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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동아리는 싫어(6) (25/115)



〈 25화 〉동아리는 싫어(6)

탁탁,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반으로 돌아왔을 때 보인 것은 아까와는 달리 책상에 붙어있다 싶이 축 늘어진 프레이의 모습이었다.

“프레이?”
“...응.”

왜 저렇게 힘이 없을까, 아까는 활력이 넘치다 못해 날 잡고 이리저리 흔들던 애가 저러고 있으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쿡쿡, 프레이의 몸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항상 미끈미끈해야할 점액이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찔렀어도 점액은커녕 말라있는 피부만 만져졌다.

“프레이, 어디 안 좋아?”
“비가...”
“비?”

갑자기 왠 비,  말에 생각난 건 프레이의 이능이었다. 달팽이, 그러니까 달팽이는 습한 걸 좋아하고...

건조한 날씨에, 굉장히 취약하다. 그러고 보니 비는 아까 그쳤었지. 시간이 지나 습한 기운마저 전부 사라지자 공기가 건조해지긴 했는데. 고작 그 정도로 이렇게 영향을 받는 걸까. 아예 몸 구석구석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주변을 적시는 모습을 보고선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무슨 얘기 하고 왔어?”
“실기 시험 얘기랑, 동아리 가입 권유 같은 거.”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기어가다 못해 땅 속으로 파고드는 그 목소리에 안쓰러워 하기도 잠시, 동아리라는 말을 들은 프레이의 더듬이가 순간 하늘로 치솟았다.

“...동아리?”
“응, 베로니카 교수님이랑, 레이샤 교수님이 권유하더라고.”

빙글-

공중에서 한차례 회전하는 더듬이가 이내 물음표 모양으로 바뀌었다.

“베로니카 교수님한테 권유를 받았다고?”

더듬이가 느낌표 모양으로 바뀌며, 프레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선 소리쳤다. 그와 함께 쏠리는 주변의 시선, 확실히- 베로니카 교수님의 동아리는 아카데미 내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긴 했다.

사실상 엘리트 히어로의 필수 코스가 아니던가. 그런 곳에 권유를 받았다니 시선이 오는 게 어쩌면 당연했지만, 솔직히 말해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프레이...!”

얼굴을 찡그리며 검지를 입에 대자, 프레이는 손으로 입을 탁탁 치며 말을 이어갔다.

“아으, 미안. 너무 놀라서, 그래서- 가입하기로 한 거야?”
“아니, 그냥 생각 좀 해보려고.”

딱히 끌리는 것도 아니고, 히어로라는 직업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둔 것도 아니니까.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자, 프레이가 눈매를 좁히며 날 노려보았다.

“너...가입 안 할 생각이지?”
“응? 아니, 뭐...그냥. 별로 끌리진 않아.”
“야이 바보야, 그걸 고민하면 어떡해!”
“그래도 3년 동안 할 동아리인데, 그냥 고를 순 없잖아. 그리고 난 빡빡하게 사는 건 힘들어.”

지금 당장 공부하는 데에만 시간을 꽤 쓰는 중이었다. 거기에 앞으로헤라 카르멘을 상대할 생각까지 하면, 이능을 조금 더 발전시킬 준비도 해야겠지. 이런저런 준비만 해도 바쁜데, 동아리 활동까지 겸해서 할 여유는 없었다.

뭐,  마법 동아리라는 곳은 커리큘럼만 고려한다면 여유 있다고 하지만...굳이 들어가야 할까 싶기도 하고.

내가 권유 받는 동아리가 얼마나 대단한 곳이고,  그런 걸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당장 들어가야 옳다는  열변을 토하는 프레이를 그저 빤히 쳐다보았다. 아까까지 축 늘어져 있다는 애가 이렇게 살아나서 얘기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나를 걱정해줘서 하는 말이니까 고맙기도 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머리를 쓰다듬자 프레이가 말하던 자세 그대로 딱, 하고 굳어버렸다. 더듬이 사이에 올라간 손으로 스으윽, 시선이 올라가고- 마침내 시선이 닿았을 때. 프레이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뭐, 뭐해?”
“쓰다듬는 중.”

아, 느낌 좋다. 프레이의 말은 뒤로 하고, 쓰다듬는 감촉 자체는 꽤 좋았다. 머릿결도 좋고, 점액이 있는 몸과는 달리 부드러운 강아지 털을 쓰다듬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한참동안 쓰다듬자 프레이가 돌연 머리를 푹, 하고 숙였다.

“...너무 일러 아이샤. 우린 아직 친구인 걸...”
“뭐라는 거야.”

또 혼자 이상한 상상한다. 이런 적도 한  번이 아니라 이젠 그냥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처음에야 약간 볼이 화끈해지긴 했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러니 이제그러려니 한다.

“아무튼  동아리 좀 설명해줄 수 있어?”

