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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27화 (27/155)

27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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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교육시켜 놨는데?”

스캄이 하랑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리자 그가 뿌듯한 얼굴을 숨기지 않으며 대꾸했다.

“그랑드콜을 이만큼 키워 준 분이 주인님이라는 걸 여기 사람들이 모를 리가 있겠어요? 제가 오는 길에 신신당부해 놨으니 다들 달려들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 거죠.”

하랑은 무심히 지나가는 척하던 상인이 저에게 부자연스럽게 윙크를 날리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귀환대가 ‘늑대의 밤’이라는 간판이 달린 커다란 3층짜리 목조여관 앞에 멈추어 섰을 때 안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곧장 뛰쳐나왔다.

그는 두꺼운 양모 블리오를 입고 앞코가 뾰족한 천 신발을 신은 차림새로 환하게 웃으며 이들을 맞이했다.

“예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쉬시지요! 방마다 욕조와 뜨거운 물을 올리겠습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여관의 사용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기사들의 말을 데리고 뒤에 있는 널찍한 마구간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식사를 먼저 하고 싶으신 분들은 맞은편에 있는 콥스의 가게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술과 음식들이 잔뜩 준비되었을 겁니다!”

빠른 어조로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상가를 가리키며 빙긋 웃는 그에게 거스 경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이만한 여관에 식당이 없나?”

“아유, 그런 짓을 했다간 상업 길드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여관에서는 잠만! 식사는 식당에서! 조합의 가장 첫 번째 규칙이지요. 원하신다면 ‘용병 스튜’ 정도는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귀하신 분들 입맛에는 맞지 않으실 겁니다.”

스캄은 온갖 재료란 재료는 다 때려 넣고 한 솥 가득 끓여 먹는 영원히 줄어들지 않는 스튜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오늘 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벌꿀주에 고기를 뜯어야 했다.

하랑이 여관주인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덧붙였다.

“북부지역은 상인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상업조항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레비탄의 북부는 로엘 왕국과 인접해서 외국 상인들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 말을 들은 거스 경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로엘의 거대 상단들이 레비탄이 소홀 시 하는 북부 땅에서 일방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었으리라…. 꽤 똑똑한 정책이 아니던가.

몰튼 백작이 버리다시피 한 영지가 이토록 발전했다니, 그는 ‘북부의 왕’이라고까지 칭송받는 로기아 변경백을 만나면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고 싶어졌다.

북부를 제외한 레비탄의 대부분 지역은 황태자비 가문인 뤼시크 상단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거대한 자금으로 제국 황실까지 삼켜 버렸지.

그는 텁텁한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밥부터 먹어야겠수다. 얼었다 녹은 축축한 빵은 아주 신물이 나.”

스캄이 말을 던지고 용병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자 몇몇 기사들이 격하게 동의하며 뒤따르듯 발을 옮겼다.

야닉이 이들을 보다가 여관주인에게 은화를 몇 개 건넸다.

“마차를 수리하고 싶은데. 솜씨 좋은 자가 있나?”

“그럼요, 그럼요! 드워프 장인의 사사를 한 움리족 직인이 상시 대기하고 있지요. 사병들을 붙여서 금장식이 분실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주인은 지붕이 폭삭 주저앉고 바퀴가 반쯤 빠져 있는 황실 마차를 보며 여관 앞을 지키고 있는 우람한 남자들에게 재빨리 손짓했다.

그들은 마차와 말을 연결하는 기다란 샤프트를 기세 좋게 들어 올리고는 요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차를 끌고 어디론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여관주인은 무척이나 급한 성격이었다.

“저희 늑대의 밤은 최대 100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만, 일행분들이 전부 귀족이시니 큰방을 원하는 분들은 그랑드콜에서 두 번째로 큰 밀레 여관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귀환대는 사원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일부 기사들을 제외하고 적당히 인원을 나누어 여관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려 있는 곳이라면 마음대로 방을 골라잡아 사용할 수 있는지라 신난 운영팀이 피곤한 것도 잊고 거침없이 층계를 올랐다.

