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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31화 (31/155)

31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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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와는 달리 그리핀은 상공에서 성난 울음소리만 내지르며 다가오지 말라는 위협만 할 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섣불리 접근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 주임은 먼 하늘에서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리는 괴상하게 생긴 독수리 몇 마리를 보고 얼른 마차 커튼을 내렸다. 세상에 사자의 하반신을 매달고 있는 독수리라니, 아무리 봐도 적응하기 힘든 비주얼이었다.

“그리핀이 야만인 냄새를 기피한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거스 경이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확인하듯 묻자 조용히 달리고 있던 야닉이 비뚜름히 웃었다.

“정확히는 용병들을 피하고 있지. 자신의 둥지를 습격해 오는 종족인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리핀의 둥지에는 황금이 가득하거든.”

황금이라는 말에 거스의 눈이 커다래졌다가 언뜻 흑심을 내비쳤다.

“그럼 가는 길에 저희가 둥지를 털면….”

“둥지 사냥을 나설 땐 보통 백 명 내외로 토벌대를 꾸리는데, 그만한 인원이 막상 금을 나누면 얼마 되지도 않을걸. 수지가 맞질 않아.”

혹했던 마음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거스 경은 한시바삐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속도를 높여 나갔다.

메마른 목초들이 솟아난 땅으로 진입하고 머지않아 산의 초입으로 향하는 협곡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잠시 멈춰 말을 쉬게 한 다음 신속하게 점심을 먹었다.

취발론 산의 입구는 보통의 나무보다 두 배는 더 굵어 보이는 새까만 거목들이 위협적으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말라죽은 것 같은 잎사귀들을 매단 가지들이 가시덤불처럼 얽혀 해를 가렸고 나무 기둥 허리엔 희뿌연 안개가 걸렸다. 한 주임은 스치는 바람 속에서 스산한 물안개 냄새를 맡았다.

산은 대형마차가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었고, 한겨울에 이곳까지 와서 짐만 되는 마차를 훔쳐 갈 무모한 자들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한곳에 세워 두고 포라킨이 바닥에 불로 표식을 해 두었다.

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았건만 어느새 산에서 내려온 안개로 뒤덮여 마차 두 대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김유정이 겁에 질린 얼굴로 앞 사람에게 바짝 붙어 섰다.

숲은 이상하리만치 적막했고 축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태양이 가장 높게 뜬 정오가 무색할 만큼 으스스한 느낌에 운영팀뿐만 아니라 기사들도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에 육포와 포도주를 배급받고 각자의 말을 끌며 빼곡한 침엽수 사이를 가로질렀다.

“다른 사람과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지 말고 수시로 앞뒤 사람과 소통하며 천천히 건넌다. 다들 명심해. 일행과 떨어지면 수색은 포기한다. 낙오자를 찾으려다 전멸하는 무리가 부지기수인 혼돈의 숲이야. 절대로 대열을 벗어나면 안 돼.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도 무시해.”

야닉은 굳은 얼굴로 몇 번이나 강조하며 운영팀을 행렬의 앞쪽으로 이동시켰다.

가장 길을 잃기 쉬운 이들이 바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이방인들이었다. 어젯밤 야영할 때 그가 산의 위험성에 대해 꽤 오랫동안 주의를 시킨 덕에 다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상태였지만, 실종자가 매년 발생하는 악명 높은 곳인 만큼 긴장을 감출 순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귀환대는 숲으로 계속, 계속해서 들어갔다.

「조금 더 가까이 와.」

“…….”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에 한 주임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때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들어 보니 그때 그 목소리는 꿈이 아니었다.

분명하게 그녀를 부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가 널 도와줄 수 있어.」

‘어떻게?’

속으로 중얼거린 물음에 목소리가 돌연 화답을 해 왔다.

「너는 불완전한 소환을 당했어.」

「우리의 마나를 나누어 줄게. 원래의 몫만큼 아주 많이.」

한 주임은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김유정이 가볍게 부딪히자 곧장 야닉이 한 주임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못 들은 척해.”

“야닉 님도 들었어요?”

한 주임이 멍하니 올려다보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페어리들은 내키는 대로 장난칠 대상을 고르지. 이곳은 어디를 가나 요정들이 따라다니면서 말을 거니까 절대 손을 놓지 마.”

“자기들이 마나를 나눠 주겠대요, 그럼 죽지 않을 거라고….”

“녀석들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야. 굶주린 자에겐 고기 냄새를 풍기고 색욕에 물든 자에겐 아름다운 이성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지. 죄다 함정이야.”

그의 말을 반박이라도 하는 듯 목소리가 곧바로 귀를 때렸다.

「거짓이야. 그런 짓을 하는 건 님프 같은 하등 종족이라고!」

「기아스의 핏줄도 우리를 찾아온 적이 있는걸!」

「핏줄도 우리의 선물을 받아 갔어!」

‘너희들이 페어리야?’

