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9화 (359/360)

#359 오랜만에 말이나 타자

“좋은 아침입니다, 보스!”

“우리 쌍둥이들도 구보하러 나와쪄요?”

“방금 뛰고 와써요!”

비론 30초 뛰었지만, 루시와 아서는 이마에 땀을 가리키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준투 요새를 달리고 아침을 먹으려는 대원들과 아이들을 양팔에 안고 있는 막스. 쌍둥이들과 요새를 산책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이었다.

숨바꼭질 놀이를 끝으로 일을 위해 집무실에 왔을 땐 중국인 차홍이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 양옌과 결혼에 성공, 얼마 전 득남을 한 어엿한 가장이었다.

막스가 미국을 비운 사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건 대륙횡단 열차 완공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동부에 밀집된 공산품들이 서부로 운송되면서 캘리포니아 공장들이 타격을 입기 시작하고, 더 많은 사람이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개척 마을들이 생겨났다.

막스가 피부로 느낀 변화가 있다면, 이젠 얼굴이 신분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거.

대륙횡단 열차에 투입된 중국인 노동자들이 서부 전역에 흩어지면서 동양인은 더 이상 희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막스가 스카프 벗었다고 놀라는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이번에 파악한 바로는 준투로 새로 유입된 중국인들이 1,252명이더군요. 대부분 세탁업, 청소일을 하고 있고, 거주지는 다섯 곳에 퍼져있는데 이곳 막스 카운티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막스 카운티는 로키산맥 서부와 준투 요새를 포함해 대략 2,634평방마일(6,820㎢).

콜로라도 64개 카운티 중 9번째로 큰 면적이었다.

양옌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캘리포니아에서 식료품과 약재, 생활용품 등을 들여와 판매하는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륙횡단 열차가 개통되어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리고 양옌의 또 다른 직업이 있는데, 캘리포니아 식스 컴파니의 수장 위아태와 막스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과 중국인 사회의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위아태의 말로는 뉴욕의 영윙이 청나라에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설득 중이라더군요.”

영윙은 광둥의 미션 스쿨에서 교육받고, 예일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1854년 예일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중국인 학생이었다.

영윙은 졸업 후 청나라로 돌아가 자신들을 후원해준 서양 선교사들과 일했는데, 청나라 관리는 그를 다시 미국으로 파견해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계를 구입하도록 요청했다.

청나라가 중화기를 생산할 수 있던 것도 영윙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의 젊은이들을 미국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청나라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조선으로 치면 개혁파인 박규수와 같은 인물이다. 다만 박규수는 나이가 많고 미국이 아닌 조선에 머물러 있어 한계가 있었다.

해서 막스는 지난번 흥선대원군을 만났을 때, 백 명의 젊은 학생들을 미국에 보내달라 요청한 바 있었다.

일본에 무기를 납품하러 간 2차 원정팀과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될 터였다.

‘일본이 개판 되면서 청나라와 조선 왕실만 신났구나.’

없어져야 할 군주제가 자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건 아닌지. 그것도 고민이 되었다.

*

한창 집무실 근처에서 놀던 때, 쌍둥이들이 손바닥으로 입을 대고 소리쳤다.

“아바바바바바!”

막스가 고개를 돌리자 한 무리의 인디언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아파치족 고야슬레, 아니 이제는 부족장이 된 제로니모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었다.

회의실.

인디언 부족장들의 회담 주제는 버팔로 사냥과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지에서 벌어지는 백인 이주민들과의 갈등이었다.

“우리에게 버팔로가 어떤 의미인지 막스 조는 알고 있을 겁니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또 긴 설명을 이어갔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버팔로의 뿔은 화살과 컵, 숟가락이 되고, 지방은 비누와 머릿기름으로, 모피는 옷과 장갑으로 이용됩니다.”

무두질한 가죽은 가방과 담요, 옷, 장난감, 말 안장이 되고, 꼬리는 장식과 채찍으로, 방광은 식품 가방, 힘줄은 화살의 현, 실, 두개골은 종교의식 등.

