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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60화 (60/155)

60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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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에 빠져서 혼자 대각선으로 달리던 것을 알아채자마자 잽싸게 고삐를 틀었다.

“죄송합니다!”

한 주임은 얼른 사과한 뒤 눈을 꽉 감았다가 뜨고 입술을 깨물었다.

소풍 가는 것도 아닌데 한심한 생각으로 집중력을 흐렸다는 사실이 급격히 창피해졌다. 앞에서 달리던 용병 몇 명이 뒤를 돌아보자 더욱 민망해져서 그녀는 숨도 안 쉬고 퀴버를 몰았다.

조금 뒤 쇠사슬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격자문이 위로 올라가더니 거대한 도개교가 해자 위로 묵직하게 떨어졌다.

토벌대는 요새 밖, 언 땅을 두드리는 요란스러운 말발굽 소리를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탁 트인 대지 위로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작은 흙먼지가 일었다가 사그라지기를 한참, 잎사귀가 바늘처럼 뾰족한 침엽수림을 헤치자 마른 풀이 듬성듬성 돋아난 구릉지가 펼쳐졌다.

얕은 둔덕이 울퉁불퉁 이어지는 구릉에 들어선 그들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선두의 신호에 맞춰 멈추어 섰다.

말머리를 대원들에게 돌린 브레고가 두리번거리는 일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는 국경지대다. 보다시피 땅이 이 모양이라 개척할 엄두도 못 내고 방치되고 있는 구역이지. 로엘에서 스리슬쩍 무단 점령을 노리고 있기도 한 곳이기도 하고.”

그의 말대로 길을 내고 건물을 짓기에는 들쭉날쭉한 언덕이 너무도 많은 척박한 지형에 전원의 시선이 내려앉았다.

“공식적으로는 제국령이니 법에 따라 여기서 마주치는 로엘 군은 사살이 원칙이다.”

짐짓 엄하게 바뀐 말투에 한 주임은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브레고는 곧바로 풀어진 얼굴로 장난스레 덧붙였다.

“뭐, 지금은 마주치면 잡아가서 배상금을 물리지만. 로엘 놈들은 탈영병이라고 박박 우기더라고.”

그의 말에 덩달아 긴장했던 일부 수습기사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자 브레고는 유쾌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여기서 소 사냥을 한다. 오늘 저녁에는 바비큐를 해 먹자!”

* * *

한 주임은 브레고가 말했던 ‘소’가 저 앞에 있는 거대하고 기괴한 형태의 짐승을 가리켰다는 사실이 황당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멀리서 무리를 지어 이동하던 고르곤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한 토벌대는 지척까지 이르도록 경계하지 않는 무리 앞에서 천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 주임은 다른 기사들처럼 롱소드를 빼내 들고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언뜻 소 모양 같기도 한 고르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웬만한 사륜마차 한 대 크기만 했다.

눈높이보다 훌쩍 위로 올려다본 머리에는 끝이 뾰족하고 구불거리는 뿔 두 개가 흉흉하게 박혀 있었고, 그 아래로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 하나가 물기를 머금은 채 번뜩거렸다.

소름 돋는 외눈박이 괴물 소에 척추서부터 뒷골까지 쭈뼛 솟는 기분이었다.

손마디가 저리도록 검을 움켜쥐고 서 있었지만, 장정 열 명이 달려들어도 한 마리를 겨우 상대할까 말까 한 위압적인 크기에 위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한 마리도 아니고 족히 열 마리는 넘어 보이는데, 수습기사와 용병만으로 이루어진 소대에서 이를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그녀뿐만 아니라 좌중에도 넘실거렸다.

고르곤들 역시 규모를 보고는 지나가는 애벌레 보듯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직은 먹을거리가 있던지라 귀찮은 사냥감인 인간을 그들은 무시했다.

“다들 뒤로 물러나.”

