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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62화 (62/155)

62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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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과 용병들은 한껏 인상을 쓰며 와이번의 발톱을 뽑아 자루 안으로 욱여넣었다. 어찌나 고약한 냄새였던지 꽉 찬 자루를 등에 인 종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오늘은 이쯤하고 여관으로 이동해서 쉬도록 할까.”

야닉이 바람을 등지고 서서 말하자, 브레고가 신이 나서 얼른 소리쳤다.

“자, 자, 다들 달라붙어서 사체들을 모두 한곳에 모으도록!”

질척거리는 덩어리들을 낑낑대며 옮기는 남자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모습을 본 이한율이 의아한 얼굴로 포라킨에게 물었다.

“바람 마법을 쓰면 금방 모을 수 있지 않을까요?”

“황자님은 위험하지 않은 일에는 되도록 몸을 쓰자는 주의라서요.”

이한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제가 힘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개똥철학인지 이해가 안 갔다. 아니, 굳이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천사 같은 얼굴로 웃으며 끄덕거렸다.

“그대, 물 속성이라고 했었나?”

“……네.”

순간 이한율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야닉을 보고 몸을 굳혔다가 짧게 대꾸했다. 누가 봐도 퉁명스러운 태도였지만 야닉은 아랑곳 않고 쌓아 놓은 사체 더미를 가리켰다.

“현자 정도라면 속성이 달라도 보통 마법사들보다야 낫겠지. 헤르미네와 같이 한번 태워 봐.”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이한율은 이것을 명백한 도발로 받아들였다.

보나 마나 제대로 타지 않은 결과물을 한 주임 앞에서 보란 듯이 태워서 잘난 척을 하려는 심사일 것이다. 황자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뻔한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고 사람 좋게 웃으며 넘기는 것이 평소 신조였으나, 지금의 이한율에게 그런 것 따위는 진작에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포라킨의 팔을 덥석 잡아끌며 저벅저벅 큰 보폭으로 야닉을 지나쳐서 걸어갔다.

“저기, 한율 님?”

천하의 포라킨조차 당황해서는 뛰다시피 끌려가자, 야닉이 설핏 웃었다.

어떻게 예상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지. 이한율의 행동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런 놈들이 나중에 사고 한번 크게 치지.’

이한율과 포라킨은 수북하게 쌓인 더미 앞에 서서 뭐라 이야기를 짧게 나누다가 이내 불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뜩이나 축축한 표피 위로 낭자한 피 때문인지 쉽사리 불이 붙지 않자 이한율의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야닉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한 주임의 옆으로 향했다.

그녀의 허리춤에 손을 두르려 팔을 뒤로 뻗는데, 손에 닿는 감촉이 뭔가 이상하다. 의아해서 돌아본 곳에는 한 주임이 아닌 웬 꼬맹이가 대신 서 있었다.

별안간 밀쳐진 한 주임이 비틀거리고, 루가 심술이 바짝 오른 얼굴로 저를 이글이글 노려보고 있었다.

“……후.”

고집스럽게 다문 입을 보자니 탄식과도 같은 한숨이 절로 흘렀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요새에 두고 나왔는데, 이번에 신입 용병들을 뽑아 버린지라 결국 꼬맹이의 원정 차례가 오고 말았다.

저 성질머리에 같은 시기에 입단한 놈들만 데리고 나올 수도 없고, 하필이면 한 주임과 함께 나오게 되다니. 결단코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야닉은 결국 손을 거두고 저 혼자 팔짱을 꼈다. 그러자 루가 단단히 얽힌 그의 팔 사이를 파고들어 기어이 제 손을 끼워 넣는다. 그는 단호한 얼굴로 루를 떼어 냈다.

“안 돼.”

노골적인 거절에 귀까지 벌게진 루가 어버버 입만 벙긋거리다가 돌연 몸을 돌려 수풀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것을 본 야닉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브레고에게 눈짓하자 곧바로 알아들은 브레고가 재빨리 뒤를 쫓았다.

‘시켰으면 좀 봐 달라고요.’

그 광경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포라킨이 속으로 읊조렸다. 그러곤 손이 아니라 눈에서 불을 쏘는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는 이한율을 보며 낮은 한숨을 흘렸다.

이한율은 저쪽에서 나는 소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마물을 태우는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포라킨은 약간 짠한 마음으로 지팡이에 조금 더 마력을 불어넣으며 그를 도왔다.

* * *

말발굽에 밟힌 새끼 도마뱀이 찍, 하고 단말마를 질렀다.

날이 저물기 시작한 뒤 늪지대로 진입한 토벌대는 급격히 축축해지는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이동했다. 구불구불한 잎이 달린 기다란 수풀이 성인 어깨만큼 올라와 이곳저곳 어지러이 자라 있었고, 질척한 바닥 곳곳엔 흙탕물이 고여 철벅거렸다.

타라 늪지대는 다른 북부지역에 비해 특이할 정도로 지열이 높아 추운 날에도 습기가 얼지 않고 대기 중에 고여 있는 땅이었다. 때문에 추위에 지친 철새들이나 여행자들이 한 번씩 들러 재정비를 하는 주요 휴식처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낯선 곳이면 으레 불안한 시선으로 눈을 굴리던 수습기사들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는지 편안한 얼굴로 한두 마디씩 주고받는 중이었다.

말간 얼굴의 기사가 나란히 있던 수습용병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바깥 생활을 오래 한 용병이 알 법한 질문이었다.

