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30화 (30/155)

30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작품입니다. 저자와 발행처의 허락 없이 본 저작물로 무단전재,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 시 민사 및 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놈은 생긴 것처럼 아주 빠르고 민첩한 데다 아무리 오래 달려도 지치는 법이 없어.”

한 주임은 암기하듯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없자 고르칸이 머뭇거리다가 다음 말을 가리켰다.

“이 갈색 말은… 그, 혈통이 아주 오래된 사막에서 건너온 놈인데, 눈 위에 네모난 무늬가 특징이고…….”

그가 더 이상 생각이 안 난다는 듯 곧장 다른 말을 가리켰다.

검고 부슬거리는 갈기가 앞다리까지 내려온 딱 봐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종류였다.

“이거는 귀족 양반들이 행차하고 싶을 때나 타는 놈인데… 이런 게 왜 여기 있지…?”

설명하면서도 의문을 가지던 그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마지막 말을 향해 걸어갔다.

“자, 요놈은… 빌어먹을, 여관에 무슨 말 종류가 이렇게 많아!”

고르칸이 갑자기 버럭 성을 내자 한 주임과 티보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무슨 말 경매장도 아니고, 나 참. 아무튼 간에 요 얼룩덜룩한 놈은 생긴 건 좀 못생겼어도 주인한테 충성을 다하는 순하디순한 녀석이오.”

엉덩이에 그려진 얼룩말 같은 무늬를 가리키며 그가 드디어 끝났다는 듯 개운하게 말을 마쳤다.

한 주임은 잠깐 빌려 타는 것인데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다가 마지막 말을 골랐다.

갈기도 없고 꼬리도 형편없이 짧은, 멋지다고 할 수는 없을 법한 투박한 말이었으나 그녀를 향해 짧은 귀를 쫑긋거리며 코를 씰룩대는 것이 자못 사랑스러웠다.

마구간지기가 말의 콧잔등을 쓸어 주면서 착한 놈이라고 웃으며 안장을 가져다 올려 주었다.

그녀는 티보와 말 박사 고르칸의 도움을 받아 등자에 발을 걸고 훌쩍 올라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말의 촉감을 느끼며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안녕. 잘 부탁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는데,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푸르릉거리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다. 그녀는 놀란 얼굴을 하다가 금방 활짝 웃었다.

“이 녀석도 신입이 마음에 드는가 본데.”

티보가 킬킬대며 고삐를 잡고 이끌었다.

그녀는 마구간 앞에서 기본적인 평보와 속보를 배운 뒤,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엔 마을 한 바퀴를 달리는 구보까지 끝마쳤다.

엄청나게 빠른 습득에 두 야인이 입을 떡 벌렸다.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들을 보고 한 주임은 의연함을 가장했지만, 실은 엉덩이와 허벅지가 불타는 듯 얼얼한 것을 억지로 버텨 내고 있던 참이었다.

다시 마구간으로 돌아왔을 때 귀환대 말들의 편자를 교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는 야닉 일행도 있었다.

“주임님, 벌써 말도 탈 줄 아세요?”

하랑이 쏜살같이 달려와 주위를 빙빙 돌며 눈을 반짝이자 한 주임은 끙 소리를 내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좀 전에 배웠어요. 생각보다 재밌네요.”

그녀가 얌전히 협조해 준 얼룩말의 콧등을 쓸어내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입 이거 아주 물건이던데? 이렇게 빨리 배울 줄은 몰랐어, 갑자기 내달릴 때는 따라가기도 벅찼다고.”

고르칸이 자신의 말에서 안장을 내리며 혀를 내두르자 스캄이 두 부하를 향해 경고하듯 발을 구르며 다가왔다.

“대장 허락도 안 받고 누구 마음대로 가르쳐? 그치만 잘했어.”

엄한 척하더니만 킬킬거리면서 웃자 야닉이 얼씨구? 하는 얼굴로 부하들을 돌아봤다. 그러다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쓰다듬고 있는 한 주임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마구간지기가 말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을 아쉬운 듯 지켜보다가 어기적거리면서 돌아오고 있었다.

“포라킨에게 치료받도록 해. 많이 아파 보이는군.”

“네…….”

한 주임은 괜찮다고 하려다가 이 상태면 내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에서 내리니 하체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몽둥이찜질을 당한 것처럼 너덜거려 제대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눈치 빠른 야닉이 그녀를 부축해 여관 안으로 데려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못 걷겠으면 안아 줄까?”

“아니에요! 걸을 수 있어요!”

한 주임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여관 안을 보며 펄쩍 뛰었다. 그는 짐짓 아쉬운 얼굴로 어깨와 팔을 감싸듯 잡고 계단을 올랐다.

3층에 다다른 두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려던 여관주인 롬과 일꾼들을 맞닥뜨렸다. 그가 야닉을 보자마자 후다닥 다가와 굽신거렸다.

