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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65화 (65/155)

65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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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야닉의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온 한 주임이 문을 걸어 닫자마자 내뱉은 첫마디였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알기 때문에 이유는 묻지 않았다. 딱히 사과도 필요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용당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으니.

한 주임은 침대 끄트머리에 대충 걸터앉아 당연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 야닉을 보고 조심스럽게 장갑을 벗었다.

매일 잡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긴장감이 오늘따라 원망스러웠다. 촌스럽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따위의 잡생각이 맹렬히 정신을 지배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르곤과 와이번을 혼자서 잡았던 그가 떠올라 화들짝 놀란 손을 거두었다.

“응?”

영문을 몰라 쳐다보는 호박색 눈동자에 한 주임은 확신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오늘 마법 많이 썼는데 나 줄 것도 남아 있어? 모자라서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야닉은 잠시간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다가 성급하게 일어나 다가왔다.

“불안하면 직접 느껴 봐.”

그녀는 순간 저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손길에 숨을 멈추고 눈을 치켜떴다.

허리를 끌어당긴 채 붙잡힌 손은 단단하게 얽혀서 그의 가슴께에 닿아 있었다. 마치 블루스를 추는 연인 같은 자세에 단전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때. 내가 위험해 보여?”

다른 의미로 위험해 보이긴 하는데…….

그녀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전해지고 있는 마력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야닉의 상태도 딱히 나빠 보이지도 않고.

마력의 흐름에 집중하자 부끄러움은 곧바로 휘발되어 날아갔다.

한 주임을 살피듯이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 장난기가 돋았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사실 지금…….”

괜히 심각한 얼굴을 하자 곧바로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떨어지려고 몸을 물리는 그녀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붙잡아 밀착시키듯이 몸을 붙였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위험해.”

“…너!”

두 손으로 강하게 그를 밀치며 저만치 떨어져 나간 한 주임의 얼굴이 거의 홍시처럼 변해 있었다. 야닉은 하하하 하고 소리 내 웃었다.

* * *

“…방인, 이방인!”

한 주임은 허리를 쿡쿡 찌르는 손길과 속삭이는 목소리에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숨죽여 저를 깨우고 있는 루가 보였다.

“…밤에 불 켜면 안 된다고 아까….”

몽롱한 정신에도 루의 얼굴보다는 그녀가 들고 있는 양초 하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 중얼거리자 루가 작게 혀를 차더니 후, 하고 불을 껐다.

한 주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 좀 낮춰. 포라킨이 깨겠어.”

몹시 수상하게 소곤거리는 것이 이상했지만 한 주임은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아래로 조용히 다리를 내렸다.

머리맡에 있던 장갑을 끼고 부츠까지 신자 루가 더듬거리며 벽을 짚어 나가다가 손에 걸린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조용히 열린 문틈으로 두 여자가 숨죽여 방을 빠져나갔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는 이 방 저 방에서 요란하게 새어 나오는 코골이 소리에 묻혀 은밀하게 가려졌다.

한 주임은 반쯤 감긴 눈을 힘주어 뜨고는 천천히 루를 뒤따랐다.

[집주인이 돌아왔으니 우리가 잘 때는 브라우니들이 알아서 경비를 설 거다. 함부로 밖에 나갔다가 침입자로 오해받아서 공격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들 해라.]

취침 전에 브레고가 공지했던 것을 떠올리며 루가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이방인 여자가 처음도 아니고, 개망신 주는 일쯤이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지.

‘감히 누구한테 꼬리를 쳐.’

반반한 얼굴 하나 믿고 원정까지 쫓아오는 뻔뻔스러움을 가만둘 순 없었다. 용병단까지 들어오겠다고 아주 생난리를 친 여자였다.

세레나도 없겠다, 아주 단단히 작정한 모양새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밟아 놓지 않으면 앞으로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론 초조함이 더 컸다.

세레나가 행방불명된 직후부터 야닉에게 들이대던 여자는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가 눈길을 준 적은 제가 알기론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데려온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투,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딱히 부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혈기왕성한 나이에 독수공방하는 것을 자신 때문이라 당연하게 여겼다.

어릴 때부터 줄곧 나를 예뻐했으니까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린 거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루는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하랑, 스캄을 포함해서 몇몇 멍청한 놈들은 한 주임을 이미 안주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고 재수 없는 헤르미네 포라킨마저 이방인 편에 붙었다. 불안감이 부지불식간에 온몸을 잠식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애써 누르며 주방을 향해 가는데, 말없이 따라오던 한 주임이 뒤에서 느닷없이 어깨를 덥석 잡는다. 루는 하마터면 꽥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디 가는 건지 말해 줘야죠.”

오라면 올 것이지, 신중한 척하기는!

루는 가까스로 짜증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착실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실은 아까 귀찮아서 안 씻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기회가 있을 때 씻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그렇다고 혼자 가기는 무섭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척, 제가 생각해도 명연기였다.

한 주임이 ‘그런데 왜 나를?’ 하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금방 이해가 갔는지 아, 하고 납득했다.

단장님이랑 사이가 나빴지, 참.

