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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67화 (67/155)

67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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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한 복도가 오늘따라 끝도 없이 길어 보여 거센 짜증이 일었다. 방에 도착한 후에는 발로 대충 이불을 걷었다.

엉덩이와 등을 받친 손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한 주임을 침대에 눕히자 비로소 그녀의 상태가 온전히 드러났다. 절로 심각하게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몰골이었다.

머리는 산발로 헤쳐지고 옷은 죄 진흙투성인 데다가 잔뜩 늘어나고 구겨져 찢어진 어깻죽지 사이로 맨살이 슬쩍 드러나기까지 했다.

꼬집히고 긁힌 상처가 빨갛게 부풀어 오른 얼굴마저 가관이었다.

“어, 어떡하지…….”

말을 한 사람은 야닉이 아닌 한 주임이었다.

정말로 그 말을 해야 할 사람은 그여야 하건만, 아파서 눈물까지 고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 주임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걱정을 내비쳤다.

“내가 모르고 브라우니를 때렸는데… 아….”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헤르미네를 데려올 테니.”

본능적으로 갈비뼈로 향하는 그녀의 손을 저지시키고는 그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게 무슨…….”

아직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을 비벼대며 포라킨이 제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듯 중얼거렸다.

“아래층은 왜 저리 소란스럽고, 주임님은 당최….”

“헤르미네, 치료 먼저 하고 설명은 나중에.”

재촉하는 야닉의 말에 의아함은 일단 접어 두고 침대에 다가섰다.

“…전체적으로 안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어디가 가장 아프신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태가 말이 아닌지라 던진 질문인데 한 주임이 입을 달싹이기도 전에 야닉이 성마르게 끼어들었다.

“전부 치료마법을 걸어. 전신을 다.”

“일단 좀 봐야겠으니 황자님은 나가 계시죠.”

못마땅한 눈으로 야닉을 흘기던 포라킨이 거의 쫓아내듯 방 밖으로 그를 밀치고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숨 쉴 때마다 옆구리가 욱신거려서…….”

괴로운 얼굴로 겨우 말을 꺼낸 한 주임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옷을 들쳤다. 포라킨의 눈이 신중하게 보랏빛을 띠는 환부를 살폈다.

“정확한 건 치료 사제가 봐야겠지만, 일단은 회복마법부터 걸죠. 만약에 뼈가 부러진 거면 고통이 심할 테니 그땐 말씀하세요.”

그녀의 말에 한 주임은 자연히 시트를 말아쥐었다. 이렇게까지 아픈 건 처음이라, 부러진 건지 금이 간 건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다.

포라킨은 부어오른 갈빗대 위로 손을 가까이 대고 마법을 전개했다. 손에서부터 시작된 연녹색 빛이 천천히 스며들자 한 주임이 아랫입술을 물기 시작했다.

“어떠세요.”

“차, 참을 만해요.”

계속해서 신성력을 쏟으며 묻는 포라킨에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힘겹게 대답했다.

참을 만하다는 사람치고는 가슴팍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잇새로 벅찬 숨이 비집고 나왔지만, 어찌어찌 견딜 만은 했다.

겉피부가 회복될 때는 그나마 버틸 만했는데…마법이 배 속으로 들어가 어긋난 뼈를 맞추기 시작하자 망치로 맞았을 때보다 몇천 배는 더 큰 고통이 몰려왔다.

누가 갈비뼈 사이사이마다 손가락을 찔러 넣고 반죽을 치대는 것 같은 격통이었다. 절로 발가락이 굽어들고 몸이 뒤틀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픔에 입술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악물었다. 그러다가 돌연 목구멍으로 액체가 차올라 호흡이 턱 막혔다.

“참을 만한 거면 그렇게 심한 손상은… 헉.”

“우읍, 쿨럭! 쿨럭!”

바르작거리는 몸에서 얼굴로 시선을 올리던 포라킨이 한 주임을 보고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다 토해 내세요!”

치료 중에 급작스레 피를 토하는 모습에 포라킨이 서둘러 그녀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층 수월해진 자세로 입 안에 남은 것을 뱉어 낸 한 주임이 벅찬 숨을 내쉬자 포라킨은 마치 자기가 각혈한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아프면 말씀을 하시라니까요!”

모골이 송연해져서 펄쩍 뛰는데, 이 정신 나간 이방인은 밭은 숨을 내쉬면서도 헛소리를 해댔다.

“하아, 하아. 이제… 괜찮아요.”

어딘가 통각에 단단히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부러진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 붙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을 겪고도 괜찮다는 헛소리를 한단 말인가. 말이 안 되는 것을 넘어서 소름까지 일 정도다.

포라킨이 소리를 버럭 지른 탓에 분명 걸쇠를 걸어 두었던 문이 어느샌가 활짝 열렸다.

걸쇠로 추정되는 쇳덩이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바닥을 구르고 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이는 제국의 3황자였다.

“……얼마나 다쳤길래.”

“뼈가 어긋나서 장기를 건드렸나 봅니다. 회복을 거니까 고여 있던 피가 입 밖으로 나왔어요.”

야닉은 천천히 침대로 걸어가 붉은 핏방울이 꽃잎처럼 흩뿌려진 시트를 보다가 한 주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습니다. 회복마법이 더 듣지 않는 걸 보면요. 아.”

깜빡했다는 듯 터진 입술과 긁힌 얼굴을 순식간에 싹 치료하고는 포라킨이 돌아서서 당부했다.

“자연회복이 아니라 강제로 치료한 거라 통증이 남아 있을 겁니다. 쉬면 나아지니 일단 재우세요.”

