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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79화 (79/155)

79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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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차장은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 소리에 집중했다. 황자와 세레나 공주의 거처가 있다는 3층은 자신도 실은 좀 궁금했던 참이라 호기심이 든 까닭이었다.

바닥에 두꺼운 융단이 깔려 있었지만 박 차장은 구두까지 벗고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깨금발을 세웠다.

치마폭이 좁은 드레스를 입어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살금살금 뒤를 밟아 3층 복도에 안착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와우. 황궁보다 더 대박인데.’

2층도 충분히 궁궐만큼 고급지다고 생각했는데 3층에 비하면 아래층들은 검소한 수준이었다.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보석으로 장식된 벽과 수많은 황금 액자, 화분, 조각상들이었다.

사람 키만 한 조형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서 몸을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이 아닐 수가 없다. 바닥에 깔린 카펫은 금실 자수가 커다랗게 수놓아져 있어서 그 위를 걸을 때면 제가 다 고귀한 신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휘둥그레한 눈을 굴리던 박 차장은 지척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구석에 바짝 몸을 붙였다.

“여기는…….”

천천히 걷던 두 사람이 멈춘 곳은 복도와 엇비슷하게 화려한 문 앞이었다.

“세레나가 사용하던 방이야.”

한 주임은 고개를 돌려 야닉을 보다가 다시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필이면 이곳으로 데려온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품에서 열쇠를 꺼낸 야닉은 망설임도 없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었다.

야닉과 한 주임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척을 느낀 박 차장은 잠깐 기다렸다가 바로 앞까지 쫓아갔다.

오래된 성에 달린 문은 고풍스럽기는 해도 틈새가 벌어지고 이음새가 헐거워져서 방음에 취약한 편이었다.

문설주 틈새로 귀를 바짝 붙이자 안에서 조그맣게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이 들린다. 박 차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야, 그게……?”

한 주임은 야닉이 작은 보석함 열고 보여 준 물체에 초점을 맞췄다.

커다란 반지나 목걸이가 들어 있을 법한 벨벳 상자 안에는 장신구 대신에 달걀 크기만 한 돌멩이 하나가 까만 쿠션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돌멩이는 모양이 자갈처럼 둥글고 아래가 뾰족한 눈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편편한 곳에 붉은색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원 안에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깨알같이 작은 글자가 빼곡했다.

돌에 새겨진 문양이 어딘가 낯이 익어 그녀의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귀환석이야. 이방인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설명하는 야닉의 얼굴엔 어딘가 초조함이 가득해 보였다.

한 주임의 눈이 단박에 커다래지고, 동시에 밖에서 엿듣고 있던 박 차장도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떻게…….”

야닉은 깊이 침잠한 눈으로 한 주임을 바라보다가 짧게 숨을 골랐다.

늘 여유롭고,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도 긴장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가하게 그를 감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 주임은 그가 자신더러 돌아가라고 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벌벌 떨었다.

오장육부가 절로 조여들었다. 갈비뼈를 얻어맞았을 때보다도 더 욱신거리는 탓에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서 중심을 잃은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였다.

비틀거리는 가느다란 몸을 야닉이 순발력 있게 잡아채고는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백지장처럼 하얘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간담이 다 서늘했다.

그는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이었다.

“10년 전, 처음 이곳으로 오는 길에 취발론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어.”

한 주임이 시선을 얽혀 왔다.

간절한 눈빛은 그에겐 어서 빨리 이야기하라는 독촉으로 읽혔다.

“며칠을 산에서 헤매다가 사제들에게 발견이 됐는데, 내가 발견됐을 당시에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고 하더군. 이게 왜, 어디서 난 건지는 나도 모르겠어. 행방불명됐던 며칠간의 기억이…… 전혀 없거든.”

그는 귀환석을 집어 앞뒤로 이리저리 돌렸다.

마법식이 그려진 것 외에는 그저 모양이 독특한 돌에 불과한 그것을.

“주교님이 술식을 분석해서 귀환석이라는 걸 알아냈는데 위험하니 조사대는 꾸리지 않는 게 좋겠다 했고, 로기아 후작은 그 조언을 받아들였어. 귀환석의 입수 과정은 그게 전부야.”

그는 이번에는 짐짓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 뒤에 나는 곧바로 열이 펄펄 끓었고, 그때부터 마력이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지.”

“그런데 왜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았어…?”

겨우 가슴을 진정시킨 한 주임이 의아해서 묻자 야닉은 씁쓰름한 표정을 지었다.

“새겨진 고대어를 보면 귀환석의 용도는 거의 확실한데 가장 중요한 사용 방법을 몰라. 발동 조건은 쓰여 있지 않거든.”

“휴.”

당장 돌려보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야닉이 입매를 빳빳하게 굳혔다.

“……지금 안심한 건가? 실망이 아니라?”

“실망? 내가 왜 실망을…… 아. 설마.”

한 주임은 입을 떡 벌리고 놀란 얼굴로 야닉을 바라봤다. 그는 엄청 진지하게 기대하는 얼굴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넌 내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

“아니야?”

