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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137화 (13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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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순발력 있게 낚아챈 갈록이 웃고 있던 입꼬리를 거두고는 손에 들린 이상한 모양의 돌을 살폈다.

“이게 뭐지…?”

자갈 같기도, 장식품 같기도 한 둥근 모양의 매끈한 돌 위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살피던 눈동자에 붉은빛이 점점 크게 번졌다.

‘어디서 많이 본 술식인데…….’

“잘 가라, 인마!”

낄낄거리던 염 부장이 돌연 손가락질을 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응? 하는 새에 갈록의 몸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거 설마 귀환…….”

말을 하면서도 점차 희미해지던 그가 이윽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지켜보던 이들이 당황해서 술렁거리는데, 염 부장만 홀로 컹컹 웃어 댔다.

“이게 되네? 푸헤헤! 거참 신기하네!”

저 사람, 설마… 한국으로 간 건가?

이곳에 사는 사람도 우리나라로 보낼 수 있다니, 제인은 혼란스러운 가운데서 기억을 끄집어냈다.

분명 자로가 했던 말은…….

[술식 부분에 피를 바르면 활성화되고… 그런 다음에 시동어를 말하면, 그것을 지닌 자는 피의 주인이 태어난 세계로 이동한다.]

‘그러고 보니 이방인만 가능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심지어 시동어를 말하고 찰나의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면, 나중에 돌을 받은 사람이 이동할 수도 있었다.

염 부장 덕분에 얼떨결에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제인은 새삼스럽게 전 상사를 돌아보았다.

“괜히 가지고 있으면 마음만 뒤숭숭할 텐데, 잘됐지 뭐. 여기서 염동환 인생의 2막을 새롭게 시작해야지.”

홀가분하게 콧바람을 내뿜던 염 부장이 뒷짐을 지고 2막의 첫 장을 음미했다.

그가 바라보는 풍경으로 제인 역시 고개를 돌렸다. 새 인생을 즐기기엔 퍽 평화로운 광경은 아니었으나, 팽팽했던 긴장감은 조금 누그러진 상태였다.

지휘관이었던 현자가 기절하고, 이방인이 잿더미가 되고, 대주교가 난데없이 증발한 전장엔 황량한 정적이 맴돌았다.

각 부대의 지휘관들 역시 대다수가 사망한지라, 새로운 명령을 하달받지 못한 병사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며 주춤거렸다.

휘이이잉…….

높은 곳에 있는 인파를 시작으로 군인들의 머리 위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퍼지고 있었다.

우뚝 서 있는 이들의 옷자락이 스산하게 나부끼는 것을 본 야닉이 머나먼 상공으로 고갤 치켜들었다. 같은 위화감을 느낀 로기아 후작과 스캄, 다위가 날카롭게 눈빛을 교환했다.

전쟁터에 빠지지 않는 손님의 등장이었다.

“쓰러진 동료들을 챙겨! 앉거나 누워 있는 부상자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즉시 전투를 준비해라!”

야닉은 빠른 걸음으로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올라 제인을 찾았다. 그녀 역시 그를 향해 달려갔다.

“야닉!”

“그리핀들은 약해 보이는 인간을 먼저 공격하니까 웅크리거나 몸을 굽히지 마.”

단숨에 눈앞에선 그가 제인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췄다.

“야인족 옆에 꼭 붙어 있어. 공격할 때는 가능하면 눈을 노리고.”

갑자기 그리핀이라니! 제인은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직감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라는 말 대신, 함께 싸우자는 말이 그 어떤 칭찬보다도 달갑고 뿌듯했다.

자신은 이제 지켜 주고 돌봐 주어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모닥불 앞에서 거절당했던 그때의 한 주임은 이제 없다.

마침내 동료로, 진정한 전우로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이 강한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세차게 고갤 끄덕였다.

“명심할게.”

“알아서 잘 모실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뱀브레이스(팔 가리개) 위로 팔꿈치에 뾰족한 쿠터를 착용한 미르가 자신만만하게 두 주먹을 쾅쾅! 부딪쳤다.

갑자기 적군의 수장이 내린 명령에 제국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디선가 불어온 거친 돌풍이 소용돌이처럼 빠르게 요새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그리핀이다!”

성벽 위의 누군가가 흔들리는 투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제국군과 아크만 병사들이 일괄적으로 모든 동작을 멈추고 하늘로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삼각 깃발과 성벽에 걸린 휘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펄럭이더니,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키아아아악! 난데없이 귀청을 때리는 괴성에 제인은 눈살을 구기고 머리를 치켜들었다.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독수리의 상반신과 사자의 하반신을 가진 돌연변이 마수 떼가 저돌적으로 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와이번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리던 그리핀 무리는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가 훌쩍 넘어 보였다.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상공을 가득 메운 것을 보고 검과 방패를 맞대던 병사들은 하나같이 얼어붙었다.

눈치가 빠른 자들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암묵적인 시선을 주고받았다. 상식적으로도 그리핀은 다친 자부터 노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궁수들이 겨냥하는 곳이 위로 향한 지금, 서로를 향하던 칼끝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늘을 나는 마수로 방향을 바꾸었다.

“휴전이다! 정신 차리고 마수에 집중해!”

