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관심은 싫어(3)
...이 기분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토록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사람이 내가 맞는 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기껏해야 한 여자일 뿐 아닌가. 아직인연이라 할 것도, 그렇다고 친분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는데.
어째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입학식에 간 건가.”
나를 무심히 지나간 그 사람, 아니-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 아이샤라 불러야지. 아이샤, 아이샤. 그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은 나는 그녀가 향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마, 입학식 도중인 대강당으로 간 것 같았다.
따라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입학식은 가봐야겠지.
...결코 따라가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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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이란 게, 늘 기분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에 대비했건만.
이렇게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아버지의 ‘자식’중 한 명을 입학식에 발견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는데.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다시 딱딱히 굳으며,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괜히 마주치면 좋을 일이 없을 터였다. 그도 그럴게, 그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내게 시비를 거는 것을 업이라도 삼은 것처럼 구니까.
카이사 카르멘, 자신감 가득 찬 그 얼굴은 앞에 있는 교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저 교장마저 뛰어넘을 거라는, 그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자만, 허영심, 교만, 그리고탐욕. 도무지 ‘히어로’라는 단어와 녀석이 어울리긴 하는 걸까.
들 떠 있던감정이 차분해지고, 올라왔던 열기가 식어간다. 아이샤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다시 아버지를 향한 증오가 삼켜낸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잡념을 지우며, 다시 카이사에게 시선을 떼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지워내려 했던 기억 속의 그 사람이- 다시 눈에 띄었다.
그녀는 신기한 듯 반배정을 하는 기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에 다녔으면 저런 건 자주 봤을 텐데, 뭐가 그리 신기한 건지.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가 A라 적힌 공을 들었을 때는 더욱- 내가 이렇게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는지 지금에서야 깨달았을 만큼.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
...어째서?
시선을 뗌과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한 눈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였다. 내가 세운 목표를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한껏 올라간 광대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곁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기분 좋아 보이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네가 말을 거는 건지는 몰라도, 괜히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던, 차분히 받아내자. 녀석도 생각이 있으면 괜한 싸움을 벌이려 하진 않을 터였다.
“병신 같은 새끼.”
시작부터 욕설인가. 참 한심했다, 언뜻 고결해 보이는 녀석의 외모와는 달리, 녀석의 주둥아리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의 탓이겠지. 그 아비의 그 자식이라고, 개의 자식이 호랑이일 리가 없을 터였다.
무시하자. 그런 생각으로 나는 침묵을 지켰다.
“......”
혼자 신나게 떠들게 놔두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괜히 하나하나 대꾸했다가 큰 싸움으로 번졌던 게 하루이틀인가. 신나게 떠드는 녀석의 녹안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녀석의 눈에서 번지는 감정은 아무리 보아도 열등감이 아니던가.
그 오만하던 녀석이 가지는 열등감이란, 꽤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열등감에 적셔진 녀석이 떠드는 말 따위, 귓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뭐가 그렇게좋은 거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실실 웃는 거야?”
“...네가 무슨 상관...”
“아니, 상관있지. 늘 그렇듯 얼굴이 썩어있으면 모를까, 기분 좋은 얼굴이라면 그냥 둘 수가 없거든.”
사람이 웃는다고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건가? 문득 그런 의문이 서렸지만 깊게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이 녀석은 원래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도대체 왜 여기까지 입학한 거야? 네 주제를 모르는 건가?”
내 주제라, 그런 걸 너 따위가 정할 수 있는 거였나. 내가 노려보자 녀석은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몰라서 묻는 건가, 네 어미 탓에 더러워진...”
어미, 그 말을 듣는 순간에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네가 뭔데-내 어머니를 욕하는가. 내 짧은 평생을 생각해도, 난 다른 사람에게 욕보일 만한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잡종이라며 나와 엄마를 욕했으니까.그렇게 조심하며 살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더 이상 참는다, 라는 선택지는 내게 존재치 않았다. 설령 이 자리에서 제적조치를 당한다 하더라도- 카이사라는 녀석에게 사죄 받아야 한다.
그 일념으로, 나는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녀석의 이능은 신체의 일부를 경화시킬 수 있는 것. 내 폭발을 견디리라는것 즈음은 예상했다. 하지만- 연속된 폭발이라면 어떨까. 조금 더 빠르게, 검이 닿는 시간이 찰나보다 빨라지도록, 몸에 직접 닿지 않아도 좋았다. 녀석의 근처, 옷깃에- 하다못해 공기에 닿아 터트려도 좋았다.
피해를 중첩시키면, 아무리 단단한 녀석의 몸일지라도 충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단순히 이능만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이능을 제대로 다루기 위한 내 신체부터 시작하여 검을 다루는 기술, 검뿐 만 아니라 권, 각, 그 모든 것을 단련했다.
...녀석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그럼에도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녀석의 경화가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으니. 폭발의 경도가 강해질수록 튀는 파편이 많아졌고, 그 파편 하나하나가 폭발의 매개체가 되어 더 큰 폭발을 불러일으킨다.
‘장기전엔 내가 유리해.’
녀석 또한 그걸 아는지 공격의 강도가 거세졌다. 맞받아치는 건 이제 무리에 가까운 상황, 스읍- 짧은 호흡과 함께, 녀석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모든 행동은 어깨와 발로부터 시작한다. 그로부터 보이는 진행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없는 공격은 없으니.
