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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86화 (86/155)

86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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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는 순순히 어깨에 둘러멘 목재 숏 보우와 화살집을 넘겼다.

이제 곧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할 일만 남았다는 기대가 군더더기 없이 신속한 동작을 만들어 냈다.

그것을 받아 든 한 주임이 와이번에 시선을 고정하고 야닉에게 물었다.

“다리에 한 발만 쏴도 돼?”

“응? 아, 그래. 물론.”

얼떨떨한 허락을 받아 낸 한 주임은 왼손으로 숏 보우 손잡이를 말아 쥐었다. 그제야 제 손에 들린 활이 온전히 느껴짐과 동시에 뒷덜미가 싸늘해졌다.

한마디로 낭패였다. 한순간의 치기에 활을 잡다니, 거기다가 이건…….

‘……국궁이잖아. 쏴 본 적 없어.’

중학교 때 양궁부 동기가 어디서 국궁을 하나 가져와서는 재미로 돌아가면서 쏘고 놀았는데, 당연히 한 주임은 멀찌감치서 구경만 했다.

제법 소란을 피워 가면서 엄청 다르네, 어쩌네, 아이들이 떠들어 댔던 장면이 갑자기 생생했다.

활대가 비교적 짧고 유연한 국궁은 양궁의 리커브 보우와는 천지 차이로 달랐다.

아무리 십 년 넘게 활을 놓고 살았어도 몸이 기억하는 감각은 남아 있다.

루에게서 건네받은 활은 한 주임에게는 너무 가볍고, 작았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돌려줄까…….’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게 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슬쩍 루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콧구멍까지 씰룩거리면서 비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저 표정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낚이지 않고선 못 견딜 것이다. 북받쳐 오른 치기가 기어이 도발을 받아들이라 종용했다.

습관적으로 허벅지에서 화살을 찾던 한 주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등에 멘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등줄기가 싸해졌다.

당연하게도 사이트(조준기) 따위는 없었다. 순전히 감으로 쏴야 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현이… 끝도 없이 뒤로 늘어난다.

‘왜, 왜 이렇게 늘어나지?’

활대가 거의 부러질 정도로 시위를 잡아당기던 한 주임이 당황해서 허겁지겁 손을 내렸다. 그러자 지켜보던 루가 못 참고 훗,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

그녀는 오기가 생겨 숨을 가다듬고 다시금 팔을 뻗었다.

야외. 거기다가 지상에서 몇십 미터나 높은 성벽 위에는 소용돌이 같은 칼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이 정도 바람이 낭패일 정도는 아니다. 올림픽 직전에는 강풍기 앞에서도 쏴 봤고,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쏴 봤다.

바람의 영향을 덜 받으려고 활도 남자 선수 용으로 썼다.

한 주임은 이를 악물고 시위를 당겼다.

“근데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아……!”

긴장감을 끌어올리던 한 주임이 한순간 무너지듯이 팔을 내렸다.

이게 무슨 방해야! 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심정도 잠시, 가만 보니 루의 말대로 와이번은 정말 코앞에 있었다.

“……아.”

한순간 뻘쭘해져서 잰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마터면 10m 떨어진 곳에서 쏘고 의기양양할 뻔했다.

‘얼마나 떨어져야 하지?’

점점 와이번과 멀어지면서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경기로 따지자면 70m는 떨어져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고. 체감상 30m 정도까지는 거리를 벌렸다.

과녁이 움직이는 것을 고려한 나름대로 양심적인 거리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활을 들어서 가상의 조준기 안에 와이번의 다리를 겨냥했다.

다리를 벌리고 옆으로 서서 깃털이 달린 화살 꼬리를 잡은 오른손을 시위에 걸고, 한 주임은 망설임 없이 손을 놓았다.

표적을 겨냥함과 동시에 시위를 놓는 빠른 슈팅은 선수 시절에도 주특기였다.

그리고 화살에서 손이 떨어진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망했다고.

다리를 노리고 힘차게 날린 화살은 와이번의 머리 옆으로 끝도 없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어쩌면 저 멀리 대기권까지 날아간 것도 같았다.

‘화살도 이상해.’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이상했다. 저렇게까지 가볍게 날아갈 일인가?

혼돈에 휩싸인 정신이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때 옆에 서서 구경하던 다른 궁수가 화살이 날아간 방향으로 목을 길게 빼고 중얼거렸다.

“자세가 특이하시네요.”

“…….”

입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던 한 주임은 다른 화살을 꺼내 들었다.

다시 한번 자세를 잡는 한 주임을 물끄러미 보던 젊은 궁수가 그녀 뒤에 가서 서더니 기어이 훈수를 놓기 시작했다.

“머리를 노리시는 거죠? 그럼 조금 더 왼쪽으로다가….”

“……왼쪽이요?”

“네. 팔꿈치를 조금 더 올리시고….”

친절한 참견을 바탕으로 두 번째 화살이 손을 떠나갔다.

화살은 이번에는 반대편 허공을 가로질렀으나 기이하게도 그녀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 아깝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죠?”

“…….”

한 주임은 대답 대신 세 번째 화살을 담담히 시위에 걸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야닉이 돌아오라는 손짓을 하는 건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한 주임이 자존심 회복에 사활을 걸든 말든, 와이번을 묶어 놓느라 끙끙대던 운영팀은 조금 전부터 하나둘 나가떨어지는 중이었다.

박 차장이 가장 먼저 두 손 들고 포기했고 다음으로 공 대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러났다.