여관주인은 3층에 있는 방 중에 제일 크고 호화로운 곳으로 야닉을 손수 안내하고는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저기… 황자님, 수도에서 온 샌님들 주머니를 좀 털어도 되겠습니까?”

금팔찌 형태의 구속구를 푸르던 야닉이 한숨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바가지는 적당히 해, 롬. 이번 기회에 조합 회비를 더 올려 줄까?”

롬이라 불리던 남자가 긴 소매를 펄럭거리며 드세게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길드장님 앞에서 그만 헛소리를 했네요. 그럼 쉬십시오! 바로 목욕물을 올리겠습니다!”

* * *

방 안으로 여관 사용인들이 분주하게 나무 욕조를 들이고 작은 벽난로에 열심히 풀무질을 했다.

타월을 가져온 직원은 세탁할 것을 뚜껑 달린 바구니에 넣어 문 앞에 내놓으라고 말한 뒤에 밖으로 나갔다.

한 주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옷가지를 모두 벗어 뜨끈한 물속으로 들어갔다. 박 차장 말대로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이곳의 목욕은 적어도 그녀의 원룸보다는 훨씬 좋았다.

몸을 구석구석 닦고 일어나 깨끗한 물로 헹구어 낸 뒤 가방에서 보송한 속옷과 네글리제를 입었다가 식사를 안 한 것을 깨닫고 외출용 블리오를 꺼냈다.

무릎까지 오는 일자형이라 허리끈을 묶으니 기장이 조금 짧아지고 살짝 추웠지만, 기왕 마을에 들른 김에 가지고 있던 옷을 모두 세탁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벽난로 앞에 작은 스툴을 끌어다 앉아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꾹꾹 눌러 짰다.

허기가 밀려들자 저도 모르게 손이 급해진다.

‘…말려 달라고 할까?’

문득 지난밤 폭포에서 바람으로 금방 뽀송뽀송하게 말려 주던 커다란 손이 유혹적으로 생각났다.

자기도 필요할 때 날 이용했으니 머리 말려 주는 것쯤이야 그에 비하면 아주 아주 사소한 부탁이 아닌가? 그런 마음이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는 바구니에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쌓아 담고 두꺼운 로브를 두른 채 문을 열었다.

야닉이 있는 방을 어떻게 찾을지 잠시 고민하던 중에 옆방에서 김유정이 비슷하게 생긴 빨래 바구니를 들고나오는 것이 보였다.

“주임님!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어… 그래.”

한 주임은 머리 말리는 것을 허무하게 포기하고 음울하게 고갤 끄덕였다.

싸늘한 바람이 젖은 머리칼을 훑는 느낌에 로브 깃을 꽉 여미며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콥스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조금 열려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확 풍기더니, 널찍한 식당 내부가 드러났다.

“주임님, 여기요!”

한 주임을 발견한 이한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 대리는 얼른 다른 테이블에서 빈 의자를 끌고 와 제 옆자리를 툭툭 치며 김유정에게 손짓했다. 김유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자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하랑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오늘은 실컷 먹고 푹 주무세요! 모레부턴 무려 5일이나 노숙을 해야 하니까요. 운이 없으면 더 걸릴 테고요!”

그의 말에 몇몇 기사들이 좋은 분위기에 초 치지 말라는 듯 야유를 보냈다.

그랑드콜에서 이틀이나 쉰다는 이야기였다.

취발론 산맥까지 거의 하루 가까이 쉬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평야를 달리려면 말들의 충분한 휴식과 넉넉한 식량이 필요했다. 마차의 보수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 떨어진 귀환대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도와 북부지역의 중간지점에 있는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휴식 거점이었다.

야닉은 옆자리에 앉은 거스 경에게 꼼꼼하게 지시를 내렸다.

