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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44화 (44/155)

44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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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임은 이른 아침 여관주인이 가져다준 옷을 입고 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목까지 올라오는 털 달린 로브에 두꺼운 바지까지 껴입으니 눈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몸이 뒤뚱거렸다.

운영팀을 데리러 온 마차 소리가 창문 밖으로 들리자 그녀는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박 차장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재인 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박 차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살피는 한 주임을 보고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제 과하게 기분이 업된 바람에 별의별 헛소리들을 잔뜩 했는데, 한 주임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신을 대하고 걱정까지 해 주고 있었다.

“아, 응…. 난 괜찮아. 그것보다 어제 내가 재인 씨한테…….”

“차장님이 저 걱정해 주시느라 그런 거 다 알아요. 신경 안 써요. 차장님도 신경 쓰지 마세요.”

한 주임의 말에 박 차장의 얼굴이 단박에 활짝 폈다. 그럼 그렇지, 이 순진한 애가!

나보다 한재인을 잘 아는 사람은 없지, 얘는 친구도 없는데.

“그치? 나는 정말로 자기가 걱정이었단 말이야. 착해 빠져서 진짜, 자기는 나 없었으면 여기 사람들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퍼다 줬을 거야.”

“…….”

한 주임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박 차장은 여관을 나서며 본성까지 가는 길 내내 어제 만난 사람들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한 주임은 이따금 고개를 끄덕여 주다가 곧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배가 아프다며 사라졌던 마부가 뻔뻔한 얼굴로 운영팀을 안뜰에 내려 주고 보관소로 마차를 몰고 갈 때, 공 대리가 돌연 충격 고백을 했다.

어젯밤 박 차장의 말실수는 명함도 못 내밀 대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유정 씨랑 나랑 그렇게 됐다고.”

먼 산을 응시한 채로 지껄이던 공 대리의 뒤통수를 김유정이 힘껏 후려쳤다.

“XX, 그놈의 술이 진짜!”

난데없이 얻어맞았는데도 공 대리는 벨도 없이 히죽거리면서 김유정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김유정은 그 손을 파리를 쫓아내듯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는 본성으로 내달렸다.

“자기야! 같이 가!”

“죽는다, 진짜?”

그 모습을 염 부장이 개똥이라도 밟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박 차장은 콧구멍을 씰룩거리면서 배를 잡고 웃어 댔다.

“이게 무슨 조합이야! 유정 씨 제대로 지뢰 밟았네!”

“충격적이긴 하네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던 박 차장이 한 주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자기도 조심해, 술이 이렇게나 무서운 법이야. 아이고, 배야.”

한 주임은 박 차장의 말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어딘가 뼈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겨우 웃었다.

김유정과 공 대리가 성안으로 들어가고 곧이어 이한율이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어젯밤 한 주임이 환영식에 가지 않는 줄 알고 저도 흥미가 없어 성에 남았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그녀가 나갔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참이었다.

반듯한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주임님 가신 줄 알았으면 저도 같이 갔을 텐데요. 별일 없으셨어요?”

“음…….”

한 주임이 별일이 없었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었다.

“별일 있었는데. 나 친구 생겼어.”

그 말에 박 차장과 이한율이 동시에 누구? 한다.

“비밀….”

그녀는 조그맣게 말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마중 나온 미엘라가 한 주임에게서 드레스 보따리를 넘겨받으며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주임님, 어떻게 됐어요? 네? 네? 저희 궁금해서 한숨도 못 잤단 말이에요!”

“저희?”

헙, 미엘라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혼자만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거 하며, 갑자기 야닉이 나타난 일이나, 마부가 도망친 것까지.

캐묻지 않아도 일의 전말이 뻔해서 한 주임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별일 없었어요. 나만 좀 웃겼지.”

그러자 미엘라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정말이에요! 전 그냥 주임님이 예쁘게 꾸미면 야닉 님이…….”

당혹감으로 가득 찬 미엘라의 얼굴을 보니 문득 어젯밤 박 차장의 말이 떠올랐다.

[걔가 자기 괴롭히는 거 아니야?]

한 주임은 쓴 입맛을 다셨다.

안절부절못하는 여자애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으니, 다시금 박 차장의 걱정이 비열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눈가가 그렁그렁한 미엘라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요?”

“네…. 잘못했어요…….”

미엘라는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 탓에 주인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어깨를 힘없이 떨어뜨리며 새틴 드레스를 옷장에 넣었다.

반성도 잠시, 철부지 소녀는 집사장에게 받은 여벌의 아름다운 옷들을 언제 또 입혀 보나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마부 아저씨까지 합세했는데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나 궁금증이 삐쭉삐쭉 솟아서, 욕실로 들어가는 한 주임을 슬쩍 따라가서는 기어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야닉 님이랑은 뭐… 없으셨어요…?”

분명히 이대로 나가면 동료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어서 어떻게 되었냐고 꼬치꼬치 물을 게 뻔한 일이라 미엘라로서는 막중한 임무를 띤 셈이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들에게 한 줄이라도 던져 줄 먹잇감이 필요했다.

한 주임은 칫솔을 입에 물고 짧게 고민하다 가볍게 대꾸했다.

“그냥 친구 하기로 했어요.”

이 정도면 포기하겠지. 했는데 웬걸.

