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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68화 (68/155)

68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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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는 뒷문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불규칙적으로 끽끽거렸다.

그들을 지켜보는 다른 브라우니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났다. 브라우니들은 언제든 들이닥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기… 아까 때려서 죄송해요.”

싸늘한 침묵을 깨고 한 주임이 신중히 말문을 열었다. 차마 눈까지 마주칠 용기까지는 안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는데, 어째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꾸가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브라우니가 입을 쩍 벌리고 눈꺼풀을 빠른 속도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해서 심약자가 봤다면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한 주임은 새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브라우니는 거의 수십 초간 그러고 있다가 겨우 입을 닫았다.

이윽고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비틀었다.

[……브라우니한테 죄송해?]

“일부러 때리려던 건 정말 아니고요. 제가 당황하는 바람에,”

[브라우니한테 정말로 죄송해?]

그는 같은 질문을 또 했다. 한 주임은 그것을 비꼬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네. 죄송해요.”

그러면 너도 한 대 더 때리든가, 이 말이 괜히 떠올라서 가라앉히느라 죽을 뻔했다. 한 대 더 맞았다가는 이번에는 정말로 세상을 하직할지도 모른다.

[맙소사! 브라우니 경이 사과를 받았어! 사과를 받았다고!]

집요정이 난데없이 폴짝 뛰어내리더니 바닥을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입이 귀에 걸려서는 연신 ‘사과를 받았어!’ 하고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한 주임은 어안이 벙벙했다.

[주인이 브라우니한테 사과를… 아 참, 참. 참.]

브라우니가 순간 얼굴을 바짝 들이대더니 초롱초롱한 눈을 빛냈다.

[그럼 브라우니는 무엇을 줄까?]

“네?”

피딱지가 앉은 뾰족한 코가 조금 징그러워서 반걸음 물러나자 브라우니가 재차 다가왔다.

[브라우니는 받은 것은 돌려주어야 하거든. 브라우니는 늘 그래 왔으니까. 사과를 받았으니 다른 것을 줘야지!]

“안 줘도 괜찮은데요…….”

웅얼거리는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그는 빠른 속도로 입을 놀렸다. 또다시 이상한 노랫소리였다.

[주인이 브라우니를 위해 꿀을 주면 브라우니는 청소를 하지!]

[주인이 브라우니를 위해 우유를 주면 브라우니는 가축을 돌봐 주고!]

[주인이 브라우니를 위해 빵을 주면 브라우니는 밤새 집을 지켜 줄 거야.]

이번에는 고심에 빠진 듯 팔짱을 끼고 제자리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납작하고 커다란 발이 병적으로 바닥을 치댔다.

[주인이 브라우니를 위해 사과를 하면… 브라우니는 무엇을 주어야 하지?]

그 말을 듣자마자 뇌리에 꽂히는 건 오직 하나였다.

“마, 마력을 주세요! 제가 마력이 없어요!”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마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제발.

[아니야, 아니야. 주인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브라우니는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마력이 없으면 죽은 목숨인데,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냐고 멱살을 잡고 뒤흔들고 싶었다. 주먹질까지 했는데 멱살 정도야 대수겠는가.

주먹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릴 때쯤 브라우니가 이제 생각이 났다는 듯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멀리서 온 주인은 길눈이 어두워. 자칫하면 영원히 길을 잃을 거야. 그래! 주인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거야!]

브라우니는 성마르게 고개를 숙이라는 손짓을 했다.

고민하다가 슬쩍 허리를 굽힌 한 주임의 이마에 그는 여덟 개의 손가락을 둥글게 모아 가져다 댔다. 뭉툭한 손가락 끝에서 노란빛이 나오자 그녀는 눈이 부셔서 질끈 감아 버렸다.

브라우니는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건 길을 잃지 않는 것. 헤매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해. 이제부턴 어떤 어둠 속에서도 금방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집요정의 축복’이란 바로 그런 것.]

마지막 말은 주문과도 같았다.

손끝에서 피어났던 꼬마전구 같은 빛들이 머릿속으로 하나둘 퐁, 퐁, 퐁,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금 어두운 주방이었다.

한 주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끝난 거예요?”

따끈따끈한 이마를 문지르며 묻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브라우니의 눈살이 확 구겨졌다.

[아니야! 브라우니에게 진짜로 사과할 주인은 따로 있어. 누군지 알잖아!]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바닥에는 여전히 너저분하게 엎어진 스튜와 냄비가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브라우니는 육식동물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다시금 분노하기 시작했다.

한 주임은 식겁해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줘요. 금방 데리고 올게요.”

허겁지겁 주방 문을 밀치고 나오자 문에 귀를 대고 있던 사람들이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우당탕 넘어졌다. 한 주임은 그들을 헤집고 지나쳐서 서둘러 루를 찾았다.

다가오려는 야닉의 손도 뿌리치고 두리번거리다가 계단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는 루와 눈이 마주쳤다. 루는 고집스럽게도 버텼다.

“싫어! 내가 왜! 그딴 쓰레기 좀 엎질렀다고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해!”

“사과를 해야….”

사과해야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루가 받을 자격이 있나?