집중력이 부족한 염 부장과 실드를 치자니, 그물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김유정만 죽을 맛이었다.

접혀 있던 와이번의 날개가 조금씩 펴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김유정보다도 염 부장이 먼저 어지럽다며 팔을 내려 버렸다. 동시에 마법이 파훼되고 날개를 길게 뻗은 와이번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웅크리고 있던 힘이 한꺼번에 폭발한 탓에 쇠사슬 끝을 팔에 감고 있던 야인들 역시 반동으로 함께 위로 솟구쳤다.

짧게 한숨을 쉰 야닉이 와이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능하면 산 채로 잡아서 다위에게 넘기려고 했건만, 어쩔 수 없이 통구이로 만들 판이었다.

“어!”

외마디 비명을 외친 사람은 한 주임 뒤에 서 있던 궁수였다.

와이번의 날갯짓과 동시에 활을 떠난 화살이 마수의 이마 정중앙으로 쏜살같이 날아가 콱 박힌 것이다.

“오! 제대로 얻어걸렸는데요?”

“…….”

한 주임은 뒤늦게야 떨려 오는 손을 꽉 쥐고 궁수에게 꾸벅 고갤 숙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갑자기 움직인 표적 때문인지 궁수는 얻어걸렸다고 했지만, 앞서 날린 두 발의 화살에서 이미 방향과 세기에 대한 계산은 끝나 있었다. 날아오르던 와이번을 놓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조준을 바꾸었을 뿐.

그리고 계산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 줄 알았던 감각이, 그 전율이, 귓가에 메아리치던 ‘텐!’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떨리는 건 손뿐만이 아니라 온몸인가 싶었다.

전신을 관통하는 희열에 젖을 틈도 없이 한 주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마에 떡하니 화살촉이 박힌 와이번이 죽기는커녕 오히려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가죽이 두꺼운 마수에겐 화살 하나로는 어림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이스 브레스!’

붉은 와이번은 불을 내뿜고, 푸른 개체는 수백 개의 얼음송곳을 뿜어낸다는 내용을 도감에서 읽은 적이 있다.

찢어질 듯이 커다랗게 벌어진 입 안에서 이내 하얀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척에서 느낀 야닉은 일단 와이번 먼저 처리하기 위해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멀리서 날아온 납작한 무언가가 와이번의 목을 빠른 속도로 베고 지나갔다.

스치듯이 지나간 목 언저리에서 시커먼 피가 뿜어져 나오고, 야닉은 찰나를 놓치지 않고 틈새에 화염을 부어 단번에 숨통을 끊었다.

“야닉! 괜찮아?”

한 주임이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달려와 그를 살폈다.

옷과 머리에 후드득 뿌려진 마수의 혈흔이 마치 그가 피를 흘린 것처럼 옷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야닉은 미간을 좁히며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피 묻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

절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아도 섭섭한 마음에 한 주임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장님, 꼴이 말이 아니십니다!”

말을 몰고 달려온 브레고가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자, 뒤따르던 포라킨이 지팡이를 뻗어 그의 등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말버릇!”

“아, 왜 너는 나한테만! 부대장은 더 심하거든?”

맡은 구역의 정리를 끝내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포라킨이 말에서 풀썩 뛰어내려 야닉과 한 주임 앞에 다가섰다.

“북쪽 성벽은 얼마 안 날아와서 금방 마무리했습니다. 한율 님이 실험을 해 보고 싶다고 하셔서 좀 늦었네요.”

“실험?”

한 주임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야닉이 건성으로 반문하자,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이한율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무표정이었다가 갑자기 싱긋 웃는 모습이 문득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 주임은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한율은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창한 건 아닌데…. 물로 공격력을 높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요. 물을 얇게 떠서 바람 마법을 동시에 걸면.”

그는 지팡이를 들어 투명한 막처럼 얇고 납작한 물을 만들어 냈다. 다음엔 형태를 유지한 채 허공을 향해 재빠르게 날렸다.

“칼날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직은 얕은 생채기밖에는 못 내지만….”

멋쩍어하며 그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와이번을 가리켰다.

“좀 더 연습하면 다음에는 목 전체를 날릴 수 있겠죠.”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과는 달리 이한율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목을 날린다는 상대가 와이번이 맞긴 한 것인지, 야닉은 속으로 비소를 삼켰다. 그렇지만 마냥 비웃기에는 이한율의 실력이 제법이었다. 아니, 실은 대단했다.

‘마법을 저 정도로 정교하게 사용하다니, 마력 양도 그렇지만 재능도 무시 못 할 수준이야.’

여러 가지 마법을 함께 발동시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그것들을 동시에 제어하고 조절하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할 뿐.

얄팍하긴 해도, 두꺼운 마물 가죽까지 벨 정도면 사람 목 정도는 쉽게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발전한다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만들어 휘두를 수도 있을 테지.

포라킨 말로는 기본 원소 마법은 진작 자신을 뛰어넘었고, 실드 역시 강철 방패 수준이라고 했다.

이 나라에 와서 마법을 배운 지 고작 몇 달 만에 이룬 성과가 상급 마법사 열을 합친 수준이라니….

‘내 여자를 노리는 것만 아니라면 제법 마음에 들었을 텐데.’

야닉은 쓴 입맛을 다시며 마음에도 없는 격려를 했다.

“정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 앞으로 활약을 기대하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한 주임을 데리고 돌아가는 야닉에게선 승자의 여유가 넘쳐흘렀다.

이한율은 모멸감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에서 애써 표정을 지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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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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