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8화 (358/360)

#358 친구 존 브라운

타앙!

타앙!

열차에서 수십 발의 총성이 울리자, 객실 승객들은 몸을 웅크린 채 공포에 떨었다.

상황을 모르기에 총탄이 어디로 향하는지,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조차 힘들다.

다만 같은 열차에 탄 무장한 자들이 쏴대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부모는 아이들을 꼭 끌어 앉고 소란이 끝나기만을, 제발 아무 일이 없기만을 기도했다.

한편, 나름 치밀하게 준비한 갱단들은 총탄이 날아오자 당황하며 말머리를 틀었다.

“후, 후퇴다!”

“시발, 어떤 새끼가 저 열차 털자고 했어!”

하필 골라도 무장 병력이 잔뜩 타고 있는 열차를 골랐다.

갱단들은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려 나타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일으킨 먼지구름이 평원으로 흩어지고 갱단이 자취를 감추자 SFBC 대원들이 창문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에라이 병신들아! 그렇게 해서 밥 빌어먹고 살겠냐?!”

“강도 새끼들이 강단이 없어!”

“계획을 했으면 여기까진 와야지, 새끼들아!”

‘강도들이 몰려오는 걸 내쫓은 거구나.’

상황을 알게 된 승객들은 한편으론 대원들의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에 아찔함을 느꼈다.

웅크리던 허리를 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지붕 위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의 시선이 천장을 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덜컥.

객실 문이 열리더니 열차 보안요원 셋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가슴에 핑커톤 탐정 배지가 달려 있었다.

“열차 강도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근처에도 못 오고 도망갔습니다! 모두 안심하십시오!”

“근데··· 뒤 칸에는 누가 타고 있는 거요?”

“SFBC 대원들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SFBC를 떠올렸다.

어떤 이는 감탄을, 어떤 이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부는 미간을 찡그렸는데 남부 연합에 속했던 자들이었다.

객실을 돌아다니며 승객들을 안심시킨 보안요원은 SFBC 대원들이 있는 객실 문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너넨 가서 시체 다시 확인해. 나 혼자 갔다 오마.”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위압적이고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라 후배들은 돌려보내고, 문을 열자 대원들의 사나운 눈빛이 탐정을 후벼판다.

맨 앞에 앉은 남자, SFBC 보스가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쳐 앉기를 권했다.

조금은 건방진 모습이지만, 선임 탐정은 머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어떤 갱단인지 아십니까?”

“처리한 시체들을 열차에 실었습니다. 이제 조사해서 단서를 찾아봐야죠. 어찌 됐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대신해서 갱단을 물리쳐줘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그나저나, 신문에선 열차 강도가 극성이라고 난리를 치던데 기관사들한테 따로 매뉴얼은 없나 보네요.”

“센트럴 퍼시픽 회사에서 교육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부족하긴 합니다. 동부에서 작은 노선을 운행했던 기관사들은 특히 조심성이 없거든요.”

당신은? 기관사가 열차를 멈췄으면 보안요원들이 먼저 밖을 정찰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막스가 빤히 쳐다보자, 선임 탐정이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앨런과 강도 대응 매뉴얼을 논의해봐야겠군.’

막스는 선임 탐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앨런 핑커톤과 훈련을 끝낸 신입 탐정들의 근황과 대륙횡단 열차의 운영에 관해서도 대화가 오갔는데.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 철도 회사의 주요 주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지금 콜로라도에서 훈련받고 있는 우리 신입 탐정들도 꽤 될 겁니다. 힘들긴 해도 배우는 게 많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제가 나이만 어렸다면 저도 참가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말 나온 김에 이번 겨울에 오시죠.”

“...... 하필 집안에 일이 있네요.”

“일 끝나고 오세요. 하계 훈련도 있으니까.”

“......”

작년, 7개월간 로키산맥에서 혹한기 훈련을 끝낸 신입 탐정의 말이 핑커톤 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 유체이탈을 해 본 적 있습니까? 전 열 번은 경험했습니다. 실제로 죽었던 적도 세 번 있었죠. 하늘나라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습니다. 로키산맥 정상이더군요.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과장이 아닌 게, 훈련받은 신입들은 잠꼬대로 ‘살려달라’며 울부짖기까지 했다.

