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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81화 (81/155)

81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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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라킨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체면도 잊은 채 입을 떡 벌렸다.

이제껏 기사고 용병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칼바람 부는 흙바닥에서 뒹굴 때는 눈 하나 깜짝 않던 분이 그 큰 연회장을 단독 수업실로 개방했다고?

연회장은 수십 개의 기다란 테이블과 수백 개의 의자들로 가득 찬 데다, 그 큰 공간을 다 밝히려면 수십 명이 달라붙어 양초에 불을 켜고 샹들리에에 매달아 천장으로 끌어 올려야만 했다.

솥단지만 한 샹들리에만 해도 포라킨이 기억하는 것만 열 개가 넘었다. 한마디로 연회장 한번 쓰려면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간다는 이야기다.

포라킨은 황당함을 억누르고 아래층으로 옷자락을 휘날리며 뛰어 내려갔다.

천장까지 드높이 솟은 양 문 앞에 서니 두꺼운 문을 열어 주는 하인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하인은 포라킨에게 깍듯하게 인사하고는 두 손으로 힘껏 문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크리스털에 반사된 빛들이 우르르 쏟아지듯 포라킨을 덮쳤다.

“오! 미네, 왔어?”

“브레고, 네가 여긴 왜…….”

눈살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녀는 곧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잇몸이 훤히 보이도록 웃으면서 번쩍번쩍한 대리석 바닥 위를 나뒹구는 용병들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트라야누스 대원들은 모두 부드러운 가죽 신발이나 아예 맨발인 상태로 맨손 겨루기에 한창이었다. 검이나 철퇴, 창 따위의 무기는 하나도 없었다.

갑옷은커녕 가슴 보호대도 없이 지극히 편안한 차림새로 훈련 중인 것이다.

브레고는 저 멀리 휘황찬란한 소파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는 야닉을 턱으로 가리켰다.

“비싼 대리석 깨진다고 무장 해제하고 들어오라는데 어쩌겠어. 무려 연회장을 개방했는데 홀딱 벗고 오라고 해도 와야지!”

“그래서 다들 저렇게 웃고 있는 거고?”

“저놈들이 살면서 귀족들이나 드나드는 곳을 언제 또 와 보겠냐. 따뜻해, 깨끗해, 신기해, 몸 편해. 당연히 입이 귀에 걸리지.”

브레고가 킬킬대며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야닉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이게 다 이방인 덕분이야. 저 아가씨가 혼자선 여길 못 쓴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우리도 덩달아 연회장에 입성한 거지.”

포라킨은 브레고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연회장 구석에서 블라산코와 서로 목검을 겨누고 있는 한 주임의 뒷모습이 새삼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주임님 성격에 안 봐도 뻔하지. 본인 한 사람 때문에 수십 명이 수고스러운 일을 선뜻 받아들일 리가 있나.’

식겁해서 펄쩍 뛰는 모습이 빤히 그려져서 포라킨은 저도 모르게 풋 웃었다.

그러다가 머리 위로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니, 브레고가 얼빠진 얼굴로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그 한심한 표정은?”

싹 굳은 얼굴로 돌아와 묻자 반 박자 느린 답이 돌아온다.

“……어?”

“왜 갑자기 멍청한 얼굴을 하느냐고.”

브레고가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내가? 하다가 갑자기 얼굴을 휙 돌렸다.

왜 저래. 포라킨은 혀를 쯧쯧 찼다. 용병들 틈에 오래 있으니 귀족의 예법 따위는 전부 잊어버리기라도 한 모양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내부를 쓱 훑었다.

“기사들은 안 보이네.”

“아. 큼, 큼! 로하겔 단장님이 기사들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하셨거든. 거기 단원들은 연무장에서 벌벌 떨면서 훈련하겠지. 뭐.”

보수적인 로하겔 경이라면 그러고도 남았겠지. 포라킨은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입술을 뾰족하게 모았다.

“…….”

“할 말이 있으면 째려보지 말고 말을 해.”

자꾸만 힐끔거리는 시선이 짜증 나서 던진 말에 브레고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결국 한마디 툭 뱉었다.

“너 오늘…… 씻었냐?”

“뭐?”

“아니, 오늘따라 사람 같아 보여서…….”

야닉은 입구에서 포라킨에게 먼지 나게 얻어맞고 있는 브레고를 슬쩍 보다가 다시 한 주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일주일 정도는 더 쉬었으면 했는데 그녀는 몸이 굳어서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다시 검을 쥐었다. 그럼 찬바람 맞지 말고 안에서 수업을 들으라 했더니 기어이 다른 사람들까지 바리바리 불러들인 참이다.

뭐 하나 순순히 말을 따르는 법이 없건만 그것조차 예뻐 보이다니. 아주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가 아시면 난리 나시겠군.’

늘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가급적 평탄하게 사는 것이 신조였던 삶에 한재인이라는 이방인은 그에게 있어 파장이고, 불꽃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고 하더니, 어쩌면 그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 주임은 그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모두 지닌 여자였다. 열정, 의지, 끈기, 노력… 성실함은 기본이고 순수하기까지.

생각과 동시에 블라산코가 소리쳤다.

“전부 막지 말고 흘려보내야지! 힘으로 남자를 상대할 셈이야? 손목을 돌려!”

“네!”

목검 두 자루가 치열하게 부딪친 다음부턴 블라산코가 공격하는 검날이 매끄럽게 사선으로 비켜 나갔다.

한 주임은 배운 대로 착실하게 공격을 흘렸다.

