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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32화 (32/155)

32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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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운이 좋았다. 그가 황궁으로 가던 길엔 이 산맥에서 나흘이나 붙잡혀 있었다.

취발론 산맥은 크기와 높이만으로 따지자면 늦어도 이틀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숲을 지키는 고대의 힘 때문에 곳곳에 함정처럼 자리한 결계와 정령들이 늘 발목을 잡았다.

몇백 년간이나 셀 수 없는 실종자와 사망자를 배출한 결과, 빠져나온 이들의 경험을 토대로 경로가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된 역사는 아니었다.

그나마도 안전히 넘어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세피로트의 영역을 지나가는 것이다. 환상에서만 깨어난다면 무사할 수 있으니까.

다른 길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살아 나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 영검한 산 덕분에 타국의 침략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던 역사마저 있을 정도였다.

세피로트는 고대의 수호자이자 숲의 파수꾼이다.

그들은 매우 엄격하고 권위적이며 생명을 중시하는 정령들이라 아무에게나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 들었다.

아무리 고귀한 성직자들을 앞세워도 통행의 목적이 불경하다면 그들은 나무줄기로 침략자들을 단단히 옭아매어 땅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양분으로 삼곤 했다.

귀환대는 영문도 모른 채로 우직한 나무가 지나가며 만들어 낸 길을 얌전히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걷던 기사는 등 뒤로 지나온 길을 가시덩굴이 빽빽하게 다시 막는 것을 보며 앞사람과 닿을 듯 급하게 발을 놀렸다.

“대박. 나무가 서서 걸어가는 것도 신기한데 말까지 해.”

김유정이 공 대리의 등을 주먹으로 퍽퍽 치며 흥분하자 세피로트가 유연하게 윗동을 비틀어 뒤를 돌아봤다.

-재잘대는 것이 꼭 귀찮은 날파리 요정 같군…. 다들 조용히 따라와라. 나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야닉은 이전에도 몇 번이고 넘었던 산임에도 처음 보는 풍경을 연신 눈에 담아냈다.

세피로트가 안내하는 길을 외워 보려고 했지만, 그들이 지나온 길은 어느새 무성하게 우거져서는 밀림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한 수 접어 두고 눈앞의 길에만 집중했다.

조금 뒤 멀지 않은 곳에서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귀환대는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안개 너머 높은 둔덕 위에서 낡은 로브를 두르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양치기가 스무 마리 정도 되는 양 떼와 함께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치기는 서 있으면 엄청난 장신으로 보였다가도 허리를 굽혀 양들을 이끌 때는 무척이나 왜소해 보이기도 했다.

‘산 정상에 있는 죽음의 양치기가 벌써 나오다니… 원래대로라면 며칠 후에나 나오는 것일 텐데. 굉장하군.’

같은 장면을 본 귀환대는 몹시도 이질적으로 울려 퍼지는 양들의 울음소리에 풀려 있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세피로트가 양치기를 보더니 옆으로 슬쩍 방향을 틀며 못마땅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산 자를 짐승으로 만들어 영원히 배회하는 존재. 아무리 쫓아내도 자꾸만 돌아온단 말이지….

한 주임은 궁금증에 못 이겨 후드 속의 얼굴을 보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코끝까지 눌러 쓴 후드 아래 커다란 입은 비정상적으로 귀까지 찢어져 웃고 있었고, 피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기까지 했다. 그가 내뿜는 스산한 입김이 이곳까지 와 닿을 것처럼 한기를 퍼뜨렸다.

양치기는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주임을 향해 똑바로 서 있었다.

이쪽으로 오라는 듯 지팡이를 흔들며 손짓까지 하자 세피로트가 큰 소리로 경고하듯 ‘썩 꺼져라!’ 엄포를 놓았다.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멀리서 파드득하고 새들까지 튀어 올랐다.

그러자 웃고 있던 입을 다물고는 흩어지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양들과 함께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주위가 한층 밝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귀환대는 닭살이 일어난 몸을 바르르 떨쳐 내며 걸음을 재촉해 나갔다.

정상으로 추정되는 길을 지나 하산할 때 역시 야닉이 알고 있던 길은 아니었다.

내려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평지에 가까운 길을 계속 걷고 있었으나 파수꾼을 의심하거나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따르는 중이었다.

머지않아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히익! 뭐야, 이건!”

식겁하며 껑충 뛰는 기사 아래로 종아리까지 오는 작은 괴물들이 잔뜩 몰려와 시끄럽게 뭐라 뭐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언뜻 고블린과 닮아 보이는 주름진 얼굴 옆으로 커다란 귀가 어깨까지 축 내려와 있는 괴물들은 연보라색 피부에 까만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기사들의 발 근처를 빠르게 오갔다.

기사들이 걷어차려고 하면 날랜 걸음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키히히 웃기까지 했다.

그들은 닭발같이 생긴 손가락으로 부러진 나뭇가지를 쥔 채, 사람들의 발 사이로 뛰어다니며 연신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어 댔다.

《그렘린이 무기를 고쳐 줄까?》

《그렘린에게 다 맡겨 봐!》

한주먹거리도 안되어 보이는 놈들이 들고 있는 거라곤 끽해야 잎사귀 달린 나뭇가지나 솔방울 따위의 하찮은 것들이라 기사들은 놀란 것도 잠시, 금방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무기를 주면 어떻게 고쳐 줄 테냐?”