우테 부족장은 신체 부위를 빠짐없이 열거하며 설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버팔로가 무차별 학살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며칠 전, 한 사냥꾼이 단 하루 만에 4천 마리를 죽이는 일도 있었죠!”

막스는 옆에 있는 비서 칸토를 힐끔 쳐다봤다.

“버팔로 빌 코디는?”

“히콕하고 애블린 보안관으로 있잖아요.”

“거기 있는 거 맞지?”

“아마도요.”

막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인디언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들이 막스에게 성토하는 건 오클라호마처럼 버팔로 사냥꾼을 응징하겠다는 뜻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공화당 하원이 ‘버팔로 사냥 금지 및 보호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의회에서 통과하면 대통령께선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가죽을 즉시 사용할 목적이 아니면 모두 불법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인데. 사실 이 법안이 통과한다고 사냥을 멈출지는 미지수다.

주마다 법 적용이 다를 수도 있었다.

“다만 텍사스 롱혼의 가죽 단가가 싸지면 버팔로 사냥도 시들시들해질 겁니다.”

여기에 더해 정부 방침과 맞물리면 고객들도 줄어들 것이다.

“버팔로 지키겠다고 사람을 죽이면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참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겁니다.”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때문에 그렇습니까?”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니모와는 다른 구역의 아파치족과 연방 간 갈등이 전쟁 직전까지 치닫는 상황이다.

가장 큰 원인은 뉴멕시코와 애리조나로 이주한 백인들 때문이었다.

“동부의 비옥한 땅에서 쫓아내고, 이제는 황무지 땅까지 침범하는 데 누가 참겠습니까? 싸워야지요!”

막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싸워서 될 일이었으면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밀려났겠습니까? 부족을 위한 게 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갈 땅을 지키는 게 부족을 생각하는 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결국, 막스 조 당신도 우리 인디언들이 백인과 동화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군요.”

원래부터 도전적이었던 샤이엔 부족장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막스가 눈을 가늘게 떠 물었다.

“누가 백인들처럼 살라고 했습니까? 설령, 똑같이 산다고 해서 백인이 될 순 있구요?”

애초에 인종이 다른데 그 생활을 따라 한다고 백인이 되진 않는다.

“여러분들이 지키겠다는 문화와 관습은 그동안 수도 없이 바뀌고 변한 것들입니다. 백인들이 만든 문명을 거부하면서 총은 왜 들고 있습니까? 술은 또 왜들 그렇게 좋아합니까?”

막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동안 쌓인 불만을 토해냈다.

“여러분들의 논리대로라면 태초에 선조들이 살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해야 합니다. 의식주가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지요.”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딘 백인들을 살려준 건 우리 인디언입니다. 옥수수 재배를 알려준 덕에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막스는 말 한번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게 힘이죠.”

상대보다 지식이 뛰어났다면 이 땅은 인디언이 지배하지 않았을까.

부족장들을 둘러보던 막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잘 왔습니다. 보여줄 게 있으니 따라오시죠.”

막스는 부족장들을 이끌고 CIE 연구소로 향했다. 내부로 들어가진 않고, 건물 옆 시연실로 향했다.

그곳엔 지금까지 발명한 것들의 프로토타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막스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이건 전화기라는 겁니다. 이 전선만 연결되어 있으면 거리와 상관없이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막스는 직접 시연을 보였다.

안토니오 무치와 에디슨의 합작품은 이전보다 잡음이 현저히 준 제품이었다.

막스는 입으론 마이크를, 다른 손으로는 스피커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전선이 연구실과 연결되어 이내 안토니오 무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식사는 하셨습니까?

- 이제 먹으러 가야죠, 보스.

“!”

놀란 인디언 부족장들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다.

- 좀 있다가 식당에서 봅시다.

- 아, 치치칙. 치치치직.

- 네네. 그럼 이만.

‘이래서야 상용화가 되겠어?’

막스는 서둘러 전화기를 내려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부족장들을 둘러봤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물건이 가져올 변화를 생각해 보세요. 진정 부족을 생각한다면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지식을 쌓고,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 내도록 돕는 겁니다. 그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잃는 게 줄어들겠지요.”

