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3화 (353/360)

#353 내일은 구보를 안 할 예정

쾅! 쾅!

숲에서 불규칙적으로 굉음이 울린다.

중국인들이 부비트랩을 건드려 일으킨 폭발이었다.

“악랄한 새끼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실을 건드리면 수류탄 핀이 뽑히는 방식으로, 사지가 날아간 동료들을 보며 중국인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병신들. 전투가 그럼 장난이냐?’

SFBC 대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적을 섬멸하고 생존을 위해선 더한 짓도 할 수 있었다.

움직임은 은밀하고 신속하며, 가슴엔 광기를 뺀 채 냉정과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막스와 분대원들은 자리를 이동하며 적들을 제거해 나갔다. 그런데 학습효과가 생긴 건지 적들이 신중해지면서 유인에 걸려들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야. 집중력, 끊기가 없는 놈들부터 죽어 나가는 거지.”

“아군도 마찬가지겠군요.”

프랑스 용병 다뇽의 말에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밀하고 신중한 적들은 제거하는 게 쉽지 않아. 부비트랩도 한계가 있으니까.”

준비한 시간도 짧고 트랩에 사용된 수류탄의 양도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SFBC를 토벌한답시고 앞으로 더 많은 용병이 몰려올 수도 있어 다음을 생각해두어야 했다.

“이 기회에 야수의 본능을 키워봐. 전투 감각은 몸에 익힐수록 발전할 테니까. 그럼 이제 사냥을 시작해보자고.”

적을 기다리는 대신 찾아가기로 작정한 듯하다. 분대원들에게 말을 던진 막스는 수풀 속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췄다.

길리 슈트 때문에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막스의 분대원들은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사업은 취미고, 보스가 원하는 건 자기들처럼 전쟁터를 누비는 일이라고.

‘저런 사람이 사업이나 하고 있으면 재능 낭비지.’

프랑스 용병 다뇽은 쓴웃음을 지으며 길리 슈트를 온몸에 두른 채 풀숲을 이동했다.

*

류큐 북부 해안에 멈춰 선 세 척의 배.

갑판 위 선원들은 고개를 내밀어 해안가를 지켜봤다.

“상황이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그러니까.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어.”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려오지만, 초반처럼 숲을 집어삼킬 기세는 아니었다.

오히려 총성 뒤의 고요함이 갑판 위 선장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젠장!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별수 있습니까. 기다려야죠.”

설마 천 명이 백 명한테 지겠어. 배에 있던 선원들은 아군이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해가 서쪽 바다를 붉게 물들였을 땐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 역할은 지원 사격이라, 내륙에서 싸우면 도움이 안 돼. 돌아간다.”

더욱이 해가 지면 관찰하기도 힘들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세 척의 배는 이내 뱃머리를 서쪽으로 틀었다. 그들은 처음 도착했던 나하 항구로 돌아갔다.

류큐 왕국의 수도 슈리성.

주일 미국 영사 발켄버그는 갑자기 찾아온 손님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원치 않은 만남이었지만, 상대는 구레나룻이 머리보다 긴 영국의 일본 영사 핸리 스미스 파크스였다.

“발켄버그 영사께서 오늘따라 초조해 보이는군요. SFBC와 미국은 상관없다면서요?”

“국가를 떠나 다들 미국인입니다. 영사라면 응당 신경이 쓰여야 정상이지요.”

“이젠 조선인도 미국인이 되는 세상이군요.”

“인종과 출신지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합법적으로 시민권을 받았으면 미국인인 거지요.”

“하긴, 총사령관까지 됐으니 좋든 싫든 반드시 미국인이어야겠지요.”

날이 선 대화가 오고 간다. 발켄버그는 초조함에 날이 섰고, 파크스는 그런 모습을 즐기며 일부러 날을 세웠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이야기하는 건데. 막스 조를 조사했을 땐 나름 흥미가 있었습니다. 군인이 여러 굵직한 사업에 관련되었다는 것도 놀라웠었죠.”

그런데 관심과 흥미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아쉬운 건, 딱 거기까지였다는 겁니다. 일단 결혼을 예로 들면 부인이 뉴욕 파이브포인츠 뒷골목 출신이라지요? 그것도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자.”

“그게 문제가 됩니까?”

“좀 더 욕심이 있었으면 유력한 가문과 혼인했어야지요. 그래야 동양인의 한계를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실망스러운 건.”

뜬금없이 미국이 아닌 태평양 건너의 일본까지 욕심을 냈다는 점이었다.

“결국 조선인의 티를 못 벗은 겁니다. 한 나라의 총사령관이었던 자가 기껏 용병을 이끌고 내전에 참전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생각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으니 류큐에서 개죽음당하는 거지요.”

