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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11화 (11/155)

11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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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레비탄 제국인지, 모건 제국인지. 아, 모건은 비 전하를 말합니다.”

“파워가, 아니, 세력이 강한 가문인가 봐요?”

박 차장이 닫힌 문을 슬쩍 확인하고는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시즈에게 물었다.

그는 마치 비밀스러운 얘기라도 하는 양 소곤거렸지만, 매우 조심성 없이 큰 목소리였다.

“전쟁 자금을 대는 거대 상단 가문이라면 설명이 될까요? 원래는 작위도 없던 미천한 장사치 따위였는데 말이에요. 전쟁을 도운 대가로 상인의 딸을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으로 만들었죠.”

“전쟁이요?”

그녀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가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뭐, 아직까진 남쪽 약소국들만 괴롭히고 계시지만요. 아, 야닉. 여긴 쥐새끼 없지?”

“다행히도.”

야닉은 익숙한 듯 포도주를 한 입 마시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마음이 놓인 시즈는 황태자는 장가를 간 게 아니라 팔려 갔다는 둥, 황녀들은 콩고물 따위를 주워 먹으려 시녀 짓을 자처한다는 등의 위험한 언사를 가감 없이 뱉어 내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유정이 끝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근데 4, 5, 6황자님들은 어디 계시나요? 황녀님들은 1부터 6까지 전부 있잖아요.”

한 주임은 사실 저도 약간 궁금하긴 했어도 초면에 실례인지라 조용히 있었는데 김유정이 선뜻 화제를 꺼내 주자 귀를 쫑긋 세웠다.

시즈가 눈썹을 긁적이던 손으로 천장 샹들리에를 가리켰다.

“…하늘나라?”

“예상은 했지만…….”

김유정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한 주임이 그녀에게만 보이도록 입 모양으로 ‘왜?’ 하고 물었다.

대답은 잠자코 있던 염 부장이 대신했다.

“공주는 멀쩡한데 왕자들만 죽어 나간 거면 뻔하지, 뭐. 왜, 우리도 수양대군도 있었고.”

“오! 맞네요. 내가 왕이 될 얼굴인가?”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접시에 코 박듯 열정적으로 식사를 하던 공 대리가 유명한 영화 대사를 따라 하자 한 주임은 그제야 고갤 끄덕였다.

‘후계 다툼이었구나. 그런데 이름들이 왜 전부 다르지?’

조금 전 김유정이 한 질문에 약간 용기를 얻어 본인도 은근슬쩍 손을 들었다.

“저기 근데, 황제 폐하의 아들들이신데 성이 모두 다르신 것 같던데요….”

보통 이런 곳은 이름이 앞에 있고 성이 뒤에 있는데, 황자들의 풀네임이 전부 다른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이번엔 야닉이 응답해 주었다.

“레비탄의 지도자들은 아주 먼 시절부터 모친과 부친의 성을 모두 자식에게 물려주었거든. 이름 바로 뒤에는 어머니의 성, 맨 끝은 아버지의 성으로. 한데 우리 증조부이신 오웬 1세께서는 제위에 오를 사내에게만 오웬의 이름을 허했지. 그래서 황제가 못 된 떨거지들은 모친 가문의 성만 쓸 수 있는 거야. 웃기는 전통이지.”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 입에 넣었다.

“야닉 말대로 ‘오베라’는 우리 어머님의 성이고, 녀석은 ‘리버스’ 가문 출신이죠. 우리 폐하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부인을 참 많이도 얻으셨거든요.”

시즈가 보충하듯 덧붙이자 한 주임이 아아.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녀의 열정적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즈는 굳이 안 해도 될 퀴즈까지 추가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 두 번째 황자인 내가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이유는?”

공 대리가 번쩍 손을 들었다.

“부인이 많아서!”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례한 답변 같아 한 주임이 슬쩍 눈을 흘겼으나, 시즈는 괘념치 않은 듯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웃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해서도 어느 정도는 맞겠지. 하지만 땡.”

