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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51화 (51/155)

51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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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시험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근방에 울려 퍼졌다.

잠시간의 휴식이 끝난 뒤 성문 앞 시험장은 다시금 인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린 과일이나 육포 같은 주전부리들을 하나씩 입에 물고는 어서 시작하라는 듯 손뼉을 쳐댔다.

박 차장 무리도 그중에 섞여 다른 이방인들과 같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쳐 댔는데, 잔뜩 긴장한 한 주임의 귀에 들어오진 못했다.

허허벌판 위로 세 계단쯤 높은 정사각형의 목조 경기장이 들어서고 그 가운데로 로하겔 경이 올라가 외쳤다.

“아크만 부대 기사단장 로하겔 브리티지다. 심판은 내가 친히 볼 예정이니 소란은 일절 꿈도 꾸지 말 것! 빨간색 조와 노란색 조는 올라와서 마주 보고 선다!”

그의 호령에 참가자들이 양쪽에서 각각 계단을 올라 경기장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기대했던 쇼가 펼쳐진 듯 우레와도 같은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람한 덩치와 날렵한 자가 각각 중앙에 서서 힘겨루기를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날렵한 용병의 사슬 낫이 상대의 몸을 휘감고 코앞에 들이닥쳤다.

당하고 있던 용병이 다급히 항복을 외치자 첫 번째 주자의 경기가 끝났다. 날렵한 용병은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상대 조의 다음 타자와 맞붙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대치전이 이어지고 승리를 쟁취한 조는 두 팔을 뻗어 환호성을 만끽했다. 패한 조에서는 각각 자신의 활약이 눈에 띄었는지를 반추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이윽고 한 주임이 속한 초록색 조와 파란색 조의 예선전이 이어졌다. 맨 처음 나선 이는 여우 수인족인 폰이었다.

폰은 허리춤에서 짤막한 단검 두 자루를 꺼내 자세를 한껏 낮추고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주시했다.

상대는 폰을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거나하게 끌어올렸다.

“더러운 잡종이 이 몸의 첫 상대라니. 사냥은 규칙 위반이 아니지 않나? 살인이라는 건 사람한테나 해당하는 말이잖아, 안 그래?”

호버크(쇠사슬 갑옷)를 차려입은 용병이 기다란 창을 어깨 위로 메고 팔을 두르며 비죽거렸다.

폰은 작게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다가 입을 열었다.

“사생아 발칸. 네놈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비천한 핏줄이라 기사가 될 수 없으니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거겠지. 잡종은 내가 아니라 네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뭣이? 내 아버지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아비는 몰라도 네 어미가 뒷골목 출신이라는 건 지나가던 검은 등 쥐도 안다.”

이를 부득거리며 발칸이 자세를 고쳐 잡고는 번쩍거리는 창을 드세게 그러쥐었다.

넘실대는 살기에 한 주임이 움찔한 것도 잠시, 로하겔 경의 ‘시작!’ 소리에 두 사람은 너나 할 거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종류가 다른 두 개의 날붙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이윽고 두 자루의 단검을 교차해 거대한 창을 막아선 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발칸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폰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잡종들은 무식하게 힘만 세다더니, 네놈은 그조차도 안 되나 보지?”

“…내가 할 말을 대신하는군. 사생아도 잡종이라 그런지 힘깨나 쓴다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힘에서 발칸에게 밀리고 있음은 사실이었기에, 버티고 있던 그의 뒷다리가 바닥을 조금씩 문지르며 미끄러지고 있었다.

폰은 뒷공간이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을 빠르게 확인한 후, 다릿심을 이용해서 높이 뛰어올랐다. 장점인 도약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공격하려는 심산이었지만 무기 상생이 좋질 못했다.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높은 창은 빠른 속도로 폰의 명치를 향해 날아들었고, 결국 바닥에 쓰러진 쪽은 폰이 되어 버렸다.

“……내가 졌다. 항복이다.”

바닥에 누워 얌전히 두 손을 올린 폰이 깔끔하게 패배를 시인하자, 발칸이 환희에 찬 웃음을 지으며 겨누고 있던 창끝으로 폰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잡종 주제에 인간한테 덤비다니, 아. 머리도 짐승 수준이라 미개한 건가?”

“사생아 발칸! 투항한 자에게서 당장 창을 거두어라!”

“뭐요?”

아차. 로하겔 경이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발칸! 하고 의미 없이 불렀다.

잠시간 뭐 씹은 얼굴을 하며 물러나던 발칸은 이내 승자의 오만함으로 가득 찬 얼굴로 환호성을 만끽했다.

폰은 약간의 피가 배어 나오는 볼을 손등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축 처진 어깨로 돌아왔다.

“면목이 없다.”

“사생아라지만 저놈 역시 고위기사인 부군의 피를 물려받았다 이거지요.”

폰의 어깨를 토닥이며 블라산코가 중얼거렸다.

발칸은 다음 경기도 제 몫이라는 듯 가운데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조원들 역시 딱히 나서려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하게 위로 올라가려는 의도가 명확했다.

이한율은 한 주임이 손수건을 꺼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폰의 상처를 봐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냉큼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제가 전부 상대할게요. 마지막까지 전부 다요.”

말을 마치고 걸어가는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딘지 냉랭한 목소리에 한 주임은 그 뒷모습을 잠시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왜 저렇게 적극적이지.’