“이런 곳에도 여관이 있나? 사람은커녕 마물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정령들의 땅에는 원래 마물이 못 들어와요. 여긴 취발론 같은 요정 구역이걸랑요. 그런데 여관은 당최 무슨 소린지 저도 모르겠네요.”

음습한 공기에 수습용병이 재채기를 한번 크게 하고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뒤에서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들은 한 주임이 쫑긋 귀를 세웠다. 용병의 말을 듣고 나자 어쩐지 묘하게 풀어져 있던 사람들의 태도가 이해가 간다.

그녀는 잠시나마 고삐를 놓고 긴장으로 굳어 있던 손목을 꾹꾹 눌렀다.

한결 느슨해진 호흡으로 얼마간 이동하자 그들의 눈앞에 제법 커다란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으로는 꽤 그럴싸한 규모의 마구간이 뒤뜰까지 이어져 있었다.

넋을 잃고 주위를 둘러보던 수습용병이 홀린 듯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진짜 여관이 있었단 말이야?”

용병의 말에 브레고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더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거 짓느라 고생깨나 했지. 자재 옮기랴, 목공들 호위하랴, 난폭한 드워프 비위 맞추랴. 어우.”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몸을 과장해서 떨어 대는 브레고를 보며 야닉이 픽 코웃음을 쳤다.

브레고는 땅속에 얼기설기 대강 박혀 있는 무릎 높이의 목책을 넘으려 불쑥 발을 뻗으려다가 곧바로 야닉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뭐 잊은 거 없어?”

아차차, 그가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멋쩍게 웃었다.

“일 년 만이라 깜빡했어요.”

곧장 들어가려던 것을 멈추고 그가 뒤돌아 여관에 처음 방문한 이들을 위한 설명을 덧붙였다.

“집요정들이 나갈 시간을 줘야지. 브라우니들은 사람을 마주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대사가 뭐였더라.”

그가 잠시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퍼뜩 생각이 났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거였지. [정말 피곤하군].”

마지막 말에 순간 오두막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붉은색에 가까운 노란빛이 커다란 건물 전체를 아우르다 곧이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지더니 돌연 끼익, 하고 저 혼자 문이 열린다.

그 기이한 광경에 한 주임이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야닉이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집요정들이 뒷문으로 나갈 거야.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가 그때 들어가지.”

일행들은 덩달아 숨죽여서 가만히 오두막을 주시했다.

이윽고 어두운 문 안쪽에서 달그락거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맨발로 마룻바닥을 분주하게 달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발소리들은 어린아이들이 달리는 것처럼 가볍고 경쾌했으나 들리는 목소리는 마치 백 살 먹은 노인들처럼 지긋했다.

[주인이 돌아왔나 봐!]

[서둘러! 마주치기 전에 나가야 해!]

[마침 스튜가 거의 완성돼 가던 참이었는데, 이번 건 버리지 않아도 되겠어.]

한 주임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고 오두막과 야닉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런 그녀에게 야닉은 고개를 기울여서는 필요 이상으로 달콤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브라우니가 만든 스튜는 아주 유명해.”

“어, 응.”

그가 속살거린 쪽은 왼쪽 뺨인데 얼굴 전체가 금방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한 주임은 뻣뻣하게 대꾸하고는 힐끔 루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눈에서 불을 뿜고 있는 루가 보였다.

루는 당장이라도 달려와 머리털을 죄 뽑아 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제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건 아니니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저러고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 어쩐지 더 으스스했다. 그런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어필하겠다고 야닉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는 자신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 주임은 차라리 두 사람 다 무시하는 선택지를 골라 포라킨 옆으로 냉큼 붙어 섰다.

문이 열린 오두막 안에서는 브라우니들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이내 사그라지더니 뒷문이 작게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엇비슷하게 브레고가 종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말들을 마구간에 넣고 여물은 조금만 부어 놔. 마구간 구석에 가져온 꿀과 빵, 우유를 약간 꺼내 놓는 걸 잊지 말고. 그러면 브라우니들이 알아서 밤새 잘 돌봐 줄 거다.”

말을 마친 그가 가장 먼저 오두막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한 주임은 줄지어 이동하는 대원들을 따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일 년 동안 비워져 있던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깔끔한 실내를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고 두리번거렸다. 밀랍으로 광을 낸 마룻바닥은 먼지 한 톨 없이 반질거렸고 천장 구석구석 거미줄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은 여타의 운영 중인 여관들보다도 깨끗했다.

입구에 서 있는 대원들을 지나쳐서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 종자들 몇 명이 날랜 동작으로 여장을 풀고 방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아래층은 저희와 용병단 분들이 사용하실 거고요, 황자님과 기사님들, 사자님과 여성분들은 1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인원수에 비해 부족한 방이었지만 용병들은 널찍한 방 내부와 커다란 복층 침대를 보며 들뜬 얼굴들이었다.

끽끽 소리를 내는 나무계단을 밟으며 올라선 1층은 기다란 난간이 복도처럼 이어진 전형적인 여관 구조였다.

“황자님께선 늘 쓰시던 곳으로.”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을 가리키며 하인이 그에게서 검대를 받아 들고는 총총걸음을 옮겼다. 그 옆으로 브레고와 기사들이 방 두 개에 나눠서 들어가자 한 주임이 얼른 포라킨 옆에 따라붙었다.

“브레고 님은 용병인데 위층을 쓰시네요?”

“저 양반이 보기엔 저래도 일단 귀족이라서요. 엘다 백작가의 차남입니다. ‘브레고 경’이라고 불리면 닭살 돋아 하니까 놀리고 싶을 때 쓰시면 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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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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