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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22화 (22/155)

22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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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직 실전까지 할 정도는 아니야. 섣불리 나서서 다른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마.”

야닉은 감정 없이 단호했다.

걱정이 아니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한 주임은 그의 거절에 부끄러움이 밀려들면서 동시에 분한 마음이 울컥 치솟았다. 그러나 고집을 부릴 만큼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까의 습격에 마차 안에서 검을 뽑아 들 때 덜덜 떨렸던 손을 그녀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요새에 가면 내가 뼈 빠지게 훈련시켜 줄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마.”

스캄이 위로하듯 던진 농담에 웃지도 못하고 겨우 고개만 끄덕이곤 타오르는 모닥불만 망연히 쳐다봤다.

근처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녀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달려가는 공 대리를 따라 마지못해 천막으로 돌아가 수습기사가 건네준 정체불명의 고기를 조금 먹었다.

테두리가 까맣게 탄 고기는 소금간만 되어 있어 질기고, 비렸다.

네 사람이 빠듯하게 누운 천막 내부엔 싸늘한 산 공기가 고여 있었다.

바닥에 두껍게 깔린 모포와 야닉에게 틈틈이 받은 마력 덕에 춥지는 않았지만 한 주임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얼어 죽겠다고 꿍얼거리는 김유정에게 포라킨이 마나를 순환시키라 잔소리하는 것을 들으며 그녀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내일은 비가 올 것 같네.”

박 차장이 어렴풋하게 눅눅한 흙냄새를 맡으며 몸을 뒤척였다.

천막 밖으로 번을 서는 기사들의 철그럭 거리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다.

* * *

해도 뜨지 않은 새벽, 귀환대는 서둘러 짐을 꾸려 행군을 시작했다. 고블린과 오우거의 활동지에서 밤을 보내지 않으려면 오늘 안에 숲을 벗어나야 했다.

중간중간 마차 밖에서 둔탁하게 무엇인가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음이나 알 수 없는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 주임을 비롯한 여자들은 일부러 커튼을 드리우고 어두운 마차 안에서 먹다 남은 소시지를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징그러운 것을 보고 난 뒤면 식욕이 급격하게 떨어져 제대로 식사를 못 한 것을 본 야닉이 단단히 주의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배를 채우고 상상하기도 싫은 소음들이 점차 귀에 익자 그녀들은 흔들리는 마차에 적응을 마친 듯 서로 머리를 기대고 졸고 있었다.

불안할 만큼 평화롭게 달리던 마차는 정오가 지날 무렵 천천히 멈춰 섰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려 선잠이 들었던 한 주임이 커튼을 열었다. 마차 아래로 포라킨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열린 문 사이로 작게 소곤거렸다.

“다른 분들이 옮겨 타야 하니 안쪽으로 들어가 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염 부장과 공 대리가 디딤판을 밟고 올라왔다.

공 대리는 김유정에게 반갑게 뭐라고 떠들려다가 포라킨이 쉿! 하고 날카롭게 째려보는 바람에 황급히 입을 닫았다.

포라킨은 운영팀을 한자리에 모은 후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차 문을 닫았다.

하랑은 어느샌가 스캄이 타고 있는 거대한 적마 위에 올라서서 그의 어깨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고 또 조용하게 산을 가로질렀다. 말발굽에 박힌 금속 편자는 잔디밭을 밟으며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고, 마차 바퀴는 풀을 스치는 소리만 내면서 묵직하게 굴러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말 위에 서 있던 하랑이 해를 가린 뿌연 구름을 보다가 수상한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내렸다.

나무 사이를 유유히 지나고 있는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그의 시야에 포착된 순간이었다.

바람 소리에 가까운 휘파람을 짧게 두 번 불자 선두에서 앞장서던 야닉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오우거를 발견한 스캄이 오른손을 들더니 손가락 네 개를 펼쳐 전방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야인 무리 중 네 사람이 앞으로 나와 나무 사이로 빠르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신속하고도 정확한 수신호였다.

