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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6화 (6/155)

6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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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임은 본인이 돌아가고 싶어서 묻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박 차장이 제일 먼저 걱정이었다. 모유 먹여야 한다며 그렇게 좋아하던 매운 음식까지 끊은 분이 아니던가.

태평해도 너무 태평한 것이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한 주임은 본능적으로 박 차장의 행동이 과장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깨닫고 나니 박 차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 아랫입술을 자잘하게 깨물던 박 차장이 이내 싱겁게 웃었다.

“……그것도 3황자가 말을 안 해주네.”

“무슨 그런…….”

한 주임은 3황자라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꼈다.

멀쩡하게 잘살고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왔으면 확실하게 말을 하든지, 제가 왜 납치당하듯 끌려와서 처음 보는 마술사인지 나부랭인지 하는 아저씨한테 쓰레기 소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만나면 분명하게 따져야지, 그녀는 다부지게 결심했다.

머지않아 장대 같은 높이의 돌탑 앞에 선 두 여자는 하인의 도움으로 마차에서 내려 그가 안내해 준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중간 정도 높이까지 오르자 계단 중간에 조잡한 문양이 새겨진 철문이 나왔다.

한 주임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끼이, 하는 금속음이 들리며 이 이상한 곳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작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충분하지 않은 듯 어두침침한 방 가운데엔 커다란 회의용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양초 다섯 개 꽂혀 있는 촛대가 힘겹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제일 끝에 앉아 있던 이한율이 벌떡 일어나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주임님! 몸은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아, 응. 어제 내가 한율 씨한테 토했다며. 진짜 미안.”

“아니에요! 거의 안 하셨어요.”

거의 안 한 건 뭘까. 어쨌든 하긴 했나 보다. 이한율도 옛날 귀족들이 입는 것 같은 자글자글한 크라바트가 달린 상아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과하게 손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머쓱하게 웃는 그의 뒤로 김유정이 쑥 얼굴을 내밀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김유정은 벌써 이곳 사람이 된 것 같은 완벽한 마법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늘 끼고 다니던 동그란 안경에는 처음 보는 안경 줄이 매달려 있었다. 자줏빛과 붉은색, 금색 원석이 교차로 꿰어 있는 엔틱 풍의 안경 줄은 김유정과 매우 잘 어울렸다.

턱까지 올라오는 목깃의 카멜 코트에 앞코가 뾰족하게 위로 솟은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꼬마 마녀 같기도 했다.

“왜 이제 와요, 주임님. 우리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미안, 미안.”

꽤 체격이 있는 이한율이 자리로 돌아가자 이번엔 뒤에 앉아 있던 염 부장이 보였다.

저 뭐 씹은 것 같은 못마땅한 표정이 반가운 적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흔들다리 효과라는 것인가 생각했다가 급하게 부정했다. 정신 차리자.

염 부장은 운영팀 중에 혼자만 어제 사무실로 출근했던 복장 그대로 팔짱을 끼고 탐탁지 못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야, 한 주임아. 어른들을 이렇게 기다리게 할래?”

“죄송합… 어른‘들’이요?”

염 부장의 시선이 테이블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돌아갔다.

그의 까만 머리카락을 본 순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노인 뒤에서 세 번째 자리에 서 있던 남자다.

“아.”

한 주임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그대로 굳었다.

미팅하러 간 자리에 나와 있는 상대 회사 오너에게 인사하듯 형식적인 미소까지 짓는 자신을 알아챈 탓이었다.

‘……미쳤나 봐. 명함도 내밀지, 왜.’

그녀는 따지려던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습관에 치를 떨며 자학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은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다시금 자신을 꿰뚫고 있었다.

남자는 공손하게 인사한 한 주임에 까딱 고개만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는 무심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붉은 곱슬머리의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대신 소개했다.

“레비탄의 황제 헤바투스 아비옐 오웬 3세의 세 번째 핏줄이신 야닉 리버스 황자님이십니다!”

몹시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부자의 이름을 열거한 남자는 제 역할이 끝났다는 듯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도로 물러나 뒷짐을 섰다.

한 주임은 야닉을 지그시 쳐다봤다.

황제의 아들이건 뭐건 간에 사람 무안하게 세워 놓고 떡하니 팔짱을 끼고 앉은 모습이 약간 좀… 재수가 없었다.

그녀는 제국이나 황제 같은 건 세계사 책에서만 접했던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온 현대인이었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 이상한 세계가 피부에 당장 와 닿을 리 없다.

갑자기 누군가 ‘컷!’을 외치면 이 연예인 같은 남자에게 코디들이 달려들어 롱패딩을 걸쳐 주고 세팅된 머리와 얼굴을 지분거릴 것만 같았다.

정면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위에서 사선으로 내려다보니 짧은 머리 뒤로 피어스를 붙여 놓은 것 같은 기다란 꽁지머리도 보였다.

너른 등으로 이어지는 말총 같은 머리를 따라 시선이 자연스레 내려갔다.

딱딱한 제복 차림의 어제와는 달리 상당히 편안한, 아니 그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차림새다. 언뜻 인도의 전통의상 같아 보이기도 하는 심플한 재단의 상의가 바닥까지 닿을 듯 길게 늘어져 있었다.

상의는 명치 아래까지 시원하게 앞트임 되어 있어서 어두운 촛불에 비친 금갈색 가슴팍이 숨 쉴 때마다 작게 부풀어 오르내렸다.