선임 탐정은 훈련에 불참하려 온갖 이유를 붙였다.

네바다를 지나 유타로 진입한 기차는 오그돈의 골드 스파이크 역에 잠시 멈춰 섰다.

대륙횡단 열차를 공사한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의 철로가 만나는 상징적인 지점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달러 상당의 금으로 스파이크를 만들어 현재는 유니온 퍼시픽 회장 홀리데이가 보유하고 있었다.

개인 소유는 아니고 곧 지어질 유니온 퍼시픽 철도 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었다.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막스는 커다란 도로의 오른편에 있는 건물을 응시했다.

간판에 ‘버디 바’라고 적힌 술집이었다.

“돈 없으면 물을 마셔, 새끼야!”

“다신 여기 얼씬도 하지 마!”

마침 술집 안에서 여인들이 한 남자를 끌어내는 등 소란이 벌어졌다.

콜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저 술집. 보스가 주인은 아니지?”

“설마요.”

버디 바는 존 브라우닝을 영입할 당시 은행강도를 처치했던 술집 이름.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진 술집이 어느새 이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콜린이 막스를 술집 주인으로 오해한 건, 골든 스파이크 기차역 부근 땅의 소유주가 막스였기 때문이었다.

막스는 갈 곳 없는 술집 여인들에게 땅을 빌려주고, 이곳에서 버디 바를 다시 열게 했다. 땅과 건물을 빌려주는 대신 임대료는 월 15달러다.

‘여자들끼리 그대로 잘 운영하는 모양이네.’

동부에서 납치되다시피 끌려왔지만, 서부의 거칠고 황량한 바람이 그녀들을 강하게 만든 모양이다.

기차가 증기 엔진의 우렁찬 소리와 연기를 내뿜는다. 시간 나면 들르기로 하고, 막스와 대원들은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와이오밍의 샤이엔 기차역.

SFBC 대원들은 대륙횡단 열차에 내려, 캔자스 퍼시픽 열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마침내 콜로라도 준투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지 5일, 일본 원정을 떠난 지 1년 7개월 만이었다.

*

준투 요새와 로키산맥 사이의 리저뷰어 리지.

[GREAT EMANCIPATOR.

HERE LIES BURIED JOHN BROWN.

위대한 해방자. 여기에 존 브라운이 묻히다.

May 9, 1800 - May 17, 1869.]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한 직후 막스는 신문을 통해 미국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해서, 준투에 도착하자마자 막스는 SFBC 대원들을 이끌고 존 브라운의 무덤부터 찾았다.

1855년, 존 브라운과 맺어진 인연은 막스뿐만이 아니다. 당시 SFBC 대원들은 존 브라운처럼 신념으로 무장한 노예제 폐지론자였으며, 혈기 왕성한 제이호커스였다.

사실상 존 브라운과 함께 투쟁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스는 이례적으로 두 번의 절을 올리고, 꽃 한 송이를 비석 앞에 올려 두었다.

나머지 대원들도 이를 따랐다.

존 브라운의 아들 오웬 브라운이 막스에게 밀봉된 봉투를 건네주었다.

죽기 한 달 전부터 쓴 편지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막스는 홀로 서재에 앉아 봉투를 뜯었다.

첫 내용은 막스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 그리고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말이었다.

[부끄럽지만 내 고집스러운 성격으론 자네가 영 미덥지 않았네. 동양인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혔는지도 모르지. 내가 욕하던 여느 백인들의 편협한 마음처럼.

하지만 사무엘 존스를 처치할 때 비로소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네.

그때 나를 지배했던 건, 폭력의 광기였고 하퍼스 페리 습격은 그 절정이 아닐까 싶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내 꿈은 거기서 끝났겠지.]

그런데 오히려 이 일 이후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존 브라운은 대통령을 꿈을 꾸게 되었다.

[당선되었을 때 내게 휘몰아친 감정은 어떤 마술적인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네.

비록 나라는 분열되어 전쟁 직전이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했거든.

사람의 본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솔직한 내 심정은 전쟁을 바라고 있었네.

속으로는 나를 ‘과격하고 폭력주의자’라 욕했던 자들에게 일갈하고 싶었네!

보라! 노예를 해방하는 방법은 역시 폭력이지 않은가, 라고 말일세.]