팽팽한 긴장감을 깨뜨린 건 야닉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한 주임은 혼자 몇 발치나 앞에 나가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아연하게 쳐다봤다. 고르곤이 마음만 먹으면 수 초 안에도 들이받을 수도 있을 듯한 가까운 거리에 심장이 곤두박질을 쳤다.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서 있던 한 주임을 이한율이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이한율은 그녀의 팔을 잡아 다른 일행들이 물러난 곳보다 좀 더 후방으로 잡아끌고는 야닉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닉은 표정의 변화 없이 잔잔한 걸음으로 고르곤 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윽고 바닥부터 푸른색 불꽃이 튀어 오르더니 곧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고르곤의 발톱 부근까지 퍼지던 불꽃은 무리가 광포해지기도 전에 곧바로 거대한 화염이 되어 순식간에 그들을 덮쳤다.

불길을 뚫고 내달릴 틈도 없이 고르곤들은 그 자리에서 발작 같은 울음소리를 부르짖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단백질 타는 냄새가 강렬하게 섞여 들어갔다. 근육으로 뒤덮인 다리가 빠르게 녹아내려 뼈를 드러내자 수습기사 한 명이 놀라 딸꾹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본 브레고가 깔깔 웃으며 소리쳤다.

“살살 합시다, 대장! 애 경기 일으켜요!”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에 돌아본 야닉이 곧바로 한 주임을 찾아냈다. 경기를 일으킨다는 사람은 다행히 그녀가 아니었다.

루야 어릴 때부터 도축장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던 꼬맹이니 걱정은 안 했다지만, 한 주임이 의연한 것을 보니 뒤늦게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전사 체질이야.’ 하는 만족감과 ‘왜 겁을 먹질 않지?’ 하는 불편함. 이중적인 마음이 동시에 맞부딪힌다.

무엇이 더 크게 와닿았는지는 저도 모르게 찌푸린 이맛살로 충분했다.

‘용병단에 입단까지 시키려고 해 놓고 이제 와 그녀가 몸을 사리길 바란다니.’

어불성설이고 모순적이었다. 그럼에도 한 주임이 잔인한 광경을 계속 보게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차라리 화력을 더 올려서 형체도 남지 않도록 잿더미로 만들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다 뿔까지 다 탑니다.”

포라킨이 불쑥 끼어들어 말리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모조리 태워 먹을 뻔했다.

야닉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도 아슬아슬한 순간에 맞춰 그는 불길을 거둬들였다.

육중한 몸을 지탱하던 하체가 녹아 없어진 고르곤들이 하나둘 지축을 울리며 땅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눈앞에서 지면이 흔들거렸다.

“자, 이제 다들 나와서 마저 마무리하고 해체작업 들어가자!”

마지막 남은 우두머리격 역시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자 브레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는 고르곤 한 마리 앞에 자리를 잡고 대원들을 주위로 모이게 했다.

“이놈들의 약점은 바로 눈이다. 도감에도 나와 있는데, 다들 그 정도는 공부해 왔지?”

브레고의 말에 한 주임이 예습했던 내용을 떠올리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본 나머지 사람들이 움찔하더니 곧 힘차게 고갯짓을 따라 했다. 대다수가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한심한 얼굴로 이들을 바라보던 브레고가 쯧, 혀를 차고는 누워 있는 고르곤의 머리 옆에 자리 잡았다.

“먼저 눈 한가운데를 팔 길이만큼 깊게 찔러서 숨통을 완전히 끊고.”

그가 대검을 들고 손수 시범을 보이자 아까 딸꾹질을 하던 어린 기사의 얼굴이 이제는 밀가루처럼 하얗게 질렸다. 브레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척한 뇌수가 묻어 나오는 검을 빼 든 뒤에 손으로 뿔 하나를 덥석 쥐었다.

“여길 잡고 뿔 주위를 동그랗게 긋는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깊이로.”

이번에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고 푹 찍어 누른 뒤에 긋기보다는 톱질하듯 위아래로 써걱거렸다. 억센 가죽 때문인지 두꺼운 육포를 찢는 듯한 마찰음이 이어졌다.

브레고는 검을 내려놓고 한 발을 머리 위에 턱, 올린 채 양손으로 뿔 하나를 그러쥐었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뽑는다! 으쌰!”

