병끼리 싸우면 이게 지랄이네

영국은 왜 메이지 유신에 적극적일까?

커피를 마시던 중, 발켄버그 영사가 입을 뗐다.

“이걸 이해하려면 10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합니다.”

1858년 영국의 러더포드 올콕이 일본 총영사로 부임했는데, 바로 직전 중국 복주에 영사로 부임하면서 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올콕은 영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과의 무역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막부는 항구를 막고 번들을 억압해 무역을 독점했죠.”

이에 올콕은 다른 전략을 구상하게 된다.

“막부를 무너트려 번들이 자체 결정할 수 있도록 ‘번 연합 정권’를 수립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올콕의 바램과 달리 막부는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1865년 올콕 다음으로 부인한 영사는 1, 2차 아편전쟁에서 굵직한 활약을 보인 해리 스미스 파크스란 자였다.

파크스는 막부에 대한 반감에 또 다른 이유를 추가했는데, 바로 프랑스와의 관계였다.

“저와 가끔 만나는 사인데, 파크스는 프랑스 영사 레옹 로슈를 싫어합니다. 막부를 지지하며 온갖 특권을 차지한다고 엄청 욕을 하더군요.”

더욱이 영국 영사 파크스는 막부가 프랑스로부터 신식 군대와 무기, 차관까지 도입하자 일본이 프랑스의 영향권에 놓일 것을 우려했다.

“결국 영국의 국익을 위해, 파크스는 도막파를 지원하기로 노선을 정했습니다. 참고로 자딘 매시선은 과거 동인도 회사부터 중국의 아편전쟁에까지 굵직한 사건과 연관된 회삽니다. 파크스는 자딘 매시선을 통해 무기와 물자, 기술을 공급하고 있어요.”

“지금 그 영국 영사는 뭘 하고 있습니까?”

막스의 질문에 발켄버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애꿎은 탁자만 부수고 있겠죠.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되면서 삿초동맹은 깨지고, 사쓰마번은 계속 눈치만 보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니겠습니까? 영국이 나서서 일이 안 풀린 건 흔치 않거든요.”

그게 누구 때문이겠는가.

발켄버그가 즐거운 듯 말을 이었다.

“오죽하면 아편전쟁에서 뛰어난 정치 감각을 보인 파크스가 총사령관님에 관해 정보를 수집했을까요. 물론 저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정보 수집 경로는요?”

“미국 본토죠. 파크스가 술에 취했을 때 떠든 얘긴데, 총사령관님을 증오하는 남부 연합 잔당들이 정보를 건넸다더군요.”

‘WCBS겠군.’

막스가 턱을 쓸며 생각할 때, 발켄버그가 목소리를 낮춰 말을 건넸다.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자딘 매시선보다 그 뒤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영국의 자본을 움직이는···.”

발켄버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한 남자가 헐레벌떡 막스를 찾아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류큐 왕국의 관료 중 하나였다.

“큰일 났습니다! 영국 국기를 내건 선박 세 척이 해안가에 들이닥쳤습니다!”

“그게 신기한 일입니까?”

발켄버그가 물었다.

일본 내전 덕분에 최근 류큐 왕국을 거치는 선박들이 많아졌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국기를 단 상선이 그만큼 흔하단 소리였다.

그런데.

“그쪽에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류큐 왕국에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SFBC를 제거하겠다는 내용인데···. 자신들을 일본 왕실에서 고용한 용병이라고 밝혔습니다.”

“뭐라고요!?”

발켄버그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막스는 놀라지 않고 앉은 채로 턱을 괴었다.

‘막부가 고용한 SFBC를 제거하기 위해 용병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니.’

흥미로운 일이었다.

과연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계획일까.

용병 전은 일본 내전의 연장선.

상대는 외교 분쟁 없이 SFBC를 공격할 명분을 깔아두고, 류큐를 압박한 셈이었다.