“우어어.”

산 전체가 울리는 듯한 거인의 단말마 뒤에 쿵! 담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파동이 전해지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파드득 날아올랐다.

하랑은 용병단 넷이 오우거를 넘어뜨린 것을 재빨리 확인하고 서둘러 주위를 살펴 고블린들을 찾았다. 오우거를 따라오던 고블린들은 근처 수풀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며 섣불리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시 원위치로 복귀한 트라야누스 단원 네 명의 칼에는 모두 오우거의 피가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야닉은 그들이 오우거 한 마리를 말끔하게 처리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행렬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불행히도 다음에 등장한 오우거에게는 침묵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근처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고 어슬렁거리던 놈들이 오우거가 쓰러지는 소리에 쿵, 쿵, 쿵 단단한 발바닥으로 땅을 구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과 동시에 가지 사이사이로 원숭이 같은 것들이 날아다니듯 나무를 옮겨 타며 함께 가까워졌다. 머리 위로 마른 잎사귀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자, 기사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행렬 뒤쪽에 있던 젊은 수습기사였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오우거가 무려 세 마리나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수습기사가 이내 쇳소리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도열을 무시하고 거칠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오, 오, 오우거다아아!”

“젠장, 입 다물어!”

그는 스캄이 말릴 틈도 없이 자신을 보호해 줄 정예기사들을 향해 말을 몰았다.

고삐가 마구 흔들리는 탓에 주인처럼 휘청거리던 말이 다른 말들을 치고 나가자 놀란 말들이 푸르릉거리며 앞발질을 해 댔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수풀 사이에서 녹색 괴물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땅과 하늘 두 군데서 날아들었다. 나무를 타고 있던 놈들이 몸을 날려 등에 메고 있던 나무 방망이를 공중에서 내리쳤다.

방망이가 커다란 카이트 실드에 세게 부딪히고 그것을 막은 기사가 방패를 내려 검을 찔러 넣자 고블린의 피가 기사의 투구 위로 흩뿌려졌다.

“후방에 오우거 세 마리 옵니다!”

“마차를 보호해라! 스캄, 뒤를 맡아!”

야닉의 명령에 수습기사들이 운영팀이 탄 마차를 빙 둘러싸고 방패를 치켜들어 방어대열을 갖췄다.

스캄이 등에서 어른 키만 한 거대한 칼을 한 손으로 뽑아 들더니 자신을 따르던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최초의 거인 위미르의 후손들이여, 저 빌어먹을 오우거들을 모조리 으깨 버리자!”

그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고블린 한 마리를 뾰족한 토캡이 달린 쇠 신발로 걷어차고 거칠게 말을 몰아 달리자 뒤에 타고 있던 하랑 역시 바닥으로 뛰어 내려 전장을 파고들었다.

트라야누스 용병단이 모두 오우거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황실 기사단은 고블린 무리들과 각개전투를 시작했다.

마차로 밀려드는 고블린들은 수습기사들이 자세를 낮춘 뒤 방패 사이로 창을 찔러 넣어 막고 있었다.

“우측에 두 마리 더 옵니다!”

갑옷에 온통 고블린의 피가 튀어 있는 기사 하나가 소리쳤다.

야닉은 낮게 욕설을 뱉으며 마차 쪽으로 말머리를 틀었다. 나중에 온 오우거 두 마리는 온몸에 판금 갑옷을 두르고 있는 기사들을 무시하고 인간 냄새가 많이 나는 곳으로 성난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야닉이 고블린들을 베어 내며 달려오는 속도보다 오우거들이 마차에 닿은 속도가 더 빨랐다.

오우거 한 마리가 마차 안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를 향해 입맛을 다시며 주먹을 내려치는 순간, 방패로 막으려던 기사들의 머리 위로 투명한 막이 출렁거리며 주먹을 튕겨 냈다.