마치 거대한 작물 뿌리를 땅에서 캐는 것처럼 머리 가죽 안에서 기다란 뿔 뿌리가 쑥 빠져나오고 동시에 솟아오른 피가 브레고의 얼굴과 갑옷에 흥건하게 튀었다.

각진 턱 아래로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브레고는 자신을 향한 경악의 시선들은 보이지도 않는지 대어라도 낚은 어부처럼 기다란 뿔을 들어 올리며 싱글거렸다.

“자, 별거 아니지?”

한 주임은 고개를 돌려 혹시 박 차장처럼 구역질이라도 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폈다.

핏기 없이 싸해진 사람이나 오만상을 쓰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대체로 상태들은 양호했다. 아마도 아크만 주민들에게 있어 이 정도의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그다지 생경한 풍경은 아닐지도 몰랐다.

‘나도 이젠 이 정도는 괜찮은 것 같아.’

그녀는 피 칠갑을 한 브레고를 보며 생각보다 그렇게 못 본 꼴은 아닌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도 강렬한 장면을 많이 본 것이 도움이 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뿌듯함이 차올랐다.

브레고의 시범을 필두로 기사들과 용병들이 하나둘씩 짝지어 나머지 고르곤에게 비장하게 다가갔다. 한 주임은 두리번거리다가 포라킨이 손짓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고르곤 중에 그나마 개체가 작은놈 앞에 선 이한율과 포라킨이 팔짱을 끼고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작아서 그런지 바로 죽은 것 같은데요, 단장님.”

“엉덩이 부분이 그나마 덜 탔는데. 한율 님, 이쪽으로 오셔서 화염을 써 보시겠어요?”

포라킨의 말에 그가 걸음을 옮겨 후미로 다가갔다.

포라킨의 말대로 화석처럼 타들어 간 표피 사이에 그나마 희끄무레한 거죽이 눈에 들어왔다. 이한율은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을 한번 훑은 뒤 손바닥에 마나를 모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야닉이 일으켰던 푸른 염화를 떠올리며 단전에서부터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황자는 불 속성이고, 자신을 물 속성이니 그에게 불로써는 대적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열성을 내는 이유는 오로지 남자로서의 자존심 문제였다.

이윽고 손바닥 안에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동그랗게 타올랐다.

함축하고 압착한, 있는 힘을 다해 모은 불꽃이었다. 촛불 심지처럼 중심부가 파랗게 일렁이는 것을 보며 그는 고르곤을 향해 그것을 가차 없이 날렸다.

난데없는 마법에 흩어져서 작업에 몰두하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꽂혔다.

정확히 목표한 곳으로 날아간 불꽃이 퍽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이내 공중으로 연기를 피워 냈다. 한 김의 잿빛 연기가 바람을 타고 사라진 자리에는, 표면이 살짝 그을린 고르곤의 엉덩이가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이한율은 저도 모르게 이를 짓씹었다.

있는 대로 힘을 모아 던진 회심의 한 방이었건만 고작 겉만 조금 태웠을 뿐이라고?

“이봐, 신입! 네 특기는 태우는 게 아니라 침수시키는 거 아니었나?”

누군가 조롱조로 던진 농담에 이한율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주먹을 쥐었다.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포라킨이 이한율의 로브 자락을 살짝 잡아당겨 주의를 끌었다.

“고르곤은 같은 불 속성을 지닌 상급 마물이라 효과가 약한 겁니다. 마물에게도 각각 저항성과 취약점을 지닌 속성들이 있어요. 그걸 알아 두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황자는 순식간에 녹여 버렸죠. 그것도 열세 마리를 동시에.”

사체에 얼굴을 고정한 채 나지막이 말하는 이한율을 보고 포라킨은 어깨를 들썩였다.

“그분은 ‘규격 외’라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차라리 그가 힘의 차이를 빨리 깨닫고 포기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열등감에 불만 붙인 꼴인가 하고 포라킨은 마음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그에게는 이런 식으로 지도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포라킨이 다른 용병에게 뿔 채취를 맡기려는 찰나. 푸욱,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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