“말편자를 전부 새것으로 교체하고 여물과 마른 장작을 두 수레 정도는 더 사야 해. 육포와 치즈도 좀 더 준비하는 게 좋겠어. 아, 더 추워질 테니 화로도 다섯 개 추가하고.”

“알겠습니다. 모자란 천막도 보충하죠.”

거스 경이 딱딱하게 대꾸하고는 준비하라는 듯 다른 기사에게 눈짓하자 기사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양피지 조각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야닉은 고개를 돌려 시끌벅적한 식당 한가운데에 있는 한 주임을 봤다가 그 옆에 앉은 이한율을 발견했다.

이한율은 어딘가 경계하는 눈으로 야닉을 보더니 한 주임에게 시선을 돌리며 과시하듯 친근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주임님, 머리가 덜 말랐어요.”

“응?”

그가 대답도 듣지 않고 한 주임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며 바람을 쐬기 시작하자 야닉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옹졸한 녀석.’

이한율의 도발은 박 차장이 손을 쳐내며 한 주임의 의자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얼마 못 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보는 눈도 많은데 재인 씨 민망하게 뭐 하는 거야, 정말.”

김유정이 입을 삐죽 내밀고 거들었다.

“맞아요. 눈치 좀 챙겨요. 저기 황자님도 계시는데 한율 씨가 그러면 주임님이 꼭 양다리라도 걸치는 것 같잖아요.”

“어차피 황자와는 가짜 연인행세인데 뭐 어떻습니까.”

얌전히 물러날 줄 알았던 이한율이 반박하자 운영팀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순둥이가 갑자기 왜 저런담? 이한율이 한 주임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정작 당사자 빼고 모르는 사람이 없건만, 그가 이렇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두 사람이 같은 막사를 쓴 이후로 어지간히 쫄리긴 했나 보지. 김유정은 속으로 비죽였다.

김유정은 황자의 매끈하게 잘생긴 얼굴과 이한율의 훈훈한 얼굴,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 대리의 몽타주를 비교했다.

‘나는 왜 꼭 걸려도 이런 놈만….’

공 대리는 눈치도 없이 그녀의 앞에 숯불에 구운 양고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거 맛있어, 얼른 먹어 봐.”

김유정은 바싹 구워진 갈빗대를 들어 마치 용병들처럼 거칠게 물어뜯었다.

한 주임은 박 차장이 머리를 말려 주는 내내 얌전히 앉아 있으면서도 묘한 테이블 분위기에 눈치를 살폈다.

이한율이 갑작스럽게 머리를 만졌을 때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야닉이 봤을까? 아니, 내가 그런 걸 왜 신경 쓰는 거지.

그녀는 부정하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거의 다 말랐으니까 가만히 있어, 재인 씨.”

“앗, 넵.”

“근데 재인 씨 무슨 린스 같은 거 챙겨 왔어? 같은 비누로 감는데 혼자 왜 이렇게 찰랑거리는 건데?”

박 차장이 손끝에서 사르륵거리며 부드럽게 흩날리는 고동색의 머리를 매만지며 묻자 김유정이 대신 대답했다.

“주임님 염색도 하신 적 없을걸요? 천연 갈색 머리잖아요. 뿌염하시는 거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러네. 재인 씨 성격에 파마도 안 해 봤을 테고. 나는 애 낳고 머리털 다 빠졌는데, 이 숱이 부럽다. 나 좀만 주라.”

박 차장이 제 곱슬머리를 들이밀며 장난치자 옆 테이블에 있던 포라킨은 뻣뻣하고 마구 뒤엉킨 지푸라기 같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운영팀이 양고기와 치즈가 듬뿍 올라간 고기 파이, 당근과 병아리콩이 든 채소스튜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입구를 코르크로 막은 술병 하나가 돌연 쿵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스캄이 한 주임을 향해 조막만 한 술잔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북부에 왔으니 벌꿀주를 먹어 봐야지! 오늘은 안 진다. 각오 단단히 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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