녀석의 무릎이 굽혀진다, 조금이라도 힘을 더 실어내기 위해서겠지. 무릎을 굽히면서 나타내는 약간의 틈- 공격을 성공시키려면, 지금 뿐이다. 뇌에서 신호가 보내지기 무섭게 내 몸이 움직였다. 주변의 시선이 쏠렸음을 진작 느끼고 있었고, 아마 곧 제지가 들어올 터.
몸을 비틀어 최대한 힘을 실었다. 어깨를 타고 심장, 다시 허벅지에서 발끝. 순환한 힘은 녀석이 아닌, 바닥을 향했다.
콰아앙-!
폭발로 깊게 패인 바닥에서 수많은 파편이 튀었다. 그에 따라 이는 엄청난 양의 분진(粉塵).
“...너!”
여유롭던 녀석의 얼굴이 급격히 식어갔다. 아마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 챈 거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이미 닿았고, 폭발은 시작되었으니.
너무나 거대한 폭발이기에- 소음은 없었다. 일렁이는 불길 속에서, 모래처럼 퍼진 먼지 속에서, 홍염으로 이루어진 꽃이 피어난다. 몸을 집어삼키려는 화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열기. 제적은 확실하겠네, 결계가 깨져나가는소리를 들으며, 나는 곧이어 찾아올 불길에 대비했다.
...허나, 폭발은 없었다.
마치 누군가 도관을 잘라내기라도 한 듯, 피던 꽃이 갑작스레 몸을 움츠리듯, 폭발이 멈춘 탓이었다. 흩날리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열기 대신에, 모든 것을 얼어붙게할 것만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얼음?’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붉게 이는 듯한 석양을 연상케하는 눈과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아이샤, 그런 이름이었지.
하지만 어째서 저 사람이? 처음 드는 감정은 걱정이었다. 자신과 카이사의 싸움은 결코 안전하다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터트리고, 휩쓰는 격전. 그런 싸움에 끼어들려 한 것이라면- 혹여다치지는 않았을까.
아주 잠깐 이었지만, 그녀의 몸을훑어보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이 얼음이 그녀의 것임을 깨달았다.
싸움을 말리려 하는 건가?
하지만 그녀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오늘 처음 만나- 이름을 알려주고 말을 튼 사이. 그 것을 특별한 사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적어도 상식상 아무 사이도 아닌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다칠 수도 있었다.
선생님들마저 손을 놓고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윽고 그녀의 눈에서 감정 하나가 읽혔다. 아까처럼 무표정했지만, 희미한 걱정이 서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 것이 무엇을 향한 걱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방금까지 차오르던 분노가 옅어짐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한들,얼려지는 건 사절이었다. 그래서 얼음을 부쉈지만 얼음이 어는 속도는 생각보다도 훨씬 빨랐다. 팔에 있는 얼음을 부수면 다리가 얼고, 다리에 있는 얼음을 부수면 몸통이 얼어붙었다.
아마 이걸 부수는 건 무리겠구나. 그렇게 체념하며, 나는 아이샤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까 보였던 희미한 걱정마저 사라진 그녀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다시 만날수 있으려나. 어쩌면 오늘 벌인 싸움으로 정학, 아니 제적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입학식이라는 행사에서 그런 규모의 싸움을 벌인 건 결코 가벼이 넘어갈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기껏 생긴 ‘같은 반’이라는 접점을 놓치는 게 조금 아쉬웠다. 아니, 조금이 아닌가. 무척 아쉬웠다. 이런 감정이 어째서 생기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마냥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 감정의 원인이 뭔지 조금 더 가까이에서 알아보고 싶었는데.
쩌적-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차가운 얼음 속에서 나와 카이사가 갇히고, 시야가 어둡게 물들었다.
#
낯선 천장이었다. 방금까지 보았던 환한 조명으로 가득한 대강당의 천장이 아닌, 창문을 타고 어렴풋이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인 공간이었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그런 의문과 동시에 아까까지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카이사와의 싸움, 부서지는 대강당, 그리고...나를얼리던 아이샤.
아마 그 얼음이 녹아내린 뒤 이 곳으로 옮겨진 걸까. 얼어붙었던 것의 영향인지 이불을 덮고 있음에도 조금 추웠다. 이제 봄이 어느 정도 지난 터라 막 추운 날씨는 아닐 텐데 말이다. 어깨까지 덮인 이불을 살짝 끌어올리고, 누워있는 그 상태로 가만히 생각했다.
나를 여기로 옮긴 건 누굴까.
선생님? 그것도 아니라면...학생 중 하나겠지. 카이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렇게 싸웠으니 붙여놓는 게 이상하다.
내 처지를 잠시 생각했다.
입학식 첫날부터 허가 없이 이능 사용, 기물파손, 재물손괴, 학생들에게 위협...제적은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아버지에게 할 복수는 다른 계획을 세워 봐야할 것 같았다. 뭐 아직까지 내 처분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이 양호실로 보이는 곳에 있는 거겠지만.
...아무튼, 먼저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금 누군가와 마주치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가 싸운 이유를 얘기해야할 터, 별로 원치 않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침대를 정리한 뒤 짐을 챙겼다.
입학식 날 퇴학이라, 내가 한 일이지만 참 어이가 없었다. 그냥 참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 한들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게 엄마란, 역린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허리춤에 검이 무사히 있음을 확인하고,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디 가?”
그녀와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