“개죽음이라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침몰하는 막부에 올라탄 것도 그렇고 고작 그 인원으로 대세를 바꾸겠다? 명백한 오판이고 오만한 겁니다. 그게 명을 재촉한 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말을 참 얄밉게도 한단 말야.’

발켄버그는 손가락으로 의자를 두드리며 화를 억눌렀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생긴다.

‘이 인간이 굳이 류큐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나한테 이런 말이나 하려고 오진 않았을 텐데.’

발켄버그가 말이 없자, 파크스 영국 대사가 떠보듯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막스 조가 죽으면 그 사업들은 누가 이어받습니까? 벌려둔 게 엄청나던데, 부인은 그럴 능력이 없을 것 같고···.”

“설마, 영국의 그 가문에서도 막스 조를 주목하고 있습니까?”

발켄버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자 파크스가 한 발 빼며 되물었다.

“아까 내가 실망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그쪽 가문에서 막스 조에게 관심 둘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은 아닙니다.”

“뭐, 막스 조는 아니어도 그들이 미국에 관심이 있는 건 사실 아닙니까?”

“그것까지 어찌 알겠습니까. 나야 자국의 회사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길 바랄 뿐이지요. 아무튼, 발켄버그 영사께서도 잘 생각해 보세요. 일본이 어떻게 바뀌어야 미국의 국익이 되는지를. 그게 우리 역할 아니겠습니까.”

파크스가 여유롭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눈치 빠른 발켄버그에겐 황급히 주제에서 발을 빼는 모습으로 보였다.

파크스가 감추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의구심만 증폭되었다.

‘아무래도 막스 총사령관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군.’

물론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살아있어야 했다.

나하 항구의 영국 영사관.

파크스가 도착했을 땐, 입구에는 세 명의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홍콩에서 용병들을 실어 나른 선장들이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파크스의 얼굴이 갈수록 일그러졌다.

“결국 상황도 모르고 복귀했단 말입니까?”

“마냥 해안에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한 척 정도는 그곳에 머물러서 현장을 살폈어야지요!”

“그러다 놈들 상선이 기습이라도 하면요? 함선을 개조한 거라 우리 배로는 화력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갑갑한 마음에 소리쳤지만, 선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게다가 영국 동인도 회사에 소속된 선장들의 임무는 용병 호송이지 전투가 아니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파크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내륙에서 벌어진 전투라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군요. 내일이면 결과가 나오겠지요.”

“아침 일찍 다시 배를 타고 나가보겠습니다.”

선장은 선원들과 배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다시금 배를 끌고 해안으로 나갔다.

그런데 전날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배에서 바라본 해안 숲은 어제보다 고요하고, 총성은 몇 시간에 한 번 울리는 정도였다.

“점점 불길한데요. 전투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면, 한 명이라도 해안가에 나와야 정상 아닙니까?”

누구든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야 했다.

그런데 해안가는 아군이든 적이든 아무도 나타나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은 들지만, 감히 보트를 띄워 상륙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선원들은 그날도 하루 내내 해안가에 있다 별 소득 없이 나하 항구로 복귀했다.

나뭇잎이 달빛을 가린 어둠 속.

막스가 이동하는 적을 발견. 기척을 죽이고 뒤로 다가가 칼끝을 목에 가져다 대었다.

중국인이었는데 그의 입에선 영어가 튀어나왔다.

“사, 살려··· 주십시오!”

“영어를 할 줄 알면 살 자격은 충분하지. 대신.”

탕!

탕!

허공에 대고 리볼버 방아쇠를 당긴 뒤, 막스가 중국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중국어로, 놈들을 죽였다고 소리쳐.

- ......

푸욱.

막스가 중국인의 입을 막고 칼끝을 배에 밀어 넣는다. 요동치는 몸을 속박하며 다시금 속삭였다.

- 내가 놈들을 죽였다고 소리치라고.

고통에 꿈틀거리던 중국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막스가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우자, 부들거리며 소리쳤다.

“我, 我殺了他們!”

- 여기 먹을 것도 있어.

“..... 這兒還有吃的!”

- 잘했다.

“好···.”

- 그건 안 따라 해도 돼.

푸욱.

목에 칼을 쑤셔 넣어 숨통을 끊은 뒤, 천천히 바닥에 눕혀 놓고. 잠시 후 주변에서 사사삭 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리를 듣고 다가온 죽은 놈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죽여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 阿嚶(아징)! 阿···!

푹.

푹.

놈들의 뒤에서 나뭇잎이 꿈틀거리더니 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스가 유인하고 주변에 있던 분대원들이 적들을 제거했다.

‘진짜 악마가 따로 없구만.’

대원들은 새삼 막스의 간악함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막스는 육포를 질겅이며 말없이 자리를 이동했다.