땡이라는 말이 승부욕을 자극했는지 갑자기 여기저기서 손이 튀어 올랐다.

야닉은 제 이복형을 한심한 눈으로 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거위 찜을 이든 앞으로 옮겨서 어서 먹으라는 고갯짓을 했다.

시즈는 쭉쭉 뻗어 나오는 열성들이 무색하게도 자기 입으로 불쑥 정답을 읊었다.

“머지않아 오웬 4세가 되실 우리 황태자 전하의 이름이 체이스 ‘오베라’ 오웬이시거든.”

황태자와 시즈가 친형제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친형제가 아닌 야닉 리버스가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지만, 차마 거기까지 물어보는 눈치 없는 이는 없었다.

자리에 미묘한 적막이 감돌자 시즈가 리넨으로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있는 동안은 내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 부디 즐거운 이계 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야닉 이 녀석이 겉으론 유들유들해도 꽤 집요한 구석이 있거든요. 아크만에 가시면 고생 좀 할 겁니다.”

유쾌하게 험담을 마친 시즈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공 대리가 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선 기대에 차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혹시 이 나라는 일부다처제인가요?”

“황족에 한해서. 그대는 안 돼.”

이번에도 야닉이 대신 대답했다. 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한 어조와 눈빛이었다.

실망이 뚝뚝 떨어지는 공 대리의 표정을 본 시즈가 익살스러운 얼굴로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저 녀석은 고지식해서 부인은 하나면 족하답니다. 그래서 더는 장가를 안 가죠!”

그의 말에 김유정이 뭉크의 절규 같은 얼굴로 꽥 소리를 내질렀다.

“야닉 황자님 결혼했어요?”

* * *

이상한 나라에서의 세 번째 날이 밝았다.

한 주임은 약간의 한기와 방 안에 스며든 타다 남은 장작 냄새를 맡으며 과하게 푹신한 침대 위에서 부스스 눈을 떴다.

‘몇 시지…….’

그러다가 배시시 웃음이 났다. 몇 시인지 알아서 뭐 할 건가 하는 황당한 생각이었다.

평소에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에 깨서 눈 뜨자마자 생각하는 건데,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있으니 습관이라는 것이 제법 무서운 모양이었다.

방 안이 어느 정도 환한 것을 보니 7시는 넘었겠다 예상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오래간만에 개운하게 잤는지 몸이 가뿐했다.

“주임님!”

테이블에 놓인 물을 마시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산발 머리에 잠옷 차림의 김유정이 뛰어 들어왔다.

“응?”

“나 일어나자마자 너무 개운하고 환해서 무슨 생각한 줄 알아요? 와씨, 망했다. 회사 지각이다. 왜 알람 못 들었지. 무려 3연타.”

한 주임이 소리 내서 웃었다. 나도야, 하고 손가락으로 엉킨 김유정의 머리카락을 대충 빗어 내리는데 그녀의 어깨 너머로 박 차장도 보였다.

“유정 씨…. 나는 내가 아직 복직 안 한 줄 알았잖아.”

워크숍 한번 없던 회사라 그런지 일어나자마자 사무실 사람들의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을 보는 건 나름 신선했다.

어제저녁은 셋이서 한 주임의 방 침대에서 도란거리다가 하녀가 들어와서 주의를 줄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주로 듣는 처지였지만.

친구가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하던 도중, 아니나 다를까 어제 엄한 얼굴을 했던 하녀가 또 들어왔다.

“아침을 드시고 바로 연무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오늘부터 3황자님이 지도를 해 주실 겁니다. 다들 방으로 돌아가세요.”

문학 소설에 나오는 기숙 사감처럼 엄포를 놓는 듯한 말투에 세 여자는 목을 움츠리고 얌전히 따랐다.

