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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수련은 싫어(2) (27/115)



〈 27화 〉수련은 싫어(2)

“선생님.”
“아, 왔냐.”

아까와는 달리 가마솥도, 희뿌연 연기도 없는 평범한 교무실, 제논의 인사에 레이 마이어가 손을 흔들며 맞아주었다.

“아까 그것들은 다 어디 갔어요?”
“다른 공간에.”

같은 교무실인데, 다른 공간이라니.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내가 알던 레이샤 씨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태도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근데 궁금한  있어요.”
“뭐지?”
“그 때 저한테 와서 울던 거요, 진심이었어요?”

아직도 내 품에 안겨 서럽게 울던 레이샤 씨의 얼굴이 생각난다. 코에 방울이 생겨나고, 눈과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만큼이나 울던 그 사람이...레이 마이어라니. 그 위화감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잠시, 레이 마이어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네?”
“사람이 울 수도 있지. 탑히어로는 울면 안되나?”
“...아니, 그런  아니지만요.”
“아카데미 안에서, 너희가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맹한 ‘레이샤’로 살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 때는 너희도 내가 레이 마이어인걸 몰랐으니 당연히 진심이었지.”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아카데미에 교수로 취임한 걸까. 물론 자기 입으로는 ‘그냥’ 이라고 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엔 무리였다.

“뭐, 아무튼 너희를 방과후마다 내게 오라고  이유를 말해야겠지.”
“...설마 어렸을  했던 그건 아니죠?”
“그거 맞아.”
“후우...”

저들만 아는 대화에 의아해했지만, 이내 제논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은 것을 보곤 침음을 삼켰다. 저렇게 안색이 안 좋은 모습은 처음 보네.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마 곧 내가 할 무언가에 대한 얘기일 텐데. 도대체  하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그런 걱정을 하기 무섭게, 레이 마이어가 입을 열었다.

“아이샤가 B지구에서 빌런들하고 싸우고, A지구에서 마주친 미확인빌런이 헤라 카르멘이라는 얘기는 들었어. 어떻게 싸웠는지는 몰라도,헤라 카르멘한테 시간 벌이를 하고 도주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네.”
“이대로 그냥 있다간, 녀석들이 불시에 습격했을  소리도 못내고 죽어야 하는 건 알겠지? 한 때 알고 지내던 사이로써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다만, 카르멘가는어딘가 비틀려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니까.”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 마이어는 음, 하고 소리를 내뱉으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아무튼, 실력이 어느정도 있으니 너는 제논처럼 굴릴 필요가 없겠네. 제논과 너는 다른 방식으로 훈련하는 게 낫겠다.”
“훈련이요?”
“동아리의 기본적인 목표는, 학생을 보다 더 높은 위치를 향하는 히어로로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그녀가 무언가를 훈련시킨다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녀의 이능은 마법, 아까처럼 가마솥과 연기가 가득한 공간을 보여주거나-순간이동을 하는 것은 알겠지만, 너무나도 추상적인 능력이라 정확히 어떤 방식일지, 어떻게 훈련이 이루어질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뭐, 말로 하는 것보다야 직접 하는  빠르겠지. 제논, 준비해라.”
“...네.”

 늘어진 제논의 힘없는 대답을 끝으로, 마법 동아리의 방과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

콰앙-

“이게...훈련?”

쏟아져 내리는 유성우가 공터의 바닥을 강타한다. 바닥에 하나가 부딪히면, 다시 하늘에서 생성되는 2개의 운석, 제논은 땅에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운석을 피해가며 그것들을 하나씩 폭파시키고 있었다. 검으로, 몸으로, 어쩔 때는 머리로 직접 운석을 터트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것뿐 이었다.

레이 마이어는 그 훈련이 마음에 드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게  이능, 마법이야. 내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이뤄낼 수 있지.”
“...마법 동아리라서 처음엔 이게 뭔가 했는데.”
“마법은 실존한다고. 일단 내가 있고, 네 이능도 어찌 보면 마법이랑 비슷하지?”

확실히, 마법은 초능력의 한 갈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능이나 초능력이나 결국 같은 뜻을 품고 있으니,  이능 세계도 어찌 보면 마법이 있는 세계와 다름없을지도 몰랐다. 내 이능도, 얼음을 다루는 능력. 결국 상상을 통해 발현되는 일종의 마법과 비슷했다.

“확실히 비슷하긴 하죠.”
“내 생각엔, 지금 너는 학생 수준이 아니야.”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나지. 그렇게 덧붙이며 레이 마이어는 손에 작은 얼음 결정을 띄웠다.

“얼음을 다루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조형을 하는데 에는 조예가 필요하고, 조예에는 어지간한 예술가 수준의 감각이 필요하지. 그걸 조형해서, 전투에 활용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너, 검술도 할 줄 안다며?”
“네...뭐. 그렇죠.”

비록 내가 스스로 익힌 검술이 아닌,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검술이지만. 맞는 말이긴 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 마이어는 만족스럽다는  활짝 웃었다.

“역시 내가 데려와서 키우려 한 사람답다니까. 좋아, 아주 맘에 들어.”
“가, 감사합니다.”

등을 팡, 팡 두드리며 격한 기쁨을 표하는 그녀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손에서 작은 나무 막대기가 나타났다.

“이건 내 완드야, 서포트 아이템 중 하나지.”
“서포트 아이템은 사용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남들이 만든 건 안 써,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서포트 아이템 하나하나의 가치가 어지간한 도시의 가치는 될 텐데, 그걸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시점에서 생각을 포기했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구나, 탑히어로 레이 마이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완드를 치켜들더니, 이내 허공에 둥그런 원을 만들어 내었다. 원 안에 있는 것은 새까만 어둠, 레이 마이어는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가는 듯 손짓했다.

