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동아리는 싫어(5) (24/115)



〈 24화 〉동아리는 싫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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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비에 어깨가 적셔진다 한들 아이샤는 여자고, 나는 남자였다. 서로 몸을 밀착시킨다는 것에 거부감이  수도 있을 텐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괜히 죄책감이 밀려왔다.

자기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착한 심성탓에 나를 안쓰럽게 여겨 억지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젖는 것보다야 낫잖아. 기껏 우산 씌워줬는데, 젖으면 안되지.”

하지만 고맙게도, 아이샤는 살짝 미소 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불편함이라곤 티끌조차 없어 보이는,  맑은 미소에 얼굴이 순간 터질 것만 같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애써 대답할 수 있었다.

“그, 하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티내면 안 돼, 티내면 안 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아이샤를 좋아한다는 걸 티낸다면, 아이샤는 뭐라고 반응할까. 솔직히 좋은 반응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서로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된 시점, 아직 친구라 부르기도 애매했건만, 그런 상황에서 대뜸 고백을 한다면 어색해지는 수준으로 끝나진 않겠지.

얼굴을 가린 손가락 틈 사이로 아이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똑히 솟아있는 콧날을 따라 내려오면 보이는 그 붉은 입술에 정신이 팔리기도 잠시, 다시 목에 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죽을 수도 있을 상처였다. 그런데도 그런 상처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딱히 신경쓰지도 않는  모습이 지켜보는 사람을 더욱 애타게 만들었다.

“상처는 괜찮아?”
“...아, 목에 있는 거? 그냥 살짝 베인 거야.”
“...집에는 잘 들어갔어?”
“네가 데려다 줬으면서 무슨, 갑자기 왜 그래.”
“...그냥 궁금해서.”

그러고보니 내가 집에데려다 줬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사실이었다. 만약 집 안에 헤라가 있었다면? 음식에 독이 있었다면? 창문을 통해 누군가 침입했다면? 그런 불길한 생각들이 가득 차서, 도무지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능을 잘 사용하고, 나보다도 훨씬 강하다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독에는아무리 초인이라 한들 쓰러지는 법이었다.

...앞으로는 음식 같은 건 내가 먼저 먹어볼까. 허나 그런 생각은 집착에 가까움을 깨닫고선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에는 이렇게까지 생각이 흘러가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마음을 자각한 뒤로 증세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


학교에 들어서자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 진다. 그동안 따로 말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아이샤에게 시선을 보내는 남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계단을 올라가며 반으로 가는 와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샤에게 향한다. 개중엔 나에게 향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딱히 중요치 않았다.

무수한 시선이 꽂히는  언제가 되었든 불편한 법이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만약 속으로 그걸 신경 쓰고 있다면-그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녀를 몸으로 가렸다.

그 시선들이 오로지 나를 향하도록.

반으로 들어가자 아이샤를 반기는 것은  초록머리의 여자아이였다. 머리카락 위로 솟아오른 무언가가  새 없이 쫑긋이며, 아이샤에게 찰싹 붙어 얼굴을 부벼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름이 프레이였던가.

여우같은 여자다. 아이샤의 유일한, 아니- 어쩌면 나까지 포함해 유이한 친구라  수 있는 여자. 늘상 아이샤와 찰싹 붙어있으면서도, 가끔 아이샤가 보지 못할 때 내게 은근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자신이 승리했다는 기쁨과 나를 깔보는 무언가 였기때문에 그런 거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곤 있었다. 아이샤의 일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진심으로 화내며, 진심으로 공감해준다. 그런 사람을 구태여 곡해하고 싫어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저 서로 이름을 아는 사이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으- 프레이, 어지러워. 그만.”
“다 아이샤 잘못이야. 왜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어.”

아이샤의 몸을 장난감 다루듯 흔드는 것이 딱히 맘에 들진 않았으나, 당사자가 괜찮은 듯 보이니 그냥 넘어가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한 여학생, 얼굴을 붉힌 채 나를 힐끔 바라 보는 모습이 무언가 할 말이 있어보였다.

“왜.”

저런 얼굴을 수없이도 봤기에,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무미건조한 감정.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가고,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이 식어간다. 입에서 메마른 대답이 나오자 앞에 있는 여학생이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용건만 빨리 말했으면 좋으련만.

그런 뜻을 담아 쳐다보자, 여학생은 시선을 내리깔며입을 열었다.