한 기사가 코웃음을 치며 묻자 그렘린들이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상에서 최고로 강한 무기로 만들어 줄게!》

《드래곤도 잡을 수 있는 무기로 만들어 줄게!》

“오, 정말이냐? 그거 혹하는데.”

기사가 품에 차고 있던 대검에 손을 대자 세피로트가 돌연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잎사귀를 흔들어 댔다.

-그만둬라! 저놈들에게 무기를 주면 받은 무기를 휘두를 수 있을 만큼 커져서 네 녀석의 목을 날려 버릴 거다!

《그렘린이 무기를 고쳐 줄까?》

작은 괴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떠들고 있었다.

말을 걸었던 기사는 그 모습이 더 이상 귀여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써 무시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조금 뒤 슬쩍 아래로 내린 시선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피로트는 무척이나 번거롭다는 듯 기둥 같은 몸통을 좌우로 흔들어 댔다.

-귀찮다. 여기까지 내려온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그만 돌아가 쉬고 싶어. 나는 충분히 늙었거든.

그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가지 끝을 보며 중얼거리자 포라킨이 얼른 달려와 답지 않게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세피로트 님에게 회복마법을 걸어 드릴까요? 될지는 장담을 못 하겠습니다만.”

그녀는 역사서에서만 봤었던 신비의 존재에 한껏 들떠 있었지만, 세피로트는 뒤를 돌아보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뿌리를 내디디며 대꾸했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일 뿐. 내가 죽어야 또 다른 세피로트가 태어난다. 가짜 성직자여.

가짜 성직자라는 말에 포라킨은 속으로 뜨끔했다.

회복마법을 배우기 위해 10년 간 사원에서 신관 노릇을 했지만 신앙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배우자마자 큰돈을 받고 레비탄의 마법사가 되었던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세피로트는 중간중간 길이 맞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멈춰 서서 두리번거렸고, 그것이 점차 잦은 횟수가 되더니 곧이어 열 걸음도 못 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귀환대는 꽤나 참을성을 발휘해야만 했는데, 앞에서 자꾸만 지체되는 바람에 뒷줄은 거의 서너 걸음마다 주춤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 멀리 아크만의 거대한 회색 방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더더욱 안달이 났다.

이제 안내 없이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세피로트가 또다시 멈추었을 때 뒤에서 기어이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는데 빨리 나가면 안 됩니까? 육포도 다 먹고 배고파 죽겠다고요!”

“저 나무 인형만 따라가다간 밤새 걸어야 할 판이겠는데요!”

투덜거리며 소리치던 기사 두 명이 작심한 듯 멈추어 선 행렬을 지나 앞으로 척척 걸어 나오자 한 주임이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야닉은 한 주임에게 눈짓으로 가만 내버려 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내심 궁금한 모양이었다.

기사들은 자신들의 상관인 거스 경에게 다가와서는 지척에 보이는 아크만 요새를 손으로 척, 가리켰다.

“이 정도 거리면 오늘 안에 요새에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외길로 가고 있는데, 답답하게 계속 이렇게 가야 합니까?”

거스 경은 자신도 약간 그렇게 느끼긴 했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두리번거리고 있는 고목에게 다가가 물었다.

“출구까진 얼마나 남았지?”

세피로트는 허리춤에서 소리치는 인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경고하듯 말했다.

-아직 더 가야 한다. 얌전히 따라와라. 하찮은 자들아.

‘한낱 마물 따위가…….’

이를 뿌득 갈던 그가 몸을 돌려 기사 두 명에게 권위적으로 지시했다.

“자네 둘은 말을 타고 곧장 직진해서 산을 빠져나간다. 나가는 대로 피리를 불어 신호를 보내도록.”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끌고 왔던 말에 올라탔다.

야닉은 잠시 그들을 말릴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정말로 출구를 찾으면 이자들이 말한 대로 날이 저물기 전에 요새에 당도할 수도 있을 터였다.

두 명의 기사들은 느릿한 세피로트를 비웃듯 지나치더니 말의 옆구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리석다. 어리석어…….

세피로트는 작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지루한 행군은 재차 이어졌다.

산속에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 돼서야 드디어 숲을 벗어난 귀환대 앞에 너른 땅이 펼쳐졌다.

-안내는 여기까지다…. 생각보다… 너무 피곤해.

세피로트가 부쩍 굽어든 나무 기둥을 기지개 켜듯 바로 세우며 말했다.

“저기, 고맙습니다.”

한 주임이 얼른 인사를 하자 숲으로 돌아가던 고목이 화답하듯 가지를 손처럼 흔들었다.

-날파리 요정들이 자꾸 네게 다가가려고 하던데… 나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와 보거라. 그때도 욕심이 없다면 내가 안내를 해 주지….

“네!”

거의 온종일 따라다녔더니 그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커다란 나무의 뒷모습이 아쉬워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토록 무서웠는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섭섭한 기분이 들다니.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이라 시선을 헤매던 중에 야닉이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한 주임은 이상한 여운이 남아 있던 감상에서 벗어나 넓게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았다. 악명높은 산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다.

“먼저 출발했던 두 명은?”

야닉이 거스 경에게 묻자 그가 난감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근방 어디에도 사람이나 말 발자국은 없습니다. 아직 산속에 있는 듯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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