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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36화 (36/155)

36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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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캄의 엄포와는 달리 테이블 위의 접시들은 비워질 때마다 때맞춰 새로운 음식들로 계속해서 채워졌다.

갓 구운 흰 빵 위로 녹진하게 들러붙은 산양 치즈 향이 식욕을 자극하자 여기저기서 손이 날아들었다. 한 주임은 한 개도 가져가지 못하고 구운 송로버섯만 겨우 접시에 덜었다.

꽤 오랜 시간 만찬을 즐기던 귀환대는 기사들이 먼저 일어나 자리를 비우자 당연하다는 듯 술판으로 변질되었다.

“아……. 또 시작이야.”

김유정이 지끈한 머리를 감싸 안으며 질렸다는 듯 투덜거렸다.

“부장님은 술 끊으셨다면서요!”

“일찌감치 포기했다. 여기선 안 되겠더라고.”

염 부장은 밀주와 섞은 양젖이 마음에 들었는지 벌게진 얼굴로 홀짝거리는 중이었다.

“근데 하랑 혼자 가도 정말 괜찮은 거예요?”

한 주임이 그가 기사들과 동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하랑은 감격에 겨운 두 손을 교차해서 가슴에 가져다 댔다.

“역시 제 걱정 해 주시는 분은 한 주임님뿐이십니다. 차라리 야닉 님 말고 한 주임님이 제 주인님 하시면 안 될까요?”

그의 말에 스캄이 심드렁하게 반박했다.

“이 녀석은 주보 상인 중에서도 이름이 날 대로 났던 놈이라 그런 걱정은 일절 할 필요가 없어.”

“주보 상인이요?”

그는 스푼으로 빈 접시를 팅팅 튀기다 하랑을 가리켰다.

“용병들이나 여행자들이 숲에서 식량 떨어져, 무기 망가져, 옷이 찢어질 때마다 어디선가 바람같이 수레를 끌고 와서 지독한 바가지 장사를 하는 놈들이지. 심지어 이놈은 전장 한복판까지 기어들어 와서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가던 녀석이었다고.”

“에헴. 그래서 제가 야닉 님 눈에 띈 게 아니겠습니까!”

한 주임은 실컷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하랑의 가느다란 몸을 보며 오… 하고 육성으로 감탄했다.

몸이 날랜 건 알았지만 새삼 다시 보이는 순간이랄까.

“제가 레비탄 방방곡곡 안 다녀 본 데가 없다니까요. 그러니 주인님께서 그 위험한 취발론 안내를 맡기지 않았겠어요?”

“그 위험한 취발론까지 장사하겠다고 들어갔다가 다 죽어 가는 몰골로 내 눈에 띄긴 했지.”

야닉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퉁, 당근 조각을 튕겨 하랑의 머리에 명중시켰다.

“다 죽어 가진 않았다고요! 유르 지구에서 왔던 순례자들한테 한몫 단단히 챙기고 돌아가는 길에 아주 야악간 헤맸던 거죠.”

“아아. 순례자들은 무사히 빠져나갔던 그 길에서?”

“페어리들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산을 넘어도 바로 돌아오진 말고 얼마간 따라붙어서 좀 더 지켜보다 와.”

꼬리를 내리고 말끝을 흐리는데, 야닉이 돌연 진지하게 당부를 해 온다. 영리한 그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네네, 염려 마세요. 이방인분들한테 함부로 대하면 그 자리에서 모시고 돌아올 테니까요.”

* * *

오늘도 역시나 몽땅 뻗어 버린 술자리는 야닉과 한 주임 두 사람만 살아남은 익숙한 전개로 이어졌다.

며칠이나 긴장 속에서 보낸 탓에 운영팀은 물론 용병들까지 전부 코를 골며 늘어지자 사용인들이 들어와 하나둘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야인을 옮길 때는 세 명이나 달라붙어야 했다.

야닉이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내민 손에 한 주임은 조금 망설였다.

“저기, 정말로 여기서도 계속….”

