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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수련은 싫어(1) (26/115)



〈 26화 〉수련은 싫어(1)

“...네 말대로 레이샤 교수님이 레이 마이어라서, 마법 동아리에 가입하겠다는 거야?”
“응.”

제논은 당연하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레이 마이어라면 단순히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레 다가온 사실에 도무지 차분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탑히어로’, 그 위명이 가지는 힘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니까. 원작에선 언급만 됐을 뿐, 내가 보던편까지 등장하지 않았었는데...갑자기 이렇게 이름이 나온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레이샤 씨가 원작에서 지니는 분량은 전무(全無)했고, 마법 동아리도 언급이 안됐으니 아마 개설조차 되지 않았겠지. 그래서일까, 레이 마이어라는 의외의 이름이 지금에서야 튀어나온 건.

하지만  중요한 건, 제논이 레이 마이어를 어떻게 알아봤냐는 것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비슷한 곳이 전혀 없을 터, 레이샤 씨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긴 했지만...지금에서 와서 확실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무언가를 봤기에 그런 말을 하는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논과 레이 마이어의 접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고심에 휩싸여 눈매가 좁아질 때 쯤, 제논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보냐는 거겠지.”
“어떻게 알아본 거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곤란하다는 듯, 책상에 턱을 괸 채 나를 허공을 바라보던 제논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냥, 어렸을 때   봤던 사람이야. 신기하게도 아버지 쪽이 아닌  쪽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지.”
“어렸을 때?”
“응,  때는 지금이랑 생긴 것도 완전 다르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알아볼 뻔 했는데...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이능도 그렇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라, 묘한 기시감이라는 것이 뭔지는 알았지만. 그렇다 한들 레이 마이어와 레이샤 사이에는 외견 상 너무  차이가 있었다. 어렸을  봤다는 얘기를 생각해 보면...무언가 특정할 만한 부분 있던 거겠지.

딱히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구태여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마법 동아리라는 곳에 가입할 필요도 없을테니. 아마 마법 동아리에 가입하겠다는 건 순수하게 레이 마이어라는 사람의 존재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능이 같은 걸 알아볼 정도라면, 단순히 기시감을 느낄 정도로 알아차릴 정도라면 어째서 원작에  내용이 나오지 않은 걸까. 하지만 그 의문은 간단하리만치 금방 풀렸다. 원래라면, 마법 동아리도 없었을테니까.

아이샤도, 제논도 마법 동아리는 듣지도- 그리고 가입하지도 않았다. 이론이 주가 되는 레이샤 씨의 수업이었으니. 이능으로 특정하기도 힘들었겠지.

...일단, 만나봐야  것 같았다.

#

“진짜 그 사람이 맞을까?”
“...확실해. 내가 본 것도 있으니까.”

제논이 직접 봤다는 그게 무엇인지 물을 겨를도 없이, 제논은 교무실의 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하고 열어젖혔다.

“...뭐야?”

입에서 나온 건 의문어린 목소리였다. 교무실의 문을 열자 보이는 건 그 안을 가득 채운 매케한 연기, 담배나 가습기 따위의 연기가 아닌- 매우 특이한 형태의 연기, 마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마녀의 공방을 보듯 가득 놓여진 가마솥. 분명 전에 레이샤 씨의 교무실에 온 적이 있었지만, 이런 것은 없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없을 만큼이나 변해버린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제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숨길 생각도 없나 봐요, 선생님.”
“...아까 너한테  번 보여줬으니까. 아이샤한테는 얘기할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결계를 해제했군요.”

저 편에서 들려온 건, 분명 레이샤 씨의 목소리. 하지만 특유의 나른함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져 왔다. 순간 몸이 저릿할 만큼이나, 강렬하고 뜨거운 느낌. 이전의 맹한 모습은 전연 사라진, 레이 마이어의 차가운시선이 내게 향하고 있었다.

“...안녕, 아이샤. 동아리 신청하러 와준 거니?”

겉으로는 기뻐하는 듯, 웃어 보이고 있지만. 그 뒤로는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여지껏 보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되는 그녀의 면모에 나는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해는 해, 내가 왜 여기 있는 지도 몰랐을 거고. 제논이 날 어떻게 알아봤는지, 무슨 사이였는지도 전혀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정말 레이샤 교수님이 그...레이, 마이어인 건가요?”
“그래, 뭐. 어차피 동아리 개설이 반려됐으면 어련히 아카데미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나가지도 못하겠네.”
“...아.”

원작에서 제논이 레이 마이어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동아리가 반려되면 나갈 생각이었다니, 진작에 아카데미를 떠났으니 접점도 사라지고 자연스레 레이 마이어가 언급되는 일도 없었겠지. 그 이후에 레이 마이어가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한  전개가 틀어졌다는  분명해보였다.

“뭐 아무튼, 제논한테도 어느정도 얘기를 들었어. 헤라한테 찍혔다고?”

아무렇지 않게 헤라 카르멘을 언급하는 걸 보고 순간 숨이 턱, 막히긴 했지만. 맞는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 마이어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고작 1학년인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직접 도와줄 수도 없고. 아아, 아까 점멸만 안 썼어도  들키는건데...!”
“직접 도와주실  없다는 건...”