도전적이던 샤이엔 부족장은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응시했다.

제로니모는 워낙 막스에게 세뇌를 많이 당해서인지 팔짱을 낀 채 고개만 연신 끄덕거렸다.

“아이들을 전투 훈련할 때만 보내지 말고, 학교에 보내세요. 그 아이들이 인디언의 미랩니다.”

막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디언들은 10대 후반의 아이들을 전투 훈련에만 참가시켰다. 영어와 지식을 배우는 데는 철저하게 벽을 쳐둔 것이다.

막스는 부족장들을 데리고 요새 주변을 거닐었다. 변화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고 들려주려 했다.

인디언과 회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여자가 막스의 앞을 막아섰다.

“꼼짝마.”

“......”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지만, 누가 봐도 피치였다. 막스가 놀라지 않자 김이 빠진 듯 스카프를 내리며 입을 삐죽였다.

“재미가 없어, 재미가.”

“..... 근데 우리 쌍둥이들은?”

“부모님한테 맡기고 왔어. 표정 왜 그래? 나랑 데이트하기 싫냐?”

“어이구, 무슨 소리야. 너무 좋아서 그렇지.”

“그래? 그럼.”

팔짱을 낀 피치는 막스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마구간이었다.

‘설마?’

막스의 얼굴이 붉어지자 피치가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

“오랜만에 말이나 타자고.”

“아하.”

“으휴. 혹시나 해서 무기도 준비해 뒀어.”

안장 옆엔 막스의 윈체스터 라이플과 보조 무기 가방도 있었다.

막스는 그래도 그 안을 일일이 확인하고 라이플 장전 상태도 점검했다.

그런 뒤에야 말에 올라탔다.

피치는 막스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듬직한 가장은 자만하지 않고 경솔하지 않으며,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었으니까.

막스와 피치는 말을 타고 준투 요새 서쪽으로 향했다. 로키산맥의 서부 끝자락 능선에 도착해서는 남쪽을 따라 질주했다.

그렇게 10km를 내달리다.

밀르너 산 초입에 말을 멈춰 세웠다.

말 한 필이 힘겹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말에 탄 남자는 SFBC 대원 프릭 존슨이었다.

피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퍼슨 카운티 보안관이 여긴 웬일이지. 어, 근데 뒤에 누굴 태운 것 같지 않아?”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인데.”

막스가 말허리를 박차자 피치도 바짝 옆에 붙어 따라갔다.

지친 말을 다그치던 프릭 존슨은 막스와 피치를 알아보곤 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보스! 피치!”

말에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프릭은 등 뒤의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년을 자신과 한 몸이 되게 밧줄로 묶어 두었다.

막스가 소년의 상태를 훑어보며 물었다.

“누구야?”

“저도 처음 보는 앱니다. 상태가 심각해서, 급히 병원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총상뿐 아니라, 어디서 굴렀는지 상처가 꽤 많았다.

막스와 피치의 데이트는 끝이 나고, 프릭과 함께 준투 요새로 돌아갔다.

칼리 병원.

SFBC 대원 중 유일한 의사 듀들리가 소년의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동안 프릭이 상황을 설명했다.

“엘파소 외곽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습니다. 가보니까 절벽 아래에 그 아이가 쓰러져 있더라고요.”

“누가 열 살 된 애한테 총까지 쏘냐.”

피치가 미간을 찌푸리던 때, 듀들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벌써 끝났어?”

프릭이 묻자 듀들리가 고개를 젓는다.

“총을 빼내려고 옷을 벗겼더니, 안쪽에서 이게 나왔습니다.”

피 묻은 꼬깃꼬깃한 종이와 묵직한 주머니.

듀들리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고 막스가 종이를 펼쳤다.

[SFBC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작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은 돈이에요.

마을 지주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부디 벅스킨 조를 찾아와 우릴 구해 주십시오!]

피 묻은 주머니 속엔 35달러의 동전이 들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