“그으...베로니카 교수님이 불러서...”
“알았어.”
“아, 아이샤도 같이 오래.”

아이샤도? 순간 의문이 일었지만, 아마도 실기 시험 얘기 일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다시 힐끔 나를 바라보는 여학생을 뒤로 한 채, 다시 아이샤에게 향했다.

“아이샤, 교수님이 불러.”
“너랑  부르는 거지?”
“응.”

‘너랑 나’ 묘하게 그 부분이 계속해서 떠올랐지만, 왜  따라오냐며 빤히 쳐다보는 아이샤의 시선에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

베로니카 교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모습을 보여도 되는 걸까, 하기야. 자신의 아버지도 그랬으니까.

...동아리라.

전에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주제였다. 히어로로써 순탄한 출발을 하려면 동아리는 꽤나 중요했으니까. 각 동아리마다 다르게, 특색에 맞춰 짜여진 커리큘럼에 따라 활동하고 수련한다. 베로니카가 얘기하는 동아리는 다른 동아리보다도 훨씬 빡빡하게 돌아가는  한데.

“에드윈 카르멘도! 저희 동아리였다구요!”

아버지도, 그 동아리에 들어갔던 건가.  말을 들은 순간 잠시나마 움직이려 했던 마음이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단단히 자리잡았다.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순간부터, 이미 베로니카의 동아리는 배제 대상이었다.

툭툭-

등을 두드리는 아이샤의 손길에 자리에서 다급히 일어났다. 나가자는 신호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정신이 팔린 탓에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에 다다른 시간을 핑계대고 빠져나오자, 아이샤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힘들었겠지. 내가 가만히 있는 사이 홀로 대답을 도맡아 했으니, 미안한 마음에 입을 열자, 아이샤는 괜찮다며 미소지어보였다.

“고생했어.”
“아니야, 그냥 얘기가 그렇게 길게 이어질지 몰랐어.”
“...그나저나 내일 보자는 건.”
“그때는 동아리에 억지로라도 가입시키겠다는 거겠지.”

그 말에 눈매가 살짝 좁아진다. 억지로 가입시키려해도 가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허나 만약, 아이샤가 그 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가 활동을 한다고 홀로 나가는 걸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너는 동아리 생각해둔 거 있어?”
“...아니, 동아리 자체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애초에 아카데미에 입학하자고 생각한 것도 거의 즉흥적인 계획에 가까웠으니, 자세한 조사를 했을 리가 만무했다.

“야-너!”

혹시 너는 그 동아리에 가입할 거냐며 물어보려 했건만.  소리치며 다가온 그 사람은 어느새 아이샤를 덥썩 끌어안으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레이샤?”

레이샤,  말을 들은 내 눈이 크게 뜨인다. 레이샤라, 내가 아는 이름과, 그리고 생김새도 묘하게 비슷하지 않은가. 기시감이 들어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나 만약 정말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면, 도대체 왜 아카데미에 있는 거지?

하지만 서럽게 울고 있는 사람에게 정체가 뭐냐 물을 수는 없기에, 그저 아이샤가 그 사람을 달래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내가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니까 동아리 문제야...”

그녀가 꺼낸 말은 간단했다. 자신의 동아리가 있는데, 인원수가 부족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니까 너희가 들어와 달라. 하여 무슨 동아리인지 들었을 때는 절로 실소가 머금어졌다.

마법 동아리라, 그런 동아리에 어떤 학생이 들어가려 할까. 아이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난처한 표정으로 레이샤를 바라보았다. 그런 동아리에 인원수가  한 모자란 것도 오히려 대단한 게 아닐까. 그렇게 푸념을  들어주기를 몇 분, 겨우 레이샤를 떠나 보낸 아이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을 달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동아리, 할 거야?”

흐음. 무언가 고민하듯 잠시 눈을 굴리던 아이샤가 이내 내게 시선을 돌렸다.

“넌 할 거야?”

내가 하면 너도 같이 하려는 걸까, 문득 궁금해져 빤히 바라보자 아이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너무 빤히 쳐다본 걸까. 허나, 동아리에 들어갈 거냐고 묻는 다면.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샤를 혼자 두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네가 하면, 나도 할게.”
“굳이? 나 안하면?”
“...안 하겠지.”

