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관심은 싫어(4) (8/115)



〈 8화 〉관심은 싫어(4)

“...아아악!”

아무도 없는 공터,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그런일에 나서가지고, 왜 제논이 싸울 때 끼어들어서, 일을 이렇게 꼬이게 만들어...! 얽혀도 제대로 얽혔다. 피하려 해도, 이번 일만큼은 결코 피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조차 말리기 꺼려하던 그 싸움을 내가 직접 말렸으니까. 당연히 당사자인 내게 관심이 쏠렸겠지. 게다가 내가 만든 그 얼음이 일반적인 이능으로 만들기 힘든  알고 있었다. 아마 이런 쪽의 이능으로는 화력이 뛰어나다 못해 현장에서 뛰는 히어로들 보다 월등하다는 걸 눈치챘겠지.

역시 정실...!

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야 있겠지만, 그와 달리 내 정신은 어질어질했다. 제논은 묻겠지, 왜 싸움을 말렸냐고.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네가 정학 먹는  보기 싫어서? 아니- 그건 아무리 봐도 플래그잖아. 애초에 싸움을 말린 시점에서 내가 여지를 남겼다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히로인이 되는 건 진심으로 싫었다.

애초에 이게 내 의지로 말린 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싸움 한복판으로 걸어가서, 어쩔  없이 말린 거잖아. 내 탓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리고 계속 여기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 이능을 해제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본인 뿐,  얼음을 녹일 사람도 나 하나밖에 없었다.  대강당에서 도망치듯 나왔는데, 다시 돌아가서 그걸 직접 녹이라고?

...진짜 싫다.

하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 나는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며 다시 대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왔구나!”
“...네.”

아까 A라 적힌 팻말을 들고 있던 사람이 날 맞이했다. 다행히 학생들은 전부 나간 터라 그 선생님과  둘 뿐. 적어도 아까같은 시선을 받을 일은 없어 보였다.

얼음은 약간의 물기조차 없이 현장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이능이라 그런지 단순히 실온이라 한들 쉽게 녹진 않는구나. 하기야, 소설에서도 아이샤의 얼음은 불로 지져야 겨우 녹을 정도라 했으니.

선생님은 얼음을 곤란한 듯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가 없었으면 곤란할 뻔 했어. 카르멘가의 아이끼리의 싸움은 말리기 힘들거든. 아마  강한 히어로들이 모여야 상처없이 제압할 수 있을 걸?”
“...으음, 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것까지야. 오히려 우리가 네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걸. 그나저나네 이능 대단하구나. 이 정도의 화력이라니. 이렇게 얼리고도 괜찮은 거니?”
“아...네.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러자 선생님의 눈이 반짝였다. 호기심, 신기함, 그리고...욕망? 내 손을 붙잡은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아카데미가 동아리활동을 권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니? 만약 딱히 정해둔 동아리가 없다면 우리 동아리로 와줘!”
“제가 동아리는 잘 모르는데요...”

주인공이 있던 동아리면 모를까, 다른 동아리는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언급도 없었으니까.

“혹시 마법 동아리 ‘해리’ 라고 들어봤니? 이번에새로 창설되는 건데 이능이 아닌 인류가 얻지 못한 ‘신비’를 탐구하는 동아리야. 너 들어오고 한 명만  구하면 되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동아리다. 그나저나 이능이 있는 세계에서 마법을 탐구한다라, 정말  데 없긴 하지만...주인공이 가입하지 않을 동아리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히어로로 성공하려고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괜찮지 않을까?

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선생님은 눈에 띄게 기뻐하며  팔을 마구 흔들었다. 아, 아...그렇게 흔들면 아픈데.

“진짜!? 정말이지! 진짜 고마워,  우리 동아리의 마스코트로 삼아줄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요.”
“내 이름은 레이샤야, 나중에 동아리 찾을 때 교무실 가서 나 찾아오면 돼. 내 얼굴 기억하지?”
“그렇게 기억력이 안 좋진 않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좋아, 좋아. 아-주 맘에 들어!”

뭐가 그리 맘에 드는지 모르겠지만, 레이샤의 붉은 단발이 이리저리 살랑거리는 걸 보면 정말 기뻐하는 것 같긴 했다. 저렇게 좋아해주는데, 뭐 나야 나쁠 것도 없지. 나중에 동아리에 가입할 때 정말 찾으러 간다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이  간다. 기절하는  아니야...?

내 팔을 이리저리 흔들던 레이샤는 그제서야 제논과 그 여자애가 갇힌 얼음이 생각났는지, 얼굴을  굳히며 나를 바라봤다.

“...그으, 저 얼음 좀 치워줄래?”
“그거 하려고  건데요.”
“흐흐, 그렇지? 아무튼 미안해. 원래 저것만 부탁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말이 길어졌네.”
“괜찮아요. 근데 저거 녹인 다음에 어떡하죠? 양호실에 데려다 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얼음으로 가두었기 때문에 당연히 체온에 영향이 간다. 아무리 몇 분 안됐다 한들 오래 냅두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 제논이 감기에 걸리던 말던 내  바는 아니더라도, 그게 내 탓이 되면 신경 쓰이니까...최소한의 치료는 받게 해야 했다.

