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벅스킨 조가 어디냐?
“벅스킨 조면 폐광촌 아니야?”
“맞아요. 파크 카운티 홀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죠. 벅스킨 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피치의 물음에 프릭이 대답했다.
1858년, 콜로라도에 골드러시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막스가 차지한 핵심 광산을 피해 금광을 찾기 시작했다.
콜로라도 절반이 로키산맥이라 사광과 광맥이 풍부한 곳이 많았다. 일부는 금을 발견해 일확천금의 꿈을 이룬 자들도 있었다.
금이든 은이든, 광물이 발견되면 그 즉시 사람들이 모이고 마을이 생겨나니, 벅스킨 조도 그중 하나였다.
막스는 아이의 피가 잔뜩 묻은 종이와 주머니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른 지역이면 모를까 콜로라도에서 벌어진 일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굴 보낼까.’
절반은 연방 보안관이 되어 남부에서 활동하고, 나머지는 콜로라도와 캔자스의 마을 보안관으로 활동한다.
그 밖에 뉴욕과 캘리포니아, 준투 요새를 방어하거나 훈련 교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막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때, 듀들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영양실조에 탈수 증세에 총상까지 입어서 언제 회복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상태로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구요.”
소년의 등에 박힌 총알은 빼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듀들리 말대로면 소년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였다.
“듀들리 네가 병원에서 잘 돌봐주고 있어.”
“알겠습니다, 보스.”
병원에 아이를 맡겨두고 밖으로 나왔을 땐, 해는 사라지고 로키산맥의 하늘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보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 지금 카운티로 다시 돌아가야 해서요.”
“거기도 바쁘지?”
“말도 마세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요.”
“엄살은. 일 맡길까봐 그러냐?”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프릭이 슬쩍 막스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아이는 데려왔지만 제퍼슨 카운티 보안관이라 파크 카운티에 속한 벅스킨 조 마을은 담당구역 밖이었다.
막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마을 보안관들인 대원들이 힘들게 일하는 것도.
“얼른 가 봐. 고생했다.”
“쌍둥이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봐야겠네요. 그럼 두 분, 다음 소집 때 뵙겠습니다! ”
프릭은 다시금 말을 타고 제퍼슨 카운티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란히 말을 타고 가던 피치가 슬쩍 물었다.
“지금 한가한 대원들이 우리밖엔 없네. 그치?”
“왜, 직접 가고 싶어?”
“마음은 굴뚝같은데, 쌍둥이들 봐야지. 최소 며칠은 걸릴 텐데.”
표정을 보면 이 일을 맡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젓고 입맛을 다셨다.
‘얼른 커라, 쌍둥이들!’
그래야 엄마가 일을 할 수 있단다!
피치가 아쉬움을 달래던 때, 막스가 결정한 듯 말했다.
“이번 일은 나 혼자 처리할 거야.”
“혼자? 나 그럼 불안해서 잠 못 잘 텐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피치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네가 간다고 하니까,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함정은 아닐까 의심되네. 우리 남편을 꼬여내기 위한 함정 말야.”
“나도 생각은 해봤는데, 그건 아닐 거야.”
막스가 직접 나설 거라고 누가 확신하겠는가.
게다가 SFBC 대원을 노렸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다.
아이에게 다가갔을 때 프릭을 습격해 납치하거나 죽이면 되었을 테니까.
오히려 이 방법이 막스를 유인하기 좋은 방법이었다.
다음 날.
동이 트기 전 막스의 눈이 떠졌다.
밤새 몸을 누르던 쌍둥이들의 팔과 다리를 슬며시 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기척을 느꼈는지 피치가 눈을 뜨곤, 따라 일어나려 했다.
“계속 자. 조용히 나갈 테니까.”
피치까지 일어나면 쌍둥이들도 깰지 모른다.
출장 간다고 하면 울면서 바지를 붙잡고 늘어질수도 있다.
그 정도로 관계가 좋아졌달까.
물론 막스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눈을 뜬 루시가 이내 등을 돌렸다.
"......"
“애한테 총까지 쏜 놈들이야. 뜨거운 맛을 보여줘.”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막스는 피치와 아이들에게 키스하곤 조용히 방을 벗어났다.
어제 준비해 놓은 거지들이 입을 법한 꼬질꼬질한 옷과 코트를 걸쳤다.
넝마나 다름없는 거적대기 안에는 리볼버와 칼로 무장되어 있었다.
*
로키산맥 파이크스 피크의 뒤편.
사방이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마을. 무장한 자들이 허름한 건물 주변에 진을 치고 있다. 낡고 바랜 건물 간판에는 파크 카운티 홀이라 쓰여 있었다.
“내가 분명 시체라도 끌고 오라고 얘기했을 텐데.”
의자에 등을 기댄 중년의 남자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부하들을 노려본다.