“문을 모두 수리해 놨습니다! 이젠 오우거가 와서 밀어도 끄떡없을 겁니다.”

야닉은 서슴잖게 과장하는 그를 못 미더운 눈으로 보다가 한 주임의 방 앞으로 걸어갔다.

낡았던 문고리 대신 쇠로 만든 최신식 잠금장치가 단단하게 부착된 것을 확인한 그가 문득 롬을 향해 홀연히 입매를 끌어올렸다.

남자도 홀릴 만큼 근사하기 짝이 없는 미소건만, 장사치의 촉은 이상하리만치 불안하게 작동했다.

“마구간에 있는 그대의 수집품 중에 말이야.”

“예?”

“원주민들이 타던 괜찮은 말이 있더군.”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다가 자신이 가진 말 가운데 얼룩이 있는 밀림의 말을 떠올렸다. 난데없이 그 말은 왜?

“어젯밤 불미스러운 일의 보답으로 그 녀석을 받아 가야겠어. 그 정도는 줄 수 있겠지?”

롬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곳에서 말이 얼마나 비싼 줄 알면서 다짜고짜 내놓으라니, 암만 그래도 너무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당황한 표정을 즐기던 야닉이 피식 웃으며 보충했다.

“모자란 돈은 그대가 말했던 놈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든지. 아, 그리고 두 명분의 식사도 내 방으로 올려 주고.”

그제야 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야닉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수도에서 온 기사들은 다음 날 숙박비를 적어도 세 배 이상은 더 낼 예정이었다.

야닉은 롬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다가 한 주임을 제 방에 데려가 침대 위로 눌러 앉혔다.

“좀 늦긴 했지만 점심은 여기서 같이 하지. 지금 상태론 식당에 가기도 무리일 테니.”

한 주임은 욱신거리는 다리를 매만지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쓰던 근육들이 단단히 놀랐는지 빳빳하게 굳어 걷기도 어려웠고 오후가 훌쩍 넘어 배도 고팠다.

조금 뒤 여관 사용인들이 나무쟁반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잠두콩 스튜와 둥그런 호밀 빵을 가지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각각 침대와 의자에 앉아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긋한 오후를 보냈다.

저녁에는 외출했던 일행들이 모두 돌아오고 포라킨은 퉁퉁 부어오른 한 주임의 하체를 보고 경악을 금치 않으며 치료마법을 걸어 주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출발해야 했기에 그들은 모두 일찌감치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 주임은 꽤 오랜 시간 목욕을 즐긴 뒤 단단하게 걸어 잠근 문을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 속을 파고들었다.

* * *

광야를 내지르는 귀환대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초목들이 점차 줄어들고 저 멀리 흐릿한 안개에 둘러싸인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풍경이 황무지로 변하더니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이윽고 빼꼼 솟아 있던 봉우리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진 장대한 능선을 드러냈다. 취발론 산맥이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땅과 하늘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전방에 검푸른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았다면 동서남북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순간, 유리를 문지르는 것 같은 찢어지는 괴성이 메아리처럼 먼 곳에서 울려 퍼졌다.

한 주임은 영화 속에서나 들어 봄직한 괴조 소리에 뻐근한 하반신도 잊고 긴장감에 휩싸여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 가면 그리핀의 서식지가 나오니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고, 내일 전투준비를 한 뒤 진입한다.”

야닉이 명령을 내리자 귀환대는 근처에 있는 메마른 잡초와 바위가 있는 곳에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운영팀과 마법사들이 기다랗게 놓인 수통에 물을 채우자 열심히 질주했던 말들이 허겁지겁 물을 마셔댔다. 수습기사들은 여물까지 풍성하게 깔아 준 다음, 불을 피워 천막을 치고 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한 주임은 야닉이 선물해 준 말이 열심히 건초를 우물거리는 것을 보며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듣자 하니 그런 거점에서 말을 사려면 거의 집 한 채 값을 내야 할 정도로 비싸다던데, 한 푼도 내지 않고 말을 가져온 그의 수완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퀴버.”

자그마한 소리로 불렀는데도 똑똑한 녀석이 제 이름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건지 크게 콧바람을 뿜어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웃으며 이마를 쓱쓱 문질러 주었다.

야영지는 자못 활기찬 분위기였다.

마을에서 쉬는 동안 쌓인 피로를 해소한 듯 남자들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박 차장만 그들을 벌레 보듯 했다.

“대낮부터 아주 난리도 아니더만.”

그녀는 심지어 가게에서 나오는 황실 기사와 눈까지 마주쳤던 광경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잠자리를 정리하던 한 주임만 알아듣지 못한 채 모포 위에 늘어지듯 엎드려 누웠다.

내일은 그리핀이라고 하는 위험한 마수의 서식지를 지날 예정이라 그녀는 마차를 탈 예정이었다. 야닉에게 받은 마력은 아직 좀 남아서 내일까지는 무리 없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하루 마차에서 보내고, 저녁에 마력 보충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운 뒤 그녀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