하녀들이 가져다준 물로 간단히 씻고 광목 원단의 셔츠와 암갈색 긴 바지를 입은 뒤 세 여자는 별궁 1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먼저 내려와 아침을 먹고 있던 7황자와 마주쳤다.

황족 전용 식사 홀은 따로 있고 이곳은 방문객들이나 안내받는 작은 식당이었기에 여자들이 의아한 얼굴로 다가갔다.

“이든 황자님, 왜 여기서 식사를 하세요?”

김유정이 반갑게 다가가자 스튜를 먹고 있던 이든이 나무토막처럼 빳빳하게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는 어제 김유정이 제 팔에 몸을 찰싹 붙여 왔던 것을 떠올리며 금방 얼굴을 홧홧하게 불태웠다.

“저, 저도 사자님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싶습니다. 야닉 형님께 아직 허락은 못 받았지만, 식사는 훈련병의 입장으로 동기들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어, 황자님!”

뒤에서 이한율이 반갑게 소리치자 이든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율 님!”

어제의 살벌했던 만찬이 끝나고 별궁으로 돌아갈 때 둘이 붙어 가나 했더니, 죽이 잘 맞았던 모양이었다.

천사 같은 이든과 순한 대형견의 조합에 박 차장의 얼굴이 절로 흐뭇해졌다.

“뭐야, 한율 씨 막내 탈출한 거야?”

이한율의 등에 가려졌던 공 대리 머리가 쑥 나오고 이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염 부장까지 모두 모였다.

운영팀은 이든의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서 약간 맹숭한 완두콩 스튜를 먹었다.

어제의 화려한 식탁과 비교도 못 하게 초라한 수준이었으나 야닉이 가볍게 먹으라 당부한 것이라기에 다들 불만 없이 오목한 접시를 비워 냈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때마침 그들을 데리러 온 철갑을 두른 기사의 뒤를 따라나섰다.

별궁의 뒤뜰로 나가는 샛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연무장은 축구장 크기만 한 드넓은 운동장이었다.

연무장 주변에는 황실기사단의 숙소와 식당, 무기고와 마차 보관소, 그리고 으리으리한 마구간까지 일렬로 주욱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의 작은 마을처럼 보일 정도였다.

연무장 한편에서는 견습 기사들을 지도하는 우람한 덩치의 기사단장이 매섭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위압적이기까지 한 모습에 하하 호호 들어서던 일행은 일순 입을 꾹 다물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산책하러 나갔다가 공 대리를 피해 샛길로 들어섰던 한 주임이 금방 별궁으로 돌아온 이유도 바로 이 광경을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이든.”

입구에서 운영팀을 기다리고 있던 야닉의 눈매가 막냇동생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사납게 변했다.

송곳 같은 시선에 찬바람 속에도 이든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용기를 내리라 어젯밤부터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는 바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성대를 꾹꾹 눌렀다.

“저, 저도 힘을 길러 야닉 형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몇 달만 지나면 저도 곧 열여섯이니 이분들과 함께 요새로 가서….”

“하랑, 별궁으로 데려가.”

“형님!”

야닉이 이든 대신 하랑을 노려보자 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더니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긁적이며 이든의 팔을 잡아끌었다.

“황자님, 갑시다. 주인님이 저러실 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든은 하랑의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언성을 높였다.

“저기 있는 견습 기사 중엔 제 또래도 많고 심지어 저보다 어린 이도 있습니다! 왜 저는 안 됩니까? 시즈 형님도 그렇고 왜 저를 아무것도 못 하는 천치로 만드십니까!”

질질 끌려가면서도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멀리서 목검을 휘두르던 어린 기사들이 힐끔거렸다.

이든은 저만치 멀어질 때까지 악악대다가 신경질적으로 하랑의 손을 뿌리치고는 제 발로 걸어 나갔다. 그 사이에서 운영팀은 새우등이 터질까 마른침만 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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