아이샤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베로니카의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했다. 탑히어로가 들어갔을 만큼 압도적인 동아리가 있는데 구태여 다른 동아리에 들어갈 이유야 없지. 베로니카의 동아리엔 들어갈 생각조차 없었으니, 아이샤가 생각이 없다면 나도 더 이상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일단 생각은 해봐야겠지. 권유도 여럿 받았으니까.”
“...근데,  베로니카 교수님이 권유한  딱히 들어가고 싶진 않아.”
“나도 거기는 조금 그래, 너무 빡빡한 건 싫거든.”
“...다행이네.”
“응?”
“아, 아니야.”

베로니카의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었다.


#

시간은 어느새 급식 시간에 끝자락에 다다라 있었다. 조금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양에 대한 제한은 없는 터라 마음 놓고 먹을 있다는 점을 높게 쳐주는 아카데미의 급식. 하지만 밥을 먹는 내내 내게 향하는묘한 시선에 고개를 들자, 아이샤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다 들어가?”
“조금 많이 먹는 편이라.”

지금 몇  다시 받았더라,  6번 쯤인가. 평소 같았으면 더 먹었겠지만, 시간이 촉박한터라 적당히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만 먹는 중이었다. 그렇게 몇 숟가락을 더 펐을 때, 갑작스레 아이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가?”

혼자 두면 안 돼, 본능이, 마음 속의 무언가가 끊임 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헤라 카르멘도 일단은 이 아카데미의 학생. 혹여나 마주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었다. 옥상에서 이미 한 번 마주친 전적이 있지 않은가.

“먼저 가려고, 5분 뒤에 수업 시작이잖아.”
“...내가 빨리 먹을게. 같이 가.”

혼자 가게 둘 수 없었다. 그렇게 최대한 빨리 밥을 먹어치우자, 아이샤는 어쩐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게 식판에 산처럼 쌓인 뼈라는 걸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에휴.”

교실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까보다도 더욱 많은 사람들, 수업 시간이 곧인데도 어째서 교실로 가있지 않은 걸까. 그런 상황에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아이샤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몸으로 시선을 가렸다.

그런 와중에, 발걸음을 맞추어 본다.  발, 오른 발. 별 거 없는 반복일 뿐이지만, 그 것이 동일해지는 과정에서 괜스레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직은 그저 나 혼자 좋아하는 게 다지만, 언젠가는 서로가 좋아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속에 희미하던 불안감이 더욱 커지는 것만 같았다. 아카데미에 다니는 이상 헤라 카르멘의 습격에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이샤가 그런 걸 대처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만약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지 않을까.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시선을 돌려 아이샤를 바라보자, 그 마음은 더욱 커졌다. 저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어 일그러지고, 종래엔 무표정하고도 차갑게 식어내린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지켜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나랑 같이 다녀.”
의문 섞인 시선이 돌아온다, 거기에 섞인 희미한 불쾌함이,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만 같은 고통을 전해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다쳤잖아, 나 때문에.”

아이샤가 다친 건 나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차마 아이샤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밀려드는 죄책감에, 그녀를 향한 불안감에 그 붉은 색의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었다.

“...불안해.”

문득, 입에서 속마음이 새어나왔다. 불안했다. 혹여나 또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봐, 내게 가깝다는 이유로 그 선생님처럼, 어렸을 때의 친구처럼 어느 순간 내 곁에서 사라질 까 두려웠다. 늘 내 곁에서 날 응원하던 어머니도 결국엔 사라졌지 않은가.

“또,  때문에 누군가 다칠 까봐. 내가 없을 때, 네가 다칠까 봐.”

후회하고 후회했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을 때, 내가 있었더라면 그런 일을 막을  있을 터였다. 허나 그렇지 못했고, 그렇기에 자책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를 원했다.

턱-

부드러운 손길이 볼에 닿고, 동시에 얼굴이 당겨져 다시금 그 눈과 마주친다. 나와 달리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반하면서도, 그녀를 위험하게 만든  자신을 자책한다.

“제논, 나를 믿어.”
“...하지만.”
“제논.”

싱긋, 그녀가 미소 지었다. 따듯한 숨결이 살랑이며 코를 간질이고, 미소 지었던 그 입이 다시금 속삭였다.

“친구니까, 믿어줘.”

주륵-

눈에서 나도 모르게 물줄기가 흘러 나왔다. 지금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아이샤의 미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의 사이를 친구라 칭하는  말이 가슴을 파고들어서, 신가하게도 안심이되는 것만 같았다.

친구,

그렇게 마음에드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지금은...그 것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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