막스가 머리를 굴리던 때, 발켄버그는 돌아가는 상황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류큐와 조선이 SFBC를 도우면, 영국이 이걸 꼬투리 잡아서 공격하게 될 겁니다.”

“그걸 바라고 한 짓일 수도 있죠.”

“...... 너무 태연하신 것 아닙니까?”

발켄버그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정작 SFBC 수장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원래 성격인가. 당최 표정 변화가 없어.’

막스는 발켄버그의 시선을 받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의 동선을 파악해 알려주세요. 이번 건 SFBC 혼자 처리할 겁니다.”

*

영국의 선박 세척이 류큐 서쪽 나하 항구에 정박했다.

다국적 인종으로 구성된 무장한 천여 명의 용병들이 육지로 상륙하자 항구에 공포와 긴장감이 감돌았다.

류큐 왕국의 병사들은 돌발 행동을 우려해 민간인들을 지킬 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현 시간부로 막부가 고용한 용병들을 돕는 쪽은 같은 편으로 간주한다!”

‘너희 집에서 싸울 건데, 절대 끼어들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협박이 먹혔다. 그들 뒤에 드리운 대영제국의 그림자는 그만큼 강력했다.

“이대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다!”

SFBC 토벌대의 지휘관이 소리쳤다.

유럽에서 활동한 백인, 흑인 용병들이 행렬을 맞춰 움직이자 중국인들은 눈치껏 그 뒤를 따랐다.

SFBC는 슈리성 북부 해안가에 주둔한다.

거리는 대략 12km.

이동중 지휘관이 동료에게 말을 건넸다.

“이동하는 동안 정찰대 50명을 먼저 보내 정보부터 수집해.”

“그럴 시간에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않아? 고작해야 130명이라며.”

“상대는 빌어먹을 북군 총사령관이야. 전략 전술의 귀재라고. 쟤들과는 달라.”

지휘관이 고개를 돌려 중국인들을 가리킨다.

변발 머리에 라이플을 어깨에 걸친 이들은 홍콩에서 모집된 천지회와 태평천국에 참전한 중국인들이었다.

‘북군 총사령관이 쟤들중에 하나였으면, 남부가 이기고도 남았지. 아니, 애초에 총사령관이 없었으려나.’

지휘관은 헨리 맥아이버.

올해로 28살이 된 맥아이버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전쟁에 참전한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용병이다.

웨스트포인트를 준비했으나, 16살의 나이에 영국 동인도 회사의 사병으로 입대.

이후 전적이 화려한데, 인도와 영국 간 벌어진 세포이 항쟁, 이탈리아 독립을 위해 싸운 주세페 가르발디 장군 소속의 용병으로도 활약했다.

20살 무렵엔 남북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남부에 가담해 스톤월 잭슨, 젭 스튜어트 장군 휘하에 근무하고, 전쟁 패배후엔 멕시코로 도망쳐 막시밀리안 황제와 합류해 후아레스 반군과 싸운 전적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섣부르게 덤비다간 당하는 수가 있어. 철저하게 파악하고 공격해도 늦지 않아.”

맥아이버는 프랑스 출신의 용병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며 행군을 이어갔다.

이들이 타고 온 세 척의 배는 해안가에서 거리를 두어 따라오고 있었다.

슈리성 북부 해안가.

토벌대는 SFBC 주둔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전열을 정비했다.

맥아이버는 50여 명의 정보원을 투입, 주변을 정찰하고 자신은 망원경을 동원해 해안가를 살폈다.

SFBC 주둔지는 해안선의 비교적 높은 능선에 자리 잡았는데, 주변으로는 통나무와 진흙 덩어리를 뭉쳐 만든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해둔 모양이군. 그런데 항구에는 무장상선이 안 보이던데, 어디에 있는 거지?”

“포격 당할까 봐 따로 빼두었겠지. 아니면 우리가 온다는 소리에 겁먹고 전부 배 타고 내뺀 거 아냐?”