존 브라운도 한낱 인간일 뿐이다.

자신을 비난했던 자들에게 쌓인 감정을 죽을 때까지 떨치지 못한 듯했다.

이후 존 브라운은 남북전쟁 이야기로만 두 장을 할애했다.

무능한 북군 장군들을 솎아내고, 막스가 본격적으로 서부 사령관이 되어 연전연승을 이끌었을 때의 짜릿함까지 솔직하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쓰던 중 심경 변화가 생겼는지, 마지막 남은 한 장은 후회와 막스에게 하는 조언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나갔음에도 세상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네.

그래서 나는 죄인일세.

전쟁과 폭력을 해결책으로 여기고, 노예 해방선언을 변화의 결과물로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이제야 깨닫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끝으로 고백하나 하자면, 나는 내 신념을 이루기 위해 자네의 야망을 이용했네.

더 멋지고 우아한 표현이 있겠지만, 이용했다는 말이 정확하네.

물론 자네도 나를 이용했겠지만, 나는 기꺼운 마음이었네.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지.

내가 미안한 건, 여전히 자네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걸세.

그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길 바라고 있거든.

그런 점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의 조언이 자네에게 쓸모가 있을진 모르지만 들어는 주게.

너무 일에 매몰되지 말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망과 욕심, 욕망을 부디 멀리서 찾지 말고, 가족과 주변을 생각하게.

특히 귀염둥이 아서와 루시.

그 아이들이 자네처럼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될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

끝까지 내 욕심을 포기하지 않아 미안하네.

자네의 파트너로서 생을 마감하게 되어 영광이고, 나보다 더 빛나게 될 자네를 미리 축하하며 이만 끝내도록 하겠네.

친구 존 브라운.]

‘아서와 루시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

150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 보라니.

존 브라운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막스에게 편지로 남긴 것이다.

어이없고 부담스러운 유언이 아닌가.

‘이건 세뇌다.’

하지만 존 브라운의 유언과도 같은 말은 목표를 고민하던 막스에겐 나침반과도 같았다.

막스가 호흡을 길게 내쉬며 편지에서 눈을 뗐을 때.

‘음?’

언제부터 있었는지, 문 사이로 쌍둥이 아서, 루시가 빼꼼히 막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

서먹서먹한 아버지와의 관계라니.

1년 7개월 만에 봤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막스는 편지를 금고에 넣어두고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은 흑인 가정부 둘과 음식을 준비하는 피치 다리 옆에 매달려 있고. 눈동자는 막스를 쫓아 움직였다.

“애들이 아직 어색한가 보네. 가기 전에 좀 친해지길 바래.”

“가긴 어딜 가? 나 안 가.”

“편지 못 봤어? 대통령이 우리 여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잖아.”

피치의 말마따나 링컨 대통령은 SFBC 대원들의 연방 보안관 복귀를 요청했다.

하지만 자신은 일본 막부에 고용된 SFBC 용병이라, 연방 보안관의 신분이 더해지면 국가에서 일본에 개입한 꼴이 된다.

해서 외교 문제를 고려해 나머지 대원 120명을 연방 보안관으로 추천하기로 했다.

“그냥 편지로 답장하면 돼.”

“진짜? 워싱턴 안 가고?”

“당연하지. 가더라도 우리 쌍둥이들하고 실컷 놀고 갈 거야.”

막스가 웃으며 두 팔을 벌리자 아서와 루시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엄마 품에서 벗어나더니, 이내 막스에게 달려들었다.

‘이거지.’

막스는 쌍둥이를 꼭 끌어 앉고, 그날 밤 책을 읽어주고 재워주려 했다.

그런데.

미약하지만 준투 요새 밖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게 뭔.’

막스가 황급히 아이들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총을 찾을 때, 피치가 고개를 저었다.

이유 없이 요새를 향해 쏘거나, 어디선가 결투를 벌이는 총잡이들.

세상을 한탄하며 술주정뱅이들이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등.

“가깝게 들리는 거 아니면, 신경 쓰지마.”

“......”

막스가 아이들 방으로 다시 돌아갔을 땐, 이미 코 잠이 들어 있었다.

총소리가 자장가라니.

어째 세상이 더 심각하게 망가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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