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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41화 (41/155)

41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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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김유정이 다위보다는 약간 컸어도 여전히 일반인들에 비해 작았던 인부들을 상기하며 묻자 헥토르가 힉, 하고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분들은 드워프의 후손인 움리족입니다. 절반은 인간의 피가 흐르지요.”

“저런 덜떨어진 놈들과 비교를 하다니 눈깔이 단단히도 썩었군.”

다위가 책상 위에 있던 미지근한 에일을 벌컥 들이켜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까마득한 옛날에 인간이 짐승 가죽을 둘러쓰고 돌도끼를 쓸 때부터 제련질을 해 왔단 말이야.”

“그럼요, 그럼요. 다위 님이야말로 최고의 대장장이시죠.”

헥토르가 얼른 비위를 맞추자 다위가 만족스러운 듯 수염에 묻은 에일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이 얼빠진 이방인들에게 어울리는 무기를 골라 볼까…. 가만 보자, 한 놈씩 일어서 봐.”

다위가 짧고 퉁퉁한 손가락으로 맨 끝에 있던 이한율을 가리켰다.

그가 잽싸게 몸을 일으키자 다위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바로 결정한 듯 손가락을 딱 부딪쳤다.

“인간 주제에 제법 괜찮은 마력을 지녔잖아? 네 놈은 대충 봐도 물 속성이니 운디네의 눈물을 박은 지팡이를 만들어 주지.”

그 말에 헥토르만 혼자 오오! 하며 손뼉을 쳤다.

박 차장과 김유정이 서로 ‘운디네는 또 뭐야’ 하며 소곤거리는 뒤로 이한율이 마른 입술을 우물거렸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제가 물 속성입니까? 불이 아니라요?”

이한율은 포라킨이 휘두르던 지팡이에서 본인의 것보다 더 커다란 불꽃이 뿜어져 나왔던 것을 떠올리며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래도 물보다는 불이 더 공격적이고 강력한 마법이지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다위는 곧바로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 이 다위를 무시하는 거냐? 내 눈보다 정확한 건 없어!”

헥토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자 결국 이한율은 포기하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공 대리가 눈치도 없이 낄낄거리는 게 못내 거슬렸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음!”

다위는 여전히 불쾌하다는 얼굴로 한 주임을 가리켰다.

천천히 일어난 그녀를 유심히 보던 그가 이한율 때와는 다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매하단 말이지…. 음… 석궁? 그보단 활이 낫겠군. 바질리스크의 비닐로 시위를 만들고 몸통은…….”

다위가 중얼대는 와중에 한 주임이 다급하게 허리춤에서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

“저, 저는 활이 아니라 검이에요! 야닉 님이 롱소드에 그… 고르곤의 뼛가루를 바르면 된다고….”

절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목소리에 다위가 팔짱을 끼고 공중에 뜬 다리를 앞뒤로 구르며 고민에 잠겼다.

척 보니 가진 마력도 제 것이 아닌데 마법을 쓸 수 없으면 원거리 무기가 나을 텐데, 하다가 영 결론이 안 나는지 그는 꽤 지루하게도 시간을 끌었다.

“결정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다위가 명료하게 고갤 끄덕였다.

‘검이어야 해. 활을 들면 누군가 알아볼지도 몰라. 12년 전이면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니까.’

한 주임은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다위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인 저 입에서 ‘검’이라는 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때, 다위는 판결 대신 손을 내밀었다.

“내놔 봐.”

그가 턱짓으로 한 주임의 롱소드를 가리키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기대감에 차서 얼른 건네주자 다위가 검에서 검집을 바지처럼 벗겨냈다. 책상 위에 놓인 등잔불 앞으로 칼날을 가져다 대더니 그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흐음. 제법 괜찮은데?”

이번에는 손가락 두 개 위에 검을 올려 수평을 맞췄다.

“무게도, 중심도 좋아.”

다위는 오크 잔에 남아 있던 에일을 단숨에 비운 뒤 공중으로 휙 던져 롱소드를 바람같이 휘둘렀다.

단단한 나무가 절반쯤 갈라지며 날에 끼워지자 다위의 붉은 눈이 기민히 빛났다.

“그 녀석 말대로 고르곤의 뿔 가루를 발라 두는 게 낫겠어. 체! 여우 같은 놈이 제법 눈은 좋단 말이지.”

그는 깊게 상흔이 난 잔을 빼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낡은 바지춤에 날을 문질러 닦았다.

“이건 두고 가. 강화해서 돌려주지. 그리고 활도 하나 만들어 줄 테니까 잔말 말고 받아라. 넌 검보단 활이 유용할 거다.”

“네! 감사합니다!”

한 주임은 얼른 대답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앉았다. 새 로브에 허연 쇳가루가 덕지덕지 붙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의 뒤를 이어 염 부장에겐 바람 속성의 완드를, 김유정에겐 의외로 브로드 엑스라고 하는 날이 넓은 커다란 도끼를, 박 차장에게는 투척용 창인 아틀라틀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

공 대리는 스캄이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양손 검 같은 것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깨끗하게 무시당하고는 짧은 대거 두 자루를 그 자리에서 쥐게 되었다.

“한율 님과 한 주임님의 무기는 새로 제작이 필요하니 완성될 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쁘신 다위 님을 더 이상 번거롭게 할 수 없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죠.”