동료의 말에 맥아이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걸 보면 몰라? 애초에 여기서 싸우려고 작정한 놈들이야. 안 그랬으면 저렇게 진지를 구축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 네 말과 다르게 멍청하네. 저렇게 지어 봐야 함포로 박살 내면 그만이잖아?”

수심 때문에 해안가에서 떨어져 있어도, 포격이 가능한 거리였다.

“그럼 일단 저쪽에 포부터 날려. 만약 함정이라면 저기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잠시 후.

육지에서 깃발로 수신호를 보내자 해안에 있던 선박에서도 이에 호응하며 깃발을 휘둘렀다.

머지않아, 선박들의 포구가 SFBC 주둔지로 향하더니 이내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펑!

펑!

조용한 해안가에 포성이 울리고, 포탄이 진지위에 떨어졌다.

쾅!

쾅!

언덕 위 진지가 초토화되고 있을 때.

정작 SFBC는 진지에서 떨어진 숲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적들과는 불과 2km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숲이야말로 게릴라 전술에 안성맞춤이지. 각 분대는 위치 숙지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뭐, 두당 10명이네. 길리 슈트까지 입었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대원들은 저마다 산악 지형에 특화된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길리 슈트를 입고 있었다.

막스는 산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보다 열 배나 많은 병력이야. 상황이 불리하면 놈들이 류큐 전역으로 흩어질 수도 있으니까,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함포 사격 때문에 해안선의 진지를 사수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육지 깊숙이에서 싸우기엔 놈들이 도망갈 가능성이 커, 민간인 가옥으로 숨어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SFBC 대원들은 남북 전쟁 당시 게릴라로 인한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막스는 속전속결로, 열 명씩 열 개의 분대로 되려 1천 명을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기가 설치한 부비트랩에 죽는 일은 없도록 해. 그럼 각자 위치로.”

“위치로!”

대원들이 날랜 동작으로 퍼져갔다.

포위를 하기 전, 놈들을 초반에 끌어들일 미끼가 필요했는데 막스와 네이선 로어의 분대가 그 역할이었다.

로어가 달리며 물어왔다.

“근데 개틀링이랑 박격포는 언제 씁니까?”

“그걸 벌써 꺼내면 어떻게 해. 아껴야지.”

남북 전쟁에서 짧게 선보인 중국식 비뢰포는 미래의 81미리 휴대용 박격포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삼발이를 펼쳐, 위에 포신을 장착해 고각으로 쏠 수 있어 다양한 전술 응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숲인데다 지켜야 할 곳도, 함락할 요새도 없지 않은가. 막스는 박격포까지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막스의 분대원들은 다국적 용병 출신들로 구성됐다.

존 프레몬트에게 고용했을 때를 제외하면,

정식 작전을 함께하는 건 처음이라 막스를 보는 눈빛은 투지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수하면 욕하려고 눈빛이 그따구냐?”

“실수하면 그냥 죽는 건데. 욕할 게 뭐 있어요.”

“...... 그건 그렇지.”

막스는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린 고용주를 선택해서 일하게 될 거야.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면, 너희들이 주축이 될 테니 이번이 첫 실전이라고 생각해.”

함께 훈련한 시간이 적기 때문에 막스는 효과적인 전술과 생존을 높이기 위한 팁을 말해주기도 했다.

잠시 후.

숲에서 적들의 정찰대를 발견.

막스가 손을 들자, 다들 자세를 웅크리고 기척을 숨겼다.

원하는 위치까지 오지 못했기 때문에 총을 사용해선 안 된다. 총성이 울리면 함포가 숲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었다.

막스 분대가 천천히 풀숲으로 은신하자, 로어 분대 역시 자세를 웅크렸다. 그리고는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내었다.

정찰대의 발걸음이 멈추고, 천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접근한다.

모습을 드러낸 정찰대는 다섯.