남을 괴롭히려던 사람이 축복은 무슨 놈의 축복이란 말인가, 벌을 주어야지. 못된 사람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이대로 입만 다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망할 놈의 양심이 말썽을 부렸다. 아니, 그보다는 위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가서 사과하는 척이라도 해요. 뭐라도 받게…….”

툭 던지듯 말하고 돌아서자 참고 있었던 통증이 한 번에 밀려들었다. 애를 상대로 무슨 유치한 심사냐며 양심이 다그치느라 뱃속이 뒤틀리는 건지도 모른다.

손으로 옆구리를 짚으며 어깨를 움츠리자 야닉이 곧바로 달려와 한 주임을 안아 들었다.

배가 너무 아파서 부끄럽고 말고 할 정신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건 말건 야닉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 축 늘어졌다.

너른 어깨에 이마를 대고 그녀는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너무 아파. 힘들어…….”

눈을 감자 머리 위로 울리는 ‘푹 자.’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한 주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구석에서 수면 약초를 피워 마법으로 연기를 의도적으로 보내던 포라킨이 화로 뚜껑을 덮었다.

“한 주임님 말대로 가서 사과하고 축복받지 그래요?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대기 중에 남은 잔향을 손으로 흩트려 없애며 눈을 흘기자 루가 발끈해서는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그 쓰레기를 만드는 걸 직접 봤으면 그딴 소리는 못 할걸? 비둘기 눈알이랑 죽은 요정이랑 막, 침까지 뱉었다고!”

루의 말에 조금 전까지 바닥을 기며 손가락으로 쿡쿡 찍어 먹었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 엄청 열심히 먹었는데.

부아가 치민 루가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억센 손이 팔을 강하게 붙들었다. 이한율이었다.

“한 주임님도 사과하셨는데, 그쪽도 해야죠. 그래야 공평하잖아. 정작 피해 본 사람은 저렇게 누워 있는데. 제 말이 틀려요?”

얇은 팔을 움켜쥔 손이 콱 힘을 주는 바람에 루는 충격과 아픔에 휩싸인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맹추 같던 게 갑자기 적의를 드러내자 그야말로 살쾡이가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용병들보다 딱히 체격이 큰 것도 아닌데 엄청난 위압감에 어깨가 절로 옹송그려졌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 눈알을 굴리는데, 대원들의 시선마저 싸늘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오밤중에 사고를 친 건 따지고 보면 치고받고 싸운 이방인이잖아.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든 게 누군데….’

속마음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말까지 했다면 야닉마저 돌아섰을 게 분명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서 사과하고 와, 루.”

평소처럼 엄한 척, 혼내는 척 짓궂게 말하는 것과는 달랐다.

서릿발처럼 식은 눈동자가 알려 주고 있다. 루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야닉은 이제 더는 내 편이 아니라고.

루는 이한율의 손을 거칠게 끌어내리고는 야닉에게 달려갔다.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서러움과 원망,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담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같이 가 줘…….”

“한 주임은 혼자 갔잖아. 너도 그렇게 하고 와.”

약간은 누그러진 목소리에 금방이라도 그의 팔에서 이방인을 밀치고 제가 안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용맹한 트라야누스 대원으로서 저 여자보다 나약해 보일 순 없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가는데, 등 뒤로 야닉이 이방인을 데리고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봐 주지도 않는다고?’

혈압이 또 한 번 상승하는 것을 겨우 가라앉히며 루는 주방 문을 밀었다. 다행히도 브라우니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까처럼 대원들이 문에 달라붙을까 봐 그녀는 눈빛으로 살기를 내뿜은 뒤에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어쩌면 제 생애 가장 굴욕적일 광경을 그들이 엿듣게 할 순 없었다. 절대로!

“미안. 됐지?”

[……뭐라고?]

개처럼 생긴 커다란 귀를 가지고 안 들렸을 리 없을 텐데, 브라우니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더니 넌지시 물었다.

루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미안하다고. 네 거 엎은 거. 아이씨….”

[으으음.]

브라우니는 진의를 가늠하듯 눈초리를 가늘게 만들더니 아까처럼 앞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는 그를 기다려 줄 만큼 참을성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인상을 잔뜩 쓰면서 기어이 손바닥을 내밀고 흔들었다.

“사과했으니까 얼른 나도 줘.”

[무얼 말이냐?]

“축복! 축복 말이야! 이방인한테 줬던 거!”

기어코 성질을 부리자 브라우니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오! 하고 손뼉을 쳤다.

[그래. 맞아. 브라우니는 받은 걸 돌려주어야 해. 그렇고말고.]

한 주임 때와 똑같이 머리를 숙이라고 손짓하자 루가 불신의 눈으로 보다가 살짝 얼굴을 내렸다.

브라우니는 그녀의 이마에도 손가락을 짚었다.

[잡종 주인이 브라우니의 소중한 것을 망쳐 버렸으니까, 브라우니도 잡종의 소중한 것을 망가뜨릴 거야….]

손가락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흠칫한 루가 머리를 떼려고 했지만, 온몸이 꼼짝없이 굳어 버려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림자는 불길하게 스멀거리며 루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사과를 받았으니까 아주 망치지는 않을게. 조금만, 그래. 아주 조금만이야. 무척이나 공평하지. ‘집요정의 저주’란 바로 그런 것.]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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