한 주임은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남자의 흉곽을 보면서 과장하자면 자신보다 약간 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의 단단한 팔에는 두꺼운 링 형태의 금팔찌들이 끼워져 있었고, 현실감 없도록 완벽한 각도의 옆모습을 드러낸 귓바퀴에도 손가락 마디만 한 금붙이가 착 붙어 있었다.

황자는 요즘 아이돌처럼 많은 장신구를 달고 있었으나 그림처럼 잘 어울려서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주임님, 이쪽이요.”

“어, 응.”

그녀는 서둘러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황자를 지나쳐 빈자리에 앉았다. 이한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계속 넋을 잃고 쳐다봤을 것이다.

누구부터 이렇게 앉기 시작한 건지, 여기까지 와서도 익숙한 자리 배치가 웃겨서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대표님이 앉던 상석에는 판타지 세계 황자님이 있었고 그 옆엔 호리호리하게 마른 남자가 수행비서처럼 서 있다.

염 부장, 박 차장, 공 대리, 제 자리, 이한율, 김유정까지. 모두 당연하게 제 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 모습이 장소만 바뀐 회사 회의실처럼도 보였다.

자리가 정돈되자 염 부장이 사회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없는 동안 지금까지 들었던 우리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리뷰해 줄 테니 잘 듣고. 이 사원, 브리핑 시작해!”

“네.”

이한율이 제 앞에 놓인 누런 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할 것처럼 앞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 주임은 들고 왔던 에코백에서 수첩을 꺼내 빈 장을 펼치고는 수첩에 달려 있던 볼펜을 딸각, 눌렀다.

동료들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모습에 김유정은 속으로 생각했다.

‘회사야, 뭐야. 미친X들 아니야, 이거.’

“흠, 흠. 레비탄 제국의 역사가 기록된 문헌에 따르면, 먼 옛날 위대한 정복자의 손에 제국이 세워진 후 고대의 마법사들이 이방인들을 소환했다고 합니다. 소환 방법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은 전쟁 중에 대부분 소실되어 긴 시간 동안 잊혔다가, 오웬 1세의 유물 복원정책 도중 일부가 발견됩니다. 이것을 토대로 황실 마법사들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150여 년 전부터 다시 이방인들을 소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희가 그 증거고요.”

이한율은 나름대로 이름 있는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나와 첫 직장에 입사한 28살의 신입사원이었다.

그의 학력이면 좀 더 큰 회사로도 갈 수 있었을 법한데, 가맹점이 백 개도 안 되는 이런 작은 프랜차이즈 회사에 있는 게 좀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 큰 수술을 받았다던 그는 무척이나 온화하고 예의 바른 성격이었으나 꼼꼼함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무슨 일을 시키면 온종일 그것만 붙잡고 있는, 약간은 답답한 부하 직원이었다.

가져오는 결과물들은 흠잡을 곳 없이 완벽에 가까웠지만 급한 일은 절대로 맡길 수가 없었고, 중소기업 특성상 업무 대부분은 기한이 매우 촉박하게 밀려들어 모든 감당은 한 주임의 몫이라고 봐야 했다.

“발굴된 문헌에는 제국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이방인들이 역할을 마치면 어떤 특수한 물건을 통해 소환된 시점으로 원래 세계에 돌아갔다고 하는데, 물건의 정체가 기록된 부분은 여전히 유실된 상태입니다.”

이한율이 여기까지 말한 뒤 잠시 숨을 골랐다.

제국은 근대에 이르러 이방인들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했다.

현재로선 돌려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웬의 핏줄들은 소환의식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방인들의 사정은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과거와 달리 근대의 황실에서 이방인들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고대인들은 소환된 이방인들을 신의 사자로 여기며 극진하게 대우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무책임한 소환의식을 자행했던 오웬 황정에서는 돌아갈 수 없는 이방인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 표면적인 대접만 해 줄 뿐이었다.

소환 첫날 염 부장의 목에 들이밀어진 창대들이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오웬 3세는 이미 충분히 부유해진 나라에서 소환한 이들을 유용하게 써먹을 방법까지 찾아낸 상태였다.

바로 이방인들을 북방으로 보내서 마물과 변방 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제국을 보호함과 동시에, 3황자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쥐 죽은 듯 살기를 바랐던 3황자가 북부로 간 다음부터 지역이 부흥했으니, 수상한 말이 나돌지 않도록 모든 것을 이방인의 공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저희 운영팀은 기초 훈련을 마친 뒤 약 보름 뒤에 수도를 떠나 레비탄의 최북단, 어… 그러니까 ‘치발룬’ 산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양피지를 힐끔거리며 브리핑을 마친 이한율이 자리로 돌아가 앉자 마탑의 일일 회의실엔 금방 고요함이 감돌았다.

“취발론.”

야닉이 침묵을 깨고 잘못 발음한 지명을 정정했다.

부단히 수첩을 채워 나가던 한 주임의 손이 저절로 멈추었다. 처음 들어 보는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운 저음이었다.

배우뿐만 아니라 성우를 해도 될 것 같다고 은근히 감탄하고 있을 때, 공 대리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곧바로 귀를 더럽혔다.

“황자님, 발음을 주의해 주십쇼. 잘못하면 욕같이 들리겠어요.”

뭐가 저렇게 혼자 신나는지 낄낄거리며 오두방정을 떠는 공 대리를 김유정은 대놓고 극혐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야닉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중되는 시선을 향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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