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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16화 (16/155)

16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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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은 그제부터 한 주임의 수련을 하랑에게 맡기고는 북부로 돌아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멀고 험한 여정이라 호위를 맡은 황실 기사단을 챙기느라 바쁜 것은 알겠다만, 멀뚱히 놀고 있는 기사단장을 놔두고 종자인 자신을 콕 집어 그녀를 챙기라 명한 것이 하랑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마력이 없는 이방인이 심심할까 봐 뭐라도 배우게 하려는 뜻인 줄 알고 대강 장단만 맞춰 줄 심산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여자에게는 검사의 재능이 넘쳐났다.

민첩함은 기본에다 맞닿은 검 또한 제법 묵직함에 놀란 것도 잠시, 이방인은 동체 시력이 타고난 듯 좋았다.

하랑이 그녀를 빨리 지치게 하려고 속도를 높여 공격했을 때에도 열에 일고여덟은 막아냈다.

어떤 경우에든 검 끝에서 시선이 벗어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놀라운 집중력에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고작 열흘 정도 배웠을 뿐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타고난 부분은 과감함이었는데 하랑이 조금만 틈을 보이면 곧바로 깊숙하게 파고들어 목 앞에 날을 들이민 적도 있었다. 비슷한 속도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목엔 목검에 맞아 시퍼런 멍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단점도 확연히 드러났다.

한 주임의 가장 큰 장점인 끈기는 그녀의 몸을 반나절 만에 너덜거리게 했고, 과감함은 인내 부족으로 쉽게 성급함을 드러내 자신을 위험 속에 빠뜨렸다.

그녀는 꼭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한계까지 몰아세우고 있었다.

중간중간 고삐를 잡아 주지 않으면 목검이든 그녀의 팔다리든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부러지고 말리라, 하랑은 궁리했다.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그렇게 따지면 그녀의 일행인 박 차장도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 데다 용병이나 기사들 대다수 역시 마나를 제대로 운용하지도 못해서 몸으로 때우는 이들이었다.

하랑이 암만 설명을 해도 한 주임은 어딘가 늘 다급해 보였다.

“제가 힘들어서 그럽니다. 저도 휴식이 필요하다고요.”

야닉에게 전수받은 그녀를 말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하랑은 종종 써먹었다.

그가 일부러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팔을 떨구자 그제야 한 주임이 목검을 내려놓았다.

“아, 죄송해요.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그녀가 황급히 가제보 안쪽 소파로 손짓하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잔에 물을 가득 따라 하랑에게 내밀었다.

하랑은 더 꺼질 데도 없는 한숨을 길게 늘어뜨리며 한 주임의 어깨를 눌러 의자에 앉혔다.

“셀 수도 없이 말씀드렸지만요, 저는 주임님이 모셔야 하는 황족이 아니라 한낱 종자일 뿐이고, 이 푹신한 의자에서 물을 대령 받으셔야 하는 분은 제가 아니라 주임님이십니다.”

넌더리가 난다는 말투에 한 주임은 민망하게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들고 있던 물만 호록 마셨다.

그녀를 앉혀 놓는 데 성공한 하랑은 이번에는 운영팀을 구경 중인 기사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실례합니다, 나리들. 잠시만 비켜 주세요!”

그는 구시렁대는 귀족 자제들을 꾸역꾸역 밀어내며 포라킨 단장에게 달려갔다.

“한 주임님 좀 봐주세요. 단장님.”

“하아. 또 어디 한두 군데 망가뜨리셨나 보네요. 잠시 휴식합니다.”

포라킨이 익숙한 듯 가제보로 발걸음을 돌리자 이한율이 얼른 따라붙었다.

“주임님이 많이 다치셨어요?”

“손목을 삐신 것 같은데요.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하랑이 떨떠름하게 대꾸하자 이한율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의 뛰는 모양새로 가제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던 포라킨이 대놓고 싫은 모양새로 혀를 찼다.

“훈련에 방해되니까 본성에 있는 신관에게 데려가서 치료를 받으시라니까요.”

“거기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버티다가 저녁에 치료를 받겠다는 분인데, 단장님이 사정 좀 봐주세요. 황자님 말고 저런 옹고집은 처음이란 말이에요, 저도.”

두 사람은 서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이 신경전을 주고받았으나 늘 그랬듯 포라킨이 먼저 포기하고 말았다.

“통증이 있는 부위를 보여 주세요.”

슬그머니 들어 올린 오른손으로 빨갛게 부어올라 통통해진 손목이 드러났다.

포라킨이 그 위로 지팡이를 가까이 대고 신성 마법을 걸자 동그란 녹색 빛이 부어오른 부분에 스며들면서 퉁퉁 부었던 부위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벌써 여러 번 받아 봤음에도 통증이 사라지는 기이한 느낌에 한 주임이 손목을 빙빙 돌렸다.

“매번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죄송하시면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몸을 혹사하지 마세요. 그만 가시죠, 한율 님.”

사람 민망하게 하는 무뚝뚝한 말투에도 한 주임은 포라킨이 매번 치료 후에도 꼼꼼하게 다른 부위는 괜찮은지 신경 써서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고마운 사람에게 생떼를 부리는 건 다름 아닌 이한율이었다.

“손목 말고 다른 곳까지 광범위 회복을 걸어 주시면 안 됩니까?”

이한율이 졸졸 따라가며 귀찮게 굴자 포라킨은 노랗게 뜬 안색을 찌푸렸다.

“저는 한율 님처럼 현자 수준의 마력 양을 가지고 있지도 않거니와, 멀쩡한 부위에 마법을 반복적으로 가하면 오히려 신체의 자생능력이 떨어진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정 그렇게 한 주임님을 병든 닭처럼 만들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해 드리고요.”