원래 부탁하려던 것을 꺼내자, 프레이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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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종류가 많구나. 프레이의 설명은 꽤 길게 이어졌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20분을 전부 잡아먹을 만큼이나. 그런 설명 속에서 들은 동아리의 이름만 수십 개였으니, 당장 들으면서 동아리에 대한 것들을 공책에 적어두긴 했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근데, 막  닿는 건 없네.”

원작에서도 동아리 활동이라 해봤자 곧이어 한 번 나올  것 뿐이고,  이후로는 언급조차 사라져 제논이 활동하던 동아리 외엔 나오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들어도  끌리는  없었다. 오히려 가장 이상한 동아리라 생각했던 레이샤의 ‘마법’ 동아리가 그나마 제일 관심은 가는데.

거기  바엔 굳이 동아리에 들어야 할까?

툭툭, 책상을 두드리며 동아리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앞에  그림자가 하나 생겨났다.

“아이샤.”

익숙한 목소리에 자연스레 고개를 들자, 제논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울어서 그런지 눈이 살짝 부어있네, 그런 생각을 하며 눈가를 살펴볼 때 쯤. 제논이 종이 한 구석을  찝었다. 마법 동아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 마법 동아리 있지.”
“레이샤 교수님이 말씀하신 거?”
“어, 그거...가입하려고.”

아마 아까 프레이의 모습과  모습이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제논의 말을 들은 나는 녀석을 올려다보는 모습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니, 거길 갑자기 왜?

“그리고 너도, 가입했으면 좋겠어.”
“아니, 잠깐. 제논, 이유는 말해주고 그렇게 말해야지.”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당황으로 파닥거리는 눈두덩이를 꾸욱, 누르며 제논에게설명을 요구했다. 마법에 갑자기 흥미가 생긴 건가? 아니, 분명 아까 레이샤 얘기를 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어보였는데, 추궁하듯 눈매를 좁히자 제논이 스마트 워치를 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지금 여기서 얘기하긴 조금 곤란하니까.”
“...그래.”

아직 쉬는 시간은 조금 남았으니까. 교실에서 나가는 제논과 나를 프레이가 힐끔 쳐다보긴 했지만, 나는 손을 살짝 흔들어 주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고 교실 밖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제논과 향한 곳은, 아무도 없는 빈 교실.

왜 여기까지 왔냐며 흘겨보자 제논은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 한 사람의 홀로그램을 띄워보였다.

“이 사람, 알아?”

홀로그램에 떠오른 사람은 한 여자였다.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의 장발이 길게 늘어진, 꽤나 사나운 인상을 지닌 여자. 마치 한 때 군인이었던 것처럼 제복을 입고 있는 그녀를 계속 바라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데?”
“...레이 마이어, 라고 하면 좀 알겠어?”

레이 마이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뇌를 스쳐가는 어떤 사람을 떠올렸을 때, 나는 제논이 나한테 이 사람에 대해 왜 묻는지 그 의도가 궁금해졌다. 아무맥락도 없이, 에드윈 카르멘 이전의 ‘탑히어로’를 물어볼 리가 없으니까.

“갑자기 그 사람은 왜 물어보는 거야?”
“그럼 이 사람은 누군지 알겠지?”

내 말을 무시한 채 제논이 보여준 다른 사람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당장 오늘 만났으니  얼굴을 까먹을 리가.

“레이샤 교수님이잖아...설마 너.”

머릿속에서 꽤나 괴상한 상상이 떠올랐다. 이렇게 두 사람을 보여주며, 그 것을 아냐고 묻는 것.  두 사람이...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라도 할 것 같지 않은가.

얼굴부터가 달랐다. 사나운 인상인 레이와는 달리 레이샤는, 조금 더 부드러운 인상에, 어쩔 때는 꽤나 맹해보이기도 했다.  울고, 자기가 맡은 일을 잘 안하고, 근래에 봤던 레이샤의 모습을 떠올려 봤을 때- 레이 마이어와 그녀가 같은 사람이라고?

...그럴 리가.

허나 그런 내 의심을 깨부수듯, 제논은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우리가 아는, 레이샤는 아마도, 아니. 확실히 레이 마이어야.”
“...그걸 어떻게 알아?”

같은 부분이라고 할 게 없잖아. 얼굴도, 성격도, 심지어 얼굴이 아닌 다른 부분마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레이 마이어는 원작 시점에서도 몇 십 년  사람인데,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어?

“이능이 같으니까.”

제논은 덤덤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이능이 같다는 말은, 레이 마이어의 이능이 뭐였지?원작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었던 그 이능을 떠올린 순간- 내 얼굴은 하얗게 물들었다.

레이 마이어의 이능은, 마법. 말 그대로 마법과도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실현시키는 일종의 기적. 그리고 마법 동아리. 그 우스꽝스러운 동아리와 그녀의 이능은 그야말로 딱 어울리지 않은가.

...이런  원작에서도 안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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