“네가 옮겨야지. 선생님은 바빠요.”
“...네?”

그게 무슨 무책임한 발언이야. 살짝 어이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이샤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거든. 2학년들 수업해야하는데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야.  저거 녹이는 것만 확인하면  바로 수업으로, 이해했니?”
“이해는 했는데...”
내가 제논을 옮기라고? 양호실에?

가뜩이나 떨어져 있고 싶은데, 내가 그걸 왜...? 순간 내 얼굴에 서린 의문을 읽었는지, 레이샤가 슬쩍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 쓰러져 있는 애, 잘생겼잖니. 만약 네가 쟤를 양호실에 옮겨줬다고 하면, 혹시 모른다? 나중에 고마워서 만나자고 할지.”
“아니...그러니까 저는...”
“잘 해봐. 선생님이 응원할게?”

자기 멋대로 이어주지 말라고요. 그렇게 면전에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선생님한테 그럴 순 없어 그냥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그래,  옮겨준다고 어떻게 되겠어? 누가 옮겨 줬는 지만 모르게 하면 되잖아.

“...알았어요. 옮겨두기만 하면 되죠?”
“응, 너도 너네 반에 가봐야지.”
“...하아.”

녹이고, 들어서, 옮겨두기만 하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얼음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일반적인 얼음처럼 물로 녹아 바닥에 흐르는 게 아닌, 내게 빨려 들어오는 얼음. 레이샤는 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내게 담요를   건넸다.

“자, 아무리 그래도 얼음 속에 있었으니까 덮어두고 옮기는 게 좋을 거야.”
“역시 제가 옮기는 거네요.”
“흐흐, 미안해. 선생님이 바쁘지만 않아도 도와줬을텐데. 오늘이 개학날이라 조금 바쁘다. 그럼 믿고 맡길게!”

그렇게 말한 레이샤는 손을 살살 흔들며 대강당을 나갔다. 정말...나보고 옮기라는 거구나. 얼음에 갇힌 여파로 기절한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사람도 선생님을 하다니, 어쩌면 이 세상은 글러먹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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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윽...허리야...”

제논을 등에 업자 육중한 무게가 나를 덮쳐왔다. 어떻게 서있을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이 무게는  너무한 것 같지 않나? 단단한 녀석의 가슴팍이 등에 닿자 살짝 불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땅에 내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녀석을 업고 양호실까지 데려왔더니...허리가 아작날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멀쩡했을텐데, 여자의 몸을 가지게  탓에 근력이 확 줄었다.

이능을 이용해서 옮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얼음에 얼려진 녀석을 또 차갑게 옮기면 감기에 걸릴 테니. 이렇게 직접 옮기는 것 밖에 없었다. 게다가 둘을 다른 양호실에 옮기느라 그 힘듦은 배가 되었고.

침대에 녀석을 겨우 눕히고, 이불도 올려주었다. 녀석이 알면 감동하겠지만, 제발 내가 했다는 걸 몰랐으면 좋겠네. 괜히 내가 했다는  알게 되면, 또 귀찮게 고맙다 어쩐다 하면서 찾아올 거고. 그런 과정에서 살짝 말실수를 하면 플래그가 꼽힐 터였다.

누워있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자, 확실히 주인공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운 탓에 아까까지 말끔히 되어있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고, 호흡도 거칠었지만...그럼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게.

아니,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냥 남자가 누워있고, 녀석의 얼굴은 평범했다.

“큰 일날  했네.”

녀석을 순간이나마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다니, 이게 주인공의 오오라인가? 아무래도 더 조심해야 될 것 같았다.

콜록-

그러던 차, 녀석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감기라도 걸린 건가, 손으로 이마를 짚어봤지만 딱히 뜨겁진 않았다. 체온계가 어딨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체온계가 보이지 않았다. 체온계 없는 양호실이라, 약간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일단 찾는 게 먼저였다. 창고 같은 곳에는 있으려나?

배까지 덮인 이불을 살짝 올려주고, 그대로 복도에 나오자 어지러운 구조가 나를 반겼다. 양호실에 올 때는 그냥 양호실이라는 표식만 보고 오느라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내부가 복잡했다. 창고, 창고가 어딨으려나...

그렇게 복도를 빙빙 돌며 두리번거리던 찰나, 창고라 적힌 팻말을   있었다. 다행히 체온계는 가까이 있었고,  걸 챙겨든 채 재빨리 창고를 빠져나왔다. 선생님 허락도 안 받고 창고에 들어간 터라 혹시 들키면 뭐라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근데 내가 제논 체온을 재려고 하는 거지?

순간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냈다. 그냥 감기에 걸렸는지 확인만 하는 거니까.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 얼음 탓에 체온이 올랐으면 체온 정도야 재줄수도 있는 거지.

응,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양호실로 향하던 그 때에, 양호실 안 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누군가 움직이며 짐을 챙기는 것만 같은 소리. 제논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에 문으로 다갔을 때, 문이 벌컥- 하며 열렸다.

“......”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는 녀석. 나를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는 녀석을 툭툭 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어디 가?”

가더라도 열은재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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