로기아 후작이 얼이 나간 제국 병사의 멱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제국군과 지상전이 벌어졌을 때도 잠잠했던 문루에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종소리가 사정없이 땡! 땡! 땡!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리핀은 이윽고 날개를 뾰족하게 세우고 거침없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인파를 향해 돌진한 한 마리에 미처 피하지 못한 수십 명이 나가떨어지고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핀 한 마리가 착륙하는 충격은 대형 투석기에서 쏘아 올린 바윗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는 효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거대한 앞발로 두 사람을 찍어 누르고 착지한 그리핀이 부리를 크게 벌려 포효했다. 그것을 필두로 나머지 무리가 하늘에서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제인은 마수를 향해 폭격처럼 불꽃을 쏘아 대는 야닉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소란이 이는 곳으로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갑옷처럼 단단한 깃털이 크게 펼쳐져 땅을 휩쓸면 거기에 휘말린 병사들이 속절없이 날아다녔다. 공중에 붕 뜬 인간을 다른 그리핀이 획 낚아채 한입에 꿀꺽 삼키는 장면에선 척추가 저릴 만큼 몸이 떨려왔다.

일반적인 새털이 아니라 칼날을 겹겹이 붙여 놓은 듯한 날개는 하반신을 전부 가릴 정도로 거대했다. 야닉이 눈을 노리라고 한 이유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제인은 까맣게 그을려 바닥으로 추락한 그리핀 수십 마리를 제외하고도 여전히 바글바글한 머릿수를 보고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그가 공중에서 불태운 수보다 지상에 안착한 그리핀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병사들과 지상에서 어지럽게 뒤섞인 마수들에게 함부로 마법을 쓸 순 없었다. 결국 손에 검을 쥔 야닉을 보고 제인 역시 침착하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황실 기사들과 병사들, 아크만의 용병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리핀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넘어진 제국군을 트라야누스 대원이 일으켜 세우고, 아크만 시민을 향해 날아드는 발톱을 마탑의 마법사들이 실드로 막아 주는 웃지 못할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힘을 합해 마물을 몰아내는 와중에 흙바닥에 누워 있던 이한율이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가 무겁고 이상한 울음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그는 잠시간 눈을 껌뻑이면서 뛰어다니는 병사들의 다리를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한율은 비틀거리면서도 안광을 형형히 번뜩였다.

‘……야닉 리버스. 너는 기필코 내 손으로 죽인다.’

“혀, 현자님! 살려 주세…! 아악!”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사의 투구 사이로 불꽃을 밀어 넣은 그가 가쁜 숨을 내쉬며 두리번거리다가 투석기가 있는 쪽으로 휘청휘청 걸었다.

* * *

그리핀의 울음소리를 들은 감시병이 황급히 지하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알리온과 임철우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긴박했다. 예상치 못한 마수의 등장에 임철우가 곧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겨울 내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공격해 오려는 계획이었나 봐요.”

“그리핀이 온 이상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치료 사제가 부족하겠군요…. 내가 바깥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저도 함께….”

선뜻 나서려는 임철우를 알리온이 팔을 잡는 것으로 만류했다.

“사자님은 이곳을 지키셔야지요. 제가 신관들을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알리온은 간결하게 통보하고는 병동에서 일하던 사제들을 집결시켰다. 부상자들을 이송할 젊은 부제들 역시 따라나선 가운데, 예상외의 인물이 얼굴을 내비쳤다.

“와, 왕녀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던 세레나가 드물게 또렷한 얼굴을 하고 꼿꼿이 서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를 둘러싼 주위가 넓어졌다.

“일손은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나도 나가서 돕겠네.”

당황한 사제들이 대꾸도 못 하고 우물쭈물 알리온의 눈치만 보자 그녀가 이번엔 주교 앞으로 나섰다.

“매일같이 기도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 부디 내게도 속죄할 기회를 주시게.”

속내를 가늠하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알리온에게 세레나는 어색하게 입매를 끌어올렸다.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젠 정말 제대로 살고 싶어…….”

“그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왕녀님께서도 따라오시지요.”

나무껍질처럼 건조하고 자글자글한 눈가를 접어 웃더니 알리온이 흔쾌히 허락을 내렸다.

세레나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곧장 율리안에게 달려갔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엄마가 데리러 올 때는 너는 다시 황손이 되어 있을 테니까.”

소곤소곤, 아이의 귓가에 남몰래 속내를 밝히고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엔 기쁨과 의욕이 가득했다.

‘제국군 앞에서 아이의 존재를 밝히고 억울함을 호소하면, 사람들은 우리 이혼에 탐탁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할 거야.’

힘없는 나라에서 팔리듯 시집온 왕녀, 만삭의 몸으로 쫓겨난 아내, 아들을 부정하는 아버지, 종국에는 미쳐 버린 불쌍한 여자.

그런 의심을 대중의 머릿속에 넣어 두는 것만으로도 야닉은 오해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해명을 한다 한들, 평민들이 귀담아듣기라도 할까? 천만에. 누구보다도 그들의 속성을 잘 아는 세레나였다.

더러운 추문은 수습보다 확산이 빠르다. 야닉과 같은 편인 자가 황제가 되었으니 제 평판이 깎일 만한 일을 그냥 넘어가진 않을 터.

좋게 구슬려 이혼을 무효로 한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황실 차원에서 가엾은 제 처지를 돌봐 주려 할 것이다.

‘그 거지 같던 생활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사제들과 나란히 걸으며 세레나는 새하얀 모피 아래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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