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누가 봐도 일부러 놔뒀구만
끼룩, 끼룩.
태평양을 항해하는 콜로라도호.
며칠 동안의 거친 풍랑이 잠잠해지고 대원들은 갑판에서 모여 햇볕을 쬐고 있었다.
갑판 나무 상자에 기댄 막스는 떠나기 전 발켄버그 미국 영사가 건넨 신문을 훑어봤다.
가장 최신 일자는 석 달 전.
그래도 일본에 있는 동안 미국과 주변 정세를 파악하는 데는 꽤 유용했다.
[버팔로 사냥꾼들과 인디언들의 살육전]
우려했던 버팔로 사냥이 현실이 되었다.
소 떼로 인한 전염병 공포가 수그러들자 버팔로 가죽 수요는 다시금 증가하고.
인디언 영토에서 버팔로를 무차별 학살하는 사냥꾼들과 인디언들 사이에서 혈투가 벌어진 것이다.
[충격! 루이지애나 오펠루사스 대학살 사건!]
이 사건은 재건 시대에 일어난 인종 갈등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데.
흑인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선생이 KKK단과 유사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백인 동백 기사단(Knights of the White Camelia)’에 집단린치를 당해 촉발된 사건이었다.
이 일로 흑인 공화당원들과 백인 민주당원들이 충돌하고, 백인 폭도들이 가세.
흑인 300명, 백인 50명이 죽은 사건이었다.
‘......’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한 뒤, 마저 신문을 읽어갔다.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강도들의 전성시대]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은행, 열차 강도 사건.
최초의 은행, 열차 강도 갱단을 막스가 모조리 처단했음에도 갱단의 숫자는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서부는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돈의 카오스였다.
연방은 핑커톤과 연계하여 치안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사설탐정에겐 법적 권한과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
‘다시 연방 보안관이 필요하겠군.’
막스가 기사를 보며 고심하던 때였다.
옆에서 함께 신문을 읽던 리지리 대령이 중얼 거렸다.
“파라과이 전쟁은 갈수록 더 하네요. 총보다 전염병 때문에 다 죽게 생겼는데, 대체 뭘 위해 싸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파라과이 전쟁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영토 분쟁이 격화되면서 파라과이가 삼국 동맹인 아르헨티나, 브라질제국, 우루과이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다.
발단은 내륙 국가인 파라과이가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브라질, 우루과이 쪽 해안선을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시작은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자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까지 버티는 건 자기 욕심이죠. 파라과이 대통령은 권력에 취한 겁니다.”
“그럼 파라과이가 패할 거라고 보십니까?”
“국경을 맞댄 세 국가가 동맹을 맺었는데 무슨 수로 이기겠습니까? 어쩌면 이미 승패는 결정 났을지도 모르죠.”
원 역사에서 파라과이는 이 전쟁으로 인구 절반이 줄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영토도 빼앗긴다.
이 사건으로 건장한 남자 대부분이 죽고 여자와 노인, 아이들만 생존. 인구와 경제가 파탄 난 파라과이는 150년이 흘러 조유강이 살던 시대까지 복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
“만약 파라과이에서 SFBC에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실 겁니까?”
막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일단 명분 없는 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파라과이는 승산이 없습니다. 가 봐야 죽을 게 빤하죠.”
“SFBC가 개입하면 결과를 바꿀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용병 집단이 국가 간 전투의 당락을 좌지우지할 정도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죠. 내부에 폭탄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미 의회는 해체 법안을 만들려 들 겁니다.”
“그런 문제가 있겠군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막스도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조직의 규모와 함께 좀 더 근본적인 조직의 목표를 고심하고 있었다.
잘 먹고 잘살아보자는 목표는 이루었다.
지금 하는 일련의 행동은 그걸 벗어난 것들이었다.
처음 막스의 목표는 ‘동양인의 몸으로 미국에서 살아남기’였다.
어렵지만 단순 명쾌한 목표였다.
그런데 개인으로 시작한 동기는 조직이 되면서 주변으로 확대되고, 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과실들이 널려 있는데 이걸 지나친다고?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디 쉬운가.
그렇게 하나둘 손에 넣다 보니 덩달아 욕망과 욕심도 커갔다.
그 결과가 일본에서 벌인 일들이다.
남북전쟁과 달리 막스는 한 나라의 역사를 통째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후회도 없고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파라과이 지도자가 범한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그 끝을 정해두어 자신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는 동안, 막스는 현재 벌인 일들의 방향과 목표 설정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다 보면 지구를 정복할 기세로 목표가 커져만 갔다.
