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23화 (23/155)

23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작품입니다. 저자와 발행처의 허락 없이 본 저작물로 무단전재,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 시 민사 및 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안 돼!”

실드가 풀려있던 마차의 높이 솟은 천장이 아래로 반쯤 주저앉으면서 주위를 둘러싼 방패를 든 기사들이 앞으로 맥없이 고꾸라졌다.

“다들 마차에서 나와!”

야닉이 매섭게 소리치며 헤바투스를 몰았다.

철갑 하네스를 두른 군마의 흉갑과 두꺼운 앞다리에 고블린들이 채이며 날아가고 마차 앞까지 온 그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목격자를 남기지 않겠다고 이방인들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할 순 없었다. 그는 이를 짓씹으며 오우거들을 향해 저벅저벅 걸었다.

운영팀은 마차에서 튕겨 나오듯 뛰쳐나와 혼돈 속에서 두리번거렸다.

김유정이 지척에 있는 오우거 세 마리와 바글바글한 녹색 괴물들을 보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댔고, 그러다 눈앞에 구세주처럼 보이는 야닉에게 전부 달려가 그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 달려드는 녹색 생명체에 한 주임이 반사적으로 롱소드를 휘둘렀다. 동시에 뜨뜻한 액체가 얼굴에 투득 튀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내가 지금 뭘 벤 거지?’

이한율이 쏜 불꽃을 정통으로 맞았던 오우거는 비틀거리던 것을 멈추고 눈에 핏대를 세우며 화가 난 듯 괴성을 질러댔다.

죽이지 못함은 물론 치명타까지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한율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몸을 굳혔다.

오우거는 고블린들의 피가 잔뜩 튄 이한율을 그대로 지나쳐서 운영팀이 있는 곳으로 성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나, 갑자기 한쪽 발이 움직이지 않아 몸을 들썩거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목에 굵은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출처를 따라 눈을 돌리자 다이어울프 가죽을 두르고 있는 야인 두 명이 단단하게 갈고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귀찮은 야인족을 떼버리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돌았다.

오우거는 떨어져 나가는 머리로 아직 서 있는 제 몸뚱이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대로 바닥에 쿵 떨어졌다.

거수급 마물의 목을 한 방에 날린 스캄이 클레이모어(양손 검)에 튄 피를 바닥에 흩뿌리며 투덜거렸다.

“여섯 마리라니, 운도 드럽게 없구만.”

그가 늦지 않게 돌아와 처리해 준 덕에 야닉은 들어 올렸던 손을 홀연히 내렸다.

오우거들이 모두 쓰러진 것을 본 고블린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돌연 숲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기사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뒤를 쫓으려다 상관의 목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도망치는 놈들은 쫓지 마라! 대열을 정비해!”

한 주임은 로브 소맷자락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 난잡하게 널브러진 짙은 녹색의 괴생물체는 짐승 같은 뾰족한 귀와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었고, 기이하게 벌어져 있는 입 안에는 뭉툭하고 누런 이빨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허리춤까지 오는 땅딸막한 키에 짧은 다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팔.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만져 보려다가 야닉이 손을 획 잡아채는 바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만지지 마.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 아인종 마물의 피에는 독성이 있거든.”

그러고 보니 얼굴에 튀었던 곳이 약간 화끈거리는 것도 같다. 그가 한 주임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작게 물방울을 만들어 볼에 갖다 대 주었다.

“바로 닦아 내서 다행이군. 흉은 안 지겠어.”

“가, 감사합니다.”

야닉은 살짝 울긋불긋해진 그녀의 볼에 조금 더 물을 대고 있다가 손을 떼고 마차를 살피러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기사들은 여분의 모포로 갑옷과 검에 튄 피를 열심히 닦아 내고 있었다.

다친 기사들은 한쪽으로 옮겨 눕혔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상자가 속출한 상황이었다.

“이방인분들은 여기 좀 도와주세요!”

부상자를 살피던 마법사 중 한 명이 운영팀에게 소리쳤다.

이한율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염 부장과 김유정이 지옥 같은 풍경의 고블린 사체들을 피해 움찔거리며 다가갔다.

공 대리와 박 차장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박 차장은 눈앞의 처참한 광경이 견디기 힘든 듯 기어이 먹었던 것을 게워 내고 있었다.

“상처가 커지지 않도록 피를 먼저 씻어 내야 해요. 물을 만들어서 부상자들의 몸을 닦아주세요.”

마법사는 침착하게 염 부장과 김유정에게 가죽 장갑을 건네주며 지시했다.

다치지 않은 기사들이 부지런히 부상병의 몸에서 갑옷을 벗겨 내며 살피자 한 주임도 곧바로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신음하고 있는 기사에게 다가가 턱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반쯤 벗겨져 있던 투구를 위로 당겨 올렸다.

귀 바로 아래턱에 고블린에게 물어뜯긴 흔적이 있었다.

턱 근육이 하얗게 드러날 정도였지만 징그럽다고 느낄 틈은 없었다. 눈앞의 기사는 찢어진 살이 고통스러워 이를 꽉 물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두어 번의 깊은 심호흡 뒤에 여분의 장갑을 받아 왔다.

“치료는 제가 할 테니 주임님은 이분들의 갑옷을 닦아주세요.”

포라킨이 다가와 기사를 살피면서 한편에 쌓인 부상병들의 갑옷을 가리켰다.

내심 안도한 한 주임은 잽싸게 모포를 들고 와 그리브(정강이받이)와 콰이스(허벅지 가리개)를 열심히 닦았다. 대부분 말 위에서 싸운 터라 다리 쪽 장비들이 제일 더러웠고 그것들을 전부 닦아 낸 뒤에는 다른 기사들을 도와 말에게 튄 피를 씻어 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거스 경이 심각한 얼굴로 야닉에게 다가왔다.