그들은 마을을 탈출한 꼬맹이를 잡으러 간 추적자들이었다.
“총에 맞은 데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상태에선 예수님도 살아나지 못할 겁니다, 토마스씨.”
“병신들.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는군.”
토마스라는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는 한심하단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약 애새끼 시체를 누가 발견이라도 하면? 그게 SFBC나 보안관이면 책임질 거야?”
“맹세코, 사람들이 오고 갈 곳이 아닙니다. 발견한다 해도, 여기에서 한창 떨어진 곳이에요. 누가 벅스킨 조와 연결해서 생각하겠어요.”
아이를 죽인 곳은 마을에서 100km나 떨어진 곳이다. 부하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귀찮아도 절벽에 내려가서 꼬맹이 시체를 끌고 왔어야 했어.”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토마스가 임무에 실패한 네 명의 부하들을 훑어봤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추적조를 이끈 부하가 허벅지를 움켜잡으며 무릎을 꿇는다.
손가락 틈으로 피가 꾸역꾸역 흐르고, 고통 속에도 두목을 도발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소리쳤다간 다음은 머리에 맞을 테니까.
“게으른 행동을 반성할 수 있도록.”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가서 꼬맹이를 탈출시킨 새끼가 누군지 색출해.”
다리를 질질 끌며 부하들이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악에 바쳐 소리쳤다.
“전부 집합해, 개자식들아!”
잠시 후.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많았다. 몰골은 하나같이 거지꼴이었다.
다리에 총을 맞은 하비는 이를 바득 갈며 마을 사람들을 노려봤다.
분노로 가득한 눈빛은 이내 한 아이에게서 멈췄다. 그리곤 다가가 머리채를 잡아 무릎을 꿇렸다.
“빌어먹을 놈들. 감히 애새끼를 마을에서 탈출시켜? 내 손으로 죽이긴 했다만, 이 일을 주도한 놈은 반드시 찾아내야겠어. 지금부터 다섯을 세 마.”
하비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마을 사람들을 훑어봤다. 숫자를 카운트하자, 사람들의 눈동자에 거친 풍랑에 요동쳤다.
“비겁한 새끼들.”
하비가 비웃음을 먹으며 리볼버 해머를 뒤도 젖히자, 백발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골드러시와 함께 10년 가까이 벅스킨 조의 광부로 살던 자였다.
그는 삶을 체념한 듯 입을 뗐다.
“내, 내가 아이를 탈출시켰소.”
“이유는?”
“......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타앙!
노인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이내 땅에 털썩 쓰러졌다. 사람들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멍한 눈만 껌뻑였다.
“도움? 이딴 버려진 마을에 누가 올 것 같아?”
이죽거리던 하비는 이미 죽은 노인에게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광기로 물든 눈만큼이나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네 놈들은 절대 이 마을을 못 벗어나! 방법이 있다면, 그건 시체가 되는 거다. 개자식들아!”
하비의 분풀이가 이어지는 동안 건물 안에선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포커 게임을 위해 카드 댁을 섞고, 위스키를 마시고, 히죽이는 대화가 오고 갔다.
마을의 지주이자 공포로 군림하는 토마스 클레모는 책상에 앉아 장부를 끄적였다.
그러다 펜 끝을 책상에 두드리며 동생 오든에게 말을 건넸다.
“밖에 상황도 알아볼 겸. 모레쯤엔 창고에 쌓인 광물을 팔아치워야겠어.”
“푸에블로에 들릴 거면, 아본데일도 갔다 올까?”
아본데일에는 지하 인간매매 창구가 있다. 마을에 있는 아이들 절반을 거기서 사 온 터라 가는 김에 들를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고개를 저었다.
“더는 애새끼들을 늘릴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당분간 꼬리 밟힐 일은 피하는 게 좋아.”
“누가 시체를 발견했을 거라고 생각해?”
“내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당분간 조심하라고 말야.”
“그럼 형 촉이 맞겠지.”
캘리포니아에서 죽을뻔한 형제들은 토마스의 동물적인 생존본능 덕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
총잡이로서 실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비상한 터라 네 형제는 전적으로 큰 형인 토마스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앞으로 반년만 버티면 된다. 지금처럼 돈을 모으면, 곧 애리조나에 제대로 된 광산 하나는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쥐어짜야 겨우 나오는 형편없는 벅스킨 조 광산보다는 낫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 먹다 남은 찌꺼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그 찌꺼기 덕분에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토마스 형제들은 이곳을 벗어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틀 뒤.
창고에 수북이 쌓인 광물이 마차로 옮겨졌다.
두 달 동안 모았지만, 금과 은은 두 주먹도 안 되고 나머지는 납, 아연으로 가득했다.
짐을 싣는 데 동원된 마을 사람들은 무장한 갱단에게 둘러싸여 다시금 광산으로 향했다.
