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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시험은 싫어(5) (14/115)



〈 14화 〉시험은 싫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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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카르멘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심정은, 결코 유쾌하다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식히려고 올라온 옥상인데, 어째 생각이 더 꼬이는 것 같지 않은가. 가슴이 답답해지며,   있던 감정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너무 친해지지 말라고?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였다.

“좋아요.”
“...응?”
“걔랑- 별로 친해질 생각도 없었다는 거에요.”
“푸흐, 그렇구나. 재밌어.”

마치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그녀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내 대답이 이런 식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걸까.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옥상에 그녀와 나 둘만 있지 않다는 걸 알아챘으니까.

“제논이 들으면,  마음 아파하겠는데.”
“...그럴지도 모르죠.”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다. 당연히, 아주 당연하게도 아파하겠지. 내 이기심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결말이 나는 그 순간까지 틀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노리는 건 그것이었다.

“만약 제논이 지금  말을 듣고 있다면, 어떨  같아?”
“...딱히.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푸흐.”

가슴 한구석이 시큰 거렸다. 헤라 카르멘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일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내뱉는 의미심장한 발언. 아마- 제논은 저 옥상 문 너머에서 이 말을 듣고 있겠지.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친구라 생각한 적도 없으니까.”

쿵-

그말과 동시에, 옥상의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녀도. 옥상 문 근처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래, 듣고 있었구나.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듣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를 만난 이상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만약 내가 아는 대답을 했다간, 최악으로 치닫게 되니까.

“어머,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나 보네. 제논은 아니겠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능글맞게 웃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이 이렇게  풀려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원작에서도 아이샤와 헤라는 마주했었다.  장소가 옥상은 아니었고, 흘러가는 대화의 양상도 지금과는 정반대였지만.

그녀와 만난 순간 알아차렸다. 이건 곧 있을 실기 시험과 관련 있을 거라고.

실기 시험, 그리고 헤라 카르멘. 그 두 개의 키워드가 가리키는 건, 결국 내가 아는 전개 중 하나에 닿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 전개를- 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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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지하철 특유의 소음이 울려 퍼진다. 묘하게도 안정감을 주는  소리와,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나는 앞에 서있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이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 잔뜩 헝클어진 흰색의 머리는 정리조차 안했는지 붕 떠 있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걸까. 아마, 내 탓이겠지만.

괜스레 드는 죄책감에 시선을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망가질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말해, 그냥 약간 멀어질 거란 생각에 헤라 앞에서 그렇게 내뱉은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제논과 나는 그냥 아무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어쩌다보니 엮인 인연. 딱 그 정도 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제논은아마-  친구라 생각했던 걸까. 그 생각에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사정을 알게 되더라도, 녀석이 나중에 용서할지. 아무리 히로인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해도, 듣는 사람 앞에서, 그 것도 나를 친구라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조금 아니잖아.

“흐으...”

솔직히 미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마음을 다지며, 나는 곧이어 내릴 종착점을 노선도에서 찾았다.

“제논, 내려.”
“......”

도착했음에도 멍하니 문을 바라보는 녀석에게 입을열자, 제논은 터벅거리며걸어 나왔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이제 대답도 안 하는구나. 그게약간 씁쓸하긴 했지만, 내 업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

내가 바라던 게 이런 구도긴 했지만. 막상 정말로 그렇게 되니까 조금...불편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고, 나는 저번에 샀던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프레이가 아니었으면 이런 게 있는 지도 몰랐겠지. 단순한 시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스마트폰 보다 몇십배는 진보한, 그야말로 현대 문명의 총화나 다름없었다.

화면은 홀로그램으로, 그것도 상황에 따라 나만 보게 설정할 수도 있었고, 손목 시계라는 형태 덕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박스에 비하면 휴대성도 뛰어났다. 스마트 박스가 단종된지 5년이 넘었다는 걸 알았을 때에 충격이란.

버튼을 조작해 홀로그램을 띄우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기 시험 장소에 도착하면 홀로그램을  달라, 라고 부탁드렸는데. 미리 켜지는 않으셨겠죠. 여러분은 활동할  2인 1조로 붙어 다니셔야 합니다. 떨어지는 상황도 물론 있긴 하겠지만. 아직 히어로가 아닌 여러분께 혼자 활동이란 매우 위험한 행위죠. 빌런은 학생들도 마다하지 않고 공격합니다. 정말-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꼭 함께 활동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 홀로그램이 종료되는시점부터, 12시간의 실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툭-

홀로그램이 꺼짐과 동시에, [12:00]이라 적힌 전자시계가 떠올랐다. 아마 지금부터 실기 시험이 시작되겠지.