“못 걸을 정도로 다친 이는 세 명 정도고 말들도 여럿 다쳤습니다. 회복마법을 쓸 줄 아는 이는 포라킨 단장 한 명뿐이라 그녀의 마력이 회복될 때까진 걸어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보고에 야닉은 골치 아픈 듯 뒷덜미를 문질렀다.

“아직 오우거의 서식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어. 부상자들의 피 냄새가 다른 오우거들을 불러들일 거야.”

“저기요…….”

근처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주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오우거라는 괴물들은 냄새로 사람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두 사람이 그녀에게 의아한 시선을 고정하자 한 주임은 주위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냄새를 가릴 수 있다면 우릴 못 찾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냄새를 가리다뇨?”

거스 경이 못 미더운 얼굴로 뚱하게 답하는데 야닉의 얼굴에는 반대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한 주임, 당신은 천재야.”

* * *

트라야누스 용병단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숲 어귀를 감시하는 동안, 기사단은 천막으로 사용하던 타포린을 로브 크기로 조각내기 시작했다.

네모나게 자른 타포린 가운데에 머리가 들어갈 수 있는 칼집을 낸 뒤, 고블린 사체를 가져와 마구 문질렀다.

“이러면 오우거들이 우리 냄새를 못 맡는다고?”

“나도 잘 몰라, 이방인이 낸 의견이래.”

기사들은 반신반의하며 천막으로 만든 엉성한 로브 위에 마물의 피를 덧발랐다.

말들에게 씌울 것까지 만들어 낸 뒤에는 어느 정도 마력을 회복한 포라킨이 상처를 입은 말부터 회복마법을 걸어 주었다. 버리고 가면 일행을 쫓아올 수 있는 데다 고통스러워 울기라도 하면 냄새가 아니라 소리로 추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말들을 말끔하게 치료하고는 출혈이 심한 기사들 일부만 응급처치한 후 가쁜 숨을 골랐다.

치료가 끝나자 사람들은 피 칠갑이 된 타포린 로브를 뒤집어썼다.

코를 찌르는 역한 비린내에 인상을 구길지언정 그것을 벗어던지는 이는 없었다. 조금 전에 있던 소란으로 어기적거리며 다가온 오우거 한 마리가 그들의 코앞을 그냥 지나쳐갔기 때문이었다.

오우거는 귀환대를 발견했지만 진동하는 고블린 냄새에 허탕을 친 듯 나무들을 주먹으로 몇 번 치다가 콧김을 뿜으며 멀어져 갔다.

한 주임은 가까운 곳에서 본 거대한 생물에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것은 기이함 그 자체였다.

높게 솟아난 고목의 가지 끝까지 다다르던 키와 억센 털이 듬성듬성 박힌 축축하고 울긋불긋한 피부. 바위같이 크고 둥근 코, 핏물이 든 거무튀튀한 입이 연신 씰룩거렸다.

가슴과 사타구니에는 인간의 갑옷이나 가죽옷을 종잇장처럼 펴서 나무줄기 따위로 이어 붙인 것을 엉성하게 두르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은 자동차 매연같이 흩어지며 그가 밟았던 자리는 공룡이 지나간 듯 커다란 발자국 모양을 남겼다.

일행들은 최대한 숨을 죽이고 오우거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아주 천천히 걸었다. 후들거리던 다리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안정을 되찾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차가운 무언가가 한 주임의 이마에 톡 떨어져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방수천을 두른 어깨와 등에도 툭툭 빗방울이 닿기 시작하자 귀환대는 침묵 속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걸음이 빨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조급해지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진흙 길을 내딛는 쇠 신발들은 점차 질척거리는 소음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질 무렵에는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핏물이 기다랗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고블린의 피가 씻겨 내리고 있다.

불길한 예감은 기대를 저버리고 익숙한 간격의 발소리가 쿵, 쿵, 쿵. 점점 가까워졌다. 오우거가 희미하게 풍겨 오기 시작하는 인간 냄새를 추적해 오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이들의 서식지를 벗어난다. 노을에 비친 강물이 보석처럼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순간이었다.

“…….”

야닉이 제일 먼저 헤바투스의 고삐를 잡고 얇은 얼음 막을 깨며 강으로 진입하자 행군은 대열을 무시하고 첨벙거리며 앞다투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소리에 오우거가 나무를 밀어뜨리며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서 건너!”

누군가 내지른 고함에 망설이던 사람들도 허리께까지 오는 수위의 강을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주임은 뼛속까지 시린 물에 움츠릴 틈도 없이 박 차장의 손을 잡고 빳빳하게 굳은 그녀를 반대편 기슭까지 이끌었다.

마지막 무리가 강을 건너려던 찰나, 코앞까지 쫓아온 오우거가 손을 뻗어 강에 발을 담그던 말 한 마리의 목을 움켜잡고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말을 이끌던 기사는 혼비백산해서 고삐를 내던지고 물속으로 허우적거리며 헤엄쳤다.

귀환대는 반대편 강기슭에 꼼짝없이 서서 울부짖던 말의 머리가 오우거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허망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흐윽, 흑…….”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에 김유정이 억눌렀던 울음을 터뜨리자 공 대리가 그녀의 머리를 가슴께로 끌어당겨 안았다.

그들은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로 서서 뒷다리를 꿈틀거리는 군마를 바라보며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어느새 뒤따라온 고블린들이 강가로 나와 금방이라도 물로 뛰어들 것처럼 형형하게 눈을 번뜩이며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