한 주임은 스스로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의 목소리들과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의 손을 단단히 잡고 있고, 딱히 목소리에서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기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으면 좋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위대한 숲의 정령.」

「우리는 고귀한 마나의 주인.」

「우리는 고대의 유산이자 생명의 시초.」

‘우리를 원래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어?’

「이제 세피로트의 영역이야. 너와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어.」

「행운을 빌어, 이방인….」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신호가 끊긴 라디오처럼 지직, 스파크 같은 것이 머릿속에서 터졌다.

그녀가 비틀거리자 야닉이 곧바로 부축하다가 닿은 손에서 마력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충분히 마력을 나누어 주었음에도 그녀는 마치 고갈된 것처럼 마나를 재차 흡수하고 있었다.

야닉은 급속도로 줄어드는 자신의 마력을 느끼며 큰 소리로 정지를 외쳤다.

“여기서부턴 환각을 일으키는 나무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거야. 환상에서 빠져나온 인원들은 서둘러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저기 보이는 호수까지 걷는다.”

그가 지척에 보이는 넓은 호수를 가리키며 말하자 기사 중 누군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별로 멀지도 않은데 그냥 옆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야닉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대 마법이 걸려 있어서 어디로 가든 세피로트의 공간을 지날 수밖에 없는 구조야. 그나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귀환대는 어쩔 수 없이 미리 준비한 검은 천을 말 머리에 씌워 흥분으로 날뛰지 않게 한 다음 최대한 한곳으로 모였다.

그들은 온통 검은 숲에서 이질적으로 푸른 잔디가 펼쳐진 평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초원을 둥그렇게 둘러싼 나무들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땅에 내린 뿌리가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후두두 흙더미를 떨어뜨리던 굵은 뿌리는 마치 두 다리처럼 일어나 나무를 지탱하고 땅 위에 우뚝 섰다.

몇십 그루의 나무들이 모두 땅에서 솟아나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온 인간들에게 짙푸른 잎사귀를 흩날렸다. 이윽고 맞잡고 있던 귀환대의 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환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깨닫지 못한 자는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움직이던 나무 가운데, 가장 거대한 존재가 산 전체가 울리는 듯 깊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주임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나무를 보고 경외와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문득 호수까지 빠져나가야 한다던 야닉의 말이 떠올라 꼭 잡고 있던 그의 손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자리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안개 속에서 정처 없이 떠돌았다.

“야닉…?”

야닉의 팔을 붙들었을 때 거대한 나무가 쿵! 쿵! 땅을 울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꼿꼿하게 서서 뺨을 스치는 나뭇가지에 눈을 꽉 감았다.

-꿈속에 빠지지 않은 인간은 31년 만에 처음이다. 성직자인가… 아니, 아니야… 다르다.

나뭇가지는 마치 그녀의 생애를 읽어 내리는 것처럼 몸을 휘감아 왔다. 한 주임은 모든 신경이 마비된 것처럼 전신을 움찔거렸다.

-으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욕심도 열망도……. 오, 욕망이 없는 인간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지. 좋아, 아주 좋아.

온몸을 칭칭 감고 있던 넝쿨들이 빠르게 고목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살아남아라, 먼 곳에서 온 자여. 이 ‘세피로트’가 길을 안내하겠다.

나무의 말이 끝나자 귀환대를 둘러싸고 있던 잎사귀들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각자의 욕망 속에서 저마다 허우적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환희에 찬 달뜬 얼굴이었고, 또 누군가는 끝없는 절망감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한 주임은 손에서 피가 나도록 바닥을 헤집고 있는 박 차장에게 곧바로 내달렸다.

“튼튼아, 튼튼아. 엄마 여깄어, 엄마도 우리 아가 보고 싶어. 우리 아기 너무 보고 싶어.”

박 차장은 조금 전까지 품에 안고 있던 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현실을 깨닫지 못한 듯 돌부리가 가득한 흙을 두 손으로 거칠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차장님, 정신 차리세요!”

한 주임이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그녀를 말리다가 꽉 끌어안았다.

억눌린 울음을 토해 내던 박 차장은 떨리는 손으로 한 주임을 끌어안고 목 놓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 주임은 온몸으로 그녀를 붙들어 안았다.

염 부장도, 공 대리도, 김유정도, 하다못해 이한율까지도 자신이 본 환상에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왜 나만 멀쩡하지?’

그녀가 해답을 찾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에 문득 주의가 돌아갔다.

“저게… 뭡니까…?”

환상에서 깨어난 거스 경이 몇백 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고목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같은 것을 본 야닉 역시 놀란 얼굴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세피로트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성직자 외에는 없을 텐데…….”

-기아스의 먼 핏줄이여. 이번에는 운이 좋았구나…. 출구로 안내하겠다. 잘 따라오거라.

세피로트는 잎사귀를 날리며 방향을 바꾸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야닉이 몸을 추스르고 있는 귀환대에게 소리쳤다.

“동료들을 챙겨라! 지금부터 나무의 뒤를 따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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