천막이 씌워진 수레를 발견하고 머뭇거린 사이, 그들 뒤에 막스와 대원이 불쑥 튀어나와 칼끝을 목에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다섯을 처리하였는데, 이 같은 광경은 숲 곳곳에 벌어져 SFBC 대원들이 정찰대원들을 소리소문없이 제거했다.

얼마 후. 막스와 로어 분대는 나무가 드물고 조금은 개방된 공간에 도착. 적들의 운집된 병력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막스가 위치한 곳은 해안가에 있는 함포가 사격하면 같은 편의 머리 위를 지나야 하는 위치였다.

“시작할까요?”

로어가 묻고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원들은 등에 멘 윈체스터 라이플을 손에 쥐었다.

같은 시각.

포격이 멈추고, 토벌대를 이끄는 맥아이버는 고민에 휩싸였다.

진지가 초토화되는 동안 아무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주둔지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면, 병력을 근방에 숨겨두었거나.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였다.

‘용병끼리 싸우면 이게 지랄이네.’

이상한 곳에서 이상하게 싸우다 보니, 서로 지켜야 할 성이나 함락할 곳도 없었다.

그만큼 용병들은 이동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주둔지를 버리는 것도 전술이지.’

북군 총사령관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는다.

무모한 싸움은 하지 않는 놈이니까.

‘그렇다면 가능성은 매복이겠군.’

그럼 오히려 정찰대가 위험하다. 차라리 덩어리로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맥아이버는 인근 주민들을 고문하거나 족쳐서 SFBC의 위치정보를 알아내려 했다. 후에 문제가 되면 개인 일탈로 무마하면 되고.

“일단 정찰대를 불러들여.”

대원이 하늘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런데 이때.

타앙!

깊숙한 숲에서 총탄이 날아와 머리에 박혔다.

“적들이다!”

탕!

탕!

피슉.

피슉.

나무와 용병들의 몸에 총탄이 박히고.

순식간에 전열이 흐트러졌다.

‘설마, 기습을 노릴 줄이야?!’

맥아이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럴 때 신중한 건 오히려 독이 된다.

때로는 과감한 돌격이 필요할 터.

과거의 경험으로 맥아이버가 터득한 건 틀리든 맞든 신속한 판단이었다.

“돌격하라! 고작해야 백 명이다!”

맥아이버가 소리치자, 곳곳에 심어진 나무를 방패 삼아 토벌대가 미친 듯이 달려갔다.

막스와 대원들은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 숲에 폭탄이 터지면서 열댓 명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다음 장소로!”

막스의 지시를 따라 대원들은 자리를 이탈. 이들을 추격하는 토벌대는 곳곳에 매복한 SFBC 대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개자식들! 대체 몇 명이 있는 거야!’

잘못된 정보일까. 아니면 120명이 수천 명처럼 느껴지는 건 그저 기분 탓이거나.

‘이대로 휘둘리다간 다 죽는다.’

냉정함을 되찾은 맥아이버는 마구잡이로 쫓지 않고 병력을 재정비하려 했다. 그런데 벌써 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우린 우리대로 움직인다.”

“무능력한 네놈의 지휘는 필요 없어.”

동료를 잃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중국인들이 맥아이버의 명령을 거부했다.

쪽수도 많은 데다, 맥아이버의 지휘를 의심한 중국인들에 독자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빌어먹을 쿨리 새끼들.’

결국, 맥아이버는 유럽 용병들을 중심으로 병력을 재편했다. 애초에 이들은 돈을, 중국인들은 천지회 조직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임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들이 빠져나가자, 맥아이버는 냉소하며 동료들을 소집했다.

“차라리 잘 됐다. 저 새끼들이 죽건 말건, 놈들이 길을 트면 우리는 뒤따라가면 된···.”

푸슉.

맥아이버의 머리가 휘청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윈체스터가 아닌 저격 라이플을 든 막스가 스코프를 옮기며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이 상황에서도 회의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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