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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108화 (108/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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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야.」

요정들이 안내하는 길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가시덤불로 빽빽이 둘러싸인 곳이었다.

바늘같이 날카로운 수풀을 파헤치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손과 얼굴이 가시에 찔려 따끔거렸다.

한 주임은 턱이 저리도록 이를 물고 맨손으로 험준한 숲을 가로질렀다.

넝마가 된 그녀 앞에 이윽고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직사각형의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를 둘러싼 반딧불이가 어두침침한 내부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녀는 긴장된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은 불꽃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는 형편인지라 오로지 반딧불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공적인 모양의 출입구와는 달리 내부는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천연 동굴이었다.

황토색 석회암 사이로 하얀 크리스털 결정이 여기저기 종유석처럼 박혀 있었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쳐 들어 예민해진 후각과 촉각을 자극했다.

똑. 똑. 똑. 습기를 머금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다. 오랜 시간 떨어진 물방울이 모여 바닥 이곳저곳엔 울퉁불퉁한 석순이 솟아 있었다.

한 주임은 용기를 내어 안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갱도 같은 길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이면서 거대한 지하수가 나타났다.

천장과 이어진 돌기둥 바닥이 수면 아래 선명하게 비쳤다. 지면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한 물이었다.

수심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물을 보자 갑자기 타오르는 갈증이 느껴졌다.

‘목말라 죽을 것 같아.’

한 주임은 홀린 듯이 엎드려 손으로 물을 뜨다가 입에 가져다 대기 직전에 동작을 멈췄다.

‘……왜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지?’

「괜찮아. 마셔도 돼.」

어서 마시라는 듯 재촉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목소리에 서린 웃음기가 공연히 의심을 키웠다.

그녀는 바짝 마른 입맛을 다시며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법 똑똑하구나.」

「망각의 샘이야. 한 모금에 하루의 기억을 앗아 가지.」

「너무 많이 마셔서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어버린 인간도 있었어!」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한 주임은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나무다리를 발견하고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덩굴로 얼기설기 엮은 나무판자가 난간도 없이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몇 번 밟아 보니 튼튼하긴 했지만, 조금만 삐끗해도 옆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간신히 지나온 건너편은 온통 눈 부신 빛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여기저기서 빛을 반사하고 있는 청금석과 황금, 크리스털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온갖 보석들이 마구잡이로 쌓인 통로에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발에 아무렇게나 채는 것이 돌멩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보였다.

「마음에 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돼!」

“필요 없어.”

또 어떤 사특한 장난일 줄 알고. 그 말은 속으로 삼켰으나 당연하게도 알아들은 요정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안녕?」

순간 아래에서 로브를 잡아당기는 손길에 놀란 한 주임이 고개를 내렸다. 그곳엔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방실방실 웃으며 너덜너덜해진 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

「우리는 너희가 페어리라고 부르는 요정이야!」

아이의 뒤로 또 한 명의 남자아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가시덤불로 월계관을 만들어 머리에 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몸은 반딧불이처럼 희미한 빛을 두르고 있어서 동굴 안이 금방 대낮처럼 밝아졌다.

현실감 없는 풍경에 멍하니 요정들을 둘러보던 한 주임은 작은 손에 이끌려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가장 안쪽에서 커다란 크리스털 위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초롱초롱한 보석안을 빛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완전한 존재로 날아온 이방인. 여기까지 잘 와 주었어.」

“……날 도와줄 수 있다고 했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그녀가 물었다. 페어리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제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오동통한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한 주임은 곧바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그것을 차마 내뱉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눈만 깜빡일 때 페어리가 유쾌하게 말했다.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귀환석이야.」

작은 아이의 등 뒤로 야닉이 보여 준 적 있던 바로 그 눈물방울 모양의 돌들이, 한 개도 아니고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다른 이방인들의 몫까지 전부 가져가도 좋아. 그게 아니라면…….」

페어리는 귀환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충분한 마력을 줄게. 그럼 너도 마법을 쓸 수 있을 거야.」

굳은 몸 그대로 고개만 돌린 한 주임이 미간을 잔뜩 좁혔다.

“마력을 준다고?”

「그래. 더 이상 다른 인간에게 나누어 받으면서 연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지!」

그 말이 사실인지 의심하는 눈동자에 대고 페어리는 복사빛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가 자리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정말이야! 이곳까지 무사히 온 인간이라면 보답을 받을 자격이 생기거든! 그러니까 어서 선택해!」

“선택……”

「마력을 받아 이곳에서 살아갈 건지, 귀환석을 받아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건지. 어떻게 할래?」

* * *

덜컹거리는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굴렀다.

밖에 나가서 또다시 가시밭길을 헤치고 돌아온 한 주임의 몰골은 한층 더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수레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지친 그녀는 말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어떻게 혼자서 여길 다시 찾아왔지?」

「우리의 안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어느새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은 페어리들이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며 재잘거렸다.

“하아… 하아. 어제 왔었잖아.”

간신히 대꾸한 그녀가 이를 꽉 물고 둔덕에 걸린 수레바퀴를 힘주어 빼냈다.