“자, 이제 반대! 날 공격해 봐. 반격하는 걸 보여 줄게.”

블라산코는 왼손으로 뒷짐을 지고 다리를 붙인 채 한 손으로 여유롭게 모든 공격을 흘리거나 피했다. 공격이 무산될 때마다 칼날이 비웃듯이 목에 겨눠졌다.

한 주임은 입 안이 점점 버석하게 말라 가는 걸 느꼈다.

‘흥분하지 마. 조급해하지 마.’

가장 먼저 검술을 알려 주었던 야닉이나 그다음에 봐준 하랑, 그리고 현재 스승인 블라산코가 모두 공통으로 지적한 최대 단점이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 안달이었다.

타고난 승부욕. 그로 인한 평정심 박살. 그리하여 패배.

시합이었다면 지고 말겠지만, 무기를 든 순간은 목숨이 날아간다.

침착하자, 냉정함을 유지하자. 그녀는 절박하게 뇌까렸다.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고 다리는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치솟는 울분에 절로 이가 갈릴 때, 블라산코는 한 주임의 검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빙글빙글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검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에 투덕거리던 모든 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몸을 돌려 쳐다본다. 블라산코는 바닥에 주저앉은 한 주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젠 어찌할 거지? 황자도 옆에 있겠다, 못 하겠다고 그에게 달려갈 건가? 아니면 분에 못 이겨 눈물을 질질 짤 건가?’

한 주임은 나가떨어진 제 검을 멀거니 보다가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힘이 너무 들어갔나 봐요.”

곧장 사과하고는 달려가서 검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로 그거지! 블라산코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최고야.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침통할 정도군.’

야닉 역시 만족스럽게 웃으며 입가를 매만졌다.

그러다 그는 문득 원초적인 상념에 빠져들었다. 굳이 몇 달씩이나 세레나의 사망 판정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나?

눈보라만 그치면 쌓인 눈 따위 녹이면서 달리면 그만이다. 델피온의 왕을 위협하면 이혼 합의서 정도는 무리 없이 받아 낼 수 있을 테고.

황궁에 가서 재혼 허가만 받으면 곧바로 한 주임과 결혼할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들끓는 마음이 점점 주체가 안 되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었다.

야닉은 그녀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걸 안 이후부터 몸이 달았다. 보기만 해도 아까운 여잔데, 남들 눈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이한율을 차치하더라도 당장에 저 느끼하게 생긴 아이노스 출신 검술 선생부터가 한 주임을 보는 눈에 흑심이 그득해 보였다. 어머니와 같은 나라 사람만 아니었다면 선생으로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기왕이면 우아한 아이노스식 검법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검술만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면 딱딱하기 그지없는 제국식을 가르쳤겠지.

‘눈이 그치면 바로 델피온부터 가야겠어.’

그는 양 손끝을 마주 붙이고 거드럭거리며 홀로 음험한 계획을 세웠다.

* * *

며칠 뒤 한 주임이 포라킨을 따라 향한 곳은 자신이 하룻밤 입원했었던 바로 그 병동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자로 할슈타드’라고 밝힌 남자는 지하 감옥에서 나와 며칠 전부터 일반 병실에서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입원실 안팎으로 병사들이 24시간 감시를 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자로는 어두운 곳에서 나와 볕을 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뻐했다.

“양치기는 늘 먹구름을 몰고 다녔기 때문에 도무지 해를 볼 수가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눈이 퇴화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다시 살아서 해를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강파르게 마른 몸을 창틀에 기대며 자로는 감격에 찬 목소리를 연신 가다듬었다.

한 주임에게서 말을 전해 들은 포라킨이 힐끗 창밖을 보며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해가 어딨다는 거죠. 우중충한 게 곧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데.”

그가 알아듣진 못할지라도 한 주임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겨울이 지나면 황자님이 요새 안에 거처를 마련해 줄 거예요.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만 신경 쓰세요.”

상냥한 말투로 그녀는 자로를 유심히 살폈다. 서른다섯 살치고는 좀 더 연륜이 있어 보이는 얼굴은 도드라진 광대뼈 탓인가 싶다.

자로는 마른 가지처럼 뼈마디가 튀어나온 앙상한 손가락으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높게 솟은 고성(古城)들 사이를 잇는 회랑이나 새로 생긴 네모난 건물들은 그로서는 이전에 보지 못한 어색한 광경이었다.

“……아크만. 못 보던 성들이 많이 생겼다. 내가 태어난 곳이지만 낯설어.”

“자로 님이 기억하는 아크만은 어떤 곳이었나요?”

한 주임의 질문에 자로는 지그시 눈을 감고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향 풍경을 떠올렸다.

절벽 위 새하얀 신전으로 올라오는 먼 곳에서 온 순례자들, 그들에게 세례를 하고 신전을 나서서 노을이 지는 황금빛 들녘을 내려다보면 아크만의 광활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르른 초목이 가득한 요정의 숲에 둘러싸인 축복의 땅.

신이 지상에 내려와 처음으로 밟았다는 고귀한 땅.

그리하여 위대한 정복자 기아스가 뿌리를 내린 땅.

기아스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의 존재로, 막강한 힘을 발휘해 대륙을 호령하며 아크만을 주축으로 제국을 세웠다.

“기아스께서 아크만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신들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취발론이라고 부르는 산 역시 이곳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신의 울타리’다.”

포라킨은 터져 나오려는 질문들을 힘겹게 목구멍으로 삼키고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기아스께서 이방인을 소환한 이유가 뭡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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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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