“...저기 안으로 들어가라구요?”
“흣, 그래. 설마 날  믿나?  앞에서 눈물도 보인 사람이야. 그렇게 정이 없진 않아.”

지이잉-

그녀의 손에서 푸른 사각형이 떠올랐다. 어느덧 입체적인 형상을 지니게 된 그 직육면체의 세부적인 형태는 미로였다.

“저 원으로 돌아가면 네가 향하게 되는 곳은 여기야. 거기서 네 이능을 강화시킨다.”

이능의 강화, 마법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막상 직접 눈앞에 두니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탑히어로가 직접 도와주는 수련, 아까 제논의 얼굴을 봤을 때 결코 쉬울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레이 마이어와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여지없이 얼굴을 찡그렸으니, 아마  상상 이상으로 고된 훈련이겠지. 하지만, 헤라 카르멘이 나를 노리게 된 건 순전히 내 탓이 아니던가. 주먹을 꾹, 쥐며-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운다.

“...후우.”
“오늘은 처음이니까, 딱 1시간만 하자. 그럼 수고하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검은 색의 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몸이 무언가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감각이란, 결코 기분 좋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몸을 뒤덮은 불쾌감에 눈을 찌푸리면서도 지금의  상태를 파악한다.

차가운 바닥, 끝을 알 수 없을 만큼이나 길게, 그리고 높게 뻗어진 천장, 내 주변의 시야를 모조리 가리고 있는 푸른 색의 벽까지. 이게 아까 레이 마이어가 보여주었던 ‘미로’라는 것을 떠올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공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다니, 이런 존재를 사람이라 칭할 수 있는 걸까.

콰직-

얼음을 쏘아보내 벽에 부딪혀 봤지만, 작은 흠집조차 없이 얼음만 부서질 따름이었다. 역시 길을 찾는 방법 밖에 없나. 길을 찾을 자신은 없지만,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미로찾기의 팁을 떠올리며 벽을 더듬거렸다.

...그러니까, 벽 한 쪽을 짚고 계속 나아가며 걸으면 출구까지 닿는다고 했나?

벽을 짚은 채 계속해서나아간다. 시간 감각은 없었다, 들어가기 전에 1시간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시계도, 태양도, 달도 없는 이 공간에서 시간을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게 끝은 아닐텐데 말이야.”

레이 마이어는 이 공간에서 내가 해야할 것이 이능의 강화라고 언급했다. 아마도 이 미로에서 더 나아갈 때마다 무언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앞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기둥을 솟아오르게 했다.

이윽고 얼음이 부수고, 깨어지며 하나의 검이 드러난다. 저번에도 꺼냈던 1번 검 월야(月夜).
원작에서 아이샤는 7번 검까지를 한계로 잡았다. 물론 직접 꺼내 보였던 건 5번 검 까지였지만. 지금의 나는 1번 검을 뽑을  있는 상태.

주인공과 비등한 잠재력을 지닌 아이샤였던 만큼, 나는 아직 더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나는 어디까지 도달 할  있을까, 내가 아는 원작은 3부까지였다. 3부의 시작점. 거기까지를 읽던 도중에 빙의되었으니까. 3부의 완결까지 다다랐을 때, 구경만 하고 싶진 않았다.

쿠우웅-

내 생각대로,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벽으로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순간 이 공간이 울릴 만큼이나 느껴지는 진동을 보면 평범한 녀석은 아니겠지.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을 직접 마주했을 때, 내 입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불?”

주변의 벽을 녹여버릴 만큼이나 강렬한 열기, 얼음으로 때려도 안 부숴지는 벽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얼음을 생성하자, 주변에 물기가 생기는 걸 볼 수 있었다. 눈과 입만이 새겨진 불꽃이 광소한다. 아지랑이가 일며, 주변에 있는 얼음이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녹네...”

어지간한 불로는 녹지도 않는데, 닿지도 않은 불로 녹아내리는 얼음을 보며. 아까 꺼내들었던 월야를 다시 집어넣었다. 검으로 벨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거세게 치솟는 불길을 보며 생각한다. 불리한 상성, 얼음을 만들어 가둔다 하더라도 녹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평범한 얼음이라면 그렇겠지. 내 이능은 상상력에서 비롯한다. 얼음이 녹고 있다는 건, 내가 상상하는 얼음이 고작 불 따위에 녹아내리는 얼음이라는 것.

쩌저적-

상상한다. 불마저, 뜨겁게 타오르는 청염마저 잠재울 한기를. 열기를 억누르고, 불을 먹이 삼아 생성되는 얼음을. 얼음이 땅을 뒤덮는다. 벽면을 타고 솟아오르는 얼음의 가시들이 아가리를 벌리듯 괴수를 향해 입을 벌렸다.

마지막 힘을 토해내기라도 하는 걸까, 푸른색의 불꽃이 치솟으며 얼음을 강타한다. 순식간에 부숴지는 얼음의 조각들이 주변에 비산(飛散)한다.당장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 듯, 광분하며 타오르는 불길과 눈을 마주하며-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쩌저적-

주변에 쌓인 얼음의 가시들이 일점(一點)에 다다르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제 아무리 불길이라 하더라도, 피할 겨를도, 틈도 없을 터. 수십, 수백 개의 가시가 하나의 적을 꿰뚫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얻는 벌과 가깝지 않을까.

닿은 가시들이 얼어붙는다. 아직까지 잔재가 남은 불길을 온전히 집어삼키려 하는 탐욕, 그 스스로가 하나의 생명체가 된 듯 불길을 삼키던 얼음들은 이내 하나로 얼어 첨탑이 되었다.

...쉽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미로의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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