미엘라의 눈이 반짝거리면서 꿈을 꾸는 듯 황홀한 얼굴로 변했다.

“세상에! 황자님과 친구라니, 그것만큼 멋진 일도 없죠! 어떤 관계든 친구부터 시작하는 법 아니겠어요?”

아. 괜히 말했나 보다. 한 주임은 신음을 흘렸다.

미엘라는 폴짝폴짝 뛰며 벌써 밖으로 나가 버렸다.

* * *

며칠이 더 흘렀다. 그 사이 운영팀은 집사 게일의 안내로 요새의 축조물들을 구경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사단과 용병단이 있는 연무장과 그들이 사용하는 숙소와 식당들,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빌라촌, 포라킨이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마탑과 귀족들을 위한 호화숙소들을 둘러보고, 우람한 군마들이 늘어서 있는 커다란 마구간에서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금방금방 지나갔다.

연무장 뒤쪽으로 나 있는 군사시설은 보안상의 이유로 들어가 보진 못했으나 막사와 보급소, 군 회의소나 의료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다는 구두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언뜻 봐도 실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요새’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크기였다.

다른 날에는 알리온이 있는 사원에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고 사제들의 안내에 따라 포도주 양조장과 포도밭을 가볍게 둘러봤다.

운영팀이 시큼한 포도알을 씹었다가 도로 내뱉는 장면에서는 한 주임도 사제들의 편이 되어 입을 싹 다물고 있다가 같이 폭소했다.

사원에서 기다랗게 나 있는 오솔길을 발견한 그녀가 게일에게 물었다.

“저긴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저기는 예전에는 ‘순례자의 길’이라 해서, 사원에 방문하는 신자들은 모두 저 샛길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사원으로 올라오는 길에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라는 의미였지요. 지금은 길이 막혔습니다. 몇 해 전에 트롤의 침략을 막으려고 바위를 굴러 떨어뜨렸다더군요. 바위 더미가 쌓인 길은 경계를 소홀히 했다는 자성의 의미에서 아직 놔두고 있습니다.”

한 주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샛길 중턱에 있는 높은 탑을 가리켰다.

“그럼 저 성도 안 쓰는 건가요?”

게일이 돌아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기는… 유령이 삽니다.”

* * *

“아크만의 영주이자 ‘아성의 유령’, 테오도르 로기아 변경백을 일컫는 말이죠.”

포라킨이 훈제된 사슴고기를 화덕에 구운 납작한 빵 위에 올리며 설명했다.

“6년 전에 사원 뒤쪽 암벽을 타고 트롤 네 마리가 기어 올라왔거든요. 하필이면 그때 영주님이 황자님과 함께 일대 토벌을 나갔을 때라 요새가 쑥대밭이 될 뻔한 적이 있었어요.”

포라킨이 고기를 질겅거리며 말하자 운영팀은 그녀에게 사과주를 건네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포라킨은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꿀떡 넘기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는 사원 샛길에 있는 아성이 진짜 본성이었어요. 이름 그대로 영주님과 따님이 거주하는 곳이었죠. 요새를 습격한 트롤들은 영주님이 협곡 토벌 중에 놓친 상처를 입은 놈들이었는데….”

염 부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트롤이 뭔데? 하고 끼어들었다가 박 차장이 팔꿈치로 꾹 누르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트롤들은 추격을 피해 깊숙한 곳으로 도망쳤고, 불행히도 도망친 곳이 하필 요새가 있는 바위산이었어요. 놈들은 곧장 손톱을 세우고 절벽을 기어 올라와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에게 화풀이를 시작했죠. 그전까지 절벽을 올랐던 마물은 없었던지라 방심한 결과랄까요.”

박 차장이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물었다.

“그래서, 아성의 유령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데요?”

그녀의 말에 포라킨이 낮은 한숨을 흘렸다.

이다음 이어진 이야기는 안타깝고도 참혹했다.

순례자의 길에서 경계를 서는 보초병이 하필 그날따라 꾸벅꾸벅 졸았고, 절벽을 넘어온 트롤은 곧장 입구에 있던 병사를 발견하고 공격을 가했다.

괴수의 발밑에 깔린 병사가 죽어 가면서 불었던 뿔피리 소리는 찰나에 가까웠다.

멀지 않은 곳에서 소리를 들은 아성에서 기사 몇 명이 튀어나와 트롤의 요새 진격을 막는 동안, 소식을 전달받은 이방인들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이방인들은 요새에 침입한 마물들에게 곧바로 마법을 퍼부었으나, 트롤처럼 항마력이 강한 상급마물에게는 큰 타격이 없었다.

놈들이 본격적으로 내부로 진입하기 전에 막아야 했기에 이방인들은 좁은 지형을 이용해서 암벽을 부숴 매장시키자 주장했고, 기사들은 쉽사리 찬성하지 못했다.

트롤들은 벌써 샛길 중턱까지 올라와 아성에 근접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미처 피신하지 못한 영주의 딸이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조금만 더 버티면 타오르는 봉화대를 본 원정대가 돌아오겠지만, 부상을 당했어도 워낙에 강한 마물인지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남은 병력이 무너지면 요새가 함락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데다 트롤들은 특유의 자생능력으로 벌써 상처를 회복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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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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