마부와 마차를 호위하는 갱단원이 다섯.
늘 그렇듯 책임자는 클레모 형제 중 둘째인 아돈이 맡았다.
“다녀올 테니까, 마을 잘 지키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푸에블로에서 맛있는 것 좀 사와. 옥수수랑 감자는 지겹다고!”
“알았어, 인마.”
벅스킨 마을의 지주이자 맏이인 토마스는 벨트에 손가락을 끼운 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차는 마을의 유일한 출입로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벅스킨 조라고 쓰인 마을 간판 옆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초소가 있었는데, 라이플을 든 경계병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잘 다녀오세요! 올 때 여자 잊지 말고요!”
“에아리, 새끼야. 머릿속엔 온통 여자 생각밖에 없냐? 한눈팔지 말고 경계나 똑바로 해.”
“알겠습니다!”
경계병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오든 클레모는 일행들을 이끌고 협곡을 따라 목적지로 향했다.
하루를 꼬박 이동한 끝에 프레몬트 피크를 벗어나자 드넓은 황무지가 펼쳐졌다.
오든 일행은 희미하게 보이는 길을 따라 황무지를 가로질렀다.
얼마 안 가 나무로 표지판이 박혀 있었는데, 캐논 시티(Canon City)의 방향과 거리가 새겨져 있었다.
“망할 이정표는 쓰러트리면 또 세워놨네.”
이죽거리던 오든은 말에서 남북전쟁 당시 야전 장교가 쓰던 긴 검을 뽑아 이정표에 휘둘렀다.
하지만 무딘 날의 칼끝은 나무를 잘라내기는커녕, 조금 박힌 채 튕겨 나갔다.
부하들은 웃음을 참으려 다른 곳을 응시했다.
화가 난 오든은 이정표를 발로 차 쓰러트리더니, 나무판을 밟아 부러트렸다.
박살 난 모습을 보고서야 화가 풀렸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가자!”
오든은 캐논 시티를 우회해 돌아갔다.
“인구는 좆도 없으면서 시티는 무슨 시티야.”
도시 인구가 고작해야 2백 명이다.
그럼에도 시티라 이름 붙인 건, 그곳에 콜로라도 최초의 유정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장기적으로 이곳을 상업 도시로 발전시킬 계획도 반영된 이름이었다.
한때 클레모 형제들은 이곳을 낼름 집어삼키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입맛만 다시고 포기해야 했다.
캐논 시티는 다름 아닌 SFBC의 관리하에 운영되는 정유소였으니 말이다.
오든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콜로라도가 지들 거야? 광산, 석유, 땅에다 침이라도 발라놨냐고. 하여간 SFBC 새끼들은 만나면 아주 머리 가죽을 벗겨야 해. 특히 그 동양인 개새끼는 사지를 아주, 쫘악 쫘악 찢어놔야 백인 무서운 줄 알지. 안 그래?”
“왜 아니겠습니까. 동양인 밑에서 일하는 배알도 없는 새끼들도 전부 머리를 잘라야죠.”
벌집을 쑤실 용기는 없고, 캐논 시티가 SFBC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면서 오든의 화를 돋웠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열등감은 둘째치고, 근본적으로 클레모 형제들의 성향이 그러했다.
캘리포니아의 하운드 갱단이었을 때부터, 히스패닉, 인디언, 중국인들을 마구 죽였던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심심하고 따분함을 SFBC 욕으로 달래던 때.
한 남자가 비실비실한 노새 한 마리를 타고 위태롭게 다가왔다.
‘뭐야, 저건.’
오든과 부하들이 천천히 마차 속도를 줄여갔다. 꼬질꼬질한 옷에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다가오자 오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약한 놈을 보면 괴롭히고 싶은 본성이 꿈틀거렸다.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 형 토마스의 말이 떠올랐다.
- 마을 밖에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이곳이 콜로라도라는 걸 잊지 마.
SFBC가 장악한 곳. 비록 준투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을마다 처박힌 보안관들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괜히 시체를 만들어서 SFBC와 보안관들의 관심을 끌 이유가 없었다.
황무지가 허허벌판이라도 사람이 지나가는 도로는 흔적이 남아 있다.
수레바퀴와 말발굽에 걸리적거리는 돌부리들이 적기 때문에 넓은 들판을 두고도 길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오든 일행은 고까운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스쳐 지나갔다. 마차를 완전히 지나칠 쯔음엔, 남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실린 짐들을 확인했다. 광물이 가득한 걸 봐선 광산 마을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온 방향은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한 번 찔러봐?'
남자가 노새 고삐를 잡아당겨 멈춰 세웠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물었다.
“헤이, 벅스킨 조가 어디냐?”
마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춰 섰다.
무장한 자들이 말머리를 틀고, 마부도 고개를 삐죽이 내밀어 막스를 쳐다봤다.
'누구냐,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