‘연인인 척할 건가요?’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으나 그가 용케 알아듣고는 먼저 다가와 머뭇거리던 손을 고민 없이 잡았다.

“몰래 잡는 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흘러들어오는 따스한 마력만큼이나 상냥한 미소였다.

이건 순전히 그의 배려일 것이다. 수도로 돌아가는 이방인들도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특별대우가 아니라 원래 그가 그런 성격인 거다.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왔으니 실은 야닉이 더는 저를 챙길 이유는 없었다.

폭주하는 마력은 늘 해왔던 방식으로 해소할 수도 있을 테고, 사냥하러 나가기 귀찮다는 말도 바보가 아닌 이상 둘러대는 것이 뻔했다.

벌써부터 힐끔거리는 사용인들의 시선이 아프게도 날아와 한 주임에게 콕콕 박혔다.

필시 세레나 공주 이야기를 들어서 죄책감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응?”

“저 때문에 괜히 마음 써 주실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야닉이 순간 이해를 못 한 듯 눈썹을 추어올렸다.

한 주임은 잡고 있던 손을 스르륵 빼서 거두고는 결연히 시선을 맞춰 왔다.

“요새에 무사히 잘 왔으니까 연극은 그만 끝내기로 해요. 저도 도움을 받았으니까 특별수당은 안 주셔도 되고요.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딱딱하게 서 있는 야닉을 뒤로 하고 홀을 지나 두 계단씩 뛰어올라 방까지 도망치듯 달려왔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너무 늦게 말하지 않아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벌써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손잡고 있던 모습을 봤을 텐데….

-얘기 좀 해. 그렇게 말하고 가 버리는 게 어딨어.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한 주임이 틈새로 소곤거렸다.

“내일 얘기해요, 오늘은 너무 늦었잖아요.”

-내일부터는 내가 바빠. 문 좀 열어 주겠어? 얼굴 보고 이야기해.

황자를 밖에 계속 세워 놓을 수도 없고 밖에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지라 그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열어 주지 않으면 문 앞에 서서 더욱 수상한 눈초리를 받을지도 모른다.

한 주임은 빠른 포기와 동시에 문을 벌컥 열고 그의 소매를 확 끌어당겨 방으로 들인 다음 얼른 닫았다.

‘망했어. 벌써 다 봤어.’

운영팀과 같은 층이라 찰나의 순간에도 복도를 드나드는 사용인들 몇 명과 눈까지 마주친 참이었다.

그녀는 순순히도 끌려 들어온 무심한 남자를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갑자기 왜? 요새에 와서도 손잡고 다닌다고 했었잖아.”

그가 문에 기대서서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일방적인 통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가 싫어서 그만두겠다는 것도 아닌데, 순간 짜증이 일었다.

“…부인이 있으시잖아요.”

한 주임이 결국 입 밖으로 꺼낸 말이 의외였던지 그가 의중을 가늠하기 위해 재촉하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 번째 취급을 받는 건 사양하고 싶어요. 저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아.”

두 번째라는 말이 생각보다 강하게 뇌리에 박혀 들었나 보다.

야닉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생각을 못 했다.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이방인의 사고방식을 예상하지 못하다니, 그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굳어 버렸다.

정부는 고사하고 하룻밤만이라도 함께 보내자며 몸을 들이대는 여자들만 겪어 본 폐해였다.

마땅히 좋아할 줄로만 알았지, 불쾌할 거란 생각은 왜 못했을까.

“혹시 여기서도 마력이 없으면 불청객 취급을 받나요? 그래서 계속 연인처럼 대해 주시는 거라면…….”

이 착해 빠진 여자는 다른 이유까지 들먹이면서 저를 배려 넘치는 남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편리함, 유용함, 호기심, 단순한 호감. 사실은 그 정도였다고 말하면 그대는 어떤 얼굴을 할까.

그 순간 야닉은 절대로 그것을 입 밖에 꺼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는 명료했다.