* * *

‘항복’을 외치는 용병들의 목소리는 물속에서 뭉개지고 흐트러져서 웅얼대는 울림으로 퍼져 나올 뿐이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용병은 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수중에서 공기 방울만 연신 뱉어 내다가 결국 무기를 떨어뜨리고 손을 들어 항복 의사를 밝혀야 했다.

“승자, 이한율.”

로하겔 경의 판정은 참가자를 호흡곤란 속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주문과도 같았다.

이한율이 지팡이를 거두자, 상대의 머리를 속박하고 있던 둥그런 물웅덩이가 촥 바닥으로 뿌려졌다.

“쿨럭! 쿨럭! 제기랄! 비겁한 마법사 놈이!”

“다음이요.”

이한율은 저를 찢어발겨도 시원찮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는 상대를 깨끗하게 무시하고는 남아 있는 두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거인족과 비등할 만큼 온몸이 근육질로 뒤덮인 용병이 주춤거리며 아직 차례가 남은 다른 조원의 등을 떠밀었다.

“나, 나는 어릴 적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고. 미안하지만 기권하겠어.”

“흠.”

그의 포기로 조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늘씬한 체격의 전사가 검을 빼내며 걸어 나왔다.

걸음걸이마다 요염함이 뚝뚝 묻어 나오는 매혹적인 모습이 자연스레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용병은 그 시선을 마음껏 즐겼다.

“잘생긴 도련님, 얄팍한 수로 여기까지 올라온 건 칭찬해 줄게. 마물을 상대할 땐 정정당당이라는 말도 웃기잖아?”

그녀는 입꼬리를 매력적으로 말아 올리며 그의 마법을 비겁하다는 듯 매도했으나, 이한율의 감정까지 건드리진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조형물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로하겔 경의 시작 구호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홀릴 듯한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이한율을 보며 그녀는 ‘신관 나부랭인가?’ 하고 잠시 생각하다 재차 입을 열었다.

“뭐, 좋아. 내 진짜 장점은 세뇌가 아니라 속도거든. 숨이 차기 전에 제압해 버리면 그만이지.”

그녀는 로하겔 경에게 준비가 되었다는 눈짓을 하고는 곧바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머리에 투구 형태의 물이 씌워졌고, 그녀는 숨을 참은 채로 눈을 부릅뜨고 흐릿하게 보이는 남자를 향해 달렸다.

상대의 목에 검을 들이밀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몸이 둥실 공중으로 떠올랐다.

‘제길! 여기서 물의 양을 더 늘릴 수가 있었단 말이야?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었나?’

그녀는 머리를 넘어 전신이 물속에 잠겨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팔다리를 휘저어 봐도 꼼짝없이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더 이상의 몸부림은 무의미하다는 뜻이었다.

손에서 놓친 검이 물 밖으로 떨어지며 쨍그랑! 하는 마찰음을 냈다.

그 이후의 경기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한율은 누가 나오든 간에 그저 상대방을 물 안에 가둔 뒤, 공중에 띄워 항복 사인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마지막 경기, 마지막 참가자 역시 같은 방법으로 허무하게 패배했고 관중들은 단조로운 경기에 거침없는 야유를 쏟아 냈다. 이한율은 그런 것 따위는 일절 들리지도 않는 사람처럼 돌아서서 빙긋 웃었다.

“승자, 이한율. 이상 결승전을 종료한다.”

로하겔 경은 약간은 지루해진 얼굴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 * *

“이건 말도 안 돼! 그 여자는 결승까지 손 하나 까딱 안 했다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기는 나머지 두 명도 마찬가지야.”

스캄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루가 그의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부대장의 집무실 밖을 지나가던 움리족 도제가 그 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들고 온 화살촉 꾸러미를 몽땅 쏟아 버릴 뻔했다.

“미르는 원래 영입을 제안하려고 했던 거인족이고, 블라산코는 아이노스 귀족들의 검술 선생으로 이름을 날렸던 유명인사지.”

“귀부인들과 질펀하게 놀아나다가 부리나케 레비탄으로 망명한 그놈 말이야?”

스캄이 굳이 콕 집어 명시하자 루의 가뜩이나 까무잡잡한 얼굴이 불타오르듯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스캄은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웠다.

“스캄!”

“부대장이라고 불러라, 인석아. 언제까지 열두 살 망아지처럼 굴 거냐?”

그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서 설원 늑대의 표식이 그려진 망토를 어깨에 둘렀다.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루를 피해 도망가려는 심산이었다.

고막이 터져나가기 전에 등 뒤에서 ‘나는 인정 못 해! 못 한다고!’ 악다구니를 써 대는 소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했다.

스캄이 건물을 빠져나와 신입들이 집결해 있다는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티보가 어느샌가 슬쩍 다가와 어울리지도 않게 머뭇거렸다.

“부대장.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뭐.”

“이방인들을 같은 조에 넣은 거요.”

“스읍! 조용히 해, 이 멍청한 녀석아! 이 바로 앞에 신입들이 전부 모여 있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냐?”

펄쩍 뛰면서 건물 코너를 손으로 가리키자마자 보이는 사람에 으악! 하고 바닥에 쿵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스캄에게 붙들려 같이 넘어진 티보가 얼얼한 둔부를 매만지다가 이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귀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손이 달달 떨렸다.

“시, 신입. 여, 여, 여기는 어쩐 일로다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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