“...붙어 있으라고.”

교수가 한 말이 걸렸다. 그렇게 할 생각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나는 제논과 떨어져 활동할 생각이었다. 지금 분위기도 그렇고, 같이 다니는 건 조금 많이 어색했으니까.

“제논, 나는 B지구 쪽으로 갈게. 너는  쪽으로 가.”
“...알았어.”

아까 홀로그램을  것을 보긴  걸까. 녀석은 아무 이의도 던지지 않은 채 한 쪽으로 사라졌다. 내가 한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부디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만 되지 않기를, 내심 빌 따름이었다.

“...하아.”

제논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그렇고, 아무튼 지금  상황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서로 반대 방향으로 떨어진 탓에 내가 아는 전개가 반복되진 않겠지만. 그 전개를 피한다 해서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겪을 사건은 약간 나중에 일이니까.

실기 시험에 일단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히어로의 업무란, 단순히 빌런을제압하고 퇴치하는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그게 주가 되긴 했지만, 세상의 위험이 단순 빌런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빌런이 아니더라도 위험한 요소는 존재했다.

가령, 공사장에서 떨어지는 철근이라던가.

콰드득-

“고,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사람이 가득한 시내에서 길을 헤매는 아이라던가.

“흐윽...우리 *훌쩍* 엄마...어, 어디 있어요?”
“....내가 찾아줄게.”

세상에 도움을 바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히어로의 일. 어찌 보면 그저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심부름꾼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도움을 바라는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잘.

마음이 후련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인지 몰랐다. 인생을 절반 손해 봤다고 해야 할까. 내가 도움을 준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흘린 눈물을 닦아내며 감사를 전할 때 그 쾌감이란, 순간  몸이 짜릿해질 만큼이나 굉장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게 히어로란 직업은 단순히 대우를 떠나 잘 어울리는 직업이 아닐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이런 것을 매번 느낄 수 있다면. 그마저도 좋을지 몰랐다.

“...6시간 남았나.”

어느덧 하늘의 가운데에 떠있던 태양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희미한 달빛이 자리 잡았다.강렬한 빛에 숨기고 있던 몸을 드러내며, 어두운 장막을 이끌어낸 탓에 도시엔 침묵이 내려앉고, 사람들의 인영을 찬란한 네온사인 빛이 대신했다.

한 건물에 옥상에 걸터앉아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인생의 낙이 아닐까. 아직 온전히 사라지지 않은 겨울의 잔향을 온 몸으로 맞으며, 흡사 하늘의 별을 아래로 옮긴 듯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좋네.”

아주 작은 중얼거림, 원래 같았으면 그저 혼잣말이여야 했지만.

“그러게, 좋아 보여.”

내 뒤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뒤롤 돌아봤을 때. 내가 생각하던 그 사람이 서있었다. 아니, 저걸 사람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130조차 되지 않는 작은 키, 중절모와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바닥까지 닿는 코트를 입은 검은 인영. 목도리와 모자 사이에는 코도, 눈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건 짙은 어둠.

“헤라가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건가.”
“아니, 그 사람은 나한테 여기 오지 말라고 했었어. 분명히 들었지.”

제논이 사라지고,  옥상에서 헤라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다음 실기 시험 때, B지구 쪽은 가지 마. 난 경고했다?

“그런데도 여기 온 거야? 뭐지, 이해할 수가 없네.”
“이해하지 않아도 돼. 제논한테도, 그리고 너희한테도 이해받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

그 작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녀석의 손에서 검은 색의 구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주변의 입자를 빨아들이는 검은 구체. 녀석의 이능인 ‘블랙홀’답게, 그 것의 흡입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콰드득-

제논은 멀리 떨어져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손으로 얼음을 만들어냈다. 녀석의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드린다. 설령 그것이 폭발일지라도. 그야말로 제논에게 최악의 상성이 아니던가.

원작에서의 전개를 피하려고 이런 수를 두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과연 제논이 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최악의 상성을 만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반파되었다. 처음 볼  나조차도 욕지거리를 내 뱉었던 전개.

그로 인해 제논이 얻은 것은, 단지 트라우마 뿐이었다.

그런 걸 되풀이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녀석과 마주하긴 했지만...무서운  사실이었다. 명백히 내 목숨을 노리는 빌런, 이렇게 짙은 살의를 느끼는 건 너무도 오랜만이었기에. 내 몸은 어느 샌가 떨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그런 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손은 녀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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