‘큰일이네, 이거.’
갈수록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
“저기 캘리포니아가 보인드아아!”
“드디어 내가 왔노라!”
대원들이 멀리 보이는 육지를 향해 포효를 터트렸다. 기나긴 항해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우중충했던 대원들의 낯빛에 환한 웃음이 번져갔다.
샌프란시스코 항구.
스카프를 두른 시커먼 복장의 무장한 대원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 혹시 신문에 났던 SFBC인가?
- 무슨 신문?
- 그 뭐냐, 아시아 어디 섬에서 적군을 몰살시켰다는 기사 못 봤어?
- 설마, 백 대 천!?
- 그래, 그거. 근데 백 명은 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120명. 치열한 전투를 겪고도 출발했던 인원이 열외 없이 무사 복귀한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대원들을 본 사람들은 SFBC, 아니 그와 같은 집단에 관해서도 수군거렸다.
- 대체 민간군사기업이 뭐야? 요새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 같던데.
- 돈 받고 대신 일 처리 해주는 곳이야. 쉽게 말해서 용병인 거지.
- 그럼 그중에 SFBC가 제일 큰 건가?
- 규모로 따지면 WCBS지. 기사 보니까 대원만 2천 명이 넘는다더라.
- 핑커톤은? 탐정이랑 용병이랑 다른 건가?”
- 글쎄. 애매하네. 근데 규모로 치면 핑커톤이 압도적이긴 하다.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탐정들이 2만 명.
파라과이와 전쟁 중인 브라질과 우루과이 군인 수와 맞먹는 숫자였다.
“보스, 그럼 저흰 여기 남아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리지리 선장과 선원들은 정식으로 SFBC 수송팀의 일원이다. 사무실은 샌프란시스코 SFBC 지부, 숙소는 이전에 매입한 부지에 가족들이 살 장소까지 마련해주기로 했다.
“규모는 축소되겠지만, 한 달 뒤에 일본으로 보낼 2차 원정팀이 꾸려질 겁니다.”
“옙. 그때까지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막부가 막스에게 빚진 돈만 3백만 달러.
앞으로 SFBC는 전투를 피하고, 막부를 물밑으로 지원하여 전쟁 특수를 노릴 생각이었다.
리지리 선장과 헤어지고 항구를 벗어날 즈음.
막스 일행은 낯익은 복장의 남자와 마주쳤다.
앞바퀴보다 뒷바퀴가 작은 나무로 만든 벨로시페드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무장한 막스 일행을 보곤 자연스레 방향을 틀어 빠져나가려 했다.
“황제 폐하! 어디를 그렇게 황급히 가시려 하옵니까.”
막스의 외침에, 움찔하던 남자가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전거에서 내린 노턴 1세.
무장한 대원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시선을 강제로 막스에게 고정한 채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는 다소 위축되어 있었다.
“총사령관은··· 짐에게 그간 일본 원정의 성과를 보고하도록 하라···.”
막스 만큼이나 노턴 1세는 신문을 즐겨본다.
세상만사가 그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와우. 진짜 미쳤구나.’
대원들의 눈빛이 찌를 듯 노턴 1세로 향하고, 막스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워낙 중요한 일이라 은밀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폐하.”
막스는 조용한 곳에서 노턴 1세와 대화를 나눴다. 불과 5분 남짓한 대화를 끝낸 뒤, 막스는 공손히 인사를 건넨 뒤 다시금 길을 재촉했다.
“뭔 대화를 나눈 거야?”
콜린이 다가와 물었다.
막스가 턱을 매만지며 말하길.
“왜 막부를 도왔냐고 나무라던데요.”
“역시 황제는 왕실 편인가 보군. 그래서 뭐라 그랬어?”
“죽을 죄를 졌다고 했죠.”
콜린이 낄낄거리며 어깨를 흔들어댔다.
*
샌프란시스코 타운샌드 기차역.
대륙횡단 열차를 타려면 이곳에서 서태평양 철도를 타고 새크라멘토까지 가야 하는데, 막스와 홀리데이가 백 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한 노선이었다.
2년 전, 홀리데이는 대륙횡단열차를 태평양 연안까지 잇기 위해 당시 자금난에 허덕이던 서태평양 철도를 사들였다. 하지만 당시 알래스카 매입과 맞물려 자금이 부족했던 막스는 JP 모건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막스 자네라면 얼마든지 빌려주지. 게다가 철도 회사는 기회가 생기는 족족 사는 게 이득이지.
