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동아리는 싫어(3)
“...이제 좀 괜찮아요?”
한참을 토닥여주자, 그제서야 기분이 좀 풀렸는지 레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울고 있는 건지, 제논을 슬쩍 쳐다봤지만 자기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만.
“하아, 진짜...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무슨 일인데요?”
“동아리문제야. 그러고보니 아이샤, 저번에 내가 너한테 동아리 가입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잖아. 혹시 답은 정했니?”
“그을...쎄요. 솔직히 동아리에 관심을 가져보질 않아서.”
“그냥 몸만 오면 된다고...”
“아하하...”
사실 동아리 문제도 너무 갑작스레 다가온 일이라, 조금 생각이 필요하긴 했다. 가입을 할지 안할지에 대해 확실히 결론 내린 것도 아니고, 무슨 동아리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가입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내 관심이 쏠린 건 동아리 가입보다도, 레이샤가 푸념하듯 던진 화두인 ‘동아리 문제’였다. 설마, 아직도 인원수를 다 못채운 걸까. 내 짐작대로, 레이샤는 아무도 동아리에 오지 않으려 한다고 투덜거렸다. ‘마법’이라는 것은 일종의 오컬트, 꽤나 매니악한 탓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
“난 인정 못 해. 아니, 진짜 오기만 하면 학생부 알아서 다 적어준다고. 활동할 커리큘럼도 다 짜져있고, 다른 동아리처럼 활동을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아무리 봐도 마법이 문제잖아요...”
이능이 있는 사회에서 마법을 추구하는 동아리라, 내가 전에 살던 세계에서도 마이너한 취급이었는데, 하물며 이능이 존재하는초능력 사회에서 마법을 찾다니,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라 한들, 솔직히 ‘마법’ 동아리에 들고 싶진 않았다. 베로니카 교수님이 운영하는 동아리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지만, 레이샤는 그걸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너희라도 들어올래?”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니까요.”
“내일이 마감일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하아. 이래서야, 대화가 통하질 않았다. 아마 동아리를 구성하는 시간은 내일까지가 마감. 레이샤는 자기 동아리에 꽤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도무지 구해지지 않는 부원에 저러고 있는 것 같은데. 상황은 알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동정심만으로 가입할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나중에 언제...?”
“내일 아침에 제가 꼭 찾아뵐게요. 알았죠?”
“...응.”
그제서야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샤, 정말 어른인데도, 이렇게 애처럼 달래줘야 하는 게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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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할 거야?”
레이샤를 달래는 동안 잠자코 있던 제논이 물은 건 내가 동아리에 가입할 지에 대해서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고개를 젓자 제논은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곤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얘는 하려나? 원작에서는 했지만, 이제는 전개가 완전히 틀어져 어떻게 될지를모르겠다.
“넌 할 거야?”
내 질문을 들은 녀석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네가 하면, 나도 할게.”
“굳이? 나 안하면?”
“...안 하겠지.”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하기야, 동아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해를 못할 것도 없긴 한데.
“그래도...일단 생각은 해봐야겠지. 권유도 여럿 받았으니까.”
“...근데, 난 베로니카 교수님이 권유한 건 딱히 들어가고 싶진 않아.”
“나도 거기는 조금 그래, 너무 빡빡한 건 싫거든.”
“...다행이네.”
“응?”
“아, 아니야.”
왜 거길 안 들어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왕 권유도 받은 김에 동아리를 이것저것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마 프레이가 잘 알지 않을까. 그런 쪽에는 프레이가확실히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프레이에게 가려는 찰나, 배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에 지금이 밥 먹을 시간이라는 걸 떠올렸다. 아까 핑계를 댈 때도 점심 시간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벌써 점심 시간이네.”
“응...와서 거의 4시간을 붙잡혀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얘기가 1시간, 2시간을 넘어가더니 4시간 동안 이어졌다. 거기에 레이샤의 푸념도 들어줬으니. 수업도 못 듣고, 점심 시간도 어느덧 몇 분 안 남은 시점, 나와 제논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급식실로 향했다.
“오늘 급식 뭐 나오지?”
“아마...닭볶음탕일 걸.”
“으엑.”
원래 닭볶음탕을 그리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주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스펀지를 씹듯 퍽퍽한 살, 양념조차 제대로 베이지 않은 채 급조된 그 반찬은 어지간해선 피하고 싶은 메뉴나 다름없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땐 그랬었는데, 아카데미는 나름 명문고였으니 그래도 조금 낫지 않을까?
“...싱거워.”
물론, 아무리 명문고라 한들 급식마저 맛있는 건 아닌 듯 했다. 학생의 성장을 고려한 식단 탓에 싱거워진 반찬, 딱히 퍽퍽하진 않더라도 간이 거의 안 된 건지 도무지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탁, 먹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자 제논이 나를 슬쩍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안 먹어?”
“맛없어.”
“...아이샤,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아까 교수님이랑 있을 때, 헤라 얘기는 왜 안 한거야?”