대원들은 눈치껏 그 뒤를 따라갔다.

막스의 말대로 초반 5할을 죽이는 건 쉽지만, 갈수록 시간과 집중력의 싸움이었다.

-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극한의 생존 본능을 끌어올리면 예상 밖의 힘을 발휘하는 법. 이런 전투일수록 집중력을 잃지 마라. 정신이 흐트러지는 순간, 적의 칼끝이 심장을 파고들 테니까.

혹한기 훈련을 곱씹으며 SFBC 대원들은 쪽잠으로 눈을 붙이고, 집요하게 적들을 제거해 나아갔다.

*

전투가 벌어진 지 일주일.

나하 항구의 화제는 단연코 도막파와 좌막파에서 고용한 용병들의 전투였다.

“백 명과 천 명이 싸우는데 뭘 이렇게 오래 걸리냐. 끝나도 진작에 끝났겠구만.”

“숲에서 싸운다잖아. 숨을 곳이 많으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는 거 아니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냥 천 명이 휙 둘러싸면 끝 아닌가.”

“뭐가 됐든 지금까지 버티는 걸 보면 SFBC라는 용병 집단도 만만치는 않은가 보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미국, 러시아, 중국까지. 류큐의 나하 항구에 모여든 외국인들은 전투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다.

한편, 여유가 사라진 영국 영사 파크스는 읽던 편지를 책상 위에 던져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일이 자꾸 꼬이네.”

영국 본토에서 정부와 동인도 회사에서 날아온 편지들은 일본의 내전 상황과 앞으로의 예측을 묻고 있었다.

“내가 어찌 아냐고. 오늘 내일도 모르는데.”

당장 류큐에서 벌어진 용병들의 전투 상황도 알지 못하는데 무슨 미래를 예측한단 말인가.

파크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만약 SFBC가 전투에서 이겼다면···.’

더 숙련된 용병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하긴 애초에 중국 놈들로 머릿수를 채운 게 문제였지.’

막부의 붕괴가 늦어지는 게 SFBC 때문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는 자국의 국익에도 부합했다.

현재 대영제국은 무려 50년 동안 러시아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인도를 두고 벌어진 경쟁은 점차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영국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도와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다.

‘고작 SFBC 따위가 방해하게 둘 순 없지.’

방향을 정한 파크스 영사는 수첩에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두었다.

SFBC의 전투 현장을 조사해 수법을 파헤칠 것. 그런 다음엔 그에 대응하는 용병들을 요청하고, 세 척의 선박을 홍콩으로 돌려보내 그들을 태워올 것.

화가 나지만, 작성하는 중에 파크스는 사실상 SFBC의 승리를 확정 짓고 있었다.

류큐 북부 해안 숲.

파크스의 예상처럼 전투는 이미 하루 전날 SFBC의 완벽한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럼에도 막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 우리 전략 전술을 드러내선 곤란하지. 피곤하겠지만, 지금부터 부비트랩과 동선을 짐작할 만한 흔적들을 모두 제거한다.

곳곳에 널려진 시체들은 놔두고, 대원들은 흔적들을 하나둘 지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작업한 뒤, 막스는 다크써클이 입까지 내려온 대원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이대로 항구까지 이동한다.

- 시발, 드디어 잘 수 있겠구나.

- 난 배고파 뒤질 것 같아. 아무튼 끝나서 다행이다.

- 내가 죽으면 피곤해서 죽은 거다.

그렇게 탈진에 가까운 상태로 항구에 도착했을 땐, 늦은 밤이었다.

대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즈음.

막스가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항구에 정박 되어 있는 선박 세 척을 나포한다!”

막스의 말에 대원들이 뻑뻑거리며 닭 소리를 내었다.

“저 선박들 영국 소속 아니에요? 나포하면 큰일 나는 겁니다, 보스!”

“쟤들이 용병은 아니잖아요?!”

대원들은 어떻게든 안 될 이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막스는 모르는 소리 말라며 고개를 크게 저었다.

“우리 주둔지에 포격한 순간, 저 배는 용병들과 한 몸이 된 거다. 또, 문제가 커지면 그때 돌려주면 되고. 안 그래?”

그럴 거면 그냥 지금 돌려주자는 말이 나왔지만, 막스는 코웃음치며 무시했다.

대원들이 탄식을 내뱉자 막스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라며 독려했다.

“잠은 탈취한 배에서 실컷 자면 된다! 그리고 놀라지 마라. 내일은 구보를 안 할 예정이다.”

“와아····.”

“그것도 예정이야. 예정.”

어이가 없어서인지, 대원들은 피식거리다 못해 실성한 것처럼 낄낄거렸다.

하지만 선박 근처에 가서는 다들 입을 닫고 그림자처럼 배로 잠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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