방으로 돌아와 루와 포라킨이 모두 곯아떨어진 것을 보고 서둘러 씻고 뒷정리까지 한 탓에 제법 고단했지만 같은 여자로서 모른 척하기도 그렇고….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 그냥 도와주기로 했다.

“불은 쓰면 안 돼요. 집요정들이 놀라서 도망간다고 했으니까.”

“되게 겁 많네. 나도 들었거든? 마법으로 데울 테니까 조용히 하고 따라오기나 해.”

한 주임은 무안함에 입을 다물었다.

루는 같이 가 달라고 한 주제에 되게 틱틱거렸다. 그런데도 별 저항심이 들지 않는 이유는 열 살이나 어린애라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전에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간에 두 사람은 까치발을 들고 나란히 주방으로 향했다.

“쉿,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앞장서던 루가 한껏 자세를 낮추고는 문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

한 주임은 숨소리까지 삼키고 입을 막았다. 주방 안에서 흥얼거리는 음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뭐지?]

[브라우니가 만든 스튜지!]

[한 입만 먹어 봐! 아니야. 한 그릇을 다 먹어야 해.]

집요정들의 목소리였다.

한 주임은 루의 옷을 당기며 얼른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루는 그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는 기어이 손잡이를 서서히 잡아당겼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마침내 뒷모습 하나가 드러났다.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만 열린 문 틈새로 두 여자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잠잠한 루와는 달리 한 주임의 동공은 세차게 흔들렸다. 출처는 의자를 밟고 서 있는 집요정의 뒷모습이었다.

브라우니는 고블린보다도 작은 키에 등이 잔뜩 굽었고 척추뼈가 울퉁불퉁 도드라져 있었다. 게다가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은 무려 여덟 개나 달려 있었다. 작은 키에 비해 과하게 커다란 발 역시 기괴하기 짝이 없다.

브라우니는 아까부터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며 한껏 신난 목소리로 떠드느라 자신이 염탐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한 주임은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브라우니가 냄비 안에 바쁘게 집어넣고 있는 것들로 시선을 옮겼다.

수다쟁이 브라우니는 친절하게도 재료 하나하나를 읊어 나갔다.

[말린 시클라멘 하나, 수명이 다한 픽시 하나, 순무 하나, 흰 비둘기 눈알 두 개….]

비둘기 눈알은 ‘두 개’라고 했는데, 냄비 속으로 퐁당 소리를 내며 들어간 동그란 것은 분명히 세 개였다.

동시에 루가 욱. 하고 목울음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브라우니가 목을 비틀더니 머리를 뒤로 휙 돌렸다.

주방 문이 끼익,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조금 열려 있는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바람 소리? 바람 소린가? 문을 손봐야겠어. 흠, 흠.]

브라우니는 노랫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다시 냄비에 집중했다.

반사적으로 루를 잡아당겨 벽에 달라붙은 한 주임이 장갑 낀 손으로 루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얼빠진 눈을 하고 있던 루가 턱을 들어 올려 한 주임을 쳐다봤다. 가슴팍이 쉼 없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건만 단단하게 다물고 있는 입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주방 안에서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 참! 깜빡할 뻔했다. 브라우니 경! 가장 중요한 걸 잊었잖아요! 죄송합니다!]

한 주임과 루는 뒤이어 걸걸하게 끌어올린 침을 뱉는 소리에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재료 준비가 끝난 냄비에 손가락을 넣어 몇 번 휘휘 젓던 브라우니는 쪽 소리가 나도록 맛을 본 뒤 만족스러운 얼굴로 냄비를 감싸 쥐었다. 이윽고 흉흉한 손바닥에서 빛이 나더니 내용물이 순식간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음식을 완성한 브라우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을 모두 정리할 때까지 두 사람은 죽은 것처럼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영원 같은 몇 분이 지나는 동안, 한 주임은 느닷없이 야밤에 끌려 나와 이러고 있는 것이 문득 황당해져서 루를 내려다봤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미간을 구기고 있던 루가 시선을 알아채고 힐끔 올려다보다가 눈을 피한다.

순간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사이 주방 뒷문이 열리고 할 일을 마친 브라우니가 밖으로 나갔다. 워낙에 커다란 발바닥을 가져서인지 한참이나 저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발소리가 희미해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터뜨린 한 주임은 긴장으로 저릿한 손바닥을 꾹꾹 눌렀다.

“…목욕은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언제 또 올지도 모르고.”

“나갔으니까 이제 괜찮아! 후딱 씻으면 돼.”

루는 짜증 섞인 말투로 낚아채듯 한 주임의 팔을 붙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스멀스멀 풍기던 묘한 냄새는 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갓 만든 스튜에서 뿜어내는 흡사 시궁창 비슷한 냄새에 두 사람은 곧장 코를 틀어막았다.

“…아씨, 너무 심한데.”

루가 먹은 소리로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다가 초기의 목적을 상기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나무 목욕통을 손으로 가리켰다.

“대단하신 이방인이니까 저 욕조에 물 채우는 것쯤은 별문제 없지? 나는 엄말 닮아서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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