살짝 의아하다는 듯, 제논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헤라 카르멘이 그 빌런들이 침입한 것에 개입했다는 걸 알린다면, 베로니카 교수님이 언론에 알리고, 탑히어로인 에드윈 카르멘의 위상도 깎일뿐더러, 헤라 카르멘또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일이 좋게 흘러가는- 말 그대로 최상의 시나리오일 때의 얘기.
헤라 카르멘이 거기에 개입했다는 건 사실 우리 둘만 아는 사실이었다. 어떠한 증거도 없고, 언론에도 그저 정체불명의 빌런이라고만 나올 뿐 구체적인 특징조차 잡히지 않았다. 평소 쓰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이능을 운용한 헤라였기에, 이능을 특정하여 잡기도 그랬다. 세상에 물 관련 이능을 쓰는 사람만 수백만 명에 달할 텐데, 어떻게 특정하냐는 거지.
무엇보다도, 에드윈 카르멘이 지닌 입지가 너무 단단하다. 빌런을 심판하는 정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그의 딸이 빌런과 합작해 테러를 벌였다? 충격적이지만, 오히려 충격적이기에 그 신뢰성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증거도 없으니, 단순 루머 취급을 받으며 되려 우리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일개 학생, 조금 더 확실히, 치밀하게 준비해야 했다.
“...뭐 그런 거야.”
“확실히...”
내 얘기를 들은 제논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 조용히 있던 게 이 생각을 하느라 그랬던 걸까. 마음 같아선 교수님한테 알리고 손을 놓고 싶긴 했지만, 위험한 부분이 너무 많기도 했고.
“흐으...”
그나저나 참 많이도 먹는다. 나야 중간에 수저를 내려놨지만, 제논은 아까부터 급식을 더 받으면서까지먹는 중이었으니. 벌써 몇 번째지? 하나, 둘...손가락을 펴며 세다가 한 손을 모두 편 이후로는 그냥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게 다 들어가?”
“조금 많이 먹는 편이라.”
조금 많이 먹는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계속 기다리다간 수업 시간에 늦을 것 같아 먼저 일어나려는 찰나, 제논이 먹다 말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어디가?”
“먼저 가려고, 5분 뒤에 수업 시작이잖아.”
“...내가빨리 먹을게, 같이 가.”
어쩐지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녀석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도로 앉자, 제논은 남은 음식을 재빨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다먹었어.”
어느덧 산처럼쌓여있던 음식이 사라지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녀석을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제논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적게 먹은 건데.”
“에휴.”
먹는 걸로 뭐라 하기도 그래서 한숨을 내쉬자, 제논은 미안하다며 옆으로 다가왔다. 아까부터 묘하게...내 옆에 있으려 하는 것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앞서가자 잠깐 있다가 다시 제논이 옆으로 붙어왔다.
“...제논.”
“왜?”
“자꾸 옆에 붙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걸.”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예 발걸음 간격까지 맞춰 걷는 걸 보면서 그냥 체념하기로 했다. 왜 이러는 지는 몰라도, 계속 신경 쓰면 머리 아픈 쪽은 나인 터라. 그냥 무시하고 앞만 보며 걷던 그 때에 제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나랑 같이 다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다쳤잖아. 나 때문에.”
그러면서 녀석은 내 목을 힐끔, 바라보았다. 어제 다쳤던 상처, 빌런 들과 싸우며 베였던 흔적인데...밴드를 붙여 잘 보이지도 않건만 녀석은 계속 신경 쓰였던 건지 그 상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불안해.”
붉은 입술이 한 순간 떨렸다. 푸른 눈동자 또한, 마른 나뭇가지에 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동자에 담기는 것은 온전한 나의 모습. 시선의 끝이 상처에 닿은 순간, 그 흔들림이 더욱 커졌다.
“또, 나 때문에 누군가가 다칠까 봐. 내가 없을 때, 네가 다칠까 봐."
제논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기억- 자신 때문에 다치고, 스러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에게 그 사람들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이해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그 기억에 얽매여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아하는 그 마음을. 질리도록 겪어왔고, 이제는 더 이상 질려버린 그 감정을. 솔직히 녀석이 나를 지켜준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건 아니었다.
아직 나는 제논보다 한참은 더 높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만약 지켜준다면 반대의 입장이 되어야지. 녀석에게 지켜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설령 그 사람이 내게 지켜지는 것 따위 필요 없다하더라도.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고, 상처입는 것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녀석의 얼굴에 손을 내밀어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치게 했다.
"제논, 나를 믿어."
"...하지만."
"제논."
나와 제논의 사이를 뭐라 해야 할까? 전에 있던 내 관점으로는, 주인공과 메인 히로인. 지금의 나와 제논은...그저 어쩌다 마주쳐서, 싸움을 말리고, 싸움에 휘말리는 그런 관계. 어쩌면 아무런 호칭조차 없을 그 관계에, 나는 한 단어를 추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인은 절대 싫었고, 그렇다고 조연은 더더욱 싫었다. 그렇다면, 친구는 괜찮지 않을까.
"친구니까, 믿어줘."
그 정도는 괜찮겠지.
어느덧 새빨개진 눈에서 물줄기를 흘리는 제논의 얼굴을 닦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