헥토르가 서코트를 툴툴 털며 자리를 정리하자 운영팀은 각자 받은 무기를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떠밀리듯 밖으로 나왔다.

공 대리가 톱날이 서슬 퍼렇게 박힌 검은색 대거 두 자루를 장난스럽게 챙챙 맞부딪치는 뒤로 다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로 네 몸 모가지를 긁어 버리기 전에 당장 꺼져!”

“힉.”

한 주임은 다위가 제 롱소드를 들고 시뻘건 빛이 새어 나오는 대장간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마지막으로 걸음을 돌렸다.

보관소에 묶어 두었던 말을 타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한낮인 듯 햇빛이 장렬하게 눈을 찔러왔다.

운영팀은 부신 해에 한껏 인상을 쓰며 본성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얼마쯤 가다 보니 줄줄이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무장한 행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임 사장!”

염 부장이 무리 가운데 임철우를 발견하고 말 위에서 소리치자 날이 넓은 브로드소드를 들고 있던 임철우가 반갑게 달려왔다.

“염 부장님, 다들 대장간에 다녀오는 길인가 보네요?”

그가 운영팀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보며 유추하자 박 차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전 제대로 들기도 어려운 창을 받았어요.”

임철우는 말 안 해도 알겠다는 얼굴로 성질 나쁜 드워프를 떠올렸다.

“다위 님이 한 성깔 하죠? 십 년 전에도 또옥같았어요. 그 양반이 그래도 실력만큼은 전국에서 따라올 장인이 없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가 제 검을 들어 두둔하는 걸 보며 박 차장이 이번엔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행렬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마을 분들 아닌가요? 모두 시내에서 봤던 분들인데, 다들 무슨 전쟁이라도 나가세요?”

그 말에 임철우가 낮게 웃었다.

“아크만 주민들은 전투가 가능한 나이면 누구나 일주일에 하루씩 훈련을 받아야 해요. 예비군 같은 거죠. 오늘은 검사들 훈련 날이네요.”

한 주임은 올라오는 사람 중에 어제 전통주 시음을 권했던 좌판 상인이 날이 둥글게 휜 검을 들고 있는 걸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성, 교회의 사제, 앳된 소년 할 거 없이 모두 크고 작은 검을 가지고 익숙하게 연무장에 진입하고 있었다.

운영팀은 이들의 모습이 곧 자신들이 겪을 가까운 미래라는 것을 알았다. 연무장에 미리 도착해 있는 사람 중에는 검은 머리의 이방인들도 몇몇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철우는 이방인들을 위해 숙식이 제공되는 호화 저택도 마다하고 영지 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특이한 경우였다. 아마도 그가 이곳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 수습 대원들 사이에 있던 딸을 발견한 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선희야!”

아버지의 목소리보다 ‘선희’라는 호칭에 흠칫한 용병이 임철우 옆에 있던 한 주임을 보더니 경기를 일으키며 건물 안으로 냅다 달음질쳤다.

임철우가 그 모습을 보고 아차차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내가 실수를 했네. 우리 딸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희라고 부르면 아주 발작을 해요. 집사람이 선희가 어릴 때 ‘루’라는 이름을 지어 줬는데 영 입에 붙지가 않아서.”

그는 멋쩍게 웃으며 훈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이목구비가 똑 닮았다고 한 주임은 속으로 생각했다.

“딸내미가 지 아빠 성격은 안 닮았네.”

“사춘긴가 보죠.”

염 부장과 박 차장이 혀를 쯧쯧 차며 앞서 나갔다.

* * *

본성으로 돌아온 한 주임은 이른 아침부터 연무장이니, 사원이니, 지하 대장간까지 긴장한 상태로 돌아다닌 탓에 방에 들어오자마자 축 늘어져 버렸다.

이미 오후가 훌쩍 지난 지라 늦어 버린 점심은 거르기로 하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땐 벌써 까마득한 한밤중이었다.

“주임님, 괜찮으시면 들어갈게요!”

“……미엘라?”

한 주임이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엘라가 얼른 달려와 이마에 손을 대려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얇은 면장갑을 꺼내 끼웠다.

자신을 함부로 만지면 위험하다는 내용까지 벌써 전달받았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녀로선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되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하여튼 철두철미한 남자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낮잠을 너무 오래 주무셔서 걱정이 돼서….”

“아니에요. 오래간만에 푹 잤어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한 주임은 미엘라의 마음이 진심이든 형식적이든 간에 어쨌든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가끔 몸 상태가 저조한 날에 방에서 눈을 뜨면 많이 아플 때 혼자 누워 있는 상상을 어렴풋이 해 보곤 했었다.

상상 속에서도 그녀를 간호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을 떠올릴 순 없었고, 그럴 때마다 한 주임은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119 긴급버튼을 괜히 한 번씩 쳐다보았다.

미엘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 어딘가 서글픈 안도감이 잔잔하게 밀려와 그녀는 얌전히 이마를 내밀었다.

장갑 위로 애매한 온기를 느끼던 미엘라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더니 다급하게 손을 뗐다. 이러려고 깨운 게 아니었다.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얼른 씻고 나가셔야 해요.”

감동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주임은 어리둥절한 눈만 깜빡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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