「동굴의 위치는 계속 바뀐단 말이야. 한번 와 봤다고 다시 찾아오는 건 불가능해.」

갸우뚱하며 한 주임 곁에서 알랑거리던 페어리가 유심히 그녀를 보더니 갑자기 손뼉을 딱! 쳤다.

「알겠다! 너 브라우니의 가호를 받았구나!」

「어쩐지 어디서 계속 집요정 냄새가 나더라!」

자기들끼리 신나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요정들을 보며 한 주임이 갈라져 피 맛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기, 망각의 샘 말고 그냥 물은 없어? 목이 너무 마른데…….”

이한율한테 받았던 수통의 물은 진작에 다 마셔 버렸다. 그녀는 버석하게 말라 버린 목 때문에 다 쉬어 가는 목소리로 간절히 부탁했다.

동굴에 와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기까지 하루가 넘게 걸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마냥 걷기만 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길치였던 자신이 무슨 수로 세피로트의 영역까지 가서 수레를 이끌고 동굴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그저 짐작 가는 방향대로 묵묵히 걷기만 했을 뿐이다. 그것이 브라우니가 준 축복이었다는 사실은 방금 페어리가 말해 줘서 깨달았다.

기뻐할 여유는 없었다. 먹을 것은 고사하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로 잠도 안 자고 계속 걷기만 했으니 거의 제정신이 아닐 지경이었다.

차라리 하루의 기억을 버리고 딱 한 모금만 마실까, 샘을 건너며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시달려야 했다.

‘안 돼. 지금 같아선 한 모금만으로 끝낼 수 없을 거야.’

한줄기 남은 이성이 그녀를 만류했다.

「한 모금 마셨다가 다음 날 한 번 더 마시면 괜찮아.」

「하루가 지난 다음에 다시 마시면 잃었던 기억이 되돌아오거든.」

「기억을 잃은 인간이 여길 다시 찾아온 적은 없었지만 말이야!」

생각을 읽은 요정들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지만 한 주임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한율에게서 강제로 받았던 마력이 차츰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서 하루를 더 지체해서 팔다리 힘이 풀린 채로는 멀쩡히 수레를 끌고 숲을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나가서 잎사귀에 고인 물이라도 마셔야겠어.’

잔뜩 부르트고 빨개진 손으로 그녀는 이제 귀환석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전부 싣고 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정신없이 수레를 채우던 중, 고사리 같은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만.」

“왜, 왜. 다른 사람들 것까지 전부 준다고 했잖아.”

페어리는 물끄러미 수레를 보다가 손을 앞뒤로 휙휙 휘둘렀다. 그러자 수레에 담겨 있던 귀환석 한 뭉텅이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원래 자리로 도로 날아가 버렸다.

「이방인의 머릿수만큼이야. 더 많이 가져가는 건 안 돼.」

그 말에 한 주임이 수레에 남은 양을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오십 개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돌아갈 사람은 그 정도뿐이야.」

명료하게 말한 페어리는 크리스털 위에 기어올라 앉더니 그만 가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우리는 기회를 줬고 넌 선택을 했어. 마력 대신 귀환석을 골랐지. 부디 후회 없는 선택이기를.」

단호한 태도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시 머릿속을 파고드는 음성을 뒤로하고 한 주임은 재차 손잡이를 이끌었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샘에서 그녀는 수통 한가득 망각의 물을 퍼담았다. 가는 길에 혹시라도 탈수로 쓰러진다면 기억을 잃는 것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인지라,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물이었다.

귀환석이 담긴 수레는 느릿하지만 멈추지 않고 묵직하게 구르며 네모난 동굴 입구를 빠져나왔다.

* * *

다섯 개의 탑 문장이 새겨진 서코트 자락이 산바람에 스산히 나부꼈다.

서코트 아래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선봉에 선 야닉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산에 진입하려던 정예 기사단이 신호를 보고는 일제히 속보를 멈추고 명을 기다렸다.

맞은 편에서 하산하는 무리가 이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용병단인가?”

야닉이 묻자 새까만 두건을 머리에 두른 장정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걸어 나오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검은 발톱 용병대 대장 자밀입니다. 저희는 델피온에서 왔습죠.”

“델피온에서 활동하는 용병단이 취발론은 왜 넘었지?”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날카로운 질문에 자밀이라는 자가 멈칫했다가 곧 멋쩍게 웃었다.

“제국 황실에서 최근에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돈만 된다면 나라도 없는 게 우리들 아닙니까.”

“……그렇군. 수고들 해.”

아크만을 치기 위해 황실에서 제국군도 모자라 용병들까지 마구잡이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짜고 치는 판이라지만 어차피 제 돈도 아니고, 야닉은 가볍게 반응하곤 그들을 지나쳐 나아갔다.

취발론을 향해 재차 행군을 이어 가는 기사단을 보며 용병이 선심 쓰듯 크게 소리쳤다.

“거 조심하십쇼! 안 그래도 나오는 길에 혼자 쓰러져 있던 멍청한 놈을 하나 주운 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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