제논의 태도나, 그걸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레이 마이어를 보았을 때 둘은 꽤 친밀한 사이라는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도와줄 수 없다, 라며 딱 잘라 말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분명했다.

그렇다면 역시, 모습을 바꾼 탓에 그런 건가. 하지만 모습을 바꾸었다면, 굳이 누군가가 눈치챌 수도 있는 아카데미의 교수로 취직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내 의문을 알아챈 듯, 레이 마이어가 입을 열었다.

“모습을 바꾼 이유는...뭐, 아직 말해줄 수 없을 것 같고. 아카데미에 취직한 건 단순히 제논을  지켜보려고 했을 뿐이야. 어렸을 때 잠깐 데리고 있던 적이 있으니 어떻게 사나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니까...아카데미에온 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응.”

하기야, 그랬으니 동아리가 반려되면 나갈 생각을 한 거겠지. 어쩐지 맥빠지는 이유긴 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탑히어로였다. 그런 사람의 동아리라, 단순히 커리큘럼만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상상 이상의 도움이 되겠지.

앞에 내밀어진 동아리 신청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망설임 없이 내 이름을 적었다. 헤라 카르멘과 싸우려면, 당연한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나와 제논이 신청서를 모두 작성하자, 레이 마이어는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반려를 피했다며, 신청서를 파일에  끼워놓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내가 하는 말 듣고 너무 실망하거나 그러진 마.”
“...무슨 말을 하려고요?”

제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언가 불안하다는 듯, 추궁하듯 물어오는 목소리에 레이 마이어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흠, 그러니까...마법 동아리의 인원은 너희가 끝이야.”
“예...?”
“우리 인원은  두 명이라고.”
“아니, 잠시만요. 동아리 정원은 10명이고, 저번에 분명히  명만  있으면 반려를 피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갑작스러운 선언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말이 바뀌는 거지? 나랑 제논 딱 두 명이라니, 그럼 애초에 반려되는 게 아닌가?

“괜찮아, 명단은 채웠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냥 없는 사람 이름 9명만 채워놓고 하면 돼.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마법 동아리를 만든 건 혹시 모를 인재를 찾는 다면 내가 직접 키우려 했어. 제자 하나쯤 들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네가 딱 눈에 들어온 거지. 한 명을 비워둔 건 순전히 너를 데려오려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저를요?”
“응, 저번에 네가 대강당에서 제논하고 카이사를 얼렸을 때, 그  네가 딱 눈에 들어오더라.”

그 말을 듣자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 ‘탑히어로’가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니, 왠지 인정받은 것만 같아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완전히 아이샤가 나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닐까.

“이제는 두 명을 키우게 생겼지만.”

그렇게 말하며, 레이 마이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동아리 개설이 완전히 끝나고, 레이 마이어는 모든 정규 수업이 끝났을 때, 그러니까 매일 방과후마다 자신의 교무실로 오라고 말을 남겼다. 갑자기 생겨난 일정에 시간이 빠듯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새어나왔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녀는 당분간 이능을 집중적으로 수련할 것이라당부했다. 각자의 방식에 맞추어, 최대의 효율로 수련을 할 계획이니 정신 단단히 붙잡는 게 좋을 거라고. 제논에게 물어봤지만, 녀석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 그 방식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내 이능 활용이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걸 한참 전에 깨달은 참이었다. 고작해야 헤라 카르멘, 1부의 중간보스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고전은커녕 형편없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아이샤의 경지를 드러내는 객관적인 수치는 1번 검부터 7번 검 까지 존재하는 검, 헤라 카르멘을 상대하기 전에, 3번 검까지 뽑아낼 생각이었다.

힘을 강화할 수단이 무엇이 있을까, 레이 마이어는 이능을 수련한다고 말했지만. 한 번도 이능을 강화시킬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런 경험을 가져본 기억조차 없었기에 그저 생소할 따름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도 아직 단순한 전투교본이라던가 이능 활용에서 조심해야할  등 기초적인 것 뿐.

일단 생각나는 건 서포트 아이템인데.

서포트 아이템의 가격이 워낙 비싸니 구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어지간한 히어로들조차 서포트 아이템을 착용하는 이들은 현저히 적은 편이었으니까.

어쩌면 서포트 아이템조차 없이 한 때 ‘탑히어로’로 군림하던 레이 마이어는 정말  생각보다 훨씬 대단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로 보면서 그저 엄청 강하다- 같은 추상적인 생각만 있을 뿐, 남들이 느끼는 만큼 그 대단함을 체감하고 있진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제논한테 정체를 들켰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제논에게 묻자, 제논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얼굴을 계속 쳐다봤는데, 어디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런 느낌은 웬만해선  틀렸거든.”
“그래서?”
“나중에 찾아가서 물어봤지. 아마 네가 프레이랑 동아리 얘기하고 있을 때쯤이었나. 혹시 레이 마이어냐고 물어봤어.”
“...설마.”

정말 대답해준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내 생각은 피해갔지만, 제논의 대답은 그것보다도 더 어이없는 무언가였다.

“그랬더니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더라고, 투명화도, 워프도 아니야.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은 여지껏  명밖에 없었어.”
“그렇게 안 거구나...”

눈앞에서 마법이란 이능을 사용했으니, 게다가 그걸 본 사람이 이미 그 이능을 알고 있으니 들키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겠지.

...의외로 허술한 사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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