보이지 않는 막에 튕겨 나간 오우거는 영문을 몰라 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렸다.

포라킨이 마탑 마법사 세 명과 함께 마차에 실드를 치고 있었다. 남은 마법사 한 명은 그들에게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불길로 위협하며 막아냈다.

이 정도 강도의 실드를 유지하는 것은 상급 마법사 네 명이서도 엄청난 마력을 소모해야 했기에 그들은 오우거가 뒤로 물러나면 강도를 줄였다가 가까이 오면 다시 높이는 것을 반복 중이었다.

포라킨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한 줄기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보니, 실드에 합류하고 한율 님은 저희를 보호해 주세요!”

오우거 두 마리가 쿵쾅거리며 두 팔로 연신 실드를 내리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방어 범위를 넓혀야 했다.

에보니라고 불리던 마법사가 급히 손을 들어 실드에 마력을 쏟기 시작했다.

아직 실드를 배우지 못한 이한율은 이들에게 달려드는 고블린들의 머리에 불꽃 덩어리를 연속으로 던졌고 강한 화력에 까맣게 탄 고블린들의 머리가 몸통과 분리되어 바닥을 굴렀다.

야닉은 검에 바람을 두르고 고블린들을 네다섯씩 베다가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폈다.

용병단은 덩치가 큰 성체 오우거 세 마리를 상대하느라 후방으로 모두 빠져 있었고 고블린의 수는 너무 많았다.

아직까진 우세하긴 하지만 공격당한 말이 놀라 기사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고블린 대여섯 마리가 달려들어 갑옷 틈을 물어뜯고 뾰족한 것으로 마구 찔러 대다가 다른 기사들의 검에 나가떨어졌다.

고블린들은 풀 속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황실 기사단 앞에서 힘을 써서 목격자를 만들기엔 아직 때가 아니었다.

“하, 한 마리 더 옵니다!”

실드 안에 있던 기사 하나가 방패 사이로 멀리 보이는 오우거의 투실투실한 머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마에서부터 턱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흉터를 가진 오우거는 다른 개체에 비해 몸집이 더 크고 흉포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커튼을 친 마차 안의 운영팀 5명은 아까부터 커다란 둔기로 마차를 내리치는 듯한 타격음과 광포한 무리 떼가 키에엑 하고 비명 같은 것을 내지르는 소리를 숨죽여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괴물이 아닌 사람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을 때 박 차장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염 부장의 허벅지를 꾹 눌렀다.

“부장님.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그때 마차 바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흉터를 가진 오우거가 마차 앞에 달라붙어 있는 두 마리를 밀쳐 내고 있었다.

놈은 오래간만에 맡는 대량의 인간 냄새에 잔뜩 흥분해서는 커다란 코를 연신 킁킁거리며 귀찮게 앞을 막고 있는 동족을 가차 없이 때려눕혔다.

떨어져 나갔던 오우거들도 몸을 일으켜서 커다란 팔을 휘두르더니 곧 자기들끼리 엉겨 붙었다.

“한율 님! 이쪽이요! 염 부장님도 나오세요!”

실드가 막아내지 못할 크기의 대형 오우거가 나타나자 포라킨이 다급하게 이한율을 불렀다.

야닉은 지척에서 검을 들고 고블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나서서 처리한다면 상황은 금방 정리될 테지만 그럴 수 있는 사정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포라킨은 입술을 꽉 물었다.

이한율이 흉터를 가진 오우거를 향해 손을 뻗어 화염을 모았다가 조준해서 그대로 마력을 쏟아부었다.

불꽃은 정확하게 오우거의 얼굴을 강타했고 오우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로 주춤거리자 포라킨은 그대로 실드를 풀었다. 마나의 한계치 가까이 쓴 탓에 포라킨과 마법사 네 명이 일제히 비틀거렸다.

그 순간 뒷걸음질 치던 오우거가 괴성을 내지르며 마차를 향해 성난 주먹을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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