말을 마친 포라킨이 한 주임의 가방을 가져와서 문 옆에 내려놓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아까부터 북적거리는 아래층 소동을 확인해야 했다.

* * *

헤르미네 포라킨.

그녀는 스물여섯 해를 살아오는 동안 동년배의 귀족 여성들과 비교하자면 제법 풍파가 많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고향 델피온에서는 열다섯만 되어도 시집을 가는데, 저는 그보다도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혼약자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 말로는 망한 가문인 우리가 배를 곯지 않으려면 마을 지주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나 어쩐다나. 무를 수도 없게 벌써 돈까지 받아 왔단다.

폐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뭐라셨더라, 델피온에서 재능이 있는 똑똑한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고 그랬던가. 너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하셨던가.

어쨌건 간에 재미없는 남자와의 결혼 생활처럼 지루한 삶이란 지옥과도 같으니 한번 사는 인생 좋은 것, 즐거운 것은 실컷 겪어 보고 살라고는 하셨다.

여덟 살에 신부 수업하라고 보내졌던 사원에서 심신을 의탁하는 동안 그녀는 책이라는 것도 구경해 보고 공부도 하고, 또 마법도 배웠다. 결혼하기 싫어서 한 해 두 해 사원에서 버티다 보니 무려 10년이나 있었다.

그곳에서 치료마법까지 배웠을 때는 레비탄에서 큰돈을 받아 망명한 다음, 어머니의 장례식도 거나하게 다시 치렀다.

황실 마탑 소속으로 임명이 되자 그제야 끈질기게 엉겨 붙던 늙은 약혼자가 포기했다. 그 과정도 어찌나 사연이 많았던지, 사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모자를 지경이다.

얌전히 마을 지주에게 시집을 갔으면 지금쯤 어머니가 말했던 그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장면을 볼 기회는 영영 없었을 것이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포라킨은 건장한 남자들이 속옷 바람으로 바닥을 기며 웬 구정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고 있는 장면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아예 바닥에 입을 대고 호로록거리고 있었다.

마룻바닥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세심하게 훑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더니 반가운 손을 척 들었다.

맙소사. 엘다 백작가의 차남 브레고 엘다였다.

“미네, 왔어?”

님프가 사는 구역도 아닌데 그들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어 입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포라킨은 문득 주방 선반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집요정을 보았다.

[거기 대머리 주인! 손만 갖다 대고 안 먹고 있는 거 다 보인다!]

코에 덕지덕지 피딱지를 붙이고서는 가느다란 팔을 새침하게 허리에 두른 브라우니가 씨근덕거리고 있었다.

집요정의 지적에 흠칫한 숱 없는 기사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어쩔 수 없어. 차라리 이 정도면 다행이지, 괜히 성질을 돋우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라고.”

브레고가 기사의 모습을 동정의 눈길로 보다가 슬쩍 일어나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아니, 애당초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 바쁜 브라우니의 성질을 건드릴 일이 무엇, 하다가 바닥에 엎어진 스튜를 보고 깨달았다.

어떤 모자란 놈이 브라우니가 보는 앞에서 저걸 엎질렀구나. 그리고 이 남자는 그걸 수습하고 있는 것이고.

고개를 돌려 보니 이한율도 옆에서 똑같이 멍청한 얼굴로 서 있었다. 보아하니 그는 상황 파악도 다 안 된 것 같았다.

“단장님,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포라킨은 대답 대신 저만치 물러나서 쪼그려 앉아 있는 루를 쳐다봤다. 멀쩡한 손톱을 줴뜯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찔리는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대충 알겠네.’

보나 마나 루가 일을 저지르고 한 주임이 연루돼서 저 코피 터진 브라우니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거겠지. 그리고 엘다 백작가의 차남이 그 뒷수습을 개처럼 하고 있던 거고.

포라킨은 브레고가 다시 바닥에 엎드리려는 걸 등짝을 세게 후려치는 것으로 말렸다.

“일단 루 좀 데리고 나와. 한율 님도 같이 가시고요. 밖에서 사정 청취를 하죠.”

“아니. 전부 데리고 나가.”

그때 등 뒤에서 야닉이 불쑥 끼어들었다.

한 주임을 안고 내려온 그가 이번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와 얼굴로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겠어?”

“응.”

야닉의 근심 어린 말투에 한 주임은 최대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직 배가 욱신거리지만 기회가 있을 때 꼭 말해 두고 싶었다. 아무리 곱씹어도 그냥 넘어가기엔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야닉에게 공주님처럼 안긴 채 들어온 한 주임을 보고 루가 몸을 굳히더니 벌떡 일어나 밖으로 튀어 나갔다. 포라킨과 이한율이 뒤따라 나가자, 이번엔 브레고가 야닉의 어깨 위에 손을 턱 올렸다.

그는 비장한 고갯짓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잘 오셨습니다. 온 김에 대장님도 같이….”

“됐으니까 다 데리고 나가.”

“황자님도… 나가요.”

한 주임의 말에 야닉과 브레고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야닉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푸르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 그의 품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브레고에게 전했다.

“이 사람 좀 같이 데리고 가 줄래요? 위험하면 부를게요.”

“어, 엇. 넵.”

얼떨떨하게 대답한 브레고가 야닉의 팔을 부여잡고 질질 끌었다. 머릿속에 ‘황자님도 나가요.’ 이 대사만 반복 재생시키고 있는 주군을 끌고 가는 손길이 제법 억척스러웠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주방에는 여전히 선반에 걸터앉아 있는 집요정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주임, 단둘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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