반문하는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챈 한 주임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눌러 삼켰다.

“……아닌데?”

“아니야? 정말, 아니야?”

몸까지 돌려세우고 앉아서 묻는 게 웃겨서 이번에는 그냥 활짝 웃어 버렸다.

“아니야!”

“아니라고……?”

야닉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얼빠진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희귀한 광경이었다.

한 주임은 갑자기 그가 참을 수 없이 귀여워서 그만 힘껏 끌어안아 버렸다.

“아니야, 이 바보야.”

야닉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등을 감싸면서도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 가면… 이대로 내 곁에…….”

“있어도 돼?”

자신감 없는 물음에 그도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거야 마땅히, 당연히 되지. 나는 그대를…….”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품에서 떼어 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세레나의 방에서 할 말은 더더욱 아니지. 그건 무심의 경지를 넘어선 결례고, 그야말로 끔찍한 짓이었다.

하필이면 세레나의 방에서 프러포즈를 할 뻔하다니. 본인의 멍청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는 서둘러 상자를 닫아서 원래 있던 화장대 서랍에 대충 던져 넣어 버렸다.

“그럼 됐어. 하랑이 주워 온 남자가 귀환석의 사용 방법을 안다고 하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돼. 그래, 걱정이 아니라 고민만 하면 되는 일이지.”

야닉이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 주임을 번쩍 안아 들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당황한 그녀가 가슴팍을 밀어 내며 발버둥 치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오롯이 기쁨을 즐겼다.

애정행각에 익숙하지 않은 여자의 몸부림이란 이토록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것이던가.

“그러니까,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지.”

“내려놔, 누가 보면 어쩌려고!”

“다들 나와서 봐 주면 좋을 텐데. 소리라도 질러 볼까?”

“미쳤어?”

문 쪽으로 가까워지는 소란에 식겁한 박 차장이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내달렸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제 방으로 돌아온 그녀의 얼굴이 흥분으로 들떠 홍조까지 어렸다.

밭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연신 올라가는 입매와 대조적으로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귀환석. 그것만 있으면 돌아갈 수 있어!’

박 차장은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대강 훔쳐 내고는 문 너머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 * *

구름이 달을 가린 어두운 새벽, 박 차장이 소리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몇 걸음 걷다가 슬리퍼가 내는 작은 소리마저 신경 쓰였는지 그냥 벗어 버리고 양말을 신었다. 발소리마저 죽인 다음에는 황궁에서 가져온 가죽 가방을 꺼냈다.

방을 나서는 눈빛에 결연함마저 서렸다.

어스름한 어둠에 눈이 익자 한 주임의 방문이 눈에 들어온다. 박 차장은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가 계단을 올랐다.

‘그래, 재인아. 넌 여기서 백마 탄 왕자님이랑 행복하게 살아. 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어차피 헤어지면 죽을 때까지 볼 일 없을 사이에 응어리가 좀 남으면 어때. 박 차장은 계획했던 화해 따위는 애저녁에 집어던졌다.

살금살금 이동하는 내내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서른일곱 인생에서 남의 물건을 훔쳐 보는 것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어릴 적에 엄마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 몰래 꺼낸 것은 예외라 정의했다.

황자와 한 주임이 눈꼴신 연애질을 했던 문 앞에 서자 저절로 입이 바짝 말랐다. 걱정했던 자물쇠는 걸려 있지 않았다.

잠그지 않아도 아무래도 좋았는지 정신이 팔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황자가 실수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덕분에 주머니에 있던 실핀은 꺼낼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박 차장은 인내심을 발휘해 아주 느릿하게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그러고는 순간 제가 불을 켠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커다란 방 안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번쩍거리고 있었다.

“헉.”

손잡이부터 날붙이까지 온통 샛노란 황금 검과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가 촘촘히 박힌 장식용 방패, 옥색으로 빛나는 기다란 허리띠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본적도 없는 주먹만 한 금화가 가득 쌓인 상자는 부피를 못 이겨 반쯤 위로 벌어지고, 하다못해 벽에 걸린 촛대마저 보석 장식이 되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보물섬에라도 들어온 것 같았다. 침을 넘기는 목울음 소리가 하도 커서 기침까지 나올 뻔했다.

‘한 주임 그 독한 건 여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아니, 아니지. 정신 차려, 박혜진. 넌 귀환석을 찾으러 온 거야.’

크게 도리질을 한 박 차장은 초기의 목적을 상기하고는 서둘러서 온갖 서랍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 속에도 자잘한 보석들이 넘쳐나서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상자들을 열어젖혔다.

오래지 않아 발견한 한 상자에서 손을 멈춘 그녀는 내용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곳엔 보석이 아닌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돌을 집어 가방에 넣었다.

얌전히 뚜껑을 닫고 서랍을 닫으려던 찰나,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바른 듯 발이 땅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박 차장은 조금 전까지 망설임 없이 닫았던 상자들을 다시 한번 슬며시 열었다.

그곳엔 주인 없는 팔찌니, 반지니 하는 것들이 데려가 달라고 아우성이라도 부리는 양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다 얼마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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