이한율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회복마법을 배워서 직접 치료를 해 주면 좋았겠지만, 치료 능력은 신성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사원에 들어가 꼬박 10년을 충실하게 사제 생활을 해야 겨우 익힐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원에서 더는 제국 출신의 신도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대사원의 고위 신관들은 레비탄에 속해 있는 제국민의 입장임에도 신성력이라는 막강한 힘을 결코 황실의 입맛대로 휘두르게 두지 않았다.

그곳은 정치적 독립기관이자 중립국에 가까웠다.

제국이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일으키면 대사원은 무모한 살생을 비판하며 신관을 파견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고, 그에 오웬 3세는 강경책으로 대주교 임명권을 악용하여 황실 소속 마법사였던 갈록을 떡하니 총수 자리에 앉혀 버렸다.

대사원에서는 즉각적으로 반발하여 주교 출신이 아닌 이가 대주교에 임명된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으나 무시에 가까운 거절이 돌아왔다.

결국에는 제국 출신의 마법사를 신도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보복성 선포까지 한 상태였다.

황실 마법사들이 소환한 이방인은 당연히 회복마법을 배울 수가 없었다.

황실과 교단의 기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기에 제국이 치유 술사를 늘릴 방법이라고는 타국에서 입교한 마법사들을 비싼 값에 데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자연스럽게 치료 술사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높아져만 갔고, 헤르미네 포라킨 역시 제국이 귀하게 모셔 왔던 외국인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고향은 레비탄의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 델피온 왕국이었다.

“한율 님이 다른 나라로 망명한 다음에 사원에 들어가 신력을 쌓아서 한 주임님을 치료해 주시면 되겠네요. 물론 그전에 한 주임님이 스스로 몸을 돌보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겠지만요.”

그녀는 하루가 멀다고 작은 부상들을 달고 사는 한 주임이 달갑지 않았으나 아크만에 있는 이방인들을 포함해서 그녀만큼 노력하는 사람 또한 본 적이 없었다.

억울하게 끌려와서 보이는 모든 사람의 머리채를 잡고 저주를 퍼부어도 이해할 수 있는데, 마력까지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 주임은 묵묵히 검을 들었다.

사실은 약간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한 주임이 마력 없이도 살 방법을 찾기 위해 포라킨은 매일 저녁 마탑과 황실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야닉이 시키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내키는 일이었다.

포라킨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싫지 않았다.

“3일 뒤면 마물이 우글거리는 곳을 지나야 합니다. 장난들 그만 치시고 집중하세요.”

자리를 비운 사이에 불꽃과 물방울을 서로 부딪치며 누가 이기네 따위의 장난을 치고 있는 공 대리와 김유정에게 포라킨이 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 * *

어느덧 황궁을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하녀들의 발소리에 한 주임은 나른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날이 좀 더 추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익숙한 오한에 곧 날씨 때문이 아니라 며칠간 마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닉은 하랑에게 검술 수업을 맡기고선 3일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귀환 준비로 바쁘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는데도 애초에 황자가 직접 해야 할 일이 그렇게도 많은 건가 싶어서 약간 심통이 났다.

저 필요할 때는 남의 손을 덥석덥석 잘도 잡았으면서 필요 없을 때는 관심을 뚝 끊은 듯한 태도가 아닌가? 그녀는 쓴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주임은 저녁에 미리 떠 둔 물로 씻은 뒤 기사들이 훈련용으로 착용하는 뻣뻣한 가죽 보호대를 뒤집어쓰듯 입었다. 어깨가 짓눌릴 만큼 무거웠지만 며칠간 내내 입고 다닌 덕에 그럭저럭 움직일 만은 했다.

검대와 작은 주머니가 달린 파우치 벨트를 허리에 착용하고 쇼트 부츠까지 신었을 때 똑똑, 경쾌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녀들이었으면 의무적으로 노크를 한 뒤 대답하기도 전에 벌컥벌컥 문을 열어젖혔을 텐데, 허락을 구하는 듯한 침묵이 길게 이어지자 한 주임이 의아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황자님?”

뜻밖에도 문 앞에는 야닉이 서 있었다.

그는 훈련복을 입은 한 주임을 약간 놀란 얼굴로 보다가 이내 아, 하고는 품에 들고 있던 까맣고 긴 물체를 내밀었다.

“이건…….”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주는 포상.”

한 주임은 손에 들린 롱소드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아 검집에서 살짝 꺼냈다.

크로스가드와 폼멜이 금으로 장식된 날렵하고 아름다운 검이었다. 내내 연습했던 목검과 비슷한 길이에 조금 더 가벼웠고 목검보다 손잡이가 가늘어 그립감도 훨씬 좋았다.

그녀의 체격에 꼭 맞는 크기의 검을 준비한 야닉은 한 주임의 들뜬 얼굴에 만족감을 느끼다가 손을 내밀었다.

“며칠 동안 마력을 주지 못했는데, 괜찮았어?”

그새 또 어색해하며 주춤거리는 손을 야닉이 먼저 다가가 잡았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양과 속도를 느끼던 그가 미간을 좁혔다.

“하나도 안 받고 있었군. 이한율에게라도 받고 있지 그랬어. 힘들었을 텐데.”

“3일 정도는 괜찮아요. 약간 추위만 느낀 정도라….”

“그럼 다행이긴 한데.”

복도를 지나가던 하녀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한 주임이 당황한 나머지 잡고 있던 손을 당겨 방 안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런데 문까지 닫으니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이는 것 같다. 다시 열어야 하나 엉거주춤 방황하고 있는데, 순간 그가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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