상처받은 얼굴은 보기 싫다. 그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 단순한 논리가 진리로 다가와서 또다시 후두부를 강타했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이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거 아니야, 당신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어. 그저 당신에겐 내가 필요할 거라고만 여겼어. 미안해. 사과할게.”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눈빛에는 당혹감이 얽혀 있었다.

야닉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저도 모르게 낮은 실소를 흘렸다.

“두 번째라니, 당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없어. 그대 말대로 하지. 연극은 그만 끝내기로 해. 그런데 세레나는….”

-주임님, 장작을 더 가지고 왔어요.

그 순간,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야닉이 무의식중에 하려던 말을 멈췄다.

일단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 만큼 마땅히 계획이 필요한 일이었다.

대답 대신 벌컥 열린 문에 미엘라가 화들짝 놀라며 주춤거렸다.

“야닉 님?”

야밤에 한 주임의 방에서 나오는 황자를 보고 적잖이 놀란 미엘라는 그가 내뱉은 다음 대사에 훨씬 더 큰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단순한 배려라기엔 내 사심도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런데도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미엘라를 관객처럼 세워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 말을 다 한 야닉이 그제야 고갤 돌렸다.

“들어가 봐.”

“네, 네?”

미엘라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낯빛으로 방을 나가는 야닉과 문 앞에 어안이 벙벙한 한 주임을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입을 크게 벌렸다.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 주임은 입만 빠끔대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연극이 끝났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울하게 다가왔다. 굳이 미엘라 앞에서 ‘사심’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야닉은 절 배려하고 있었다.

미엘라는 장작더미를 벽난로 옆에 엉망으로 쌓아 두고는 세면대 앞에 선 한 주임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홍조를 띤 얼굴은 흥분으로 잔뜩 고조된 상태였다.

“사심이라뇨? 거절이라뇨?”

“…아.”

칫솔에 가루를 뿌린 뒤 입에 넣던 한 주임이 난감한 얼굴로 돌아보자 미엘라는 얼굴을 한껏 구기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설마 야닉 님을 거절하신 건가요? 왜 그런 아까운 짓을 하신 거예요! 그분이 다른 여성에게 구애를 하신 적은 처음이란 말이에요!”

“구… 구애, 캑! 콜록! 콜록!”

갑자기 사레에 들려 어깨까지 들썩이며 기침을 하자 한 주임의 등을 때리듯 두들기며 미엘라가 크게 울상을 지었다.

“이제 겨우 우리 황자님이 공주님을 잊고 새 출발 하시려는데 왜 거절을 하셨어요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야닉 님은… 그냥 내가 기분 나쁠까 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올라가셔서 확 자빠뜨려 버리세요! 제가 주임님이었으면 당장 일부터 치르겠어요!”

“아니ㅇ… 미엘라, 아파요!”

거의 구타를 당하던 한 주임이 겨우 미엘라를 뜯어말리고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그녀는 쉬지 않고 아까워죽겠다는 탄식을 쏟아 냈다.

한 주임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심경으로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누웠다.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가 오해를 받지 않도록 자신이 매달리다 차인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따뜻한 방 안에 구름같이 포근한 침대 속에서도 어쩐지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계속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부스스 눈을 떴을 땐 벌써 환하게 날이 밝아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꿀물을 타 왔는데 좀 드세요.”

밤사이 기분을 추스른 미엘라가 어딘가 쀼루퉁한 얼굴로 미지근한 꿀물을 건네주고는 창문을 열어 방 안에 남은 장작 냄새를 환기했다.

한 주임은 숙취는 없었지만 두어 모금 마신 뒤 스며드는 찬바람에 이불을 끌어 올렸다.

“여기도 술 마신 다음 날에 꿀물을 먹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있었던 이방인 문화라고 들었어요. 근데 주임님, 정말로….”

“아, 오늘 나가기로 한 날이었지….”

미엘라가 또다시 야닉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부산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정말로 부서 사람들과 함께 영지를 둘러보기로 한 날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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