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수련은 싫어(4) (29/115)



〈 29화 〉수련은 싫어(4)

서포트 아이템의 가격은, 어지간한 히어로조차 쉽사리 소유할  없을 만큼이나 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물건이다. 단순히 이능을 보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능의 성능 자체를 개선해주는 것도 있었으니까.

물론, 이 제전에서 나오는 건 서포트 아이템이라 하기엔 애매한 물건이었지만.

“서포트 아이템이 나온다고요?”
“음, 정확히 말하면 레플리카라 하는 게 맞겠지. 성능 자체는 저하되어 있으니.”
“레플리카?”
“카르멘이 보유하고 있는 길드에서 직접 제작한 서포트 아이템이야. 이번에 새로 제작했다며 학교에 홍보 목적으로 성능이 저하된 것을 상품으로 후원했어.”

 비싼 걸 상품으로 후원한다라, 아무리 성능이 떨어져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서포트 아이템이라는 이름이 어디 가진 않을 텐데.  만큼 상당한 자본이 있다는 거겠지.

“흐으...”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역시 탑히어로의 길드인가. 서포트 아이템을 상품으로 후원할 줄이야. 제논의 반응을 보려 고개를 돌렸을 때, 제논은 의외로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품으로 걸린 것들의 기능이 뭐죠?”
“그건 나도 몰라, 정확한  제전이 열리면 공개되는 건데...아무튼 이번 제전은 조금 빡셀거란 얘기지.”

그런 얘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레이 마이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걱정하는 듯, 걸리는 점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의문을 품기도 잠시.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제전은 이능 사용이 허가된다...그 말은 다칠 일이 생긴다는 거야. 빌런하고도 싸워본 너희니까 뭐 크게 걱정은 안하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네, 그렇게 덧붙이며 담배 꽁초는 떨어진다. 발에 짓이겨 하얀 재만 남은 꽁초를 잠시 바라보던 레이 마이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3학년엔 헤라 카르멘이 있어, 1학년하고 3학년이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곤 하지만. 그건 초반부의 이야기. 코어를 파괴하게 되는 후반부까지 다다르면 무조건 마주칠 거야.”
“...설마.”
“내 생각엔 헤라 카르멘이 정정당당히 승부할 거란 생각이 들진 않거든. 너희를 벼르고 있던 것도 있고, 상품을 놓치고 싶진 않을테니까.”

헤라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듣자 어째서 카르멘 산하의 길드가 서포트 아이템을 후원했는가, 라는 의문이 조금 풀리는것 같았다. 자신들이 소유한 자본을 자랑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궁극적인 목표는...

아마 탑히어로의 자식에게 서포트 아이템을 주는 거겠지. 학교에 있는 카르멘가의 아이는 셋. 3등까지 주는 거니까. 헤라 카르멘, 카이사 카르멘,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오딘 카르멘까지.

학년마다  명씩 있는 카르멘가의 자식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종의 계략. 당연히 자기 자식들이 우승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이 것을 깨달았기에 원작의 제논도 우승에 그리 맹목적으로 달렸던 거겠지. 그  1등 상품이뭐였더라?

“흠...”

아무래도 너무 오랜  기억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열심히 읽긴 했지만 주간 연재 작품 초반을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조금 그렇지. 굵직굵직한 사건은 대충 기억이 나긴 하는데. 이제 그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중점을 둬야 할 것은 헤라 카르멘이었다. 저번에 한 번 부딪힌 만큼 그녀 입장에서는 우리가 거슬릴 터, 제전 후반부에 부딪힐 것은 필연일 테니까... 대비를 하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을 때, 제논과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동자가 순간 흔들린다. 나를  걱정하는 걸까. 그 걱정이 자신에게도 향했으면 좋으련만. 녀석의 걱정은 오로지 나에게 향했다. 헤라 카르멘과 싸운다고 하니 예전 기억이 떠오른 거겠지.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약간 불안해하는 것만 같은 제논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이제 조금도 다칠 일도 없다고.

정말로, 자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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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 너도 제전에 참가하지?”
“응, 레이샤 교수님 동아리에 있으니까.”
“근데 그...마법 동아리잖아. 괜찮겠어?”
“음...뭐, 나나 제논 실력이 그렇게 모자란 것도 아니잖아. 너는 팀 짰어?”

그렇게 묻자 프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주력이 아닌 보결 선수인건가.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자 프레이가 내게 엉겨붙었다. 이젠 이 끈적한 점액도 그냥 기분 좋을 따름이었다. 촉촉한 탓에 피부도 왠지 좋아지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수분 크림중에 달팽이가 재료로 들어가는 것도 있지 않나?

흠칫,

갑자기 몸을 떠는 프레이의 얼굴을 쳐다보자, 녀석은 나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바, 방금 무서운 상상하지 않았어?”

아, 그러고보니 프레이는 달팽이였지.

“미안.”