SFBC 대원들은 서태평양 철도를 타고 마침내 새크라멘토에서 대륙횡단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거 타고 5일이면 콜로라도에 도착한다 이거지?”
“세상 많이 좋아졌다.”
의도치 않게 120명의 대원이 열차 후미 세 칸을 점령했다.
일반인은 질겁하며 다른 칸으로 옮겼기 때문에 자연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증기기관의 거친 소음과 대원들의 왁자지껄한 소란과 뒤섞인 채 열차가 출발했다.
창밖을 보던 막스는 선로 옆을 따라 건설된 전신주를 바라봤다.
철도 회사를 소유하려는 자들은 보통 그 노선을 통해 벌어들이는 운송 수익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막스는 노선보다 전신주의 가치를 더 높게 봤다.
대륙횡단열차의 의의는 동부와 서부의 운송뿐 아니라 전신까지 연결된 중요한 사업이었다.
지금껏 전신주는 규칙 없이 빈 땅에 세워졌는데, 대륙횡단 열차는 선로를 따라 전신주를 건설했다. 이는 전신선을 보호하고 유지하기가 쉬워 기존의 전신선 대부분이 버려지고 철도 전신선과 통합되게 된다.
훗날 전화와 전기가 들어서게 되면 전신 사용료를 철도 회사가 먹는 구조였다.
막스가 이를 알게 된 건 당연히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지만, 놀랍게도 다른 한 명도 막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JP모건이었다.
‘부자가 괜히 부자가 아니란 말야.’
막스의 신경이 창밖 전신주에 꽂혀 있을 즈음.
기차는 새크라맨토 북부의 광산을 지나고 있었다.
막스는 전신주에 눈을 떼고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여기가 어디길래, 중국인들이 이렇게 많아.’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거운 짐을 지고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었다.
더러는 홀로 냇가에 쭈그리고 앉아 고독하게 채광하는 자들도 볼 수 있었는데, 전부 대륙횡단열차 공사가 끝나고 일자리를 찾아 광산으로 온 중국인들이었다.
이 근방에 더치 플랫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가장 큰 중국인 정착지였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사막에는 얼핏 멀리서 보면 사람처럼 서 있는 선인장과 조슈아 트리가 즐비했다.
기차가 네바다의 황량한 사막을 횡단하고 있을 때였다. 지겹도록 펼쳐진 황무지와 조슈아 트리를 보던 때,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 뭘 본 거지?’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조슈아 트리들이 꿈틀거렸다. 아지랑이와는 분명 달랐다.
막스는 가방을 뒤적거려 망원경을 꺼냈다.
같은 시각. 증기기관의 엔진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기관사가 멈칫하더니 눈을 가늘게 떠 전방을 응시했다.
눈을 비비곤 옆에 있는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저게 뭐지?”
철로 위에 뭔가가 놓여 있다.
자세히 보니 바퀴가 빠진 반파된 짐수레다.
귀찮더라도 탈선을 막기 위해선 철로 위 물건을 제거해야 했다.
이마를 찌푸린 기관사는 보조 기관사에게 기차를 멈추도록 지시했다.
지붕위로 올라간 보조 기관사는 지붕 위에서 수동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천천히 속도를 줄여갔다.
치치치치칙.
기차가 천천히 멈춰 서고.
기관사는 샷건을 챙겨 조심스레 땅에 발을 내디뎠다.
“..... 설마 일부러 놔둔 건 아니겠죠?”
주변을 경계하며 수레로 다가가던 때.
뒤에 숨어 있던 두 놈이 불쑥 솟아났다.
그런데 놈들은 기관사의 뒤를 보곤.
“뻑!”
기겁하여 총구 방향을 틀었다.
타앙!
타앙!
두 발의 총성과 함께 두 놈의 머리가 젖혀지며 그대로 땅에 쓰러지고. 놀란 기관사와 보조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코트를 펄럭이며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라이플을 든 채 열차 지붕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일부러 놔뒀구만.”
막스는 죽기 싫으면 기차로 돌아오라며 고갯짓했다. 그제야 동쪽 저 멀리 먼지구름을 일으키면 다가오는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기관사와 보조가 기차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때, 창문 밖으로 수십 개의 총구가 삐죽이 솟아나더니. 동쪽을 향해 불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