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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관심은 싫어(2) (6/115)



〈 6화 〉관심은 싫어(2)

천대, 핍박, 그리고 증오.

어렸을 때 이유 없는 질척한 감정을 받아왔기에, 내 감정 상태는 평범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는 웃지 않는. 그런 상반된 모습으로 가식에 잠겨 나는 살아왔다.

단지 좋은 이능을 만들기 위해 이루어지는 이능 결혼, 그 속에서 태어난 나의 대우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당사자야 어떻든, 그 아이가 태어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며 아이마저 까내리는 사회와 언론, 아비가 아닌, 어미를 욕하는 집안.

그 욕을 견디다 못해 따로 떨어져 나와 단둘이 살았음에도, 어머니는 항상 괴로워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순식간에 몰려오는 관심은 한 사람을 괴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따르는 감정은 의문이었다. 왜 나랑 엄마는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 내가 태어난 게 죄라면 차라리-


"...안돼."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나 마저 사라지면, 정말로 엄마는 혼자 남는 게 되니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인내를 배웠다.
참고, 또 참았다.  이능을 증오하면서, 그 이능을 키워나갔다.

그 증오는, 아버지를 향했다. 자식을낳았으면서-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그를 나는 증오했다.
우리를 욕하는  사회를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은 그를, 증오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그 증오의 일환이었다. 그가 신경쓰지 않은 자식이 떳떳한 히어로가 되어 그를 앞지른다면, 그의 표정은 과연 어떨까.
물론 거기 입학하면 그의 다른 자식들도 만나게 될 거다. 그들을 앞지르는 것도 작은 목표 중의 하나.

나는 그렇게 입학 준비를 시작했다.



#




"...하아."


하지만 교문 앞에 서자 과연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어로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아카데미.
남들을 돕고, 시민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사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빌런을 퇴치하는 그런 히어로를 기르는 곳에-
나는 단지 내 목적을 위해 입학해도 되는 건가.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이 쿡쿡 찔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은 진작에 했어야지, 허나 자책해도 별 소용 없었다.
이미 입학 절차는 끝났고, 3년 동안 아카데미 생활을 보낼 것만 남았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아버지를 향한 복수 비슷한 무언가를 이제서야 시작한다고 생각하니...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행복이 서려 있었다.
앞으로 좋은 히어로가 될 거라며 떠드는 아이들, 아니면 히어로중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다지는 아이들.
그런 것에 비하면 내가 지닌 목적이란 것은, 너무도 더러운 게 아닐까.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관을 이용하는 게 아닌, 조금 더 떳떳한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태어난 뒤에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지 않았던 건, 그에게 어떤 말을들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이상한 생각을 한 탓이리라.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 그런 생각을 품는 건 내 행보에 일체의 도움조차 되지 않았다.
털어내자,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을  나는 한 시선과 마주했다.

한 편에서 떠오른 햇빛이 반사된 백금발이 바람에 살랑였다. 어쩌면 지금 흩날리는 꽃잎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순간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만큼, 눈이 마주친 여자는...아름다웠다. 마치 완벽한 인간의 표본을 정해두고 그에 맞춰 조각하기라도 한 듯이.
눈이 마주친  잠깐의 시간이 평생이라 생각될 만큼.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게 설령 환각이라면, 그 모습을 평생 기억해두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바라봤을까, 내 머리카락을 힐끔 바라본 그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이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에 뭐가 있나? 아니, 뭐가 문제지. 평소 외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잘생긴 편 아니었나.

"저기...!"

붙잡으려 입을 열었지만 이미 그녀는 사라진 뒤,허탈함만 가득히 느껴져 어깨를 축 늘어트렸을 때. 바닥에 떨어진 걸 볼 수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박스, 아니- 아마도 스마트 박스라 칭하는 거였나. 도대체 언젯적 거지? 저거 단종된 지 한 5년은 된 걸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까 보았던 그 여자가 있던 장소에, 그게 떨어져 있었으니까.


나도 모르는 새에 그걸 줍고 있었다.

...가져다 줘야 겠지?




#




아마도 입학식에 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서 한참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불량한 학생이었나.
사실 입학식이 끝나고 나중에 가져다 줘도 되긴 하지만...왠지지금 가져다 주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 같은 충동이 이는 것만 같아서-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조급해지는 건지.

평소에 나름 차분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대강당에 나와 주변을 돌아나기를 잠시, 금새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벚꽃이 휘날리는 길을 홀로 걷고 있는 그녀의 등을 바라봤을 때.
일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마치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그 배경과 어우러져 있는 게 퍽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이쁜...아니,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혹시 그녀가 아까처럼 사라질까봐,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


아니- 저기가 뭐야. 조금 더 잘 말 걸을 수 있었는데. 그런 후회를 하며, 그녀가 내 목소리에 반응하는지 가만히 바라봤다.
...돌아봤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애초에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왜 이렇게 좋아하고 있는가, 하지만 그런 의문은 다시금 눈이 마주쳤을 때. 눈이 녹듯 사라졌다.

"아, 아까 우리 보지 않았어요?"

아- 젠장. 말을 왜 더듬고 지랄이야. 평소에 여자한테 말을 걸 때도, 심지어 히어로나 빌런하고 말을 할 때에도  한 번 더듬어 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말을 하긴 해야하는데, 머릿 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하지?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하지?
너무나도 생소한 경험에,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어째선지 불만이 서려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기라도 한 걸까?
어지러웠다. 도무지 이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수가 없었다. 원래 같았으면 편하게 말을 걸었을텐데, 이상하게 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어 보였다. 내가 가진 재주가 그런 것 밖에 없으니까. 웃어서 나쁜 반응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했다. 호의도, 그렇다고 적의도 아닌 애매한 감정.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순간 물어볼까, 하는 충동도 들었다.


"아...아까 빤히 쳐다보시길래. 뭔가 할 말이 있나 싶어 따라왔어요. 근데 입학식은 안가세요?"
"...안쳐다봤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살짝 날카로웠지만, 그렇다고 아예 대화를 안하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안 쳐다봤다니, 평소 시선에 민감한 것도 있지만- 분명 눈이 마주치지 않았던가. 어째서 숨기는 걸까. 그렇게 그녀와 대화할 수록, 의문은 더욱 커져갔다.
...나를 일부러 피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어째서?


나는  여자의 이름도 모른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본 초면, 나를 피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텐데...
스마트 박스를 건넸음에도, 그녀는 살짝 감사를 표했을  나를 피하려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준 거는 고마워."


내가 아까 쳐다보면서 무슨 실례라도 저지른 걸까. 아니면 횡설수설한 탓에 그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말이라도 놓은 거에 기뻐해야 하는 이 상황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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