혀를 살짝 내밀며 사과하자, 프레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더욱 엉겨 붙었다. 아, 달콤한 냄새. 이렇게 안고 있으면 몸만 따듯해지는  아니라, 바디워시 향까지 전해져와 기분이 좋아졌다. 뭐 쓰는지 물어볼까, 나도 쓰고 싶네.

프레이를 껴안은 채 주변을 둘러보자, 학생들이 여럿 뭉쳐 무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굳이 뭔지 얘기를  들어도 무슨 얘기인지 알겠네.

앞으로 제전까지 6일, 오늘 아침에 서포트 아이템이 상품이라는 것이 공개 되었으니. 그야말로 여태까지 짰던 전략 중에서 최선의 전략을 찾는 것이 그들의 목표일 것이다. 나랑 제논도 출전하긴 하지만...전략이랄 게 따로 있을까.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게 끝.

레이 마이어와의 수련으로 전력이 순식간에 상승했다. 다만 필요한  경험, 아마 제전에서 그걸 얻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근데 아이샤, 제논이랑 요즘 어때?”

안겨있던 프레이가 귓가에 속삭였다. 얘가 또 뭐라는 거야, 눈매를 좁히며 프레이를 살짝 밀쳐내자,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계속 제논과 나 사이를 물어왔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그냥 친구야 친구.”
“그거 알아? 며칠 전만 해도 친구도 아니라고 했어. 근데 지금은 친구? 조금 있으면 여자친구 되는 거 아니야?”
“하아...프레이, 난 남자한테 관심 없어.”

이건 진심이었다. 여자이긴 하지만, 남자랑 사귄다니...예전 만큼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더라도 꺼림칙하긴 했다. 내가 말한 것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프레이의 더듬이가 느낌표 모양으로 바뀌며 얼굴이 붉어졌다.

“여, 여자끼리는 안 되는데...!”
“정말 너 때문에 머리가 아파...”

그렇다고 여자한테 관심이 있다는 건 아닌데.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자 프레이가 등을 간지럽혔지만, 손을 꽁꽁 얼리니 미안하다며 간질이는  그만두었다.

레이 마이어가 준비한 훈련 자체는 끝났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던 훈련이 끝난 건 아닌 터라,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리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각종 과학 서적, 특히 물과 얼음과 관련된 걸 읽고, 냉병기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가장 관심있어 하는 것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신화들.

특히 니플하임과 같이 얼음과 관련된 신화를 볼 때면, 상상력이 꽤나 풍부해지는 것만 같았다. 내 이능이 상상을 기반으로 작동되는 걸 생각했을 때 어쩌면 이런 신화적인 광경도 나중에는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진작에 미로에 들어가 실험해보긴 했지만, 좁은 범위만 살짝 생성될 뿐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되진 않았다. 상상을 현현하려 하면 뇌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느낌이라 해야할까. 온 몸이 찌릿하고 전율하는 감각에 이능이 순간 멈춰버려 더 이상 전개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한계...그런 거라 생각한다. 이능을 사용하는데 들어가는 자원은 정신력, 만약 내가 7번 검을 뽑을 때쯤이면 신화적인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혼자 즐거워하고 있을 때, 볼에서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공부해?”
“...아, 제논.”

언제 교실로 들어왔는지, 캔커피를 내 뺨에 댄 제논이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얀 색 머리카락이 넘겨지자 그리로 수많은 시선이 꽂히지만,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입을 열었다.

“훈련은 진작에 끝났을 텐데.”
“그냥 나 스스로 하는 거야. 어차피 제전 전까지 할 것도 없고. 헤라 카르멘하고 싸우려면...조금 더 준비해도 모자라지 않을테니까.”
“음...”

헤라 카르멘, 그 이름이 언급되자 제논은 침음을 삼켰다.

“그래도 후반부까지는 만날  없을 거야.”
“그렇긴 한데...헤라 카르멘이 우리랑 정정당당히 싸우진 않을 거 아냐.”

합법적인 싸움은 기대도 안한다. 규칙을 지키며, 규정에 맞춰 싸운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해줄 리가 없지.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었기에 오만하고, 교만하며, 방자했다. 설령 규칙을 어긴다하더라도 그냥 주의를 주고 넘어가겠지.

이미 카르멘이라는 이름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사회에서, 고작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가며 욕할 이가 과연 있을까.

만약 함정에 걸려 누군가 다친다면? 그런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아.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다시 제논을 바라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는 녀석을 빤히 쳐다보자, 녀석은 내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켜줄게.”
“뭐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를...”

무언가를 결심했는 지, 순간 눈을 질끈 감은 제논이 나를 바라보았다. 푸른 눈의 떨림이 잦아들고, 어느덧 시선이 나란히 마주했을 때, 녀석이 말을 이어갔다.

“지켜준다는 얘기야.”
“풋.”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얘기를 왜 분위기를 잡아가면서 하는 건지. 내가 웃자 못마땅하다는  살짝 흘겨보는 제논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만 일까.

나보다 약하면서,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건지. 정작 저번에 헤라 카르멘을 상대한 것도 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마음이 싫지 않아서, 오히려 고마워서. 녀석에게 밝게 미소 지어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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